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공간의 주인이신 선생님께서도 글을 올리신 지 거의 1년이 훌쩍 넘었는데 이렇게 올려도 될까 싶지만 지금 학회 참석차 뉴욕에 와있는 김에, 그리고 작년 이맘때쯤 보스톤에서 학회를 하고 글을 올린 기억도 있어 페북에 쓴 글들을 모아 올립니다. 거의 일기처럼 쓴 글이라 형식이 뒤죽박죽이니 양해바랍니다. 이제는 읽을 사람도 별로 없을 듯 싶습니다만. 흐흐
뉴욕 학회 참석 1일차
뉴욕은 처음이다. 미국 자체가 사실 이제 겨우 두번째다. 목적은 언제나 그렇듯 학회 발표. 뉴욕공항은 확실히 도떼기 시장 같았던 보스톤보다는 입국심사가 수월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이다. 몰랐는데 일단의 국회의원들도 같은 비행기를 탄 것 같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낯익은 얼굴들. 내가 이름을 아는 의원이 한 4명, 티비에서 얼굴은 본 적이 있는 이가 1~2명쯤 되는 듯 했다. 신기신기. 개인적으로 옛날에 일 잘한다고 생각한 의원도 있었다.
어쨌든 학회가 치뤄지는 장소 주변 호텔로 고고. 학회 장소는 뉴욕주립대학 뉴팔츠 캠퍼스. 뉴욕이라고 모두 다 도시가 아니다. 뉴팔츠는 시내에서 엄청 멀어서 공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4~5시간이 걸린다. 혹시 몰라 우버로 검색해보니 300달러. 우버는 포기. 그런 이유로 검색에 검색을 거쳐 공항에서 맨하탄 한복판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에 와서 버스를 타고 뉴팔츠로 가는 여정을 잡았다. 맨하탄에서 뉴팔츠로 가는 버스는 겨우 25불. 오케이 당첨. Port Authority라는 이름을 가진 버스터미널은 뉴욕타임즈 건물 맞은 편에 있었다. 공항에서 터미널까지 택시비 50불, 팁 12불. 어쨌든 덕분에 뉴욕타임즈 건물을 찰칵.
버스터미널 지하에 있는 한 식당에서 먹은 피자와 스파게티. 스파게티는 최악. 피자는 괜찮았지만, 너무 짜다.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뉴욕에는 구걸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식사하는 40분 동안 구걸하는 남녀노소가 5명 정도 날 거쳐갔다. 사실 돈을 주고 싶어도 줄 현금이 없었다. 이번에 오는 길에 너무 정신없어 환전을 1달러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된 거 아예 현금없이 뉴욕에서 6박하는 도전을 해볼까 고민중.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하는 동안 그새 술먹고 소동을 피우던 흑인 2인이 경찰에게 끌려간다. 왠지 그럴 것 같더라니. 소리치고 시비걸고 할때 알아봤음. 누가 신고했다보다. 왠지 친절한 이탈리안 사장님이 신고했을 것 같다. 수북히 쌓여있는 면을 가리키며 파스타라고 주문하는 내게 굳이 스파게티라고 정정해주시는 친절한 분이다. 뭔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진귀한 구경. 뉴욕 도착 3시간만에 뉴욕이 어떤 도시인지 조금이나마 알아버린 느낌이다.
뉴팔츠에 도착하고 나니 오후 5시. 2시간이 걸렸으니 멀기는 멀다. 뉴팔츠라는 동네의 느낌은 딱 미드에 나오는 중산층들이 모여사는 마을 같은 느낌. 버스도 없고 마을의 모든 인프라가 자가용을 가진 이들을 기준으로 마련되어 있다. 덕분에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걸어가느라 개고생했다. 구글지도는 다 좋은데 이 길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알려주지를 않는다. 기온 13도 날씨에 땀에 흠뻑 젖은채로 도착한 숙소는 급하게 대충 구했음에도 모든 것이 근사하고 마음에 들었다. 리셉션의 분위기와 내부 구조가 대도시 호텔 특유의 위압감이 없이 아늑하고 정감가는 분위기라 인상적이었다. 내가 이역만리 뉴욕의 호텔에 와서 우리네 시골 인심을 느끼게 되다니 -.- 오래살고 볼 일이다.
항상 해외에 가서 숙소를 잡고 짐을 풀면 주변 마트에 먼저 들리는 편인데, 다행히 호텔 바로 옆에 샾라이트 라는 마트가 있어 구경 좀 했다. 햄파는 청년이 탐 크루즈와 똑같이 생겨(심지어 키도 작았다!) 놀라면서 만족스럽게 쇼핑을 했다. 정말 오늘 하루 이동하다가 끝나는 구나.
