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7UOtVO2Yfk
12월24일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마태오 1,1-25
구세주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밤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성덕이 출중했던 프란치스코 보르지아가 여행 중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너무 늦은 시각에 머무르기로 약속한 수도원에 도착했답니다.
때마침 세찬 눈보라까지 몰아치니 이빨이 자동으로 딱딱 마주칠 정도였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했기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프란치스코 보르지아는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누구 한사람 문을 열어주러 나오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수도원의 높은 담은 그의 목소리를 가로막았고, 아무리 수도원 주변을 뺑뺑 돌아 다녀봐도 철옹성 같은 수도원 담벼락으로 인해 내부로 들어갈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프란치스코 보르지아는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밤을 지새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나긴 밤이 지나고 첫새벽이 되어서야 문 앞에서 꽁꽁 얼어있던 프란치스코 보르지아를 발견한 수사들은 너무나 미안해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보르지아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한평생 지난밤만큼 기쁘게 지낸 날도 없었습니다.
지난밤 제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저 높은 하늘에서 하느님이 눈송이를 하나씩 제게 떨어트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길고 긴 밤을 얼마나 포근하게 지냈는지 모릅니다.”
프란치스코 보르지아의 일화를 묵상하면서 오늘 태어나시는 아기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아기 예수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자신을 낮춰 인간 세상으로 들어오신 하느님께서도 허름한 여인숙 방 하나 잡지 못해
찬바람이 만만치 않은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오늘 밤, 또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신 구세주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밤입니다.
구세주 하느님께서 추위에 오들오들 떠시면서 간절히 문을 두드리시는데, 정신없이 잠만 자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또다시 성탄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가장 최종적이자 구체적인 표현인 육화강생(肉化降生)을 기억하는 시기입니다.
성탄의 핵심은 한없는 자기 낮춤이며 겸손입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조건 없는 헌신이며 극진한 사랑입니다.
성탄 시기는 생명의 빛, 구원의 빛이신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극도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신 겸손의 영성, 마구간의 영성을 묵상하는 시기입니다.
이 은혜로운 시기, 우리 주변을 한번 주의 깊게 둘러보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주변에 아기 예수님께서 홀로 추위에 떨고 계시지는 않는지 살펴보길 바랍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미소하고 가난한 이웃들, 문전 박대당하는 이웃들, 소외된 이웃들,
외로운 이웃들, 가슴 아픈 이웃들, 심한 상처받아 속울음 우는 이웃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더욱 허전하고 쓸쓸한 탈북자 형제들, 성탄절 특사로 가석방되어도 마땅히 오라는 곳 한 군데 없는 출소자 형제들. 살을 에이는 추위를 겨우 박스 한 장으로 막아내며
‘오늘은 어디에 머리를 눕혀야 하나?’ 고민하는 노숙자 형제들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성탄 선물(조광호 신부님)
드릴 선물은 없사오나
첫눈이 오면
눈사람 하나를 만들어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만발한 우리들의 죄가
흰 꽃잎으로 떨어져 쌓이는
엄동의 빈터에
천도의 열기를 지닌
당신 숨결과
우리들의 눈물을 간직한
눈사람을 만들어
황금과 유향
몰약이 녹아 흐르는 양지 곁에
팔도 다리도 없는
눈사람을 만들어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조광호 신부님)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