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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온성고(五蘊盛苦)에 헤매는 사람들? **
오온성고(五蘊盛苦)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을 이루고 있는 눈,귀,코,입(혀),몸 (眼耳鼻舌身), 이 다
섯 가지를 오온이라 합니다. 이 다섯 가지 기관들은 좋은 것만을
취하려 하고 나쁜 것은 받아 드리려 하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눈은 아름다운 것만을 보려하고, 귀는 좋은 소리만을 들으려 하고,
코는 향기나는 것만을 맡으려 하고, 입은 맛있는 것만을 먹으려
하고, 몸은 건강해 지기만을 바랍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면서 어찌 이 욕망대로 될 수 있겠습니까요?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꼬운 것뿐이고, 귀에 들리는 소리는 기분 나
쁜 소음뿐이고, 코로 맡을 수 있는 것은 악취 뿐이고, 혀에 닿는
것은 맛없는 음식이고, 몸은 온갖 병마에 허덕이니, 오온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신구조인 감정 사상 행동 의식 작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아무리 수양이 된 사람도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를 들으면 얼굴빛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온갖 고통과 번뇌 속에
허덕이고 사는가 봅니다. 사람이 말을 하고, 글을 쓰고, 행동을 하
다 보면 옳고 그름이 반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
람들 사이에는 친소(親疎) 관계가 생깁니다.
오온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에겐 친밀감을 느끼고, 괴롭게 하는 사람
에겐 비록 그 사람의 언동이 사리에 맞다고 하여도 경원하기 마련
입니다. 나도 이런 보통 사람의 범주에 속하는 속인(俗人)인 까닭에
친구 친지 사이에 이치나 따지고 사리나 분별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남이 하는 말이나 글에 말꼬리나 잡고 늘어지는 것은 현명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원만한 인간관계의 형성에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습니다. 공연히 상대방의 감정만 상하게 할 뿐입니다.
至愚者責人明이라 합니다.
제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꾸짖는 데에는 몹시 밝고 뛰
어나다는 말이지요. 공직생활을 하면서 가끔 겪었던 일인데, 기안
한가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하직원이 작성한 결재서류를
싸인 펜으로 쭉쭉 그어대며 꾸짖는 일은 아주 잘 합니다.
내 나이 쉰 살 전후는 왕성한 활동 기였으므로 친우 친지들과 어울
리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휴일이 겹치면 하루는 산행을 하던가,
골프를 치던가, 테니스를 하던가, 명산 대찰을 찾아 당일치기 여행을
하던가,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상대하며 즐기곤 하였습니다.
이런 즐거운 날의 나들이에 이치 따지고 시비 거는 사람이 한 사람
이라도 끼이면 모든 즐거움이 감쪽같이 시들어 지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남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어느 누가 말 같지 않은
말을 꺼내기만 하면 귀신같이 알아듣고 시비 걸기를 시작합니다.
그 자의 말이 100% 옳은 말이기는 한데 왜 그다지 귀에 거슬리고
듣기가 싫은지,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이치보다는 정다운
감정과 수용하는 마음씨 그리고 감싸주는 아량이 훨씬 값어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제는 일흔 살 넘은 고향친구 넷이서 영등포 어느 음식점에서 점
심을 함께 하고 있으려니 우리 또래의 늙은이 두 사람이 가까이 오
더니 꾸벅 인사를 합니다. 그러더니만 그 중 한 사람이 동행한 L군
을 보면서,
"어이, 이(李)씨, 나 모르겠어? 나 김xx랑께."
"모르겠는데. 저는 통 기억이 없는데요."
"어허, 이 사람, 참 이상하네, 자네 이yy아닌가?"
"내 이름까지 아는 것이 진짜 날 아시는 분인가 본데?"
"일선에서 군대생활 할 때 기억 안나?"
L군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듯 수긍하는 자세로 변하기는 했는데
별로 달갑지 않은 친구 같았습니다. 다시 그 자가 말을 꺼냅니다.
"이 사람, 이 일병, 너 그러면 안 돼, 상사도 몰라보다니, 사람이 그
렇게 거만해서야 되겠나, 일선에 있을 때 내가 얼마나 봐 줬는데,
모른 척 하기야 배은망덕한 말쫑 같으니라구!"
L군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지, 자다가 봉창을 뚫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하게 되어 있는데, P군이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형장, 보아하니 일흔 살은 넘게 보이니 젊잖게 말씀드립니다. 아무
래도 조용한 곳으로 나가서 저하고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할까요?"
그러고선 그 자의 허리춤(꼴마리)을 잡더니 세차게 끌고 밖으로 나
가더니 10분쯤 지나서 태연히 혼자 돌아왔습니다.
"자네, 어떻게 하고 온 거여? 힘 자랑하고 온 거여? 몇 대나 갈긴
거여? 이실직고 하라구? 빨리." 그의 성질을 잘 아는 K군이 다그
쳐 묻습니다. 어찌되었건 L군을 찾아온 손님이 아닌가? P군이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을 까 봐 K군은 안절부절입니다.
"어허허 내가 어디 사람 치는 놈인가, 보아하니 L형에게 용돈 뜯으
러 온 사람 아니던가? L형을 인터넷에서 보고 알았데, 회사 고문이
라고 되어 있어서 큰 돈 번 줄 알고 일부러 찾아왔다는 거야, 그
사람 이야기 잠깐 들어보고 만 원짜리 한 장 주면서 두 사람이 가
서 요기라도 하라고 타일러 보냈어."
"그럼, 그 두 사람 노숙자더란 말이야?"
"아니야, 그건 아닌데 회사가 부도나게 생겼데, 그래서 L형한테 돈
좀 빌리려고 일부러 허세를 부려 본 것인데, L형이 자기를 전혀 몰
라 보는 게 일부러 그러는 것으로 착각하고 막말을 한 것이래, 그래
서 내가 L형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만나야 서로 입장만 난처
하니 그냥 가시라고 한 거야, 나하고 갑술생 동갑이더라고, 쉬셔도
한참을 쉬어야 할 나이에 일을 해야하다니 안됐더라고, 같이 온 사
람은 자기회사 경리부장이래, 내가 준 돈 만원이 그렇게도 고마운지
이 은혜 꼭 갚겠다고 하더라고,"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소비심리가 되살아나고, 주가가 천
포인트에 안착했다고, 신문과 방송은 떠들어 대고 있어도 이런 장
면을 목격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별로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어이, P형, 나한테 찾아온 손님인데 자네가 대접을 해서야 쓰나,
며느리가 만원 주더라고 했제, 그 돈 써 버렸으니 이젠 걸어 갈
거 여?"
"걱정할 것 없어, 점심은 먹었고, 지하철은 공것이니까,ㅎㅎㅎ"
"역시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여 ㅎㅎㅎㅎ ㅋㅋㅋㅋ"
20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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