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하여보아도 그저 아리송합니다.
아주 큰 개를 요즈음은 강아지라고 부른다.
원래 강아지란 어미개가 낳아 젖을 먹는 자그만 개가 강아지였다.
그리고 개와 사이가 얼마나 돈독한지 모르겠다.
집에서도 밖에 나가 길을 가다가도 아빠라고 하여 부른다.
반면에 아주머니에겐 반대로 개에게 엄마라고하며 부른다.
언제부터 이러한 존칭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적에 1940년 후반 대에는 개를 기르는데 이유가 분명하였다.
시골엔 할 일은 많고 일손은 딸리다보니 사람들에 손길이 필요하였다.
하여 강아지를 집에서 기르다보면 아주 바쁜 손길을 해결하여주었다.
아이가 똥을 싸면 할머니가 월이, 월이 하며 개를 불렀다.
이때에 개는 불이 났게 뛰어야 아이가 싸놓은 똥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하여 개도 집에서 한사람에 몫을 해내는 참으로 소중한 동물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개를 기르면서 한 가족의 식구처럼 생각한다.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비닐봉지와 휴지를 준비하여 가지고 다닌다.
길을 가다가 개가 똥을 싸면 휴지로 똥을 치워 비닐봉지에 넣는다.
생각하여보면 개라는 동물이 어느새 한 가정에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강아지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며 사랑하며 아끼는지 모른다.
집에서도 침실에 들어와 침대에 오르고 내리도록 마음껏 허락한다.
우리가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처럼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늙으신 부모님을 어떻게 보양하고 있는가?
생각하여보면 참으로 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차가운 세상이다.
엄연히 사람은 짐승과 구분이 되어야 분명하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라는 말은 왠지 참으로 어색하게 들린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한다.
마치 자신이 낳아 기르는 자시이라고 착각이 날 정도다.
우리는 개를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좋지만 가정에 부모님을 더 사랑합시다.
사람과 사람끼리 부딪치기 싫고 차라리 사람보다 개가 났다고 한다면?
이는 무엇인가 참으로 잘 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공경하는 모습을 목욕탕에서도 종종 보게 되는데 어딘가 참 어색하다.
늙으신 어른을 자식으로 보이는 사람이 어색한 자세로 부축한다.
그러나 늙으신 부모님을 그렇게 하는 자식은 개는 극진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가슴이 감전이 되어 뇌진탕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품에 안아줄 대상자는 개가 아닌 한 가족에 힘이 없는 부모님이어야겠다.
2022년 12월 23일 11시 32분
첫댓글 아무리 생각하여보아도 그저 아리송합니다.
감사히 즐감 합니다..
고맙습니다..처음과나중님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