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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Reddit] 태어난 적 없는 여동생이 꿈속 열세 번째 생일에 빈 소원 - https://tester188.tistory.com/m/134
꿈. 참 이상한 것이다. 잠이 들면 뇌가 제멋대로 영상과 소리를 만들어 내고, 운이 좋으면 냄새와 맛, 감촉까지 만들어 낸다. 상식적으로는 일어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공식적으로야 자는 동안 뇌 속을 튀어 다니는 무작위 전기 신호를 뇌가 어떻게든 말이 되게 꿰맞추는 것뿐이라고들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스무 살, 심리학과 학부생인 나는 대학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논문 주제를 정해 두고 있었다. 꿈이 어떻게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게 해 주는가. 주제부터가 어지간히 이상했던 터라 같은 과 사람들은… 음, 어리둥절해했다는 말로는 모자랐다. 꿈은 심리학에서 연구하기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다. 붙잡을 새도 없이 사라지고 앞뒤도 맞지 않으니까. 다만 자각몽은 다르다. 편애인 건 인정한다. 그래, 나는 자각몽을 좋아한다. 규칙이 없는 세계, 내 상상력 말고는 아무 한계도 없는 세계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꿈속에서 깨어 있다는 건 그 세계의 신이 된다는 뜻이다. 만들 수도 있고 부술 수도 있고, 바꿀 수도 있고 아예 다른 것으로 뒤집을 수도 있다. 누군가 마음먹은 대로 자각몽에 들어가는 방법을 발명하는 날, 나는 드디어 멀쩡한 수면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너무 앞서 나갔다. 내가 이 주제를 고른 데에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이유다. 제일 친한 친구들에게도, 나를 맡아 키워 준 이모와 이모부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사촌 게리뿐인데, 그 이모와 이모부의 친아들이다. 그런 게리한테도 전부를 말하지는 않았다. 진실이 거짓말보다 덜 다정할 때가 있으니까.
아, 아직 이름도 안 밝혔다. 이름은 있어야 할 테니 말해 두겠다. 올리버라고 불러 달라. 본명은 올리버 요하네스버그다.
…
모든 것의 시작은 여동생 에이바의 열세 번째 생일이었다. 2022년 4월 19일. 그 날짜를 아직도 기억한다는 게 이상하다.
우리는 아늑한 교외 주택의 식당에 있었고, 나는 엄마와 새아빠와 함께 앞뒤 안 가리고 목청껏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케이크는 에이바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쇼트케이크였고, 초는 열셋 모양으로 꽂혀 있었다. 그날은 평범한 화요일이었고 에이바는 막 학교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에이바는 엄마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드레드록스에, 자기 생일 파티를 맞은 여자애한테서만 볼 수 있는 종류의 기쁨으로 반짝이는 갈색 눈. 나는 친아빠를 더 닮았다. 부스스한 갈색 머리에, 아기 때를 지나고도 끝내 옅어지지 않은 하늘색 눈. 코와 귀처럼 조금 부드러운 부분들은 엄마에게서 받았다. 참고로 에이바는 나와 부모가 같은 친동생이다. 엄마와 친아빠는 에이바가 태어나기 조금 전에 이혼했다. 이유는… 그때의 나는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소원 빌어, 에이바.” 새아빠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바는 조용히 눈을 감고 촛불을 껐다. 소리 없이 생일 소원을 빌면서.
적어도 소리는 나지 않았어야 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벌을 받게 해 주세요.”
여전히 순진한 여동생의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지도 않은 채 흘러나온 그 말이 나를 덜컥 붙잡았다. 대체 무슨 소리지? 뭘 말하려는 거지? 벌? 벌받을 일이 어디 있어서?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야에 들어와 있지 않은 것들이 전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직 렌더링이 안 끝난 조잡한 게임 화면처럼.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수록 세계는 더 불안정해졌다. 새아빠의 얼굴마저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서 흔들렸다. 엄마는 그대로였고, 이상하게도 여동생 역시 그대로였다. 마치 이… 장소에 나를 붙들어 두려는 것처럼.
나는 정신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여기가 어디든 나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알아차렸다. 나는 꿈속에 있었다.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울리자마자 이 아늑한 교외 주택이 안정을 되찾았다. 모든 것이 훨씬 또렷해졌고, 구석구석의 세부가 선명하게 살아났다. 집 안 여기저기에 가족사진이 놓여 있었고, 온갖 잡동사니가 제자리를 찾았다. 장난감이 잔뜩 들었을 법한 알록달록한 상자가 보였다. 계단이 뚜렷해지자 이제 이 집에 이층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새아빠의 얼굴도 자리를 잡았고, 나는 그 에메랄드빛 초록 눈을 처음으로 마주 보았다.