뉴욕 학회 참석 2일차
어제 체크인하면서 조식이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얼마나 정신없이 예약을 했으면 그런 것도 몰랐을까. 7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식을 먹었는데, 간도 담백하니 맛있다. 이렇게 먹는 사람들이 왜 샌드위치나 피자는 그렇게 짜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아침을 먹고 망고 스무디를 마시며 고상을 떨고 있는데, 갑자기 비염 발동. 계속되는 재채기에 황급히 방으로 피신하는데, 만나는 직원마다 블레쓰유! 해대는 통에 그 말만 한 다섯번 들은 것 같다. 확실히 여기 직원들은 친절하다.
이번에 참석하게 된 학회는 NYCAS(New York Conference on Asian Studies)라는 명칭을 가진 학회로 AAS의 뉴욕 지부격의, 그러나 역사는 수십년된 유서깊은 중소규모 학회다. 매년 뉴욕주에 위치한 대학끼리(주로 뉴욕대학 캠퍼스들) 돌아가면서 학회를 개최한다.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쳐 치러지고, 내일은 키노트로 AAS의 신임 회장인 듀아라 교수가 온다고 한다. 내 발표는 내일이기에 오늘은 프로그램 목록을 보면서 체크해놓은 동남아, 중국 지역학 위주로 발표들을 참관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내용을 보니 금요일인 오늘 보다 둘째날에 재미있어 보이는 발표들이 모여 있다. 첫번째 세션에는 정말 들어갈 곳이 없어 일대일로와 중국몽을 주제로 한 패널에 들어갔는데, 흥미롭게도 유니온 컬리지 라는 곳의 중국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학생 3명을 데리고 중국에 가서 현지조사한 내용을 발표하는 팀이었다. 첫번째 학생이 일대일로와 중국몽에 대해 개관하며 나름 현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고, 두번째 학생은 시진핑 리더쉽에 대해 발표했다. 유창한 중국어가 인상적. 세번째 학생의 경우 관련한 과학기술에 대해 소개하였다. 나름 알찬 구성이지만, 대부분이 거의 알려진 내용들이었고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는데, 학생들이 다리 꼬아가며 자신있게 발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참석한 학자들이 매우 진지한 태도로 그 발표를 들으며, 중간에 나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질문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번째 발표한 여학생이 질의응답하면서 중국인들은 미국문화에 익숙하고 친숙한 데 반해, 미국인들은 중국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서구 헤게모니의 영향속에서 살고 있는 아시아인들에게 사실 그것은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어찌보면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세계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두 문명간 상호이해의 불균형이 나중에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점심을 먹고 참석한 두번째 세션의 패널은 Establishing New Chinese Modernities라는 주제로 열린 팀이었다. 네 명의 발표자가 모두 중국계. 다만 이름을 보니 둘은 화교, 둘은 중국출신이다. 네 명 모두 각각 프린스턴, 싱가포르, 마카오, 스탠포드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이들이었는데, 새삼 박사과정 시절이 아득히 먼 과거처럼 생각났지만 생각해보니 나 역시 학위 딴지 3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그 중 세 개의 발표가 흥미로웠다. 첫번째는 China at a Standstill 이라는 발표로 최근 중국의 경제 발전 정도가 과거에 비해 낮아지는 과정에서 소위 스태그네이션에 대처하는 중국 젊은 세대들의 심상, 문화에 주목하는 연구인데, 그 반응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도시가 아닌 2선, 3선 도시들에 머물면서 느리게 사는 삶, slowing down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질의 응답시간에 사회자가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한국이 가장 적합한 예가 아닌가 싶다.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상황이니. 다만 한국의 경우 계속되는 일상화된 저성장 속에서 그 반응이 세대간 갈등으로 분출되는 경향이 강한데, 지금 중국은 어떨지 궁금하다. 다만, 발표자가 말한 것처럼 지금 중국이 정체를 겪고 있는 것인지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그리고 정체의 기준은 무엇인지도. 경제적 정체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반응이라는 컨셉은 흥미로웠지만.
