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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0
#신학 #신앙
'신학'이라 하면 대체로 뭔가 거창하고 일반인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이가 자신만의 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수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즉 성경을 아는 지식을 쌓는 것이고 '신앙'은 그 신학을 토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이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된다면 신앙생활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삶이 없는 지식은 올바른 신학이 아니며, 지식없는 삶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20210910
#구원의확신
구원의 확신은 신자를 무모하게 만드는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두렵고 조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20220910
#무지개 #심판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구의 온도가 점점 올라 극지방의 빙하가 빠르게 녹아 해수면이 오르고 이상기후로 인해 예상치못한 강수량이 생기는데따른 인류멸망급 재해의 위험성을 강조한다.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땅의 환경을 최대한 아끼고 보살피며 가급적 오래누릴 필요는 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성도들은 여호와 그리스도께서 대홍수 후 노아에게 무지개를 보여주시며 다시는 이땅을 물로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언약의 말씀과,베드로 사도의 가르침대로 세상은 불로 심판받게 된다는 경고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Revelation 22:17-21
17 聖靈과 新婦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者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者도 올 것이요 또 願하는 者는 값없이 生命水를 받으라 하시더라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And let the one who hears say, "Come!" Let the one who is thirsty come; and let the one who wishes take the free gift of the water of life.
Et spiritus, et sponsa dicunt : Veni. Et qui audit, dicat : Veni. Et qui sitit, veniat : et qui vult, accipiat aquam vitæ, gratis.
Καὶ τὸ Πνεῦμα καὶ ἡ νύμφη λέγουσιν Ἔρχου. καὶ ὁ ἀκούων εἰπάτω Ἔρχου. καὶ ὁ διψῶν ἐρχέσθω, ὁ θέλων λαβέτω ὕδωρ ζωῆς δωρεάν.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셋째 위격이시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셔서 성자 하나님과 창세 전부터 연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영에 완전충만히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시는 하나님이시면서도 그리스도의 인성의 혼의 의지와 육의 지시에 의해서만 역사하시고 성경의 역사를 통틀어서 단독적으로 말씀하시는 경우는 계시록에서의 두어번 정도가 유일하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사역하시건, 단독으로 말씀하시건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배제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뜻대로 일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왜 당신께서 말씀하신다고 하지 않으시고 성령께서 말씀하신다고 하시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드러나지 않으시고 은밀하게 역사하신다 해서 단지 하나의 큰 능력이나 에너지 정도로 오해하지 말고 엄연히 인격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은연중에 나타내시려는 것 같다.
신부는 어린 양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의 교회인데, 아무리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라 하더라도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동등할 수 없을텐데도 어째서 어떻게 마치 성령과 동등한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하는지 그 명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말씀하시는 신부는 지금 이 땅의 교회가 아니라 모든 것이 완전히 이뤄진 후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성으로서의 완전한 교회를 지칭하는 것 같다. 즉, 광야에서 1260일 동안 양육받는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어린 양의 신부로서 치장되는 여인으로서 아직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어린 양의 신부가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권세를 가진 이유는 남자와 여자가 혼인함으로써 연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원리에 따라 교회가 어린 양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의 아내가 될 것이므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권세를 부여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영이시고 신부는 그리스도의 교회이기 때문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신 것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값없이 주시려고 부르시는 듣는 자와 목마른 자와 원하는 자는 새 예루살렘 성의 하늘의 성도들이 아니라 지금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주님과 복음을 위해 고군분투 해야 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가르치신 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리라고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성령과 신부가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는 당연히 주님의 복음이다. 듣는 자란 그저 육신의 귀로 복음을 흘려듣는 자들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신령한 귀를 가진 성도로서 매사에 매순간마다 성경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베뢰아 성도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며 참으로 그러한지 부지런히 상고하는 성도들을 의미한다. 목마른 자들은 육신의 갈증을 가진 자가 아니라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 그리스도에 대해서 지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더 알고 행하기를 원하지만 육적인 한계로 인해 제약을 받아 탄식하는 성도들을 의미한다. 원하는 자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다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현재 신앙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특심한 열정을 가지고 복음과 하나님 그리스도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얻고 행하기 원하는 성도들을 의미한다. 이 땅에서 희미하고 불완전한 지혜와 지식과 순종에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끊임없이 간구하고 추구하며 탄식하는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 그리스도의 생명수를 지극히 만족스럽게 얻을 수 있다.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豫言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證言하노니 萬一 누구든지 이것들 外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記錄된 災殃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I warn everyone who hears the words of the prophecy of this scroll: If anyone adds anything to them, God will add to that person the plagues described in this scroll.
