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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 사회풍조와 현대불교
관능적 사회풍조의 원인
과학 및 기술의 발전은 현대인의 생활양식에 폭넓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20세기에 있어 그러한 변화가 너무나 급속하고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금세기가 과거의 모든 세기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다.
사람들의 태도, 가치, 목표 그리고 이상마저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우주, 인간, 사회, 문화 및 문명의 본질과 전개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기존에 확신했던 것들을 흔들어 놓고 있으며, 서구의 유신론(有神論)적 종교전통에 대해서는 그 권위뿐 아니라 근거마저도 서서히 허물어뜨리고 있다.
전통과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게 되면서 도덕적 가치의 타당성 역시 의문시되었다. 날로 새로워지고 있는 과학지식은 전통적 신념들을 차례차례 미신 또는 신화에 불과한 것인 양 조롱하면서 현대적인 것들이 훨씬 더 우월하게 보이도록 후광을 비춰주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들의 생활양식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그래서 세대 차이의 문제가 전에 없이 큰 비중을 지니게 되었다.
과학적 지식이 사람을 문화유산으로부터 유리된 한낱 회의론자로 만든 반면에 기술은 사람에게서 창조적 능력을 앗아갔다. 기계는 그 엄청난 생산능력으로 사람을 버튼이나 누르는 존재로 격하시켰고, 수백만 노동자를 직장 밖으로 내쫓았다. 노동자들은 육체적인 힘도 정신적 창조력도 쓰지 못하게 거부당한 채 좌절감 속에 방치되고 있다. 그 결과의 하나로 각 민족정서의 승화된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고유 민속미술과 공예가 거의 절멸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창조성을 찬탄하고 싶은 마음에서 또 자기를 표현하려는 가련한 몸부림에서 골동품 수집가로 변신해 가고 있다.
그 다음으로 현대인을 완전히 짓눌러버린 힘은 상업화와 광고라는 폭군이다. 생산이 소비를 앞지르게 되자 미처 소비되지 못한 재고들로 체화(滯貨)현상이 빚어지게 되었고 이를 해소하는 길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소비하도록 권장하는 길밖에 없게 되었다.
전통적인 근검의 기풍을 소비중심의 윤리로 전환시키려는 계산된 시도가 치밀하게 수행되었다. 새로이 누리게 된 풍요로운 생활수준을 유지해나가려면 소비를 증대시키는 것이 미덕이자 필요한 일이라고 사람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대중매체가 동원되었다.
구매 동기심리와 행동심리학에 대한 연구조사 결과, 인간의 유혹받기 쉬운 구석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리고 광고업자들은 이런 약점을 이용하여 떼돈을 벌게 되었다. 그 약점이란 감각적 쾌락, 사유재산, 사회적 위세를 추구하는 인간 고유의 탐심이다. 이미 문화라는 안전장치가 끊어져나간 데다 창조적 충동마저 좌절당한 현대인들은 대중매체의 매력 있는 유혹에 넘어가서 방종한 생활로 곤두박질치게 된 것이다.
개인과 사회에 미친 해로운 결과
이상으로 간략하게나마 현대의 관능적 사회 풍조를 유발시킨 주요 원인들을 개관했으므로 이제 그런 풍조가 오늘날의 개인과 사회에 초래한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성병(性病)이 만연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지난 10년간 성병이 세배나 증가됐다는 보고가 있다.
정신의학 분야가 날로 확대되고 있는 것도 정신적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이 중요한 보건 문제로 대두되었다.
범죄율이 증가일로에 있다.
부부의 연분이 서글플 정도로 쉽게 금이 가게끔 되었고 이혼율이 놀라우리만큼 높아졌다.
유아의 요람으로서의 가정의 기능이 위협받고 있다.
