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如如한 세계에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如來라 부릅니다. 여래는 범어로 타타가타(tathagata)라 하는데 부처님 재세시 이미 수행을 완성한 사람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쓰여진 이름으로 그 의미는 "이와 같이 훌륭하게 된 사람"입니다.
부처님에게는 10가지 다른 이름(如來十號)이 있습니다. 이를 살펴보면 부 처님의 훌륭함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왜 부처님이 이땅에 오셨는지 그 참뜻과 의미도 여래십호에 다 담겨있습니다.
얼마전 모 일간지에서 "은하수 중심부에서 분출되는 반물질(Antimatter)로 가득찬 거대한 가스샘이 발견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반(反 anti)물질이란게 뭡니까. 물질이 아니라는 것 아닙니까. 다시말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를 말합니다.
기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반물질 가스샘의 발견은 우리가 어릴 적부터 살아온 집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을 발견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며 "이 거대한 반물질 샘의 에너지 원천은 물질과 반물질의 충돌일 가능성이 있다고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에 대해 또 미국의 노스웨스턴대의 한 연구원은 "이번에 새로 발견된 예기치 않은 반물질 샘의 기원은 미스터리"라고 논평했습니다.우리는 흔히 "없는데 있다"는 말을 듣거나 주장하기도 합니다. 무형의 존재가 거대한 가 스샘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과학으로도 쉽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교를 알면 無가 왜 有가 되고 有가 어째서 無가 되는지를 압니 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게 無明입니다.부처님은 진리의 세계에서 오셨습 니다. 그래서 正遍智입니다. 중생을 바르고 향기롭게 살라고 正도 遍도 잘 설명한다고 해 정변지입니다. 이렇게 되니 應供입니다. 모든 중생들로부터 마땅히 공양받으실 자격을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世間解입니다. 세상에 모르는 게 없고 모든 일을 잘 아는 스승이란 말입니다. 부처님은 오실 때도 멋있게 오셨지만 가실 때도 멋있게 가셨습니다.
타타가타를 한역해보면 부처님은 오고(如來) 감(如去)을 아신 분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행복을 얻은 사람이란 뜻으로 善逝로도 불립니다.지금 우리 사회가 한보비리다 뭐다 해서 시끄러운 것은 바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사바세계의 변두리 구석구석까지 광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지만 중생들이 저마다 제 잘난 것만 우기고 스스로 어둠 속에 몸을 가두고 있습 니다. 부처님께서 일러주신대로만 산다면 사바가 곧 극락이란 사실을 모른 채 살고 있는게 우리네 중생입니다.
사바란 무엇입니까. 온갖 잡동사니가 모여 사는게 사바입니다. 이런 사람 도 있는가 하면 저런 사람도 있는게 사바세상입니다. 당연히 질투심 경쟁심 갈등이 만연하게 됩니다. 남보다 더 많은 권력과 재산을 가질려고 탐진치 삼독심을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솔직히 인간들이 이를 모르지 않습니다. 알면서도 탐진치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니 어둠의 세상은 계속됩니다.세상의 이치를 예를 하나 들 어 말씀드리겠습니다. 功德男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공덕남은 언제 나 즐거움과 기쁨 향기만을 나누어주는 인물로 세상사람들에게 늘 환영을 받고 살 줄 알았지만 불행히도 지독한 외로움에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연고는 이렇습니다. 그는 결혼할 양으로 한 도인을 찾아가 자신있게 자신 을 소개하며 색시를 구했습니다. "나는 가는 곳마다 공덕이 생기게 해 항상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한다.내가 있는 곳은 어디든 향기로운 광명으로 빛난 다" 도인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 동생하고 살아라" 그래 도인이 소개해 주는 동생의 얼굴을 보니 이게 어찌 자신에게 소개해줄 법한 인물입니까.
얼굴은 새카맣고 지독히도 못생겼는데 몸에서는 구린내까지 퐁퐁 진동을 하 는 겁니다.
도인이 말했습니다. "이 여자는 黑暗女로 있는 재수도 없어지며 명랑했던 기분도 일시에 나빠지며 좋은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만 안겨준다. 너와는 반 드시 같이 붙어있어야 될 운명이다"功德黑暗相宮隨逐이라.
이처럼 세상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입니다.이를 부 처님께서 잘 고르고 다스린다 해서 "調御장夫"입니다. 아무리 나쁜 길이라 도 자동차를 잘몰고 다니며 그 이치를 확 꿰뚫어 진리를 설파하신다 해서 최고의 스승이라는 無上士이며 신과 하늘까지도 그 진리에 감복하는 天人師 입니다. 부처님은 이같이 여래십호를 구현하기 위해 이땅에 오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몇해전에 중국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현지 안내 자가 모택동이 정치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평가는 그만두고 그가 집권할 당 시 큰소리칠만한 자격은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늘 공관 에서 살았던 모택동은 사후에 낡은 집 한 채만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또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새롭게 읽고 있습니다. 스님은 이 책에서 숟가락과 바리때 다기그릇을 자기의 것으로 가지고 있다고 밝히 면서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요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렵다고들 합니다. 해법을 못찾는 경제정책 으로 말미암아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고 대그룹들의 잇딴 부도로 거리로 내몰리는 직장인들이 하루에도 수백명씩 된다고 합니다.