내가 아는 한, 나에게는 새아빠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발에 초록 눈인 이 남자를 나는 알지 못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때까지 살아온 열여섯 해 동안 스쳐 지나간 얼굴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인물이겠지. 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본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머릿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 스콧 브라이턴. 익숙한 이름인데 어디서 들었는지가 짚이지 않았다.
엄마 쪽으로 눈을 돌린 순간, 나는 그 얼굴을 들이켜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애정이 그대로 드러난 갈색 눈, 숨김없이 펼쳐진 어머니의 사랑. 눈에 물이 차올랐다.
내가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사랑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 캐서린 데이비스는 죽었으니까. 나까지 죽일 뻔한 교통사고로, 배 속에 에이바를 품은 채로 죽었다. 에이바도 아마 같은 순간에 죽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겨우 세 살이었고, 차가 우리 차를 들이받는 동안 이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죽는 대신 가벼운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스콧 브라이턴은… 엄마 차를 들이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 후 수치심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었다. 술에 취해 있었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순간 엄마의 얼굴이 다른 것으로 번쩍 바뀌었다. 얼굴에 유리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끔찍한 각도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건 차에서 떨어져 나온 쇳조각이 엄마의 배를 뭉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태반까지, 그러니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에이바까지 확실하게 뭉개 놓은 쇳조각.
나는 그 장면을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내 무의식은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공포와 역겨움에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 다정한 얼굴로 돌아와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담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에이바를 돌아보았다. 끝내 세상 빛을 보지 못한 동생. 조금 전 생일 파티에서 보았던 얼굴과는 정반대로, 눈에서 순진함이 전부 빠져나간 채 슬픈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둑이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눈물은 꿈치고는 놀랄 만큼 진짜처럼 흘렀다. 그때의 나는 그저 슬픔에 잠겨 있었을 뿐이지만. 내가 가져 본 적 없는 가족, 있었을 수도 있었던 가족을 눈앞에 두고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엄마가 성큼 다가와 나를 꽉 끌어안았다. 진짜라고 해도 믿었을 만큼 따뜻하고 다정한 포옹이었다.
“엄마는… 엄마는 죽었잖아.” 눈물이 뺨을 타고 내리는 채로, 나는 끝을 못 박듯 말했다.
“알아, 올리버.” 엄마는 가벼운 농담이라도 하듯 말했다. “그렇다고 무덤 너머에서 널 사랑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이게 꿈이라고 해도.”
엄마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머리 한구석에는 간단한 질문 하나가 걸려 있었다.
친아빠는 대체 어디 있는 거지?
너새니얼 요하네스버그는 여전히 나를 키우고 있었고, 아내와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는 나를 아들로 사랑했고, 사고 이후로 재혼하지 않았다. 자기 잘못이라고 믿는 그 일에 마음이 부서진 채로. 사고 당시 아빠는 차에 없었다. 집에서 하던 일이 바빴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이 꿈속에서 그는 어디에 있는 걸까?
머릿속 질문을 들은 것처럼, 어쩌다 보니 내 새아빠 자리에 서 있는 스콧 브라이턴이 대답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엄마를 죽인 장본인이면서.
“그 사람은 여기 안 나와.” 무언가에 상처받고 지친 목소리로, 그는 나를 달래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죽지 않았으니까.”
“당신이… 당신이 둘을 죽였잖아.” 나는 담담하게 말했고, 그는 부끄러움에 움찔했다. “나까지 죽일 뻔했고. 그런데 이 꿈은 대체 왜 당신을 우리 엄마 남편으로 세워 놓은 건데?”
마지막 말에서 목소리가 높아졌고, 세계가 조금 흔들렸다. 꿈이 잠깐 흐려졌다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들어 봐.” 순수한 수치심과 자기혐오가 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내가 한 짓 때문에 나는 나를 증오해. 용서 안 해도 돼.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된 거야. 내 죄는 내가 감당해야 하고. 그러니까 얼마든지 소리 질러. 들어도 싼 놈이니까.”
내가 뭔가 더 말하기 전에 여동생의 뾰로통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야!” 에이바가 허리에 손을 얹고 삐친 척을 하며 말했다. “나는 잊어버린 거야, 올리?”
“아니.” 나는 고개를 기울여 내 동생을… 아니, 내 동생이 될 수도 있었던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직 태어난 적 없고 앞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날 일 없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물음마저 들은 것처럼 에이바가 대답했다.
