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선인봉 가는길 중간에 도봉산장이 있고, 산장 못미처 등산로 좌측 옆에 일명 '김경균'바위가 있다.
일명 색소폰 바위라고도 불렸다.
우측 칸테를 잡고 올라가는 동작이 고도의 밸런스를 요하는 어려운 무브이며 그 후 김경균 이라는 글자를 홀드삼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동작도 있다.
김경균바위 보울더의 초등자는 재미산악인 이기범씨(57)이고, 재등자는 정승권(정승권등산학교 교장)씨이다.
김경균바위를 등지고 등산로 건너편 사면을 5분 정도 오르면 짱구바위가 있다.
아래에서 보면 약 110도 정도의 오버행이라 사람의 얼굴로 치면 이마가 툭 튀어나온 모양이라 짱구라고 지은 것같다.
짱구바위에는 세 개의 크랙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좌측에 있는 크랙이 '강적크랙'이다.
예전에 이 크랙의 등반이 극히 어렵고 완등하는 클라이머가 없었는데 막 피어나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자유등반의 붐을 유도하자는 의미에서 강적크랙을 자유등반하는 초등자에게 포상금을 걸었었다.
이는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여 우리 산악계의 암벽 실력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을것이다.
당시 완등자에게 걸린 상금이 100만원이었다.
그 후 월간 "산"지에 강적크랙에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국내의 최고 등반가들이 짱구바위로 몰려들었다.
1989년. 권오환이 김유형보다 몇 달 앞서 적극적으로 등반을 하였지만 결국 김유형에게 초등을 내주고 말았다.
최석문의 말에 의하면 권오한이 핑크포인트(확보물을 미리 설치하고 추락없이 등반하는 것)로 등반을 끝내었지만
김유형이 캠을 설치하면서 깔끔하게 등반을 끝내 초등자로 공인을 받게 되었다고.
89년도의 일이고 강적크랙의 난이도가 5.12c 였으니 크랙난이도를 떠나 자유등반 5.12 등반가로서도 최초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90년대 초중반 전국암벽등반대회가 선운산 속살바위에서 열렸는데 당시 결승루트가 5.12 였으니 강적크랙 등반은 그 보다 5~6년 앞선 일이라 더욱 의미와 가치있는 등반임에 분명하다.
석문과 명희는 이 강적크랙을 끝내기 위해 벌써 11일째 이 곳을 찾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부부다.
히말라야 멀티4 원정대의 대원이기도 했던 두 사람은 자일파트너이자 동갑내기 친구였다.
2001년 7월. 히말라야 혼보르피크를 등반하기 위한 루트 작업을 마치고 전진캠프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7명의 원정 대원 중 유일한 여성 멤버였던 명희에게 위기가 닥쳤다.
크램폰 발톱 사이에 눈덩이가 뭉치는 일명 스노우볼 현상으로 미끄러진 것이다.
바로 밑엔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어 공포와 절망으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몇 미터를 미끄러져 내려갔을까. 바로 앞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석문이 그 순간 명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명희가 내려오는 속도가 워낙 빨라 부딪치는 순간 같이 미끄러졌다.
그 와중에 명희가 들고 있던 피켈에 석문의 눈썹 부위가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다행히 속도가 줄어들면서 목숨은 구했고, 나중에 동료들이 '이거 성형수술 해야 할텐데 어떡하냐'라고 할 때
"그냥 제가 데리고 살죠" 라고 명희가 말했는데, 그때 한 말이 현실이 됐고
등반이 끝나고 귀국한 그 들은 말대로 결혼식으로 올리고 아들 보건이를 낳아 살고 있다.
그 보건이가 벌써 고등학생이 됐다 .
임신과 육아시절 우을증에 걸리기도 한 명희를 위해 석문이가 외조를 하면서
다시 암장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 결과 명희는 급속도로 예전의 기량을 되찾는다.
전국 암벽대회 입상 및 빙벽대회 우승도 하고 익스트림라이더 인공등반 대회에서는 여성부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3년간 내리 우승을 하고 조용히 은퇴를 했다.
차분하고 마음이 푸근한 석문은 명희와 동갑내기 친구이면서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지만 등반에 있어서는 스승같은 존재라고 했다.