어떤 사회학자들은 과히 멀지 않은 장래에 가정의 기능이 끝나버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정생활의 파탄이 가져온 가장 가슴 아픈 결과는 어린애들의 목숨에 끼친 영향일 것이다. 1976년 1월에 간행된 「영국 보건 경제 보고서」는 1960년대 초 이후로 영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가장 주된 피해자는 바로 어린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가족들 간에 갈등이 있을 때면 매를 맞게 되는 것은 아이들이고 더러는 죽기도 한다. 10대의 마약중독과 소년범죄는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 현상들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직결되는 문제이며, 따라서 관능탐닉으로 인해 자멸하고 말 이 긴박한 위기에서 인류가 구출되자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해 보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하겠다.
불교가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불교는 지난 25세기 동안 무수한 사람들을 교화시켜온 커다란 원동력이자 지도 원리였다. 현재와 같은 혼돈적 상황에 대해 불교가 어떤 빛을 던져주는지, 그리고 현대적 상황에서 개인으로서는 자신을 잘 적응해 나가고 또 건전한 가정과 대인관계를 이루는 데에서 어떤 지혜를 제공해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불교에 대해, 삶을 거부하는 고행적 이상주의라든가 또는 반사회적, 반정치적이라는 등의 비판의 소리가 때때로 요란하기도 하지만 불교 교단은 비구, 비구니뿐 아니라 우바새(재가 남신도), 우바이(재가 여신도)들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재가자의 지성적, 계율적 훈련은 승려의 그것에 못 지 않게 불교의 중요 관심사인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인권이 보호되고 인간적인 기업이라야 성공할 수 있으며 자원이 잘 배분되고 정의가 최고의 권위를 행사하는 그러한 사회를 창조하려는 목표에서 독자적인 사회와 정치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트레버 링도 주장하고 있듯이 불교는 단순한 종교나 철학만이 아니고 사실상 하나의 총체적 문화로서 사람들의 세속적 및 정신적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훌륭한 다면적 생활철학인 것이다.
관능탐닉과 인간의 대망
불교에 의하면 인간의 대망은 부, 쾌락, 명성, 장수, 그리고 사후의 행복을 얻는 데에 모아진다.(『증지부』Ⅱ권 66∼68쪽) 이런 것들을 인간적 동경의 대상이자 인간이 힘써 살아가는 목표라고 받아들이면서 불교는 이런 목적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생활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다보면 결국에 가서는 그 목표 자체를 도로 무너뜨리게 될 위험성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부(富)와 성(性)은 쾌락을 얻는 두 가지 주요 수단이다. 이 두 가지를 신중한 태도로 대하면 여타의 세 가지 인간적 소망을 실현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오늘날 대부분 사회적 병폐의 원인은 이 두 가지를 잘못 다룬 데에 있으므로 그에 대한 불교의 태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히 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
부(富)
부를 대하는 불교의 태도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기 때문에 수입에 대해서는 상향선을 설정하지 않는다. 불교가 설정하는 것은, 부는 올바른 수단으로 벌어야 하며, 올바른 방식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해치거나 속이거나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마에 흘린 땀으로 번 돈이야말로 불교가 높이 찬양하는 바이다. 부는 어디까지나 도구적 가치밖에 지니지 못한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
부는 첫째 자녀와 부모·딸린 식솔·친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면서 안락하게 살고 둘째 화재·수재 등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에 대비하고, 셋째 친척·손님·국가에 대한 의무와 종교적 문화적 활동을 행하고, 넷째 정신적 향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데에 쓰여야 한다. 각자의 분수에 따라서 많든 적든 간에 자신의 자산을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 선용하도록 노력해야 마땅하다.
불교에서 깊이 개탄하는 것은 과도하게 욕심스러운 탐심과 쌓아두는 습성이다. 인색함은 경멸하나 검소함은 미덕으로 칭찬한다. 낭비는 개탄할 습관이며 심지어는 반(反)사회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한번은 아난다 존자가 어느 왕에게, 승려들이 받은 보시물을 어느 정도로까지 활용하는지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새로 옷을 얻으면 헌옷은 덮개로 쓴다. 헌 덮개는 좌복의 씌우개로 쓰고 헌 좌복의 씌우개는 깔개로 쓴다. 헌 깔개는 걸레로 쓰고, 낡아 너덜너덜하게 해진 걸레는 진흙에 이기어 금이 간 마루나 벽을 때우는 데 쓴다.(『율장』Ⅱ권 291쪽) 불교 승려들이 자원을 알뜰하게 쓰는 모습이 실로 이와 같았다.