“괜찮아. 진짜 하늘은 한 번 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괜찮아. 그 일만 없었으면 오늘이 진짜로 내 열세 번째 생일이었을 거야. 그리고 올리버, 나 아까 그 소원 진심이야.”
그 말이 다시 머릿속에서 울렸다. 누군가가 벌을 받았으면 한다는 소원. 그런데 누구를? 사고였잖아?
“사고였으면 좋았지.” 엄마가 내뱉었다. 목소리가 갑자기 혐오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뒤에…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은,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혀. 너는 그런 걸 당할 애가 아니었어.”
엄마의 말은 뒤엉킨 채 나를 스쳐 갔고, 나는 앞뒤를 하나도 잡을 수 없었다. 내가 뭘 당했다는 거지? 그리고 이 꿈이 맞는다면, 그 사고는 사고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있나?
현실에서 내가 물을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내리깔고, 비극적인 사고였다고, 누구도 당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특히 너는 더 그렇다고 말했다.
“잘 들어라, 꼬마야.” 스콧 브라이턴이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딱 하나만 부탁할게.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책상 위에서 두 번째 서랍을 열어. 거기서 DNA 스티커가 붙은 휴대폰을 꺼내. 비밀번호는 473901이야. 손에 넣으면 그다음은 알아서 알게 될 거다. 네 엄마랑 동생을 위해서… 해 줘. 네가 나를 못 믿는 거 알아. 그래도 부탁이다.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무엇에 걸고서라도, 제발 해 줘. 제발…”
한순간 그에게 싫다고, 지금 지옥에서 잘 타고 있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생각을 바꿨다. 이 인간이 내 상상이 빚어낸 조각이라면, 저 비밀번호에 대해 내가 뭔가 알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자각몽은 무의식 속으로 손을 뻗는 구석이 있으니까.
“알았어.” 나는 화난 눈으로 그를 쏘아보며 쏘아붙였다. “내 뇌가 나를 가지고 노는 게 분명하고, 당신이 왜 이런 걸 알려 주는지도 모르겠지만, 하긴 할게. 어차피 이건 진짜도 아니고. 이 심부름 퀘스트든 뭐든 다 해 줄 테니까, 아무 일도 안 생기면 다음 자각몽에서 당신한테 실컷 욕할 기회나 다시 주길 바랄게.”
“될 거다.” 브라이턴은 뜻밖에 확신에 차서 말했다. “물론 다음에 꿈에서 깨어 있게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고.”
“올리버.” 엄마가 끼어들었다. “스콧 말 좀 들어. 저 사람 말이 맞아.”
“엄마가 그러니까 할게… 엄마.” 낯선 그 단어가 놀랄 만큼 쉽게 입에서 굴러 나왔다. “에이바를 위해서도. 그런데… 이거 진짜가 아니잖아? 나는 그냥 내 머릿속이랑 얘기하고 있는 거고. 나 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 엄마는 진짜가 아니야… 진짜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당연히 진짜지, 올리버.” 엄마는 뜻밖에 현자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우리 다 진짜야. 어떤 의미에서는. 그래, 전부 꿈이지. 그렇다고 진짜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야. 진짜처럼 느껴진다면… 그게 진짜라는 뜻 아니겠니?”
“잘 가, 올리.” 에이바가 달려와 나를 꽉 끌어안았고, 나는 놀랐다. 태어난 적 없는 아이치고 너무 따뜻했다. 살아 본 적 없는 동생을 향해 오빠 노릇을 하려는 본능 같은 게 올라오는 것이 이상했다. “오빠 이제 가는구나. 느껴져.”
에이바 말이 맞았다. 꿈이 천천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잘 있어, 에이바.” 다시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언젠가… 또 보자.”
그리고 한순간에 나는 튕겨 나왔다. 진짜 내 방 침대의 감촉이 등 밑에 있었고 햇빛은 이미 창을 뚫고 들어와 있었다. 디지털시계를 보니 아침 7시 10분, 날짜는 2022년 4월 20일이었다. 날짜가 앞뒤로 맞아떨어지는 게 이상했지만 그냥 넘겼다.
…
사실 그때는 전부 다 넘겨 버렸다. 빌어먹을 꿈일 뿐이었으니까. 그날 밤 내 머리가 뭔가에 꽂혀 있었던 게 분명했다. 앞뒤라고는 하나도 안 맞는 멍청한 심부름 퀘스트나 만들어 냈으니. 우리 아빠는 멀쩡히 살아 있었고, 일이며 뭐며로 바빴다.