두번째는 To be a Good Party Member: everyday politics displayed in the Party Member training class of Beijing Suburbs in 1950 라는 주제였는데, 확실히 역사학은 사료가 있어야 생동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발표자가 북경시 당안관에서 발견한 1950년 북경 교외 당원 훈련일지와 관련한 사료를 가지고 당시 국가/중앙당의 지시 및 방침과 훈련을 받는 당원들의 일상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왜 그렇게 중앙에서 원하는 좋은 당원이 되기가 어려운지 등을 살펴본 내용이다. 어떤 성격의 자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역단위의 농민들과 당원들이 공산당이라는 새로운 지도층을 어떻게 여겼는지가 다양한 예시와 함께 나왔는데, 한 나이 든 당원이 석탄 가게를 열겠다고 당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한 것이 거절당하자 "도대체 당원이 되면 뭐가 좋은 거냐"며 불평하는 내용, 당이 먹을 것과 의복을 주지 않는다면 당원이 되는 것이 무슨 이득인지를 묻는 장면 등은 당시 대륙의 일상에서 공산당과 그 통치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중앙에서 할당되는 10% 생산량 증가 임무, 국내 상황과 국외 정세에 관심을 기울여 당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해야한다는 훈련내용은 절로 좋은 당원되기가 너무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게 만든다.
이러한 다양한 예시들을 통해 발표자는 그동안 중앙당의 정책과 기조 및 지시 위주로 연구되어 온 중국현대사 연구의 흐름에서 농촌의 일상에서는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갭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고민한다. 사실 국가와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 및 지역사회와의 관계 및 갭에 대한 연구는 꽤 다뤄지던 연구이기는 하다. 발표자가 예로 든 것 처럼 마이클 조니 교수가 쓴 Art of being governed 역시 명대 국가의 통제와 세제에 대한 복건 지역 한 마을의 대응을 다루고 있다. 비슷한 개념의 연구는 동남아에도 많다. 제임스 스콧 교수의 일련의 연구는 관련한 연구들의 교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근본적으로 통제하려는 성격과 그에 기반한 폭력성을 담보하는 국가라는 존재가 실제 그 힘과 폭력을 발휘하는 방식과 그 대상이 되는 개인의 인식에 대한 연구는 어쩌면 기로에 선 지금의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주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이제 국가가 우리 개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Historical Roots of Hukou System in China 는 현재 중국 후커우 제도의 역사적 연속성을 찾기 위해 이전 왕조시대부터 훑는 작업이다. 물론 컨셉은 좋았지만, 발표를 주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좀 무리수 아니었나 싶다. 덕분에 강의, 아니 발표가 당 제국에서 끝나버렸다. 발표자, 사회, 객석 모두 하나같이 탄식을 터뜨리는 진귀한 광경. 질의응답에서 나온 핵심은 후커우는 시대별로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각 개인의 거주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라는 측면에서 동질성이 있고, 그 근본적 이유는 중앙의 권력이 사회의 안정을 통제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주요 주장이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전시기와 60~80년대 후커우 제도를 비교하는 것이다. 크게 틀린 주장은 아니지만, 전근대 시기 동서를 막론하고 귀족이 아닌 일반 농민들의 거주를 제한하지 않은 사례는 거의 없다. 도망하여 유랑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지만. 이는 각 농민들에게 세금을 쉽게 부과하기 위함이고, 상당수가 농노들이었던 상황에서 대지주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만의 특성은 아니다. 그러나 근현대 시기에 오면 도시로 집중되는 농촌인구가 자본주의적 발전의 필수 요소가 되고, 텅비어가는 고령화된 농촌사회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및 Global supply chain 의 질서 속에서 중국산, 동남아산 농작물이 대체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 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중국 공산당이 어떡해서든 지키려고 하는 후커우 제도의 특징은 자본주의적 발전을 추구하고, 이미 글로벌 시장경제에 강하게 링크된 중국이 그 흐름에 역행하는 후커우 제도를 굳이 고수하는 이유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북경, 상해, 광주를 중심으로 한 대도시로 집중될 것이 뻔한 인구를 막기위해서 일수도 있고, 농촌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향진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실제 후진타오 시기 후커우 제도를 완화해 보려 했지만, 지방정부의 극렬 반대로 무산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 21세기 중국의 굴기 이후 중앙의 가장 큰 고민은 너무나 큰 중국을 골고루 발전시켜 지역간 균형을 맞추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후진타오 시기는 이를 조화/화해 라는 키워드로 해결하려 했고, 현재 시진핑 정부는 중앙집중의, 권위주의적, 일사분란한, 영속적인 정권의 유지를 통해 해결하려 드는 듯이 보인다. 이는 역대왕조가 고민한 부분이기도 한데, 근본 원인인 너무 넓은 땅과 많은 인구를 어떻게 일사분란하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한 전근대의 정치사상이 유교였고, 공산당은 시장경제와 공산당 일당체제로 극복하려 하고있다. 그 이전 국민당 정부가 권위주의를 동반한 서구식 자본주의 달성을 위해 각종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부패와 전쟁으로 실패한 바 있다.
