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03, 2024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복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복음으로
오늘 필립보와 야고보 사도 축일인데 우리 교회는 야고보와 필립보 사도 축일이라고 하지 않고, 왜 이렇게 붙였을까? 왜 야고보를 앞에 두지 않았을까? 시답지 않은 질문일 수도 있는 질문을 해봤습니다. 왜냐면 복음에는 필립보 사도가 여러 번 등장하지만 사도행전을 보면 야고보 사도가 꽤 중요한 분입니다. 어제 그러니까 부활 5주 목요일 독서로 우리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 얘기를 들었고, 거기서 야고보 사도가 전체 사도단을 대표하여 연설하는 장면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 외에도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났을 때 야고보에게 알리고,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야고보를 특별히 찾아가 만난 사실을 사도행전은 다음과 같이 각기 기록합니다. "이 일을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 알려 주십시오." "바오로는 우리와 함께 야고보를 찾아갔는데 원로들도 모두 와 있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의 두 기둥인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도 중요한 순간에 야고보 사도를 찾아가고 야고보 사도에게 알렸을 정도로 중요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축일 이름의 순서에서 누가 더 중요한 존재였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을뿐더러 세속적인 생각일 뿐이니 우리는 야고보 사도가 어떻게 또 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봄이 오히려 더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 사도는 무슨 이유로 교회의 중심적 인물이 되었을까요? 주님의 형제였기 때문일까요? 주님의 형제였기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매우 세속적인 생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혈육 관계를 넘어선 분이었기에 위대하고 그래서 사도단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형제에서 어떤 제자보다도 주님의 진정한 제자요 사도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서의 저자가 맞다면 그는 그 어떤 사도보다도 주님 말씀을 입이 아니라 실천으로 따른 분이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시작부터 이렇게 실천을 강조합니다.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이렇게 믿음의 실천을 강조하였기에 은총과 믿음을 강조한 바오로 사도를 더 따르는 개신교가 야고보서를 성서에서 빼고 싶어 할 정도였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지점에서 믿음의 올바른 균형을 찾아야겠습니다. 은총을 받은 사람은 은총을 받은 사람답게 실천하는 믿음을 가져야겠지요. 은총을 많이 받았다면 그만큼 더 믿음을 더 잘 실천해야겠지요. 그리고 이것을 재속 프란치스코의 구호처럼 바꾼다면 “복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복음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야고보 사도가 이 면에서 우리의 모범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무님/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