그래도 결국 호기심이 이겼다. 그래서 나는 아빠 방에 들어가 위에서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정말로, 서랍 맨 안쪽에 DNA 스티커가 붙은 휴대폰이 있었다. 그 시점에 이미 십삼 년은 된 기종이었다.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인데, 내 뇌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다만 나를 더 신경 쓰이게 한 건, 서랍 안에 휴대폰이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그건 그대로 숨겨 둔 채, 오래된 폰을 충전해야 했다. 다행히 아빠는 그게 없어진 걸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고, 쓸 수 있게 되자마자 나는 전원을 켰다.
그리고 배경화면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활짝 웃고 있는 스콧 브라이턴의 얼굴, 그리고 그 옆에 우리 아빠.
4-7-3-9-0-1을 눌렀고, 열렸다. 꿈이 또 한 번 사실로 들어맞았다.
혼란과 호기심이 머릿속에서 두 갈래로 흘렀다. 스콧의 휴대폰이 왜 우리 아빠 서랍에 있는지는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서, 나는 스콧이 아빠와 주고받은 마지막 메시지를 열었다.
나: 야 내 차 너한테 있지
나: 집까지 좀 태워다 주라
나: 나 취햇어
네이트: 그래, 문제없어.
나: 고맙다 생명의 은ㅇ인
이 대화가 오간 시각은 2009년 2월 2일 밤 10시 30분.
스콧 브라이턴의 시신에 대한 공식 수사 기록상 사고 추정 시각은? 같은 날 밤 11시부터 자정 사이.
몸속의 피가 식었다. 이건 분명히 뭔가였다. 아빠가 왜 스콧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건 잘못됐다. 완전히 잘못됐다.
이 메시지대로라면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몰던 사람은 우리 아빠였다. 그런데 기사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아빠는 밤 열 시부터 집에 있었다.
아빠가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었다.
온몸이 마비된 채로 나는 아빠 방으로 걸어 들어가 휴대폰을 원래 있던 자리에 정확히 되돌려 놓았다. 필요하면 다시 찾으면 되니까.
그런데 그 순간 눈이 두 번째 휴대폰으로 갔다. 어째서인지 그쪽이 훨씬 더 깊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단검처럼 심장을 파고드는 종류의 공포였다.
이건 더 최신 기종이었고 배터리도 제법 남아 있었다. 그래서 또 호기심이 이겼고, 나는 그것을 켰다.
그런데 그 시점에야 깨달았다. 이 새 폰의 비밀번호는 모른다는 걸.
세 번 틀리면 잠긴다. 이 폰에서는 아빠 향수 냄새가 났다. 그러니까 이건 아빠 폰일 테고, 그렇다면 비밀번호는 아마 생일일 것이다.
8-0-0-9-1-4. 아빠 생일. 틀렸습니다.
8-1-1-1-0-5. 엄마 생일. 틀렸습니다.
0-6-0-5-3-0. 내 생일. 잠금 해제.
잠금 화면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굳어 버렸다. 아빠는 내 생일을 비밀번호로 쓰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있는 힘껏 빠르게 왓츠앱을 열었다. 대체 이 폰으로 누구와 연락하고 있었을까? 뭘 하려던 걸까?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던 거라면, 왜 엄마와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을 죽였을까?
가장 최근 대화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와의 것이었고, 상대는 ‘딜러’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딜러: 혼자 있나?
나: 거의.
딜러: 한 번 밀면 되고?
나: 그래야지.
딜러: 왜 직접 안 하고?
나: 나는 못 해.
나: 내가 하면 안 돼.
딜러: 그럼 됐고.
딜러: 날짜랑 시간은?
나: 5월 7일
나: 아침부터 정오까지 지켜보고 있어.
딜러: 값은?
나: 일 끝나고.
아니야. 이럴 리 없어. 나는 휴대폰 두 대를 움켜쥐고 전부 가방에 쑤셔 넣었다. 먹을 것도 있는 대로 다 집어넣었다. 그리고 집을 뛰쳐나가 달렸다. 잠깐도 멈출 생각 없이.
이런 일이 벌어질 리가 없었다.
5월 7일에 나와 아빠는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꽤 유명한 절벽도 있었다.
아빠는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직접 할 배짱은 없어서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니면 나한테 정말로 얼마간의 감정이 남아 있었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그는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
나를 사랑한 사람. 나와 함께 웃고 장난치던 사람. 우리 엄마를 위해 울던 사람, 그 눈물은 전부 가짜였을 그 사람이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
모든 증거가 하나같이 한 방향을 가리키며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죽게 되어 있었다.
