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전선의 초상:
사진으로 다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1914~1916)
서부 전선의 초상
: 사진으로 다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Getty Images
끔찍했던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가
처음으로 진정한 세계적 대결의 무의미함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무분별한
전투를 숙고할 때 종종 다시 떠오르곤 한다.
이 생생한 사진 컬렉션은 서부 전선, 본국,
그 너머를 재조명하며, 이 시대를 정의한
중대한 사건에 휘말린 얼굴과 장소를 포착한다.
갤러리사진을 통해 서부 전선 속으로 떠나보자.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Public Domain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소피의 암살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촉발시켰다.
비록 일부 사람들이 그것이 방관자인 페르디난트 베어를
묘사한다고 믿지만, 이 사진은 보통 프린치프의 체포와 관련이 있다.
독일, 1914년
©Public Domain
독일군 병사들은 철도화물차를 타고 전선으로 향했다.
전쟁 초기에 대부분의 전투원들은 유쾌한 낙관론을
펼쳤는데, 모든 측은 전쟁이 짧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스트리아, 1914년
©Public Domain
선전포고는 연합국들 사이에서
애국심과 진정한 사명감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멜버른에 있는 분주한 군 모집 사무실이다.
오스만 제국,1914년
©Public Domain
마찬가지로 중앙 열강도 광대한 오스만 제국에서
민간인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티베리아스 근처에 있는 군대 모집 전초기지이다.
이탈리아, 1914년
©Public Domain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전쟁을 벌였다.
이 사진은 볼로로로로나의 진보적인 시위대를 보여준다.
영국, 1914년
©Public Domain
키치너 경은 당신을 원한다'는 채용 포스터는 분쟁의
가장 상징적이고 지속적인 이미지 중 하나이다.
키치너는 영국의 전쟁 담당 국무장관이었다.
오스트리아, 1914년
©Public Domain
세르비아에서 출발한 난민 수송 열차가
오스트리아의 라이프니츠 마을에 도착한다.
이 난민들이 얼마나 잘 차려진 옷을
입고 있는지에 주목하자.
프랑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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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랑스 대문에 그려진 낙서는 유명한
스파이이자 반역자의 집을 표시하고 있다.
'보슈'라는 단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을 공격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아르메니아, 남캅카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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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삼국동맹의 일원으로서 중강국에 맞서 싸웠다.
여기서 러시아군은 사리카미시 전투 때 숲의 참호에 모인다.
벨기에, 1914년
©Public Domain
프론티어 전투는 결국 프랑스-영국군이
독일군에 의해 퇴각하는 일련의 전투였다.
사진은 앤트워프로 퇴각하는 과정에서 개가 끄는
기관총 카트를 든 벨기에 카라비니어들이다.
포클랜드 제도, 1914년
©Public Domain
영국 해군 전투순양함 HMS 인플렉서블은
포클랜드 제도 전투에서
독일 순양함 SMS 그나이세나우에서
생존자를 인양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프랑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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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뉴에 있는 영국 군 수송선에서 말 한 마리가 내려온다.
전쟁 기간 동안 말은 많이 사용되었고,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이 동물 중 800만 마리, 그리고 무수한 노새와 당나귀가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스만 제국, 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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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폴리 반도의 에게해 연안
수블라에 상륙한 제9군단의 영국군.
오스만 제국, 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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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갈리폴리 작전 중에 호주군이
터키 참호를 향해 언덕을 급히 오르는 모습이다
그리스, 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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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이 갈리폴리 작전 기간 렘노스 섬 무드로스에
상륙한 뒤 지중해 태양 아래 진군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 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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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폴리 전투에서 전장 원수 키치너 경(가운데)과
중장 윌리엄 버드우드(왼쪽)가 군대를 방문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결국 오스만 군대의 승리로 이어졌다.
벨기에, 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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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이프르 전투 당시 이프르 시장 광장의 폐허.
이 전투에서 독일군이 새롭고 치명적인 무기로
가스를 도입한 것이 눈에 띈다.
러시아, 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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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당시 촬영된 희귀한 컬러 이미지는
러시아 북서부의 주(州)인 올로네츠에서
오스트리아군 포로들을 보여주고 있다.
알바니아, 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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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기에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를 침공했다.
불가리아군도 큰 역할을 했던 코소보 전투 이후,
세르비아군은 혹독한 겨울 환경 속에서
알바니아를 통해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세르비아, 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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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군인들이 다가오는 비행기를 향해
사격을 준비하는 동안 하늘을 쳐다본다.
프랑스, 1916년
©Public Domain
영국 육군은 제1차 세계대전 때도 가스를 사용했다.
가스 공격의 위협은 매우 커서 휴식과 휴식 기간에도
군인들이 경계해야 했다. 사진은 서부전선에서
방독면을 쓴 영국 전투원들로 구성된 축구팀이다.
프랑스,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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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사단 이스트요크셔 연대의 제10(복무)대대 병사들이
솜을 타고 최전방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기둥 맨 앞에 있는 병사의 긴 헤어스타일을 주목하라.
프랑스, 1916년
©Public Domain
토미(Tommies) 왕립 아일랜드 소총대가
소메에서의 첫날 동안 모두들 불안감을
감추고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1916년
©Public Domain
현재 유명한 독일 전선 요새인 솜 강에 위치한
호손 능선 리덥트 아래에 설치된 광산의 대폭발 사진.
프랑스, 1916년
©Public Domain
출판된 최초의 전방 전투 사진 중 하나인
이 사진은 솜 전투에서 윌셔 연대 병사들이
"정상을 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프랑스, 1916년
©Public Domain
프랑스군은 베르둔으로 가는 길에
말을 타고 강을 건너는 순간이 포착되었다.
프랑스, 1916년
©Public Domain
베르됭 전투는 이 전투 중 가장 크고 긴 전투였다.
프랑스군이 마침내 승리를 거두는 데 걸린 300일 동안
약 97만 6천 명의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목숨을 잃었다.
영국,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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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쟁 도서관의 직원들은 전선에서 부상당한
영국 병사들에게 파견할 책 소포를 준비한다.
프랑스, 1916년
©Public Domain
비미 리지 전투에서 캐나다군은
영국의 마크 2호 전차 뒤에서 진격했다.
캐나다군은 기술적이고 전술적인 능력,
치밀한 계획, 고집스러운 결의 등이 돋보였다.
프랑스, 1916년
©Public Domain
한 젊은 독일인 소메켐퍼가 소메캠페인의
소강상태에서 잠시 멈칫한 모습이다
영국, 1916년
©Getty Images
고향으로 돌아가면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군인의 자녀를 통칭하는
'토미 앳킨스 주니어'를 위한 보육시설의 놀이 시간이다.
“토미"는 일반적인 영국 군인을 가리키는 속어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