정치인들은 그들대로 서민들의 처지를 외면한 채 연말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머리는 차게 배는 고프게 발은 따스하게". 머리와 배에 해당하는 정치 사 회의 지도자들과 중산층들이 덜가진 듯 참고 살며 대신 발에 해당하는 서 민들을 따스하게 해준다면 이나라는 부강해지며 평안해집니다. 요순임금이 그랬듯 역사적으로도 역대 왕들이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를 펼쳤을 때 태평성대가 구가됐습니다. 반대로 권력암투와 이권시비에 휘말리면 국가와 국민은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우리가 초파일날 연등을 달며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팔만 사천법문을 한마디로 요약해 표현할 수 있는 "自燈明 法燈明"이 그것입니 다. 자등명 법등명이란 자기자신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해 세상을 밝게 구원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등재일을 하며 나의 모든 업장을 녹여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해치는 마음을 없애고 다함께 기쁘고 즐거운 세상을 만든다면 이것이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을 보내는 불자 들의 참된 도리아니겠습니까.
여기엔 궁극적인 실천행이 뒤따라야 합니다. 경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 다. 一卽多요 多卽一이다. 또 一切十方微塵中 恒河沙劫說難盡이라 했습니 다.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 이말들은 디스켓 한 장에 팔만사천법문을 다 담 아내는 요즘과 같은 초정보화시대에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을지 모르나 다음과 같은 예화를 통해 설명할까 합니다.
옛날에 이만권의 책을 독파했다고 해서 이만권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가 어느날 불경을 보다가 "겨자씨 속에 수미산이 들어갔다"는 글을 접하곤 의심이 들어 당대의 대선사를 찾아가 이뜻을 물었습니다. 이에 선사가 대답 하길 "내몸은 다섯치밖에 안되는데 수천수만의 말과 생각이 다 어떻게 들어 갔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에 이만권은 크게 깨우쳤습니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깨달음은 행위가 뒤따르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나도 언젠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이 있습니다. 봉은사앞 무역전시관에서 박람회를 한다고 하기에 뭔가 새로 운 것을 배울수 있겠지 하고 갔다가 괜한 헛걸음을 했다 싶은 것이 거기엔 단 한종류도 알 수 없는 수천수백가지의 컴퓨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또한 거저 주어도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깨달 음의 세계나 정토의 세계는 이처럼 책속이나 정신속에서만 추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지난한 노력과 실천행이 뒤따를 때라야 활짝 열립니 다. 자등명 법등명하면 심신이 청정해지고 이웃이 깨끗해지며 나라가 행복 해집니다. 내가 이웃이며(一卽多) 이웃이 나라는(多卽一)사실을 알 때 비로 소 공업중생(共業衆生)의 공동체정신을 깨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기의 법칙을 알아 청정한 세계를 함께 구현해가기 위해 불자들에 겐 전법의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무역박람회에 갔다가 아무것도 얻은 바 없이 돌아왔듯이 첨단 멀티미디어 시대에 아무리 훌륭한 기구를 동원해 부 처님 말씀을 전한다 해도 어렵고 난해하면 포교에 성과를 거두기란 난망합 니다. "내귀에 쏙 들어올 수 있는" 쉬운 말로 중생의 근기에 맞게 포교전략 을 세워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放逸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게으른 게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매사 모든 일을 대충대충하려 는 좋지않은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교육에서도 현실을 正見하 지 않고 走馬看山격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생색내기식으로 "할 일했다"는 태 도는 눈에 거슬립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게으름의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입을 보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같지만 실은 알맹이가 없는게 태반입니다. 건단진언 의 독송처럼 입보다는 신심을 내는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신심을 배가하기 위해선 정진하는게 으뜸입니다.
사회를 바르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불자들은 一步一拜하는 마음가짐으로 신행생활을 만들어 나갑시다. 일심이 청정하면 일신이 청정하고 일신이 청 정하면 다신이 청정하며 다신이 청정하면 시방중생이 두루두루 청정해집니 다.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정진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자는 말을 불자들과 각 계의 지도층인사 그리고 국민들에게 메시지로 전하면서 만중생의 행복을 기 원합니다.
<수행이력>
스님은 29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 42년 통도사에서 고경스님을 은사로 득도,49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49년 해인사 대교과를 졸업한 스님은 중앙종회의원(60년~74년), 해인사 주지, 은해사주 지, 해인총림 율원장, 전계대화상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원로의원직을 맡고 있다.
스님의 저서로는 <법망경보살계 전5권> <시작하는 마음> <영원으로 향하는 마음> <시작도 끝도 없는 길> <기도> 등 10여종이 있으며 육성법문집으로 < 감로법문>등이 있다.
첫댓글 여래십호는 저의 목표점 이기도 합니다.(헐~~~엄청 좀 그러네~~~)^^ 지키지 못하는 날 있다하더라도 천천히,쉬지않고 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