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 개인전
노란 버스 징크스
본래 징크스는 불길한 징후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선악을 불문하고 불길한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현상이나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일 등을 말한다.
김희진 작가는 인과관계보다는 우연의 결과로 이뤄진 일종의 미신과 같은 징크스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
글 : 박우진
[2011. 2. 9 - 2. 15 JH갤러리]
[JH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29-23 인사갤러리 3층 T.02-730-4854
종교, 신화 등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실제 일어난 일인가를 판독하는 ‘사실’ 판단은 이것의 평가나 해석에 있어서 주요 논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진실이다’라는 믿음을 전제에 두어야지만 그 이야기에 담겨진 상징적 의미들을 찾아 해석할 수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과학적 "E실증적 잣대를 고수하여 이러한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부인 즉, 사실상 인류가 지속해온 사고 역사 자체를 거부하는 셈이 된다. 지젝(Slavoj Žižek)은 “사람들이 한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는 것은 그 공동체의 명백한 상징적 전통과의 동일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의 전통을 유지해 주는 유령적인 차원, 즉 결핍과 왜곡들을 통해 ‘행간 사이’로 전해져 내려온 외상적인 환상들의 비밀스런 역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언급처럼 종교, 신화 등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가진 환상은 상징적인 전통을 유지시켜 줌으로써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게 하며 그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실재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환상의 개념 그 자체는 존재론적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체의 지각과는 독립해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환상은 객관적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경험한 주체의 직관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보면 주관적인 것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환상은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객관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힘을 가진 것이다. 종교나 신화처럼 인류 전체에게 보편성과 영향력을 가진 환상도 있지만 일상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환상들도 있다.
징크스-하늘에 뜬 형상 4, 장지에 채색, 130x302cm, 2010
징크스-하늘에 뜬 형상 3, 장지에 채색, 113x145cm, 2010
징크스-받침대, 장지에 채색, 53x50cm, 2010
징크스-하늘에 뜬 형상 1, 장지에 채색, 113x145cm, 2010
징크스-하늘에 뜬 형상 2, 장지에 채색, 110x200cm, 2010
그것들 중 작가 김희진은 징크스(jinx)가 가져오는 ‘통제의 환상’에 주목한다. 본래 징크스는 불길한 징후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선악을 불문하고 불길한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현상이나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일 등을 말한다. 김희진 작가는 인과관계보다는 우연의 결과로 이뤄진 일종의 미신과 같은 징크스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 인간은 무력한 상황에서 본인이 결과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생각, 즉 ‘통제의 환상’에 빠지고 싶어 하는데, 징크스는 그러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종교, 신화와 같은 환상은 인간에게 현상계의 실재에 빗대어 그 추상성을 설명하게 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요구한다. 하지만 징크스는 원인의 대상을 현상계의 실재로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인간 스스로가 현상계의 상황을 예견"E선택"E조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김희진 작가는 비이성적인 환상인 징크스―노란버스, 별자리, 펜 등―들을 반복된 경험실험을 통해 이성적인 환상으로, 현상계에서 실재하는 대상으로 만들어 낸다. 실제성이 극대화된 징크스는 종교와 같은 보편적 영향력을 가지면서도 더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현상계의 실체가 된다. 사실상 작가는 일상의 징크스를 종교와 동등한 선상에 올려놓음으로써 극대화된 통제에의 환상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관객에게 노란버스, 살수차, 펜, 반지, 음료수 등 현실적인 대상물은 친근함을 쉽게 갖게 하면서 동시에 작가에 의해서 재구성된 종교적 상황, 즉 하늘 높이에 떠 있는 형상 혹은 반복적인 구성은 영험함과 숭고함을 느끼게 만든다. 혹 일반적으로 환상은 우주질서를 흐트러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환상은 우주 질서의 모든 개념을 유지시키는 환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흑백의 현실에서 색감을 가진 대상으로 등장하는 징크스들을 발견하고 이를 종교화하는 김희진의 작업은 불안하고 왜곡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지속적으로 절대성을 쌓아가려는 인간의 환상,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영화나 공연 등에 몰입한 관객이 대단원의 절정에 이르면 정상적인"E일상적인 현실로 돌아오듯이 그녀의 작업을 감상한 후, 우리는 무너지기 쉬운 현실의 절대성이라는 돌탑에 쌓을 돌 하나를 얻어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