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헤롯도 마지막은 있습니다.』
마태복음 2:19-21. 505·510장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헤롯은 아주 영리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로마로 유학을 가 로마 귀족 자녀들과 함께 동문수학하였고 우리가 알고 있는 가이사르나 훗날 로마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그와 경쟁했던 안토니오스와 친분을 갖고 있었습니다.
종신 집정관 사실상 황제의 자리에 오른 가이사르가 키케로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이들에게 암살당하자 로마는 혼란에 빠지고 그 틈을 타 가이사르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와 그의 부하 장수였던 안토니오스가 패권을 놓고 내전을 치르게 됩니다. 원래는 안토니우스 편이었던 헤롯은 전세가 옥타비아누스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로도스섬에 있던 옥타비아누스를 찾아가 충성을 맹세하고 그로부터 ‘유대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헤롯은 정치적 수단만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스룹바벨 시대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중축하였고 지중해 연안에 가이사르의 이름을 딴 항구도시를 건설하였으며
마사다에는 군사 요새를 지었고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통해 무역과 경제를 성장시켰습니다.
또 그는 자신의 약점인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제사장 가문의 딸 마리암과 결혼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많은 치적으로 존경받아야 하지만, 헤롯은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결혼한 마리암을 간통죄로 몰아 처형했고,
마태복음 2장 16절에 나와 있듯이 아기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베들레헴 인근에 있는 두 살 아래 모든 사내아이를 학살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 2장 19절은 ‘헤롯이 죽은 후에’라고 시작됩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아니 계신 것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도 결국에 헤롯도 최후를 맞게 됩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평생 자색 옷을 입고 잔치를 벌이던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함께 죽음을 맞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지로 고단한 삶을 살던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평생을 호의호식하던 부자는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지옥의 고통 때문에 물 한 방울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생에서 자기 집 문 앞에서 고통당하던 나사로를 외면한 자업자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같이 자색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즐길 때는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그가 염두에 뒀을까요?
우리는 언제나 마지막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었기에 주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이역만리 애굽에서도 버티었고 또다시 이스라엘로 들어오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문 성도 여러분!
늘 하나님과 동행하듯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삶의 적용: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마무리 기도
최후의 심판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