Contestor enim omni audienti verba prophetiæ libri hujus : si quis apposuerit ad hæc, apponet Deus super illum plagas scriptas in libro isto.
Μαρτυρῶ ἐγὼ παντὶ τῷ ἀκούοντι τοὺς λόγους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τοῦ βιβλίου τούτου· ἐάν τις ἐπιθῇ ἐπ’ αὐτά, ἐπιθήσει ὁ Θεὸς ἐπ’ αὐτὸν τὰς πληγὰς τὰς γεγραμμένας ἐν τῷ βιβλίῳ τούτῳ·
19 萬一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豫言의 말씀에서 除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記錄된 生命나무와 및 거룩한 城에 參與함을 除하여 버리시리라
And if anyone takes words away from this scroll of prophecy, God will take away from that person any share in the tree of life and in the Holy City, which are described in this scroll.
Et si quis diminuerit de verbis libri prophetiæ hujus, auferet Deus partem ejus de libro vitæ, et de civitate sancta, et de his quæ scripta sunt in libro isto :
καὶ ἐάν τις ἀφέλῃ ἀπὸ τῶν λόγων τοῦ βιβλίου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ταύτης, ἀφελεῖ ὁ Θεὸς τὸ μέρος αὐτοῦ ἀπὸ τοῦ ξύλου τῆς ζωῆς καὶ ἐκ τῆς πόλεως τῆς ἁγίας, τῶν γεγραμμένων ἐν τῷ βιβλίῳ τούτῳ.
요한 사도는 이 주님의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자들에 대해 서슴없이 저주를 내린다. 요한 사도가 아무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사랑을 강조하였어도 그 사랑이 주님의 예언을 훼손하는것을 용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사랑은 오로지 주님의 복음을 기반으로 행해져야 하며 이를 고의적으로나 악의적으로 거스르는 자들은 요한 사도가 경고한 바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한 자들이 아니고 예언의 말씀을 훼손하는 죄에 대한 형벌을 받을 자들인 것이다. 예언의 말씀에 더하는 자들이란 사람들을 현혹하고 미혹하기 위해 계시에 기록되지 않은 자기만의 자의적인 해석을 덧붙여 무분별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자들로서 두루마리의 일곱 봉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재앙들은 물론이고 최종적으로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당하게 된다.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는 자들이란 주님께서 이 마지막 계시의 말씀으로 교회들에 유익을 주시리라 하신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이 계시에서는 별다른 신앙의 유익을 얻을 수 없다고 여겨 일부러 가르치려 하지도 않고 가르침 받으려 하지도 않는 목사와 교인들로서 그들은 장차 생명나무의 열매도 생명수도 맛보지 못하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된다. 자기 멋대로 계시에 더하는 자나 제하는 자나 당하는 결국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쫓겨나 영원히 타는 불못에 던져져 이를 갈며 울게 되는 것이다.
20 이것들을 證言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眞實로 速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主 예수여 오시옵소서
H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says, "Yes,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dicit qui testimonium perhibet istorum. Etiam venio cito : amen. Veni, Domine Jesu.
Λέγει ὁ μαρτυρῶν ταῦτα Ναί, ἔρχομαι ταχύ. Ἀμήν, 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설령 아직 유대인인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단지 우리의 관점에서나 그런 것이지 주님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또한 주님께서는 최종적으로 성도들의 부활을 위해 전 지구적으로 오시기도 하시지만 우리 각자의 이 땅에서의 생명을 취하시려 오시기도 하신다. 최종적으로 오시는 날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는 몰라도 우리의 생명을 취하시는 날은 너무나 가깝게 느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진실로 속히 오시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게 새기고 마치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한 선지자는 여호와 그리스도의 날이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맞이할만한 것이 아니라 크고 두려운 날이기 때문에 근거없는 기쁨과 기대로 맞이하지 말라고 하였다. 주님의 모든 계시를 보고 듣고 기록한 요한 사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얼마나 크고 두려우며 엄중한 날이 될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그의 고백은 너무나 크고 묵직한 울림을 준다.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맞이하게 되건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게 되건간에 과연 요한 사도처럼 담대하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는지 점검해야만 한다.
21 主 예수의 恩惠가 모든 者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Gratia Domini nostri Jesu Christi cum omnibus vobis. Amen.
