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전쟁사]
<28>특전 유보트 (Das Boot, The Boat), 1981
 
처칠이 가장 두려워했던 독일 잠수함
그 안에 갇힌 병사들 생존을 위한 악전고투
 
감독: 볼프강 페터젠
출연: 주겐 프로크노, 클라우스 웨네먼, 허버트 그로네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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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잠수함은 독일의 유보트(U-Boats)다. 1차 대전 초기, 독일은 무차별적으로 상선을 공격하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연합국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중립국 미국 선박까지 공격해 미국의 참전을 불러왔다. 이후 전세는 급격하게 기울어 독일은 전쟁에서 패했다. 2차 대전 때도 위협적이었다. 영국의 처칠 총리가 회고록에서 “2차 대전 기간에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유보트였다”라고 쓸 정도였다. 유보트는 1940년 6월∼1943년 3월이 최고의 전성기였는데, 독일이 노르웨이와 프랑스까지 유보트 기지를 확보해 대서양 제해권을 장악한 시기였다. 유보트는 연합군 수송선을 발견하면 근처에 있는 유보트들끼리 연락해 여러 잠수함이 동시에 공격했다. 영국군 표현대로 ‘늑대 떼’ 공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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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고 질식할 것 같은, 불안과 공포 묘사
영화 ‘특전 유보트’는 1941년, 잠수함대의 전성기이긴 하지만 영국이 자국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함을 강화해 유보트에 타격을 가한 시기가 배경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새내기 병사들을 태운 독일 잠수함 U-96이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 라 로셸(La Rochelle) 기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잠수함의 폐쇄된 공간에서 오는 답답함과 불편함이 병사들을 괴롭힌다. 식사를 하다가도 일어나서 길을 비켜줘야 하고, 음식물도 어뢰실이나 화장실에 보관해야 한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영국 군함과의 교전에서 힘겹게 승리하지만, 전쟁의 실체와 맞닥뜨린 병사들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 공포가 가시기도 전에 또 하나의 명령이 떨어진다. 영국군의 본거지인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라는 것이다. 자살 명령이나 다름없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적지(敵地) 한가운데로 향하는 U-96. 하지만 영국군의 공격으로 U-96은 크게 파손돼 바닷속 깊은 곳에 처박히고 만다.
‘특전 유보트’는 2차 대전을 다룬 많은 영화 중 드물게 독일 입장에서 그린 영화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영원한 앤태고니스트(antagonist)인 나치군이 영화의 주역으로 나와 공포에 떨며 고민하고 행동하고 조국에 두고 온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그들 역시 연합국 병사와 마찬가지로 조국과 가족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영화는 연합군의 공격으로 발생한 위기 및 극한상황에 대처해 가는 병사들의 악전고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함장(주겐 프로크노)을 포함한 모든 대원들은 영국군 초계기의 공습과 구축함의 폭뢰에서 오는 극도의 긴장감과 잠수함의 밀폐된 공간, 제한된 산소와 식량으로 지쳐가는 상황에서도 일사불란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상황이 점차로 극한에 처하면서 공포와 패배감만이 잠수함을 지배한다. 영화엔 적군과 아군이 따로 없고 전장에서 악전고투하는 병사들만 있을 뿐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영국군의 폭탄 투하로 U-96이 수심 한계치 260m 밑으로 처박힌 채 공포와 절망의 시간을 보내다가 기적적으로 밸러스트 탱크의 물을 배출해 10m씩 수면으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어린 수병들이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땀과 눈물로 뒤범벅된 몸을 얼싸안는 장면이 가슴 뭉클하다.
U-96 승조원이 쓴 소설이 원작…사실적
영화는 냉전 이후 핵잠수함을 소재로 한 ‘K-19 위도우 메이커’ 등과 다르게,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입장에서 겪은 실제 전쟁 상황들이어서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당시 U-96의 승조원이었던 로타-귄터 부흐하임이 쓴 소설이 원작이다. 원제 다스 보트(DAS BOOT)가 말해주듯 U-96은 잠수함(Submarine) 아니라 배로서, 말이 잠수함이지 물속에선 속도도 안 나고, 깊이 잠수도 못 하고, 수면 위로 올라와서 적의 동향을 살펴야 하는, 요즘 잠수함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잠수함인 셈이다.
영화는 전쟁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기보다는 비좁고 질식할 것 같은 잠수함에 갇힌 병사들의 불안하고 절망적인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함장 역을 맡은 독일 출신 주겐 프로크노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이 영화 이후 그는 볼프강 페터젠 감독과 함께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사선을 넘어 귀항한 잠수함 끝내 침몰
잠수함 출정을 앞두고 술을 마시는 등 내일이 없는 오합지졸의 독일 병사들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독일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2차 대전 영화가 그렇듯이 반전(反戰) 메시지가 강하다. 전쟁의 공포를 강조하며 전쟁 허무주의를 짙게 깔고 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히틀러와 나치의 만행에 대한 독일 국민으로서의 부끄러움과 반성 때문인 듯하다. 영화의 엔딩도 마찬가지다. 사선을 넘어 어렵사리 잠수함 기지에 귀항한 U-96은 돌연 영국 전투기의 폭격으로 파괴돼,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다. 어린 수병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함장도 부상한 몸으로 잠수함의 침몰을 지켜보며 숨을 거둔다. 영화 시작에서 암시한 전쟁의 허무주의가 영화 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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