…
그다음 일은 흐릿하다. 가방을 둘러메고 집에서 도망치던 것, 곧 죽을 사람처럼 심장이 뛰던 것만 기억난다. 결국 나는 동네 경찰서에 도착해서, 목숨이 무서운 채로 증거를 내밀었다.
알고 보니 경찰이 그 사고 사건을 덮은 유일한 이유는 스콧의 죽음을 자살로 봤기 때문이었다. 그 메시지들은 그 판단에 의심을 던졌다. 그리고 아빠가 내 죽음을 꾸미고 있던 다른 폰. 그걸 보던 경관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지던 장면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50킬로미터쯤 떨어진 아무 에어비앤비로 옮겨질 준비가 될 때까지, 보통은 수감자용으로 쓰는 유치장에 잠시 들어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내 삶은 거의 통째로 뒤집혔다. 내 진짜 휴대폰과 책 몇 권만 곁에 두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살았다. 증인 보호를 받는 사람에게 경찰이 꽤 친절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친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빠가 어떻게 체포됐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경찰이 옛집에 들이닥쳤을 때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도망친 뒤 아빠를 처음 다시 본 건 재판정에서였다. 나는 증인이었다.
법정에서 내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떨리는 목소리로 있었던 일을 설명하면서, 정보를 꿈에서 얻었다는 부분만 조심스럽게 건너뛰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사기관에 남은 이야기는, 아빠가 어쩐 일인지 잠꼬대로 중얼거리는 걸 듣고 비밀번호를 짐작해 냈다는 것이 되었다. 휴대폰 쪽은 그냥 감으로 찍었다고 인정했다.
변호인은 이게 짜인 판이라고, 내가 돈 문제로 무슨 속셈이 있어서 아버지를 감옥에 넣으려 한다고 주장하려 했다. 그러다 검찰이 내가 죽었을 경우 아빠가 보험금으로 백만 파운드 가까이를 받게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꺼냈다. 실제로 아빠는 엄마의 죽음으로 이미 백만 파운드를 받은 뒤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그 사람을 닮았다는 사실을 저주했다.
아빠가 나에게 매달리며 너를 사랑한다고, 절대 해칠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을 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단어 하나 억양 하나까지 아직도 기억한다.
“그럼 최소한 직접 죽일 배짱은 있었어야지, 겁쟁이야.”
너새니얼 요하네스버그는 살인 모의 혐의 하나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35년이 지나야 가석방 가능성이 생기는 종신형을 받았다. 여기에는 엄마와 스콧 브라이턴 살해 혐의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 둘까지 유죄가 나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두 번 더 얹힐 수 있었다.
그 두 재판에는 내가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나갔다. 아빠 속을 긁고 그 실패를 눈앞에서 놀려 주려고. 그는 두 건 모두 유죄를 받았다. 살인으로 받아 낸 사망보험금이었던 탓에 그 돈으로는 변호사를 살 수도 없었다.
아, 딜러? 그 사람도 도망치려 했지만 몇 달 만에 결국 잡혔다.
이 모든 광기가 시작되고 딱 일 년 뒤인 2023년 4월 19일 밤, 나는 또 그 꿈속에 있었다. 이번에는 에이바의 열네 번째 생일이었다.
이번에는 무슨 상황인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사후 세계라고밖에 볼 수 없는 그곳의 잔치는(솔직히 이게 평범한 자각몽일 리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어쩐 일인지 꽤 즐거웠다. 나는 체감상 훨씬 오래 그곳에 머물렀고, 스콧 브라이턴이 처음으로 나를 안아 주며 네가 자랑스럽다고, 자기가 너를 키워 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말했다.
그래도 모든 꿈은 끝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 이 망할 고백을 룸메이트가 들어와 훔쳐보지 않는지 어깨 너머를 확인해 가며 타이핑하는 중이다. 꿈이란 건 정말이지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한다. 좋은 쪽으로도, 어쩌면 나쁜 쪽으로도. 그건 나도 모르겠다.
동생은 몇 달 전에 열일곱 살이 되었고, 나는 잠들 때마다 여전히 초대를 받는다. 그건 좋은 일이다.
꿈에서 있었던 일이 전부 진짜였다고 믿는 내가 미친 걸까? 그럴지도. 하지만 내가 즐겨 하는 말로 대신하자면, 광기란 그저 독창성의 뒷면일 뿐이다.
그나저나, 이런 꿈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 하나뿐일까.
첫댓글 잘했다 올리버
왤케 슬프냐ㅜ
존잼이내뇨
개비새끼 종신형으로 모자라다
슬프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