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 반도체 지원 공약 쏟아낸 與野… 총선 후 약속이행 지켜볼 것
입력 2024-03-09 00:00업데이트 2024-03-09 00:00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31일 경기 수원 영통구 한국나노기술원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현장 간담회에 앞서 반도체 수장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에서 열린 종합 반도체 강국 생태계 구축을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더불어민주당 제공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여야가 4·10총선을 앞두고 반도체 산업 지원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반도체 기업이 몰려 있는 수도권 유권자들을 겨냥해 공장 설립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풀고, 세제 지원을 늘리는 약속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경기 남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계획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으로 인허가 신속처리 특례 등을 포함시켜 K칩스법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원 용인 이천 화성 등 경기 남부, 동부권을 반도체 특화지역으로 정하고 올해 말 종료되는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일몰 기간을 추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산업 지원에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선거를 앞두고 생색내듯 내놓은 정책들이 대동소이할 뿐 아니라 경쟁국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건 문제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 390억 달러(약 52조 원)를 나눠주고 있고, 일본은 대만 TSMC가 일본에 짓는 공장 한 곳에만 4조 원을 지원했다. 대만 정부는 대만판 실리콘밸리 사업에 1000억 대만달러(약 4조2000억 원)를 투입한다.
반면 한국의 지원은 세액공제, 행정편의 제공에 머물고 있다. 대기업 투자에 대한 법인세 공제를 8%에서 15%로 늘린 K칩스법마저 올해 말 시효가 끝난다. 법인세를 추가로 깎아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여야가 손을 놓아 작년 말 만료됐다. 재정 적자와 ‘대기업 특혜’ 비판을 의식한 정부 여당, ‘부자 감세’에 반대하는 야당 모두 보조금 지원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각국의 반도체 경쟁은 한층 격화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세계 유일 극자외선 노광장비 업체 ASML의 본사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ASML을 위한 맞춤형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의 핵심 인재를 빼간 미국 기업이 인공지능(AI)용 차세대 최첨단 제품을 먼저 내놓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맞서기에 충분한 무기를 쥐여줄 수 있는 방안을 정치권은 지금보다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유권자들 역시 여야가 내놓은 반도체 지원 공약이 총선 후에도 어김없이 이행되는지 제대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