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0일(주일) - 성령강림 후 제25주 -
순종을 통해 이루는 살림
( 열왕기상 17:8~16 )
Ⅰ. 서론
*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 영적 암흑기라면, 그때가 영적 새벽이 가까운 것!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더 찬란하게 빛나듯이, 슬픔이 깊을수록 하나님은 더 가까이 계신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가장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엘리야 시대는 아합의 연대기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17:1). 아합에 대한 평가는 매우 혹독합니다. 아합은 “그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악을 더욱” 행했다고 했습니다(16:30). 그 암흑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바로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이어진 것입니다.
*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시돈 사람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섬겼다.
Ⅱ. 본론
* 엘리야 시대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은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
이 세상에는 순종의 DNA가 있는가 하면, 불순종의 DNA도 있습니다. “불순종하는 이들에게 역사하는 영”이 있습니다(엡 2:2). 불순종의 영에 사로잡히면, 세상 풍조를 따르며 살아갑니다. 세상 풍조를 따른다는 말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합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따라 살았고, 결국 이스라엘을 타락으로 몰고 갔습니다.
* 나는 순종의 DNA를 예수님께로부터 받았는가? 불순종의 아들인가?
첫째, 주의 말씀 따라 가는 엘리야(8-10)
* 엘리야는 타락한 시대에 마치 홍수 때 물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던 시대에, 거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 바로 엘리야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대로”(8) 순종한 사람입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통해 살았던 엘리야”는(17:6), 그곳을 떠나 “시돈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9). 그릿 시냇가에서 시돈의 사르밧까지는 무려 140km의 거리입니다. 적게 잡아 3, 4일이요, 길면 1주일은 가야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갔습니다. 까마귀의 도움으로 살았던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와 아들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까마귀였습니다.
* 까마귀는 본성을 거스르며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공급했다 = 순종했다.
둘째, 벼랑 끝에 놓인 과부와 아들(11-13).
* 하나님은 어찌하여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에게 보냈을까? 까마귀다.
하필 엘리야를 보낸 곳은 가난한 과부의 집이었습니다. 그 과부에게 “떡 한 조각을 요구”합니다(11). 그러나 과부에게는 “떡 한 조각조차 없었”습니다(12). 가루 통에 가루 한 움큼과 기름병에 기름 조금 있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 모자는 마지막 한 끼를 먹고 죽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들은 벼랑 끝에 놓여있었습니다. 더 이상 살 방법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던 바알도 그들을 돕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절망하는 여인의 상황을 살피고 계신 분이 있었으니, 유일하신 참 하나님 바로 ‘그분’입니다(13).
* 하나님은 엘리야의 까마귀로 과부를, 과부의 까마귀로 엘리야를 택함
셋째, 순종할 때 살 길이 열리다(14-16).
* 순종이 살 길이다. 순종이 곧 복이고, 형통이고, 살 길이다(신 28장).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과부에게 임했지만, 믿음이 없다면 따르기 어려운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엘리야의 말을 “믿고 순종”했습니다(15). 한 끼로 끝날 상황이 역전되어 여러 날 먹었습니다. 말씀대로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16). 그렇습니다. 순종할 때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길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해야” 합니다(신 30:19). 말씀대로 순종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은혜를 맛볼 것입니다.
* 주님 말씀을 순종하면, 물이 포도주 되는 기적을 맛보게 될 것이다.
Ⅲ. 결론
* 이스라엘 하나님과 시돈의 바알, 아세라의 대결이야기가 본문이다.
엘리야는 수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 선언합니다. 왜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 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바알 숭배에 대한 경고입니다. 바알은 ‘농경사회의 신으로 폭풍우와 비, 번개, 풍요, 태양신’으로 추앙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알을 섬기는 이스라엘에 ‘비’를 내리지 않게 하겠노라고 엘리야를 통하여 선언하신 것입니다. 바알이 비를 주관하는 신이라면, 바알을 섬기는 이스라엘에 비를 내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언대로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다시 비가 내렸습니다(18:46). 무슨 말일까요?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이 비와 바람을 비롯한 자연계와 우주만물을 주관하심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죽음이고, 순종하면 죽었다가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