명희는 거벽등반도 석문에게 배웠고 지금도 자유등반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고 앞서 나가는 석문을 볼 때마다 대견스럽기도 하고 또한 걱정도 된다고 한다.
항상 전위적이고 도전적인 등반을 해서 그런 것.
며칠 전 암장에서 운동 중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석문의 강적크랙 등반 이야기를 들었다.
핑크포인트로는 등반을 끝낸 석문이지만, 캠을 설치하면서 완등을 목표로 삼은 터라
또 그래야만 제대로 된 등반이라고 믿는 그 들의 생각은 참으로 건전하고 진취적인 사고방식이다.
마침 등반계획이 없는 날이기도 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
11월 늦가을의 도봉산은 포근했다.
전 날 비가 내려 쌀쌀할 법도 하건만 보온을 위해 준비한 두터운 옷을 입고 걸어가기 힘들 정도였다.
몸을 풀기 위해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한 판씩 등반을 한다.
캠을 설치할 곳에 마킹을 하고 손을 넣고 재밍을 할 곳과 제대로 발 디딜 곳 없는 바위면의 작은 돌기에도 표시를 해둔다.
몸풀기를 빼면 사실상 첫 번째 등반을 시작하면서 석문이가
"형, 원래 세 번째 판이 가장 등반이 잘되요.
그 동안 해보니 그렇더라구요.
처음에는 몸도 안풀리고 바위에 적응도 해야 해서..."
이 말을 하고 가볍게 등반을 시작하는 석문.
그래서 그 판은 별로 기대도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마음의 부담을 덜어서 일까,
단 번에 크랙끝까지 올라가는 그.
그리고 마지막 고빗사위를 넘어서며 기합을 넣는다.
"이얏~ !"
"이야야~!!"
마지막 퀵드로에 클립을 하며 환호성을 외치는 석문.
등반을 끝나고 내려오는 그의 손가락은 터지고 벗거져 피가 흐르고 있다.
주먹을 부딪히며 하이파이를 하면서도 "재수없어"를 외치는 그의 파트너 명희.
강적크랙의 난이도는 5.12c로 알려져 있지만 체감 난이도는 조금 높다고 한다.
석문의 평가는 5.12+
손가락이 굵은 남성들은 크랙에 손이 잘 들어가지를 않고 재밍도 어려운 구간이 많아 여러가지 기술을 써야 하며
특히 발 스탠스가 없어 정확하게 발끝으로 찍고 체중을 실지 않으면 터지기 일쑤다.
석문은 중국의 리밍이나 인디언 크릭에서 다수의 5.12a.b 크랙을 온사이트로 끝냈다고 한다.
그것만 보더라도 강적크랙은 난이도상의 5.12c를 넘어서는 어려운 크랙임이 분명하다.
또한 두 사람은 강적크랙에 꼭 맞는 암벽화를 찾아 준비했는데 두 사람의 결혼 기념일에 서로에게 선물로 사줬다고 한다.
이번 석문의 등반을 보면서 몇 년 전 썼던 글이 생각나 일부를 옮겨 본다.
(중략)
최석문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가 이렇게 장황하게 서두를 늘어놓은 것은 바로 이 이유때문이다.
거벽등반을 해낼 수 있는 기반역량이라 함은 수준급의(5.12이상) 암빙벽등반 실력과 인공등반 실력도 두루 갖춘
토탈&멀티 클라이머를 말하는 것인데, 그 클라이머들의 집단은 바로 ‘고산거벽 등산학교’와 그 곳의 강사진들이고,
그 중심에는 문성욱, 장기헌, 임성묵, 안종능 등과 더불어 최석문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아내 이명희도 있다.
지금은 고산거벽등산학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재작년인가 성욱을 비롯한 몇 몇 후배들과 남한산성 범굴암 등반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석문의 전화가 왔었다.
“형, 저 석문이에요.”
“응, 누구?...”
“예, 이명희 남편 석문이요…”
이 말에는 석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겸손하고 조용한 그의 성격말이다.
동양에서는 항상 음양의 조화를 중시했다.
물론 서양이라고 그 밸런스를 중요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폴 매카트티(Paul McCartney)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부른 노래 'Ebony and Ivory' 는 흑백의 조화, 하모니를 나타낸 대표적인 명곡이다.
