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극장
박현기
“향토 문화예술을 애호하시고 사랑하시는 00동민 여러분! 오늘도 계속되는 농사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여기는 가설극장 가두선전반입니다.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여러분이 있어 문화가 발전합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들을 모시고 상영해 드릴 영화 홍도야 울지 마라!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한 여인의 가련한 이야기,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홍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고 돈 없으면 더욱 볼 수 없는 영화 홍도야 울지 마라! 김지미 신영균 주연의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삼천만의 심금을 울린 영화 홍도야 울지 마라! 이 영화를 가지고 여러분들을 모시고자 하오니 저녁 진지 든든하게 잡수시고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빠 가리지 마시고 모두 손에 손 잡고 강변으로 나와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사름 끝난 논에서 뜸부기가 울고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철이면 어김없이 동네에 가설극장이 들어왔다. 그때쯤이면 모내기로 종종걸음 치던 어른들은 몸도 마음도 조금 느긋해져서 틈틈이 감자나 마늘을 캤고 아이들은 강에서 은어나 황어를 잡기 위해 온종일 천방지축으로 날뛰곤 했다. 가설극장은 한 해에 서너 번씩 말수레에 실려 오기도 했고 괴물 같은 화물자동차에 실려 오기도 했다. 시골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항상 차림새가 깔끔하고 특히 여자들의 때깔이 고왔다. 모래와 잡초가 무성한 강변에 짐을 부리고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높다란 말뚝을 박았다. 거기에 광목천을 몇 바퀴 돌리면 극장이 완성되었다. 그들이 오면 조용하던 마을에 생기가 돌며 우리의 놀이터는 순식간에 시장으로 변했다.
극장이 완성되면 앞쪽에 온갖 물건이 진열되었다. 옷부터 시작해서 냄비 솥 그릇 농기구 화장품,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뒤이어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말이 수레를 끌고 나섰다. 수레에는 배우의 얼굴이 큼직하게 그려진 광고판과 발전기가 실렸다. 예쁜 남녀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방송을 했다. 애절한 고저장단의 리듬과 곱고 청아한 목소리가 듣는 사람을 저절로 울렁이게 했다. “향토 문화예술을 애호하시고 사랑하시는 00동민 여러분!”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뛰었다. 면 소재지인 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몇 개의 마을을 돌면서 절절하게 광고를 하고 다녔다. 나른한 산골의 구성진 스피커 소리는 처녀총각의 마음만 흔드는 게 아니라 뻐꾸기와 개구리까지 합창하게 만들었다.
방송 중간에 노래가 빠질 수 없었다. “해~에당화~ 피고 지~는 서음~ 마~으을에” 이미자의 간드러진 곡조가 질질 끌리며 반복되다가 올라가야 할 음이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하고, 어떨 땐 아예 뚝 끊어졌다가 다시 나오기도 했다. 발전기의 성능이 좋지 않아 버퍼링이 일어났는데 우리는 원래 노래가 그런 줄 알았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오후 내내 수레를 따라 다녔다. 심부름도 하고 깔깔거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자주 보지 못하는 말도 신기했지만, 수레를 끈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수레는 당연히 소가 끄는 줄 알았다. 극장이 들어오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튿날이면 어른들끼리 누구네 보리가 까닭 없이 누웠네, 누구네 밭에서는 마늘이 없어졌네, 감자가 없어졌네, 이야기가 무성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그런 온갖 소문도 재미있었다.
해가 설핏해지면 산골짝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영화를 보러 왔다. 모처럼 말쑥하게 차려입고 총각들은 처녀에게 넌지시 수작을 걸고 처녀는 핼끔거리며 내숭을 떨었다. 초저녁부터 극장 앞을 맴돌지만, 돈 없는 아이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더러는 어른 몰래 보리쌀이나 감자, 마늘을 들고 오는 아이도 있었고 휘장을 들치고 잽싸게 기어들었다가 꿀밤을 맞으며 끌려나오는 아이도 있었다. 보고는 싶고 돈은 없으니 높다란 백양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강변에 늘어선 백양나무마다 아이들이 조롱조롱 매달렸다. 밤빛에 까치집인지 아이인지 구별이 쉽지 않았다. 화면에선 늘 은빛 비가 내리고 가끔 번개도 쳤다. 그래도 배우의 몸짓과 대사를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안간힘을 쓰느라 영화가 끝나면 한참 동안 팔다리에 난 쥐를 잡으려 코끝에 침을 발라야했다.
글쓰기 공부를 하는 회원들이 강의실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공부의 연장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선정하고 빔 프로젝터 앞에 모여 앉았다. 현대의 과학은 참으로 편리하다. 즉석에서 정말 간단하게 가설극장이 차려졌으니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토론이 벌어졌다. 독재정권과 사랑과 우정에 대한 갑론을박이 분분했지만, 나는 아직 백양나무 꼭대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첨단 시설을 갖춘 영화관이 아니어도 음향이나 화면은 아주 훌륭했다. 비가 내리거나 번개가 치는 것도 없었다. 통닭과 맥주까지 준비했으니 가설극장치고는 아주 안락한 가설극장인 셈이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 시절 그 때의 가설극장이 추억처럼 웃음을 짓게 하고 있었다.
/ 2008년『한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민들레 피는 골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