이런 검소한 기풍이 재가신도들에게도 자연히 파급된다. 어떤 부유한 상인은 액체 버터 한 방울이 마루에 떨어진 것을 보고 허비를 막고자 하인을 시켜 이를 담게 했다. 이렇게 알뜰한 사람이 보시를 할 때는 어떻게나 손이 크던지 받는 사람이 놀라곤 했다는 것이다. 스님들의 알뜰한 정신은 신도들이 배워 실천한 훌륭한 예가 되겠다.(『율장』Ⅰ권 271쪽) 검소함과 관후(寬厚)함이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이 두 가지 덕목은 모두 닦아서 함께 지녀야 할 덕목들이다.
이런 소박한 덕목들을 생각하다 요새 들려오는 소식들에 접하면, 한 예로 밴스 펙커드가 내놓은 획기적으로 눈이 번쩍 뜨이게 해주는 『낭비 조장자들(The Waste Makers)』을 읽으면 오늘날 과학시대의 지성인이란 사람들이 과연 제정신과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의아한 마음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일부 조사 연구가들의 계산에 의하면 지난 40년간 미국인이 소모한 세계 자원만 해도 전 인류가 지난 4,000년간 소모한 양과 맞먹는다고 한다. 지구 자원은 결코 무한대가 아니므로, 후손을 염려하는 마음에서라도 현대인들이 생각을 바꾸어 불교의 경제적 습성을 일부라도 몸에 익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해양학이 발전되면서 미개척의 신 자원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나 해양 역시 무한대가 아닌 데 반해 인간의 탐욕은 끝도 없고 만족할 줄도 모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性)
불교는 성욕을 보편적 실재로 인정한다. 동물세계에서는 성적 충동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조절되며 따라서 짝짓고 번식하는 것도 계절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인간세계에는 그런 자연적 장치가 없으며 인간들은 성생활을 오랫동안의 체험과 조정과정을 거쳐 온 끝에 자신이나 남들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꾸려나가도록 특정 금기나 관습, 규정을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때나 장소에 따라서 이들 관습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관습 덕분에 인류는 야만상태를 벗어나 문명화할 수 있었다. 가족도 이렇게 해서 태어난 사회제도인 것이다.
불교에 의하면 일부일처제가 가장 이상적인 결혼제도이다. 결혼 이전에는 순결한 것이, 그리고 결혼 이후에는 정절을 지키는 것이 이상적인 몸가짐이다. 결혼생활에 성공하려면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상호신뢰[信], 도덕성[戒], 헌신[捨], 사리분별[慧]이 결혼의 행복과 성공을 보장하는 덕목으로 강조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상호신뢰는 서로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도덕성은 성격적으로 강직함을 뜻하며, 헌신 즉 사랑하는 사람에게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기쁨은 정서적 성숙을 표시하고, 사리분별은 지성적 성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자질들은 두 배우자를 굳게 맺어주며 그 인연은 죽은 후에도 다음 생에까지 이어진다고 말한다.
나꿀라의 부모는 늙은 나이가 되어서도 자기네의 사랑이 죽음을 넘어서 이어지기를 소원한 이상적인 부부로 경전에 그려지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 소원에 대해, 위에 말한 자질들을 부부가 다 같이 갖추고 있다면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현대인의 부부관계는 대단히 깨지기 쉽고 허약하다. 왜냐하면, 이 정으로 맺어진 결속력이 육욕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육체적 쾌락이 크게 강조되는 반면 희생과 이타심을 필요로 하는 성격 적응과 다정다감한 관계는 무시되거나 간과된다. 물론 성은 결혼에 있어 주요한 기본요건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가정생활의 모든 것이자 또한 궁극적인 것은 분명코 아니다. 성만을 위한 성애의 탐닉은 결코 만족감을 채워줄 수 없거늘, 어찌 충족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경멸하여 불교 경전에서는, 항용 허기를 채우려 뼈를 핥고 있는 개에다 비유한다.