백인과 흑인을 대표하는 가수가 피아노 건반의 흑백의 조화로움을 가사로써 표현했는데 evony / Ivory 란 말은 바로 흑인과 백인을 가리키는 말이니 말이다.
그리고 최석문과 이명희는 바로 이 음양의 조화를 이야기할 때 사례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행동이나 성격이 대비를 이룬다.
그런데 그 대비 속에서 조화를 나타내고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니 얼마나 절묘한 결합인지 모르겠다.
시너지(Synergy)효과란 1더하기 1은 2가 아닌 3이상의 결과를 가져오는 효과를 말함인데, 많은 클라이머들이 결혼 후 가정을 위해 생계를 위해 등반을 접거나 소홀히 할 수 밖에 없음을 감안한다면 그 들의 모범적인(?) 생활은 그야말로 Ebony and Ivory 라 아니할 수 없다.
고산거벽 등산학교를 언급한 것은 멀티 클라이밍을 실천하는 클라이머들이 많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거벽등반의 선구자격인 박정헌 역시 오래전부터 이런 트렌드를 감지했다.
그 때 유럽을 다녀온 후 산지에 그런 글을 기고 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스포츠 클라이밍의 코치로 변신한 토모 체슨 등을 만나고 온 후, 세계 등반계의 흐름이 고산거벽이며 그러한 등반을 하는 클라이머들은 5.12급을 선등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한다고 했고,
그 자신 한국으로 돌아와 정말 오랜만에 5.11d 루트를 온사이트로 끝냈다고 마지막에 적었다.
국내외 등반을 꾸준히 하고 있는 안치영이라는 젊은 클라이머도 얼마전 선운산에서 5.12d 루트를 온사이트로 끝냈다고 하지 않은가,
최석문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다.
빙벽등반과 기존 암벽루트 뿐 아니라 히말라야와 캐나다 등지에서 벽등반과 빙벽등반, 혼합등반(Mixed Climbing)을 추구해 오고 있다.
하드프리 등반에 오래 집착하지 않았음에도 최근 선운산 '겨울람보(5.13d)'을 등반해낸 것을 보면
그의 노력의 과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졌으되 등반하는 것을 보면 과감하고 용맹스럽다.
그의 아내 이명희는 결혼 전 그에게 인공등반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석문과 반대인 그 녀의 성격이 석문의 조용한 성격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들이 하고자했던 고산거벽등반교육이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컸었다.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도 그랬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추구한 그 들의 시도는 충분히 가치있는 길이었고 아직 끝나지 않는 것이니까,
히말라야 멀티4 원정을 함께 다녀왔던 그 들 중 장기헌, 이명희, 최석문은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에서,
문성욱은 포리스트, 안종능은 넬슨 스포츠, 임성묵은 사람과 산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새로운 시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석문과 그 의 동료들이 추구했던 시도들은 언젠가 커다란 씨앗으로 인정받아
오래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석문이가 완등한 그 다음주 명희도 강적크랙을 끝냈고, 뒤를 이어 손정준, 손승민 등이 등반을 했고 그 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강적크랙의 그레이드는 5.13- 로 최종 정해졌다.
아직 강적크랙은 최기련, 신성훈, 유영욱, 김지성 등 쟁쟁한 클라이머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첫댓글 참..! 피범벅이 된 손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니....변태도 아니고....^^
잘 읽었습니다~
성취감에 기분 짱!!!이었겠네요~
멋져요^^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애 5.13 클라이머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강적크랙이 5.13으로 알려저 있었고 자유등반의 붐을
조성한다는 뜻으로 한국등산학교 총동문회에서 최초 등반자에게
상금 100만원을 걸었습니다. 상금 100만원은 등산복을 제작 운영 하셨던
한등 총동문회 회장 이셨던 고 박규동씨가 쾌척 하섰습니다
현재 종로5가 마운틴 기어 사장이신 김문형씨가 김유형의 친형님 입니다
제가 그당시 한등 총동문회 부회장으로 있어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 합니다
충호형님께서 한등총문문회 부회장님이셨군요.
강적크랙은 지금 5.14클라이머들도 쉽게 끝내지 못하는 어려운 루트입니다.
김유형은 당시 정말 대단한 클라이머였던거죠.
미국으로 가서 이벌브 암벽화를 런칭하기도 했죠.
역사의 한 페이지는 소리없이 흘러가고 기억과 기록 속에 남아있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