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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곡기 노랫소리
오종락
타작하는 날이 되면 탈곡기는 마당 한가운데 당당히 자리를 차지했다. 사랑채 처마밑 뜨락에서 긴 휴식에 들었다가 추수 무대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셈이다. 한 해에 두어 번 보리타작할 때와 벼 타작할 때 출연하여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추수철엔 없어서는 안 될 가장 큰 일꾼으로 시동을 걸기 전에는 준비작업도 필요했다. 안마당으로 옮긴 후 기름구멍에다 기름을 치고, 밑판에는 고정쇠를 박은 후 앞 좌우 하단부에 누름돌을 놓아 탈곡기가 돌아갈 때 움직이지 않도록 했다.
발판을 힘차게 밟으면 ‘와릉 와릉’하는 소리를 내며 우리 집에 타작이 시작되었음을 담장 너머로 온 동네에 알렸다. 돌아가는 소리도 우렁찼지만 낟알을 털어내는 솜씨도 단연 최고였다. 추수철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상징물처럼 느껴졌다. 또 주인의 한 해 벼농사의 결과를 평가하는 도구 역할도 하였다. 탈곡기 원통에 박힌 날에 벼 낟알이 부딪히는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품질을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내기에서 시작된 벼농사의 결실은 탈곡기가 낟알을 모두 훑어줌으로써 마무리되었다. 부모님의 땀과 애환이 쌓인 결과물은 탈곡기의 와릉 와릉 하는 소리가 사라지고 알곡이 가득 담긴 가마니 숫자를 세어 본 후에 판가름이 났다.
초중등 시절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 신작로를 따라 십여 리 길을 걸으며 학교에 다닐 때였다. 가을 추수철이 되면 하굣길 발걸음도 매우 빨라졌다. 집에 가서 일손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굣길 아랫마을 길목을 지날 때면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와릉 와릉 하며 신작로까지 울려 퍼졌다. 그럴 땐 왠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분주해지고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우리 동네가 가까워지면 아랫마을 못지않게 탈곡기가 장단을 맞추어 와릉 와릉 하는 소리가 저만치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정겨운 수확의 기쁨을 노래하는 소리로 여겨졌다. 또 한편 내 발걸음 재촉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어서 와라. 와릉, 뛰어 와라. 아릉” 하며 탈곡작업을 같이 하자고 독려하는 소리처럼 내 귓가에 맴돌았다.
함께 하굣길에 나선 친구들은 우리 동네에도 올해 타작이 시작되었네. 하면서 “누구 집에서 타작하는지 한번 맞춰 볼래”하며 “누구 집, 누구 집” 하다 보면 어느덧 동네 어귀에 들어섰다. 이곳저곳 네댓 집에서 탈곡기의 “와릉 와릉, 아릉 아릉” 하는 가을 교향악이 온 마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우리 집의 탈곡기도 함께 참여하여 연주하고 있었다. 나를 급히 부르는 소리처럼 와릉 아릉 하며...
나는 책보를 사랑방에다 던져놓고 식은 밥을 샘물에 말아 한 그릇 후다닥 먹고는 탈곡하고 나온 짚단을 나르기 시작했다. 타작한 짚단은 약간 게으름을 피우면 금세 산더미처럼 쌓여만 갔다. 짚단을 한 아름 가득히 안으면 수확의 기쁨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벼가 떨어져 나간 짚의 부드러운 지푸라기가 얼굴을 간질이며 볏짚 특유의 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추수철 자연이 선물하는 특유의 향이었다. 외국산 고급 향수에서도 느낄 수 없는 그윽하고 깊은 고향 농촌의 향취였다. 소나무의 송진 내음과 약간 흡사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송이버섯의 향과 보리짚의 향을 섞어 놓은 냄새 같기도 했다.