그렇지만 부부간 사랑의 표현으로서 성관계는 만족감을 느끼는 정서적 경험이다. 성만이 유일한 관심사일 바에야 굳이 가족과 같은 제도로 발달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동물도 성적 본능을 채우지만 동물세계에서는 인간의 가족제도처럼 발전되지는 못하였다. 가족생활의 중요 기능은 사람에게 자기중심적 사고를 극복하도록 커다란 도덕적 교훈을 주는 데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가장 이기적인 기식자(寄食者)로서 그 생을 시작한다. 그 후 그는 여러 가지 정서적 단계 즉 자기사랑, 부부사랑, 부모로서의 사랑 등 여러 단계를 통과하게 된다. 그러면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는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봉사에 전적으로 열중하게 된다.
그의 헌신이 이와 같기 때문에 평생을 땀 흘려 번 재산마저 흔연히 자식들에게 양도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자식에게 사랑하고 아낄만한 배우자를 짝 지워줌으로써 정서적 자기희생을 또 한 번 치르는 것이다. 노후에는 자식을 평온한 마음으로 대견하게 바라본다. 이와 같은 정서적 성숙과 성취감은 관능탐닉을 결혼생활의 목표로 삼을 경우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명성과 장수
이 두 가지 인간적 대망이 실현되자면 앞서 말했듯이 주로 부와 쾌락을 다루는 자세가 어떠한가가 관건이다. 한 가지 특별히 언급해 둘 것은 술은 육욕과 더불어 모든 인간적 포부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술에는 사람의 양심이 녹아버린다는 말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불교에 따르면, 술과 육욕은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치고 재산을 흩어 없애고, 사회적 명망에 흠을 내고, 지적 재능을 가린다고 한다.(『장부』Ⅲ권 182∼184쪽)
사후의 행복
지금 같은 물질적 쾌락의 시대에 사람들은 사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불교가 주는 교훈은 각자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둔다는 것이다. 남을 위한 도덕적인 삶을 살고 만족감과 평온감, 충족감을 가지고 노년에 이른다면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온 인생은 불교에 의하면 무덤 너머로 행복을 가져간다. 그런 사람은 빛에서 더 밝은 빛에로 향상해간다고 한다.
관능탐닉과 지적 성숙
방종의 또 다른 주요 악영향은 지적 능력을 제약한다는 점이다. 불교에서는 관능에 탐닉하면 분명한 사고를 못하게 되고 안목이 흐려지고, 쟁점이 가려지고, 지혜가 막히고, 마음의 평화가 파괴된다고 역설한다. 2500년 전에 부처님이 이런 관찰을 행한 것과는 전혀 별도로, 송과선(松科腺)에 대한 의학적 연구 결과, 성이 두뇌활동에 미치는 제약효과가 지적되고 있다.
인체에서 송과선은 뇌의 기부의 뒷부분에 위치하며 서양 배[梨子] 모양의 중선(中線)구조를 하고 있다. 이 선은 멜라토닌이라 부르는 호르몬을 합성하는데 이 호르몬은 행태(行態)· 수면· 두뇌활동 그리고 사춘기·배란기·성적 성숙과 같은 성적 활동에 영향을 준다. 멜라토닌은 두뇌의 활동을 촉진시키고 있을 동안에는 성적 활동을 제약한다. 또 밝음, 어두움, 후각 작용, 추위, 스트레스, 기타 신경계의 입력은 송과선의 기능에 영향을 준다. 빛에 노출되면 멜라토닌의 합성이 감소되고 송과체의 무게가 줄어든다. 다른 면에서는 빛은 성적 성숙과 활동을 촉진한다.
