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의학사를 배울 때면 윤이(尹伊)라는 인물을 접하게 된다. 상(商)나라의 재상으로 원래는 궁의 주방에서 일하는 노비였다고 한다. 노비가 재상이 되기까지... 그 요리솜씨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재상까지 되었을까 상상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그 안에 여러 가지 소설적인 사건이 있었겠지만 음식철학을 갖고 한 나라의 군주를 도와 정치에까지 그 철학을 가미시킨 일은 대단한 일이라 하겠다.
윤이가 주방에서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을 심사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음식의 맛이었을 것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 하였다. 약과 음식 모두 맛이란 것이 있는데 중의학에서는 각각의 맛을 오행에 배속시켰다.
매운맛은 발산(發散)시키며, 기와 혈을 움직이고
단맛은 몸을 보하고, 속을 편하게 해주는 작용이 있고
신맛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못나가게 하는 작용이 있고
쓴맛은 기를 아래로 내리고, 변을 아래로 내리고, 열을 내리는 작용이 있으며 습기를 없애는 작용이 있고
짠맛은 응결된 것을 풀어주는 통변시키는 작용이 있다.
쉽게 볼 수 있는 약을 예로하면
매운맛의 대표적인 고추나 생강, 파, 신라면 등은 발산시킨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발산이란 땀을 내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지만 전문적으론 땀 하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며 밖에서 어떤 사기가 침범해서 그 사기가 체표부위에 있을 때 매운 맛을 먹으면 이 사기를 밖으로 몰아낸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체표부위에 있는 사기를 표사(表邪)라고 하는데 감기 걸렸을 때 생강을 먹고 땀을 내주면 감기의 사기가 밖으로 빠져나가 몸이 개운해 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약재에는 마황(麻黃), 계지(桂枝), 형개(荊芥), 방풍(防風), 강활(羌活), 백지(白芷), 세신(細辛), 생강(生薑), 박하(薄荷) 등이 있는데 모두 표사(表邪)를 밖으로 내쫓는 작용이 있다.
신맛에는 매실, 산수유, 오미자, 모과, 산딸기 등이 대표적인데 간(肝)으로 들어가며 근육을 부드럽게 해주는 약들이 많고 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작용을 하니 땀이 나거나, 설사, 몽정 등에 사용된다. 또한 당뇨병에도 매실이나 산수유 오미자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는 약재들인데 역시 당이 빠져나가는 것을 잡아주기 때문에 사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약재명으로는 오매(烏梅), 산수유(山茱萸), 모과(木瓜), 금앵자(金櫻子), 복분자(覆盆子), 진초(陳醋), 오미자(五味子), 백작약(白芍藥) 등이 있고 신맛이 나지 않는 약을 간(肝)으로 작용시키기 위해서 식초에 담근 뒤 약을 끓인다던지 식초를 뿌려 볶는 경우가 많다. 전에 민모여가수가 식초를 먹고 몸을 유연하게 만들었다는 방송이 나간 뒤 한참 여성들에게서 식초복용의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식초때문이라기 보다는 신맛의 특성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단맛에는 설탕, 엿, 대추, 감초, 꿀 등이 대표적인데 경상도를 충청도로 만들어주는 작용이 있다. 급하고 빠른 그 무엇인가를 조금 느리게 하고 느슨하게 하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단맛은 비장에 들어가니 소화계통의 통증등에 자주 사용된다.
또 단맛은 몸을 보하는 작용이 있다. 그렇다고 단맛만 계속 복용하면 정말 몸이 보해질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몸을 보한다면 몸안에 있는 기생충이나 세균 또한 단 것이 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 것으로 몸을 보할 때도 상황을 보아서 사용해야 한다.
약재명을 보면 감초(甘草), 인삼(人蔘), 황기(黃 ), 황정(黃精), 맥아(麥芽), 곡아(谷芽), 대조(大棗), 옥죽(玉竹), 봉밀(蜂蜜) 이당(飴糖) 등이 있다.
