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중의 경제위기'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이유
홍종학 전 중소기업부장관
시민언론 민들레
2024.01.29
정책 성과 분석 없고 위기에 책임도 안물어
지난 칼럼에서 2024년 한국경제는 7중의 경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성장률, 고금리, 가계부채, 자영업자, 저출산, 인공지능과 관련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라는 7중의 위기를 한꺼번에 맞게 된 이유는 하나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 두 번째, 세 번째… 겹쳐 닥쳐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합위기로 인해 서민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고, 심지어 저출산으로 인해 국가가 소멸될 위험까지 안게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십 년간 이러한 위기가 예고되어 있었고,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투입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뻔히 알고 있는 문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에도 풀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문제 있어도 누구에게 책임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 사회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이러저러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대책이 과거와는 다른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신뢰가 가지 않는 이유는 현재의 대책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이든 기업이든 문제가 계속되면 왜 지금까지 문제를 풀지 못했는가를 되돌아 보는게 우선이다. 과거의 대책이 왜 효과를 내지 못했는지를 알아야 현재 내놓은 대책의 효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대책에 대한 평가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위기에 대해 책임을 물을 기관이나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IMF 경제위기 당시에도 미증유의 국가부도사태를 초래한 경제부처 고위 관료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했다. 사법적으로 단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너무 오래된 구조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다. 예를 들어 가계부채 위기에 대해 어느 부서에 책임을 물어야 할지 따져보자. 필자의 경우 20여 년째 대출은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따져서 해야 하고, 금융회사가 이런 기준을 위반했을 때는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금융을 잘 아는 금융위의 고위 관료들 중에는 이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엄격하게 규제를 집행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심각한 경기침체기에 정부 지원을 늘리지 않아 가계부채가 늘어났다. 심지어 빚을 얻어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는 가계가 늘어나자 가계대출 상환을 강제로 연기해야만 했다. 때로는 기재부나 국토부에서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빚내서 집사라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대출을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금리 결정에서 가계부채 위기까지 고려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에 와서 기재부, 금융위, 금감원, 한국은행, 국토부 어느 부서도 가계부채 위기가 이렇게 심각하게 된 데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각 부처 장관들이 모인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책임 물을 대상이 없으니 문제 해결할 주체도 없다
문제가 심각해 졌을 때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처벌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물을 대상이 없다는 것은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없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관료주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문제가 악화되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서로 생색 내기 바쁘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는 뒤로 숨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적 문제에 대해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아 혼신의 힘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체가 없다는 의미이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국가적 위기를 풀기 위해 밤을 새고 고민하는 부처나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렇게 한국경제는 무너지고 있다.
수십 년 간 수백 조 원이 들어갔다는 저출산 대책을 보자. 돈은 들어갔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이고 어떤 효과를 발휘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없다. 부처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출산 예산을 늘리고 받고 썼다고 자랑만 할 뿐, 그 예산이 제대로 쓰였는지에 대한 분석은 없다. 국회는 간헐적으로 지적만 할 뿐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금년에도 또 새로운 예산을 만들어서 쓰겠다고 하고, 여야는 총선 공약으로 또 새로운 예산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책임과 권한 명확히 하지 않으면 더 악화될 한국 경제
한국 정부의 운영구조가 이렇듯 심각한데도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필자가 국회와 정부에서 일해 본 경험에 의하면 예산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각 부처는 예산을 더 많이 따오고 쓰는 것을 부처의 성과로 생각한다. 심지어 부처 평가방식도 그렇다. 기재부는 부처의 예산을 줄이기에 급급할 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을 배정하고 집행하는 기능은 수행하지 않는다. 금년에도 작년과 같은 방식으로 자의적으로 예산을 짜고 집행한다. 국회의 예산 심의에서도 성과 분석은 사실상 없다. 감사원은 예산 집행에 위법사항이 있는 지는 철저히 따지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는다. 규정에 맞기는 하지만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것을 규제하지 않는 감사원은 기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따져 보아야 한다. 한 마디로 문제를 푸는 부처나 사람은 없고, 문제를 푼다는 핑계로 돈 쓰는 부처나 사람만 넘쳐난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문제를 해결하는 부처나 사람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면 된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목표에 부채 관리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그를 위해 금융감독원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기재부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라는 임무를 부여하고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으면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러면 지금처럼 국가가 소멸되든 말든 곳간만 지키면 된다고 어깃장 놓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 문제를 해결할 국가 인공지능 책임자를 임명하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국가의 모든 예산에 대해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차근차근 성과 평가를 해야 한다.
어떤 문제든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조직에 있어 심각한 거버넌스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없기에 장기적으로 한국경제 위기는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