Ἡ χάρις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μετὰ πάντων. Ἀμήν.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택하신 백성으로 삼으실 것을 예정하신 것과, 여호와 그리스도께서 이를 이행하시려고 영원 전부터 누리신 하늘의 지극한 영광을 버리시고 당신의 인성을 한없이 낮추셔서 이 땅에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과,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하늘로 오르셔서 다시 이전의 하늘의 영광을 회복하신 것과, 우리 각자의 인생 가운데 성경과 성령을 주셔서 믿음을 갖게 하신 것과, 복음과 주님을 위해 사방에서 욱여쌈을 당하여도 믿음으로 기꺼이 이겨내게 하신 것과,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게 하시려고 장차 이루실 일에 대한 모골이 송연한 계시의 말씀을 주신 것과, 이 모든 일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히 살게 해주실 이 모든 것이 주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한없는 은혜에 기인한 것이다.
#20210910
#신명기 #Deuteronomy 31:17-18
17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18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뜻하지 않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 그것이 자기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몇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그런 재앙들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무언가 신령한 존재의 역사라고 생각하지만 그 주체를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에게 돌리기 때문에 백해무익한 제사로 악령을 위로하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나 내면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거짓 신자들은 이것들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인정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 원인이 자기들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대적한다. 거짓 신자들은 겉으로는 하나님께 불평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되기 때문에 재앙과 환난을 당하면 입술로는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하고 긍휼을 간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원망과 불평과 저주의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할 수 없으니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에게 그 화살을 돌리고는 하는데 주로 이 땅의 권세자들이 표적이 되고는 한다. 그러나 그런 거짓 신자들이 내뱉는 정부에 대한 불평은 재해 대처 방안에 대한 객관적 비판이 아니라 그냥 정부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악의적으로 꼬투리를 잡는 짓거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선한 지도자이건 악한 지도자이건간에 모든 권세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세움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정당한 권세에 부당하게 불복하는 것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것이라 가르치고 있다. 요한의 계시록에서 천사들이 하늘에서 여러 재앙들을 내릴 때 하늘을 향해 저주하고 비방하는 자들이 바로 이렇게 여러 재앙과 환난의 때에 입으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권세자들을 비방하는 자들인 것이다.
신자라 하더라도 여러 재앙과 환난들을 통해서 자기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진노의 징벌이라 여기는 이들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 열 명을 찾거나, 아합 시대 북이스라엘에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을 찾는 것 만큼이나 희귀하다. 그들은 재앙과 환난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서 교회와 이웃에게 알리고자 하더라도 워낙에 절대적인 수가 적은데다가 큰 믿음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심지어 교회에서나 이웃에게서나 무관심과 냉대와 배척을 받게 된다. 주위로부터 그런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그들이 신령한 진실을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푸대접과 멸시로 인한 부끄러움보다는 그들의 영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열망이 더 크게 불타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계병들이 적군의 조짐을 포착해서 알리듯이 급한 마음과 위기감을 가지고 교회와 이웃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상관하지 않고 얼굴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담대함의 철판을 깔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 땅의 짐승과 그 추종자들 앞에서 1260일 동안 담대히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두 증인들이 바로 그런 신령한 성도들을 상징한다. 두 증인이 비록 짐승에게 살해 당했어도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 하늘로 들려올린 것처럼, 재앙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교회에서 담대히 회개를 촉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교회와 이웃으로부터 살해를 당하는 것과도 같은 대우를 받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교회와 이웃들을 성도들의 발등상으로 삼아주신다.
여호와께서 범죄하는 백성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숨기시겠다고 하신 것은 절대로 공포탄 같은 허언이 아닌 진정한 공의이심과 동시에, 백성들에게 회개의 여지를 두시는 긍휼이시기도 한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아예 버리시기로 작정하셨다면 그들에게 아무런 경고 없이 바로 모든 은혜를 거두시고 멸망 당하도록 내버려 두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의 얼굴을 숨기시겠다고 이르신 것은 회개한다면 당신의 숨기신 얼굴을 드러내시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은 밥먹듯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어도 재앙을 당할 때마다 여호와께 나와서 울며 간구하였고 여호와께서는 매번 그들의 울부짖는 회개를 받으시고 구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렇게 숨기셨던 얼굴을 다시 드러내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전적으로 순종하여 선을 행하는 이들만을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자기의 고의적이고 악의적이며 지속적인 범죄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버림을 받고 성령께서 떠나시고 대신 악령이 그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여호와께서는 아무리 그가 군급한 위기에 처해 있어도 환상으로나 꿈으로나 우림으로나 아무것으로도 응답을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원이 절대불변하다는 것을 빌미로 죄를 지어도 애통해 하지 않고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하나님께 가볍게 회개한 것으로 용서를 받았다고 스스로 여기며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신자들은 실상 성령이 떠나시고 악령의 지배를 받는 사울 왕처럼 자기 영에서 성령을 소멸하고 악한 귀신 일곱을 더 데려다 놓는 미치광이들에 불과하다.