짚단을 빨리 나르다 보면 어는 순간 노곤함이 몰려왔다. 거기다 짚단 무더기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은은한 향으로 인해 그곳에 짚단을 베개 삼아 그대로 들어 눕기도 했다. 잠깐 동안 파란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를 흥얼거려 보기도 하고, 옆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서있는 감나무에서 누렇게 익은 감을 장대로 따서 먹기도 했다. 추수철 수확의 기쁨에 들떠 잠시 내 마음이 매료된 순간이었다. 그럴 땐 짚단 나르는 일을 깜박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 순간, 와릉 와릉 하는 소리와 함께 안마당에서 “짚단 치우던 애는 어디로 갔노” “짚단이 많이 쌓였는데” 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잠시 후 아버지는 짚단을 한 아름 안으시고 짚단 무더기 쪽으로 나오시면서 “힘들더라도 짚단이 많이 쌓였는데 얼른 나르도록 하려무나.” 하셨다. 나는 계면쩍은 얼굴로 “변소에 볼일 잠깐 봤습니다.”라고 하면 아버지는 오늘은 밤늦게라도 홍골 아랫배미 타작을 마무리하고 내일은 윗배미 벼를 거둬들여 타작할 예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윽고 해는 저물었고 타작할 볏단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저녁을 먹고 타작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며 마당이 어두우니 남포등에 불을 켜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남포등에 불을 밝혀 안채와 사랑채 처마 끝에 내다 걸었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탈곡기는 여전히 와릉 와릉 하는 소리를 내며 계속 돌아갔다. 불빛 속에 낟알이 떨어지는 모습은 빗줄기가 내리는 모습과도 흡사했고 낟알 무더기는 수북이 쌓여 임산부의 배처럼 불룩했다. 탈곡할 때 떨어져 나온 지푸라기는 수시로 빗자루로 쓸어내며 알곡은 한쪽으로 모았다.
어머니가 저녁밥이 다 준비되어 간다는 말씀에 탈곡기는 잠시 소리를 멈추었다. 저녁상이 차려지는 동안 탈곡한 벼의 알곡을 여러 개의 가마니에 퍼 담았다. 어머니는 저녁상을 내오시면서 가마니 숫자를 슬쩍 세어 보시고는 아버지께 “올해 곡수는 작년보다 좀 웃도는 것 같지요?” 하시며 물으셨다. 아버지는 “아직 타작할 게 좀 남았지만 쭉정이가 없어서 그럴 것 같소.” 하셨다. 두 분의 말씀을 듣고 나와 형들은 부자가 된 기분이 들어 서로를 쳐다보며 눈웃음을 주고받았다. 탈곡이 끝나고 가마니에 담긴 벼는 풍구를 돌려 벼쭉정이를 날려 보내고 마당 모퉁이에 있는 나락뒤주에 모두 넣었다. 밤은 이슥했고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풍요로웠다.
탈곡기는 밤이슬을 피해 처마 밑으로 옮겨졌다. 추수철 우리 집의 큰 일꾼인 탈곡기도 내일 작업을 위해 휴식에 들어갔고 와릉 와릉 하는 노랫소리도 고이 잠들었다. 오늘날은 콤바인이 추수와 탈곡을 동시에 하는 농가가 많아 정겨운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를 듣기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에는 추수철이 다가오면 탈곡기의 와릉 와릉 하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 소리는 나의 뇌리에 박혀 영원히 잊히지 않을 추억의 소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16.10.7)
첫댓글 그때 그 탈곡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참 힘들던 타작마당이었지요.
잠시 옛날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탈곡시 소리, 옜날 농촌에서 가을철이 되면 들을 수 있었던 풍년가 였지요.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추수의 상징인 탈곡기와 풍로를 사진으로 보게 되어서 반가움과 울컥함이 앞섭니다. 우리네 부모님께서 가을철 추수의 마지막 단계로 쓰시던 물건 두지를 만들어 올해는 몇섬이 될까 마당 한쪽에 서 있던 두지속으로 들어갈 나락을 장만하는 재산목록 들이지요. 고생하시던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탈곡기가 생기면서 농사도 훨씬 쉬워진 셈이지요. 그 이전에는 홑테라는 기구를 이용하여 이삭을 분리해 내었으니까. 탈곡기를 돌리면서 힘들다기 보다 신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옛추억을 더올리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릴 적 도심지에서 자라 그런 추억이 많이 없는 게 아쉽습니다. 고모님댁에서 가을걷이 할 때 탈곡기를 몇 번 본게 전부거든요. 바쁜 일손에 분주하던 모습들이 아렴풋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제는 골동품이 되어버린 탈곡기 엣 날 농가에는 지게와 더불어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이 아니였나 생각해 봅니다.
지난날 탁주 한주발에 힘을 빌려 와릉 와릉 소리에 장단을 맞춰 타작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글 잘 읽었읍니다.
탈곡하는날 무을넣은 고등어 찌개와 갈치도 먹은 기억, 짚단을 날으다보면 온몸이 딱끔거리든 일들이 새삼 생각이 납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