이상의 의학적 정보를 불교교설과 비교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감각적 자극은 정신활동을 교란시킨다고 주장한다. 감각의 문을 잘 지키면, 즉 눈 · 귀 · 코 · 혀 · 몸에 대한 입력을 제어하면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집중된 정신활동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심일경성(心一境性), 다시 말해 한 점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능력은 감각기관의 제어에 크게 좌우된다. 생리학 용어로는 그와 같은 감관제어는 송과선에서 멜라토닌 합성을 도와 두뇌활동을 자극하고 성적 활동을 저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의학적 연구에 의해서도 관능에의 탐닉이 지적 성숙을 제약한다는 불교의 관점이 확인될 수 있는 것이다.
관능탐닉과 문화
『장부』의「세기경」에서는 이 세상과 사회의 진화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경에 따르면 최초의 지구 거주 존재들의 몸은 마음으로 만들어졌으며 빛이 나고 있었다. 그들은 기쁨을 먹고 살았으며 하늘을 날아다녔다. 오랜 기간이 지난 후 그들은 극히 향기로운 어떤 것을 맛보게 되었는데 이 새로운 미각을 경험하고서 즐거워하였다. 그 후 그들에게서 갈애가 생겨났으며, 그들은 이런 식으로 계속 음식을 맛보았다. 그 결과로 그들의 몸은 점점 더 둔탁해져 갔다. 몸에서는 광휘가 사라지고 기쁨을 양식으로 삼거나 하늘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능력도 잃게 되었다(『장부』Ⅲ권 84∼86쪽)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진화과정의 진부 여부가 아니라 감각적 욕망 때문에 사람들이 옛날에 지니고 있던 것으로 생각되는 높은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륜성왕사자후경」(『장부』Ⅲ권 69∼74쪽)은 사회변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부가 불균등하게 배분된 결과, 가난이 만연하게 되고 도덕적 기준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도덕적 퇴보와 더불어 육체적 아름다움과 수명도 그만큼 감소되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부도덕성이 자리 잡게 되자 세 가지 품위를 손상시키는 현상 즉 변태성욕, 터무니없는 탐욕 그리고 그릇된 가치 관념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가정과 종교적 문화적 전통을 무시하는 경향이 공공연한 사회현상으로 나타난다. 도덕적 퇴보가 이런 식으로 계속되면, 마침내는 사람의 수명이 열 살로 줄어들고 결혼연령이 다섯 살까지 내려가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음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 액체 버터 · 버터 · 꿀과 같은 맛있는 음식은 없어지고 지금은 조잡한 음식으로 치는 것들이 그 시대에 가면 맛있는 대표적 음식이 될 것이다. 일체의 도덕관념은 사라지고 언어에서도 도덕을 뜻하는 단어는 찾을 수 없게 된다.
부도덕이 사회적 공인 하에 최고의 위세를 떨칠 것이다. 혼인법도 친족관념도 없어지고, 사회는 동물세계처럼 극도로 문란한 난교(亂交)상태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인간들 사이에서는 날카로운 상호 적대감이 팽배해져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격렬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대규모 살육이 벌어지고 만다. 이런 대량학살이 자행되고 난 뒤 살아남은 소수의 헐벗고 굶주린 자들은 서로 만나는 데서 위안을 찾게 되고, 그래서 서로를 따뜻한 생각으로 대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심경변화와 더불어 점진적으로 도덕가치의 진화가 다시 시작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좋은 생활을 되찾아감에 따라 육체적 아름다움도 다시 피어나고 수명도 늘어난다. 정신적 향상의 가능성도 함께 점차적으로 발전되어 간다.
이상이 불교가 가지고 있는 사회변화에 대한 견해다. 사회는 도덕적 가치의 흥쇠에 따라 일어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요즈음 일부 사회학적 연구 결과에서도 도덕과 문화가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윌리엄 스티븐스는 문명사회가 성적 규제에 있어 엄격한 데 반해 원시부족 사회에선 혼전 혼외를 막론하고 성적 관계가 매우 자유롭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딘 로버트 핏치는 로마문명의 몰락을 로마인들의 성도덕의 타락과 연관시키고 있다.
