탈북을 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교육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남한의 전반적인 구경을 시켜주거나 정부적인 단순한 지원을 해주는 데에서 그쳤다. 일례로 1987년
김만철 일가족들이 탈북했을 당시에는
롯데백화점이나 남산,
63빌딩 등 서울을 구경하는 정도였다고. 참고로 김만철씨 일가는 꽤 많았던 지원금을 사기당해 싸그리 날려먹고 컨테이너에서 거주하면서 인형 눈 붙이는 부업으로 연명하고 있다. 김만철 씨는 비교적 최근까지 사이비 종교인 영생교에 심취해 있었다. 다만 막내아들 김광호 씨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라고 하니 불행 중 다행. 허나 현재는 바로
하나원으로 보내어져서 3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에 이후 내보내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한 탈북자들은 이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도 나왔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그렇게 생활을 하는 편이 쉽지 않은 편이다.
우선 취직하지 않는 이상은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북한은 배급도 끊기고 사회주의의 인민생활보장제도도 무너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국가가 인민의 삶을 책임지는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병원, 학교(필기구나 책가방도)는 무료이고 세금도 없으며 직장도 국가에서 배정하기 때문에 실업이 없이 거의 100% 취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본인이 노력해서 돈을 벌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새터민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많은 새터민들이
법치주의나
상거래 등에 익숙하지 않아 결국 하류층으로 전락하고 온갖 종류의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많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다만 이는 한국의 사회적 약자들이나 다문화가정 출신들도 큰 차이가 없다. 당장 뉴스에 잊을 만하면 나오는 묻지마 범죄자들이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자.
보통 엘리트 출신이 여기서도 적응을 잘한다고 한다. 80년대 동구권에서 유학한 엘리트라든지 아님 북한의 유수의 대학 출신들. 아무리 폐쇄적인 나라라고 해도 바깥세상에 더욱 잘 알고 교육이 뒷받침되기 때문. 사실 최근의 탈북자 사회 부적응 문제는 이런 엘리트층이 아닌 일반 주민들이 대거 탈북하여 한국에 입국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 이들 중 북한에서부터 달러 등 외화를 많이 소지하고 있던 사람들도 많아서 그 돈을 그대로 남한에서 사용하며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남한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수적으론 많지 않지만 북한군 현역 군인, 특히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장교의 경우엔
특별임관을 통해 한국군 장교로 복무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군 공군 조종사 출신인 고(故)
이웅평 대령이나
이철수 대령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아직까지도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이질감 문제가 존재한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있던 문제이다. 1990년대에 탈북하여 그럭저럭 한국에서 잘 정착한
김용이 쓴 글을 보면 저녁에 지하철을 탔더니만 술 취한 사람이 바닥에 드러누워 잠 자는 걸 보고 어느 아이가 엄마에게 "저 사람 왜 그래?"라고 물어보자 "북한에서 온 거지일 거야"라는 답변을 하는 바람에 엄청 분노했었다는 글까지 남길 정도이다. 심지어 죽을 고생하고 온 탈북자가 쓴 책을 봐도 "북한에서 온 새끼들은 거지밖에 없어!"라는 자칭 보수단체 사람을 봐서 그 사람에게 "
황장엽도 거지새끼냐?"라고 대꾸하자 그 사람이 말문이 막혀 그냥 가버린 일화까지 나온 바 있다(이 작자는 책까지 써서 황장엽을 찬양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일화들은 거의
IMF 이전 한정이라고 보는게 맞을것이다. IMF 이후 '남한 거지'들도 넘쳐나게 됨으로서 남한인들의 근거없는 자신감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에
이젠 거꾸로 우리나란 틀렸다는 비관론이 하도 설쳐대서 문제지 거지를 북한 주민으로 보거나 몰지각한 새터민 거지 운운하는 행위는 많이 사라졌고 오히려 두 세력이 힘을 합쳐(...) 대북 전단 살포 등의 운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은 남한보다 중국에 훨씬 많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고생하다가 중국이 더 자유롭고 돈 벌기 쉽다는 소리를 듣고 일단 중국에서 돈 벌고 북한으로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중국에 가서 북한보다 훨씬 발전한 생활상을 보고 북한으로 안 돌아가고 눌러앉아 산다고 한다. 다만 공안의 감시가 심하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생활을 원하는 탈북자들은 남쪽으로 쭉 내려가 그들을 난민으로 받아주는 동남아 중립국으로 도피한다. 대사관 경로는 최근 들어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해져서 성공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유입되는 경로는 탈북→중국에서 공안 감시 피하면서 돈을 번다→브로커들에게 돈을 주어 탈북자를 수용하는 동남아 국가로 도피→남한 입국의 경로인데 브로커들이 많은 돈을 요구하여 금전적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기차에서 공안 감시를 피해야 한다거나 밤 중에 강과 밀림을 건너야 하는 등 고생이 심하다. 보통 양심적이고 장기적으로 장사하려는 브로커들은 대략 200만원 정도를 수당으로 받는데 탈북 루트에 속한 국가들이 하나같이 북한과 한패거리인데다 북한을 위해 그들 자체적으로도 탈북자들을 적극적으로 잡아들이고 있다 보니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게다가
장성택 처형 직후에는 하도 감시가 살벌해서 천만원까지도 올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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