쓴맛에는 인동꽃, 우황, 씀바귀, 민들레, 치자, 곰쓸개 등이 대표적인데 심장을 대표하는 화(火)를 내리는 작용을 하고 대변을 통하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약인 대황 역시 쓴맛을 갖고 있다. 또한 살구씨는 쓴맛의 특성인 기를 아래로 내리는 대표적인 약재로 쓰여 위로 나오는 기침을 멎게 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
쓰다 싶으면 가장 큰 작용은 열을 내리는 것이다. 예전부터 급한 병들은 열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예방접종이 없던 옛날에 돌던 전염병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그래서 그런지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중국과 한국을 비교해 보면 중국에는 아직까지도 쓴약이 많고 한국에는 쓴약이 많지 않다. 이말은 중국에는 급한병에도 양방을 찾지않고 한방을 찾는 사람이 아직도 많고 한국에는 급한병에는 양방을 찾고 몸을 보하려는 환자들이 한방을 많이 찾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한약 가운데 맛으로 가장 많은 것이 쓴맛일 것이다. 그 종류가 너무 많아 대표적인 약재를 들자면 금은화(金銀花), 황련(黃連), 황백(黃柏), 포공영(蒲公英), 용담초(龍膽草), 고삼(苦蔘) 황금(黃芩) 등이 있다.
짠맛에는 굴껍질, 다시마, 해조, 해구신, 해마, 해룡 등 바다에서 나는 대부분의 한약재가 포함되고 망초, 육종용 등이 있다. 짠맛은 응결된 것을 풀어준다고 하였으니 귤껍질, 다시마, 해조등은 유방, 임파 등 몸에 몽우리가 설 때 사용할 수 있다. 또 짠맛의 또다른 특징인 통변작용으로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약재가 망초인데 망초30g을 물에 타서 마시면 하루에 최소한 4번은 물똥을 싸게된다. 또한 육종용도 변비에 사용되는 아주 좋은 약재인데 짠맛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통변작용 또한 어떻게 보면 응결된 것을 풀어주는 작용에 포함시켜 이해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짠맛은 신장으로 가기 때문에 신장에 약을 사용하고자 하는데 짠 약이 아니면 소금에 담그었다가 사용하던지 또는 약을 복용한 뒤에 소금물을 복용하게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정력을 키우기 위해 사용하는 처방이다. 예를들어 현재 내가 발기부전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약을 복용한 뒤에 농도가 옅은 소금물을 복용하면 약의 작용을 신장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더욱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게 있는데 바로 녹용이다. 녹용맛이 바로 짠맛이다. 그러니 신장으로 들어가 우리의 양기(陽氣)를 돌보는 아주 좋은 작용을 한다. 보통 1제(우리나라단위)당 두냥이 들어가고 경우에 따라선 한냥이 들어갈 때도 있다. 가끔 주변에서 보면 나하고 친한 사람이니 싸게주고 많이 준다고 약량을 아주 많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환자는 좋다고 먹는데 몇봉지 먹고선 설사가 난다고 난리다. 그러면 한의원에선 ''아! 용이 몸에 안맞네요''라고 한다. 만약 환자가 한의원을 바꾸지 않는 이상 자기는 용이 안맞는 체질이라고 평생 생각하면서 살게된다.
과연 그 환자가 용이 맞지 않는 체질이라서 설사를 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질만하다. 물론 어느 책을 보아도 녹용이 통변작용이 있다고 쓰여진 예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당귀 숙지때문에만 설사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녹용, 당귀, 숙지황...... 웬만한 보제는 이런 처방을 갖게 되는데 당귀, 숙지는 통변작용이 있다) 녹용이 가지고 있는 짠맛의 기본적인 특성 때문에 설사를 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이런 때는 녹용의 양을 줄인다던지 비위를 튼튼하게 하는 처방위에 녹용을 사용하는 방법을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