이 방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공헌은 J. D. 언윈의 『성과 문화』란 연구서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80개의 문명화하지 않은 부족과 6개의 잘 알려진 문화권 민족의 성 행태와 문화수준 간의 관계를 현지 조사했다. 조사결과는 성의 방임과 원시성 간에, 그리고 성의 규제와 문명 간에, 분명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이 자유로우면, 그가 동물적(zoistic, 개념작용의 정지단계) 문화라 이름 붙인 문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거기서는 사람들은 태어나고, 욕구를 충족시키고, 죽고, 시체가 처리되고 나면 잊혀 진다. 그들은 이성적으로 사건들 간에 인과적 관련성을 찾아낼 줄 모른다. 예를 들어 병이 나면 마술사를 찾아갈 뿐 그 이상 아무 조처도 하지 않는다.
혼전 또는 혼후에 간헐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 규제가 있을 경우에는 일종의 조령숭배(祖靈崇拜) 문화가 나타나는데 이 문화에서는 위기의 경우에만 조상을 숭배하고 아직 숭배의식을 치르는 일정한 장소도 정해놓지 않은 단계이다. 일부일처와 같은 엄격한 성의 규제가 있을 경우에만 일정한 숭배의 장소를 가진 이신론(理神論)적 문화가 탄생된다. 이성 · 창조 · 자기인식과 같은 인간의 능력을 동원한 결과로 나타나는 내면적 인간 에너지의 외적 표현이라는 뜻에서의 문화는 일부일처의 관습을 엄격히 시행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상호관계가 어떤 기계적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마치 상이한 응고상태의 탄소가 어째서 어떤 것은 석탄으로 변하고 어떤 것은 다이아몬드로 변하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와 같다. 오직 말할 수 있는 것은 성 행태와 문화유형 간에 명확한 인과의 고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언윈은 철저하게 조직적인 연구 조사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만큼 과학적 연구 역시 불교가 견지하는 도덕과 문화간의 연관성에 관한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주장해도 무방할 것이다.
관능주의와 환경
『증지부』의 한 경(Ⅰ권 160쪽)에서는 사회에 변태성욕, 터무니없는 탐욕, 그릇된 가치관이 만연하면 강우량이 줄어든다고 단언하고 있다. 가뭄은 흉년을 가져오고 그 결과 사망률이 상승한다. 부도덕과 강우량 부족간의 직접관련을 설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나,
다만 『논서(論書)』들에 나오는 다섯 가지 자연법칙을 해석해보면 가능해질지 모르겠다. 우주에는 다섯 가지 자연법칙 또는 자연력이 있다. 즉 계절에 의한 결정(utuniyāma), 종자에 의한 결정(bījaniyāma), 마음에 의한 결정(cittaniyāma), 업에 의한 결정(kammāniyāma) 그리고 법에 의한 결정(dhammaniyāma)이 그것이다.
이를 달리 해설하면 물리적 법칙, 생물학적 법칙, 심리학적 법칙, 도덕적 법칙 그리고 인과의 법칙이 된다. 앞의 네 가지 법칙은 각기 고유영역 내에서만 작용하지만 마지막의 인과법칙은 그 모든 영역에 걸쳐서 내부적으로 작용함과 동시에 각 영역 간에도 작용한다.
따라서 물리적 환경 또는 생태계는 살아있는 유기체들 즉 생물계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생물계는 심리에 변화를 가져오며, 심리는 도덕적 힘을 결정한다. 또한 반대 방향의 진행 역시 작용하는 바, 그때그때 기능하고 있는 성질 또는 힘에 따라 그 결과는 해로울 수도 있고 이로울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작용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예시하는 것이 좋을는지 모르겠다. 사치 · 부 ·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욕망은 엄청난 수의 공장을 세우기에 이른다. 이 공장들은 대기 · 수질 · 소음 공해의 문제를 야기하며 이는 역으로 동 · 식물계 모두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인간 활동에 기인한 대기의 여러 특성과 작용에 있어서의 잘못된 변이는 오늘날 과학단체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공해와 연무(煙霧)가 인체, 작물,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광범하게 연구하고 있으면서 그것들이 기후 형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는 불평도 있다.
