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 선생은 186년 3월 17일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상왕리에서 아버지는 이홍제(李弘濟)와 어머니는 상산 박 씨(商山朴氏)로 통덕랑(通德郞) 박용원(朴龍遠)의 딸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형(季衡), 호는 성암(醒菴)이며 조선 중기의 문신인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의 9대손입니다.
유대원(柳大源)의 문인이 되어 한학을 공부했고, 1904년 일본인들이 철도 공사를 하던 중 공주에 있는 선영을 침범하자 유림의 진정서(陳情書)를 갖고 관계자를 찾아가 항의해 철도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했고, 1905년에는 초려 이유태(李惟泰)의 사서답문(四書答問)을 교정, 발간하였습니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기의려문(起義旅文)’이라는 항의문을 지어 조정과 일본에 보내 항의했는데 기의려문에서 “을사늑약은 법적 형식이 결여된 불법적인 조약으로 을사 적이 여기에 찬성하여 맺어진 것으로, 백성들의 의사와는 상반되는 것이며, 합법성을 의미하는 조약이 아닌 늑약인데다 불법과 강제성을 띠었으니 무효”라고 주장하고 일본 정부에 치일국정부서(致日國政府書)를 보내 "조선의 귀신이 될지언정 살아서 일본의 백성이 되지 않겠다."라고 밝혔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수차에 걸쳐 일경의 취조를 받았으나 그때마다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혔기에 19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아야 했고, 한 번은 일제가 추진하는 민적에 등록하길 거부해 69일간 구금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빈번히 체포되어 고문을 받던 그는 결국 1919년 12월 6일 고문의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향년 53세에 사망했습니다.
공주(公州)의 숭의사(崇義祠)에 봉향 되었고, 저서로는 '성암집(醒菴集)' 4책과 한글 '내범요람(內範要覽)' 1책이 있으며 상훈과 추모는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이철영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