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이미 밖에 나설 차비가 되었다.
보따리가 놓였다.
내가 들고 나선다.
성내동 처남댁을 거처 분당 둘째 처형과 누이 동생네를 둘러 덕소 큰 처형 네를 향해 나선다.
보따리 속의 물건들은 아주 소박하다.
아들이 추석 선물을 회사에서 값싸게 살 수 있다기에 이 집 저 집 마음에 걸려 몇 개를 샀다. 한 개당 이만 원이 안 된다.
거기다가 국수 묶음을 나눠먹자고 짐 하나하나에 보탰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은행의 마이너스 통장뿐이다.
직장 생활 인연이 생각나서 낡은 수첩에서 찾아낸 내 이름에 전화를 건 두 어 사람
" 찾아뵐게요."
나는 그 말을 작년도 재작년에도 들었기에 씁쓸한 기분이 들다가 기억하여 전화를 걸어준 마음에 감사했다. 나는 잘사는 상사 집에 전화를 걸고 싶지 않다. 그들의 관심 밖에 내가 있고, 나의 관심 밖에 그들이 있다. 인생에 한 번 이상은 볼 것이다. 경조사가 있을 때 만나는 것만으로 족하지 . 이따금 전화를 걸어 서로의 평안을 물었어야지. 나도 잊고 너도 잊고 사는 세상이 어디 오늘 뿐이며, 나뿐이랴.
직장 생활을 할 때 여유가 있었다.
그때 나는 추석선물을 챙겨 친척집을 한 바퀴 돌았다.
작은 여유 속에 작은 정성은 기쁨이었다. 살림살이가 풍요럽지 않아도 안정적이었다.
추석 선물로 돈이 나가도 다음 달이면 봉급이 나온다.
이제 예전 살림이 아니다.
들어오는 돈은 월급타서 힘들다면서 아들이 내 놓는 몇 푼과 내가 버는 아파트 관리비 정도 뿐.
희망 보다 절망이 가득한 살림살이에 미래도 없다. 은행 빚은 집을 담보로 잡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살림살이가
치도곤을 당하고 있는 듯, 요지경 삶이다.
누구의 탓인가. 따저무엇해. 내 팔자지.
이런 살림에 물건 하나에 이만 원 정도 몇 개도 신경을 끊고 있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신입 사원 아들이 회사에서 사원 복지를 위해 먹을거리를 싸게 준다기에 늘 주는 일에 익숙한 아내가 시작하고 내가 동의를 하니, 살림 여유 있을 때 위풍당당이 한동안 기죽어 살다가 명절을 맞아 발동 걸렸다.
한 집 한 집 둘렀다.
선물이 커서 맛인가.
찾아가니 고맙다하며, 누이는 매실 물을 싸주고 처형들은 강냉이와 식해를 싸준다.
가는 정 오는 정에 하하하 웃으니 기분 좋다. 언제 이렇게 웃는담.
가진 것이 많다고 쌓아 두기보다
가진 것이 적어도 훌훌 털어 나누니 기쁘다.
혼자 먹고 살지 하고 내가 말할 때가 있어도, 자신의 친정이나 시댁 골고루 신경 쓰는 아내의 역할이 든든하니 내 마음의 행복감은 아내 덕이다.
"이제 신경 쓰기 힘들어. 내년에는 안 할래."
아내가 말하지만 그럴 리 없다.
콩 하나하도 나누는 아내가 마음을 바꿀 리 없다.
나나 아내나 받기를 기다리기보다 나누면서 기쁨을 얻기에 앞으로 우리 둘의 마음은 다름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