방사선, 구름의 양, 안개, 가시도, 대기권의 전기력장과 같은 수많은 기후상의 요인들이 공해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온도와 습도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강우량에 미치는 영향 역시 가능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때가 되면 과연 공해가 기상과 기후변화에 확실하게 책임이 있는지 여부가 과학에 의해 밝혀지겠지만 이미 이 세계가 극심한 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인류가 환경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바꾸기 위해 이성과 지성, 창조력 등 인간 고유의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인류는 자신이 스스로 발휘하는 도덕적 힘이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환경에 가져와서 좋든 싫든 간에 자신의 길흉화복을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결론
이 논문을 끝내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간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 어떤 우주적 도덕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불교에 의하면 세계와 인류로 하여금 존속케 하는 것은 바로 이 우주적 도덕법칙 또는 도덕력이다. 업에 의해 세계는 존재하고 업에 의해 인간은 존재한다. 이 우주적 도덕력은 다른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인간의 생각[思]은 도덕력이라고 단언하셨던 것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으로는 “생각(또는 이념)이 세계를 지속하게 만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지금 주로 술과 관능탐닉에 소진하고 있는 그 본래의 고유한 힘을 다시 찾아야 한다. ‘내면세계’의 잠재력의 발견이야말로 ‘병든 도시’에 살면서 ‘성의 황야’에서 길을 잃고 ‘숨은 설득자’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털 없는 원숭이’로 전락해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릴리 드 실바(Lily de Silva, 1928~ )
스리랑카 콜롬보 출생. 스리랑카 페라데니야대학 불교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장부 복주석서(Digha Nikāya Aṭṭhakathā Tikā)』를 감수하여 런던의 빠알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에서 세 권으로 간행한 바 있고, 『호경(護經): 스리랑카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불교법어집』을 저술했다.
그 밖에도 불교 학술지와 대중지에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1978-79년에는 미국 하버드대학 세계 종교 연구센터에서 객원 교수를 지냈으며, 1976년에는 동국대학교 개교 70주년 기념 세계불교학술회의(주제:불교와 현대세계)에 참석, 본서 마지막에 수록된 논문「관능적 사회풍조와 현대불교」를 발표하기도 했다.
〈고요한 소리〉에서 저자의 『오계와 현대사회(RADICAL THERAPY:Buddhist Precepts and The Modern World)』(BL No.123, 보리수잎․스물여섯)와 『스스로 만든 감옥(The Self-Made Private Prison)』(BL No. 120, 보리수잎․서른아홉)이 출간되었다.