짐작컨대 중국 공산당 집단에게 이를 위한 나름대로의 계획은 이미 다 있을 것이다. 후커우 제도도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들을 중심으로 이동을 조금씩 허용해주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전제하고 있는 돈과 그에 연계된 사회적 지위상승을 추구하는 인간의 근본적이면서 맹목적인, 어쩌면 본능에 가까운 경쟁심과 욕망을 권력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후커우 제도가 무색하게도 수백만의 농촌인구가 후커우 없이 대도시로 몰려와 도시 하층민을 형성한 농민공 현상을 보면 회의감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이것으로 오늘 학회일정은 끝. 숙소로 가는 길에 버스터미널에 들러 일요일 맨하탄으로 가는 고속버스 티켓을 구매. 역시나 25불. 맞은 편에 어제 봐둔 이뽀Ipho 라는 이름의 베트남 음식점에서 이른 저녁. 쌀국수와 소고기롤을 주문했다. 맛이 어떨지 궁금궁금. 옆자리의 쌍둥이 할아버지는 맛나게 먹기는 한다만. 가게 이름인 이뽀를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했더니 화교 송금연구할때 주로 봤던 도시 가운데 하나다. 이 지역 화교들이 복건의 고향으로 임금을 많이 송금했더랬다. 헌데 그 이뽀는 말레이시아의 도시다. 신기해서 검색해 봤더니 그 이뽀는 Ipoh네. 검색하는 사이 나온 음식. 맛은 일단 괜찮다. 특히 저 소고기롤이 대박. 완전 맛난다. 전체 24불.
이렇게 오늘 일정도 끝! 내일 발표준비를 위해 고고
3일차.
학회 둘째날이자 마지막날이다. 아침 8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첫번째 세션 가운데 Labor, Diaspora and Social Relations 라는 타이틀의 패널에 참석. 그 가운데 첫번째와 마지막 발표가 흥미로웠다. 첫번째는 캐나다 퀘벡에서 온 학자들의 발표였는데, 제목은 A Long way Home : The Fate of the Chinese Builders of the Russian Artic Railways, 1916-1920 이었다. 1차 대전기 러시아 북부 알틱 지역에서 철도 공사에 종사한 중국인 노동자들의 긴 여정에 대해 모스크바와 영국에서 구한 자료로 재구성하였다. 1차 대전기 많은 중국인들이 유럽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일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러시아 북부까지 갔을 줄이야. 당시 러시아 정부는 국내의 노동자와 포로들로도 인력이 부족하자 중국인들을 모집하여 데리고 오게 된다. 그렇게 모집된 7,700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은 1916년부터 16개월 동안 혹독한 환경과 싸우며, 동상으로 동료들을 잃어가며 철로 공사를 마무리 짓는데, 그들의 운명은 이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다. 그들을 고용한 러시아에 붉은 혁명의 바람이 불어 소비에트 유니온이 탄생해 버린 것이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수 백명 단위로 흩어지게 되는데, 일부는 시베리아 산간에서 소련 혁명군이 되고, 일부 300 명은 Slavo-British Legion의 일부가 되어 전쟁에 참전한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중국인들이 중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이번엔 중국 정부에서 그들이 공산주의에 물들어 그 사상을 가져올 것을 걱정해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 발표자에 따르면 일부는 그대로 캐나다로 와서 정착하기도 했단다. 정말 기구한 운명이다. 어제도 느꼈지만 역시 역사학은 사료다. 열대 지방에서 더위, 전염병, 정글과 싸우며 노동에 종사한 중국인들과 환경면에서는 극명하게 대비되지만, 제국과 국가의 논리에 개인의 삶이란 너무도 쉽게 흔들린다는 점에서는 어찌 이리도 닮았는지. 내 발표는 오히려 이 팀과 함께 배정되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다음으로는 코넬대 박사과정생의 발표였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학회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표였다. Transportation by Commodification : Capitalism and the Horse Trade in the Netherlands East Indies 라는 제목이었고, 제목 그대로 네덜란드 식민시기 인도네시아 말 교역을 다룬 연구다. 이번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인도네시아 자바섬 옆에 있는 숨바와Sumbawa 라는 섬이 말 사육과 경마로 매우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근원은 식민시기 말을 전문적으로 사육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하는데, 발표자는 이를 세 개의 시기로 나눈다. 