#20200910
#레위기 #Leviticus 20:6-7
6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7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1)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동산에서 쫓겨나기 전까지는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자연스럽게 여호와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세보다도 더 특별한 은혜로써 그리스도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았을 것이고 사람이 마치 자기 친구를 대하듯이, 어린 자녀가 부모 품에 안기듯이 편하게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교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의 천사들과도 교류할 수 있었을 것이고 뱀과 하와의 대화로 미루어 봤을 때 심지어 동산의 모든 동물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에 의해 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여호와와의 친교는 물론이거니와 천사들이나 동물들과도 더이상 자연스럽게 교제를 나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부터 하나님과 천사들과 동물들과 원수가 되어버렸고 오로지 사탄만 친구로 남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많은 은혜로 지어진 첫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죄악을 회개하고 여호와께 끊임없이 은혜를 간구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런 아담과 하와를 불쌍히 여기셔서 짐승의 피를 드리는 제사로써 당신과 한정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방식을 알려주셨을 것이고,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께서 심령으로 가르쳐주신 제사법으로나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 자녀들에게 보이지는 않으시나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제사를 가르쳐줬을 것이고 자녀들이 스스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가인과 아벨을 자녀들의 대표로 내세워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생 아벨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신 반면에 형 가인의 제사는 버림을 받게 되어 이를 두고 가인이 아벨을 극심히 질투하여 급기야 아벨을 돌로 쳐죽이고 자기를 따르는 형제들과 함께 아벨을 따르는 형제들을 살륙하였다. 가인은 자기보다 의로운 동생 아벨을 죽인 댓가로 살던 지역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떨어져 나간 가인의 후예들은 여호와에게서 완전히 돌아서게 되었으나 한정적으로나마 여호와를 섬기던 때의 모종의 신령한 현상을 추구하고자 하여 사탄과 계약을 맺고서는 악령의 지배를 받는 영적 체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귀의 힘을 빌어 시행하는 온갖 주술은 그렇게 가인의 후예에게서 다양하고도 폭넓게 발달되었을 것이고 이는 아벨이 죽은 이후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난 셋의 후예에게도 영향을 미침으로써 여기에 현혹된 하나님의 아들들(셋의 후예)이 땅의 딸들(가인의 후예)과 육적인 혼인과 더불어 마귀의 주술까지도 함께 행하는 영적 혼인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노아 시대에는 비로소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을 제외하고는 지구 상의 모든 인간들이 마귀의 주술에 미혹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노아 시대에 인류의 죄악이 이 땅에 관영하였다고 하신 것은 사람들의 비윤리성이나 비도덕성을 가리키는 것보다는 아마도 이런 마귀의 주술이 만연한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지 않을까 싶다.
여호와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만 남기시고 대홍수로 땅 위의 모든 인류를 쓸어버리심으로써 한 차례 모든 마귀의 주술을 끊어버리신다. 그러나 노아의 아들들 중에서도 이미 가룟 유다와 같은 함이 있어서 술 취한 아버지 노아에게 죄를 짓고 저주를 받아 자기 무리들을 이끌고 나가서 애굽을 세우게 된다. 함도 노아에게서 떨어져 나간 후에 자기가 홍수 전에 사람들에게서 주워들어 알게 된 마귀의 주술을 기억해 내서 또 세상에 퍼뜨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홍수 이후 함의 후예가 세운 애굽은 그야말로 주술의 본산지였다. 그래서 모세가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뱀으로 변화시켰을 때 애굽의 주술사들도 똑같이 만들어 내고, 모세가 애굽의 모든 물을 피로 변하게 했을 때 그들도 비록 적은 양이지만 바가지의 물을 피로 변하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귀의 주술을 행한 것은 비단 함의 후예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노아의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의 후예들도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중 교만의 탑을 쌓으려다가 여호와의 징벌로 언어가 갈라져서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을 때 그들 대부분은 자기 조상 노아의 여호와 하나님을 망실해버리고 종교성만 남아서 함의 후예들처럼 마귀와 계약하여 온갖 주술을 행하기에 이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흩어진 셈의 후예들도 여호와께서 갈대아 우르에 살면서 우상을 만들던 아브라함을 부르시기 전까지는 여호와를 알지도 못하였고 온갖 우상숭배와 그에 따른 마귀의 주술들이 성행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무려 70세가 될 때 까지 그런 우상숭배와 주술 문화에 젖어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