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수사(修辭)와 기법(技法)
숫자 3은 완전을 의미한다. 성경은 예수께서 돌아가신 뒤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구약의 요나서에서 요나는 큰 물고기(고래)의 몸속에서 사흘 만에 나와 니네베 사람에게 복음을 외쳤다고 하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예표(豫表)한 것이며, 또 성전을 허물어 사흘 만에 짓겠다고 한 것은 당신의 부활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런데 시간상의 사흘은 72시간을 말하지만, 성경에서 예수의 부활은 금요일 오후 세 시에 돌아가시어 주간 첫날(일요일) 아침에 부활했으니 72시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통념상으로 하루 이틀 사흘의 일자 개념으로 받아들여 완전한 부활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성경에서 세 번 반복되는 구절이 더러 있기도 하다. 이는 문학의 수사법으로 중복되는 말은 피하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강조와 완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거룩하시도다’와, ‘제 탓이요’, 자비하시다‘ 등으로 세 번 반복하고 있다. 이는 거룩함의 고백과 완전한 참회, 자비의 충만함을 강조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반복하여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묻기도 했으며 또 세 번이나 당신을 배신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완전한 사랑과 확실한 배신을 드러내는 표현 기법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우리의 문학에도 찾아볼 수 있다. 문법을 초월하여 도취법이나 반어법을 이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진달래꽃‘ 詩에서 “죽어도 아닐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표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미워하기 때문에 헤어진다‘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표현이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헤어짐의 극치를 돋보이게 형상화하여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리라.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고, 죽는 이를 살리기도 한다지 않는가. 따라서 언어의 표현에 따라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 사회는 예술 분야가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가 법과 질서가 있지만, 음악, 미술, 문학, 종교 등의 활동으로 사회가 정화되고 순화되며, 명랑한 사회로 발돋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