식민시기 이후 말이 조금씩 들어와 숨바와 지역에 정착하는 과정이 1700에서 1900까지고, 1900 이후 1940년까지 말 사육 및 상품화의 촉진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 그리고1940년대 이후 독립하면서 이 말 사육 문화가 현재와 같이 식민지 로컬문화로 전환하는 과정이 세번째다. 오늘 발표는 시간관계상 첫 번째 파트만 잠시 설명했다. 요즘 식민시기 동남아 연구의 중요한 흐름 중의 하나는 식민통치와 환경과의 관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바 커피와 말레이 고무는 동남아 자생이 아니다. 식민정권의 필요에 의해 각각 아라비아와 브라질에서 들여온 외래종이다. 그 덕에 자생종이 아닌 외래종의 대농장이 말레이 반도와 자바섬을 뒤덮었다. 그 외에도 식민시기 환경적 변화는 매우 다양한데, 관련한 연구들도 최근 꽤 축적되어 있다. 본 발표 역시 그 일환으로 식민시기 말의 사육과 상품화, 자본주의적 촉진 등을 다루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말의 사육이 늘어나면서 숨바와 섬의 식생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가 궁금했다. 말의 사육으로 목초지의 환경적 변화가 분명히 있었을 것 같은데. 어쨌든 나중에 논문이 나오고, 혹시 책으로도 출판되면 구해봐야 겠다. 체크체크.
이후에 2번째 세션이 내가 발표하는 패널이었는데, 헐. 첫번째 발표자가 말도 없이 불참. 나이지리아 라고스 대학에서 참가한 학자였는데, 5~6명의 관객과 체어 모두 멘붕. 바로 정신을 차리고 체어(발표자이기도 함)와 나, 두 명은 오히려 잘 되었다며 우리 둘이 신나게 시간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다 하자고 의기투합. 우리가 시간이 없지,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각각 30분씩 발표하고 몇 명의 관객들과 수다떨 듯 토론하고 보니 시간이 거의 다 갔는데, 맙소사 발표자가 그때서야 나타났다. 나이지리아에서 막 도착했다고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만 마음이 약해져 그 학자의 발표도 마저 들었다. 덕분에 점심은 늦게 먹었지만, 또 (미안하다 할때는 언제고) 의자에 드러눕듯이 앉아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거만하게 발표하는 모습에 울컥했지만 나이지라아 지역 중국인, 인도인, 이탈리아인의 현지 적응과정을 실증적으로 조사한 내용을 인상깊게 들을 수는 있었다.
그 다음 점심 직후, 듀아라 교수의 기조강연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양사학자를 뽑으라면 열에 셋 혹은 네 명 정도는 그의 이름을 얘기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저명한 학자다. 현임 AAS 회장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약간 다른 연구적 관심을 보이지만, 원래 역사학자다. Rescuing History from Nation은 그의 불멸의 대표작이고, 그 이전 1900년 전반 중국 화북지연 농촌사회의 구조를 통해 중국 정치경제를 고찰한 연구도 낸 바 있는 저명한 중국사학자이다. 그의 관심이 중국근현대사와 인도 지역에 걸쳐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세계적 환경문제와 국제 갈등 등을 고찰하면서 이 모든 문제들이 우리가 국가 단위로 사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국가 단위의 사고 방식이 가지는 폭력성, 배타성 등에 의구심을 가지고, 이를 극복하는 보다 초월적인 신성성에 주목한다. 하여 기조강연 제목 역시 Sacred Ecologies : Sustainability and transcendence in Contemporary Asia 다. 국가주의, 국가를 비판하는 그의 관점은 여전하지만, 그리고 초월성, 신성함,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관점은 흥미롭지만, 선뜻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힌두, 도교 등 아나키즘적 성격이 강한 종교조직들과 초국적 단체인 NGO와의 공동활동 등도 예로 들지만, 약간 이상적으로 들리는 것은 나에게 종교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언젠가부터 듀아라 교수는 이런 내용의 발표를 해오고 있고, 몇 년 전에는 비슷한 제목의 책도 낸 바 있다.
이후 학회일정은 다른 할 일이 있는 관계로 패쓰~~
첫댓글 이런 글도 올렸었군요. 감사감사! 더욱 활약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