This translation was possible
by the courtesy of the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54, Sangharaja Mawatha
P.O.BOX 61
Kandy, Sri Lanka
법륜․다섯
한 발은 풍진 속에 둔 채
1990년 8월 20일 1판 1쇄 발행
2009년 12월 15일 1판 4쇄 발행
지은이 : 릴리 드 실바
옮긴이 : 정원 김재성
펴낸이 : 한기호
펴낸곳 : 고요한 소리
편집․제작 : 도서출판 초롱 02)738-5791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72번지(우 110-300)
전화 :02)739-6328, 725-3408 전송 : 02)723-9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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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부 051)513-6650․대구지부 053)755-6035
출판등록 : 제 1-879호 1989. 2.18
ISBN 978-89-85186-11-7
값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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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금주 : (사)고요한소리 -
마음을 맑게 하는 고요한 소리 도서안내
- 보리수잎 시리즈 -
하나 : 영원한 올챙이
둘 : 마음 길들이기
셋 : 세상에 무거운 짐, 삼독심
넷 : 새 시대인가, 말세인가 / 인과와 도덕적 책임
다섯 : 거룩한 마음가짐 - 사무량심 -
여섯 : 불교의 명상
일곱 : 미래의 종교, 불교
여덟 : 불교 이해의 정(正)과 사(邪)
아홉 : 관법 수행의 첫 걸음
열 : 업에서 헤어나는 길
열하나 : 티싸 스님과의 대화
열둘 :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열셋 : 불교와 과학 / 불교의 매력
열넷 : 물소를 닮는 마음
열다섯 : 참 고향은 어디인가
열여섯 : 무아의 명상
열일곱 : 수행자의 길
열여덟 : 현대인과 불교명상
열아홉 : 자유의 맛
스물 : 삶을 대하는 태도들
스물하나: 업과 윤회
스물둘 : 성지 순례의 길에서
스물셋 : 두려움과 슬픔을 느낄 때
스물넷 : 정근(精勤)
스물다섯: 큰 합리주의
스물여섯: 오계와 현대사회
스물일곱: 경전에 나오는 비유담 몇 토막
스물여덟: 불교 이해의 첫 걸음 / 불교와 대중
스물아홉: 이 시대의 중도
서른 :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서른하나: 빈 강변에서 홀로 부처를 만나다
서른둘 : 병상의 당신에게 감로수를 드립니다
서른셋 : 해탈의 이정표
서른넷 : 명상의 열매 /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서른다섯: 불자의 참모습
서른여섯: 사후세계의 갈림길
서른일곱: 왜 불교인가
서른여덟: 참된 길동무
서른아홉: 스스로 만든 감옥
마흔 : 행선의 효험
마흔하나: 동․서양의 윤회관
마흔둘 : 부처님이 세운 법의 도시
- 밀린다왕문경 제5장
마흔셋 : 슬픔의 뒤안길에서 만나는 기쁨
마흔넷 : 출가의 길
마흔다섯: 불교와 합리주의
마흔여섯: 학문의 세계와 윤회
마흔일곱: 부처님의 실용적 가르침
마흔여덟: 법의 도전 / 재가 불자를 위한 이정표
- 법륜 시리즈 -
하나 : 부처님, 그분 - 생애와 가르침
둘 : 구도의 마음, 자유 - 칼라마 경
셋 : 다르마팔라 - 불교중흥의 기수
넷 : 존재의 세 가지 속성 - 삼법인 (무상․고․무아)
다섯 : 한 발은 풍진 속에 둔 채
- 현대인을 위한 불교의 가르침
여섯 : 옛 이야기 - 빠알리 주석서에서 모음
일곱 : 마음, 과연 무엇인가
- 불교의 심리학적 측면
여덟 : 자비관
아홉 : 다섯 가지 장애와 그 극복 방법
열 : 보시
열하나: 죽음은 두려운 것인가
열둘 : 염수경 - 상응부 느낌편
열셋 :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가
- 재생에 대한 아비담마적 해석
열넷 : 사리뿟따 이야기
열다섯: 불교의 초석 - 사성제
열여섯: 칠각지
열일곱: 불교-과학시대의 종교
열여덟: 팔정도
- 금구의 말씀 시리즈 -
첫번째: 염신경
▲〈고요한 소리〉는 근본불교 대장경인 빠알리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불사를 감당하고자 발원한 모임으로, 스리랑카의 불자출판협회(BPS)에서 간행한 훌륭한 불서 및 논문들을 국내에 번역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책자는 근본불교․불교철학․심리학․수행법 등 실생활과 연관된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다루는 연간물(連刊物)입니다. 연(年) 열 권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책들은 실천불교의 진수로서, 불법을 가깝게 하려는 분이나 좀더 깊이 수행해 보고자 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의 출판비용은 뜻을 같이 하는 회원들이 보내주시는 회비로 충당되며, 판매비용은 전액 남전대장경의 역경과 그 준비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됩니다. 출판비용과 기금조성에 도움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저희 〈고요한 소리〉모임에 새로이 동참하실 회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