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학 경제스케치북] 선거로 택한 콘크리트 공화국, 그 암울한 미래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 2024.03.11 -시민언론 민들레
건설 좋아하다 망한 일본, 그 뒤를 좇는 한국
혁신동력 갉아먹는 건설산업 지탱하는 건설 카르텔
또 건설 공약 들고 나온 정치인들
한국의 시골 마을에는 인도가 없다. 마을을 가로 지르는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차들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위협한다. 날이 어두워지면 다니기는 더 어렵다. 대형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탓에 시골길은 밤에는 걸어 다닐 수 없는 길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최근에 만들어진 도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길 마저도 시골 마을에 어린 아이들을 살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최근 회전 교차로가 크게 늘었다. 회전 교차로가 사고 위험을 줄여 준다는 통계에 기반한 교체로 보인다. 그런데 사고가 날 것 같지 않고, 그동안 아무런 불편이 없었던 시골 교차로도 모두 회전 교차로로 바꿨다. 돈이 넘쳐나는 모양이다.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설은 하지 않으면서도, 생색내기 좋은 건설은 끝없이 이어진다.
건설 좋아하다 망한 일본, 그 뒤를 좇는 한국
한국에서 불필요한 도로나 건물을 짓는 것은 이제 일상화되었다. 전국 도처에 박물관, 기념관, 문예회관 등이 넘쳐 난다. 번듯한 건물은 있으나 내용물은 없다. 예술회관에 예술가가 없으니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이용객은 거의 없고 대부분 만성적인 적자 상태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지어댄다. 국회의원들은 이런 예산 따왔다고 선전하고, 선거 때가 되면 또 건설하겠다고 나선다.
이젠 아예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밋빛 건설 약속을 남발한다. 대부분의 지방 공항에서는 비행기를 보기 힘든데도 또 공항을 짓겠다고 한다. 수도권에만 사람이 몰려 교통 혼잡이 일어나자 수도권은 아예 모든 도로를 지하화할 태세다. 전국에 빈 집이 넘쳐나는데 수도권은 멀쩡한 아파트를 허물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고 한다. 건설비용 상승으로 재건축의 수익이 나지 않자 다양한 지원을 통해 건설 붐을 일으키려고 안간 힘을 쏟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일본이 망하기 전, 같은 현상이 있었다. 댐을 지으면 낚시꾼만 좋아하고, 새로 뚫린 도로에는 강아지만 뛰어 노는데도 계속 짓고 또 지어댔다. 한창 때는 건설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해외에 나가서도 건물을 사고 골프장을 샀다. 미국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삼으로써 미국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는 데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곧 막대한 손실을 입고 모두 되팔아야 했다. 이제는 한국의 골프장을 하나 팔면 일본에서 10개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어쩌면 이렇게 안 좋은 면만 골라 일본을 닮아가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만약 그 때 일본이 건물이 아니라 실리콘 밸리의 혁신 기업들을 샀다면, 만약 그 때 미국의 중요 투자금융회사를 사서 새로운 금융기법을 배웠다면 오늘의 일본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건설만이 떼돈을 벌어준다는 건설 카르텔의 저차원적인 인지구조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한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혁신동력 갉아먹는 건설산업 지탱하는 건설 카르텔
한국과 일본, 중국은 모두 경제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고속 성장을 달성했다. 초기에는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했기에 항만과 공항, 철도, 도로를 짓는 것은 꼭 필요한 투자였다. 기업이 커지며 상업용 건물도 필요했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채우기에는 공급이 부족했다. 그렇게 시작한 건설 붐은 곧 경제 전체를 좌우할 정도로 커졌고, 건설은 가장 손쉽게 기업을 키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건설은 경기에 민감해서 불황에는 위험이 큰 산업이지만, 어느 사이 자리잡은 건설 카르텔 덕분에 건설회사가 위험하다 싶으면 지식인과 언론이 나서서 건설업 지원을 외치고 나섰다. 회전문 관료들이 건설업의 위험을 떠안아 주면서 건설업은 가장 안전한 사업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아파트 불패 신화를 외치는 식자층이 넘쳐나게 되었다. PF부실로 휘청거리는 건설회사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실제로 정부는 기형적인 워크아웃을 다시 들고 나와 공적 자금을 투하 중이다.
그런 연유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점차 줄어들어야 하는 건설산업의 비중이 이들 국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은 여전히 국내총생산의 15%를 콘크리트에 쏟아붓고 있고, 계속 헐고 새로 짓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재개발 붐으로 인해 이 비율이 좀체 떨어질 것 같지 않다. 결국 반복되는 거품으로 경제는 혁신 동력을 잃어버리고 서서히 쇠퇴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다. 중국은 지방정부가 미친 듯이 아파트를 지어대다 보니 건설 비중이 30%를 넘었고, 결국 짓기도 전에 폭파해 버리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중일이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
콘크리트 산업이 혁신을 가져오지 않고, 특히 한국에서 짓고 있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는 삶의 질도 높여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미친 듯이 아파트를 짓고 있는데,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파트 한 동 짓는 값에 살 수 있는 미국의 좋은 기업이나 한국의 혁신 기업이 국민 경제에 훨씬 이익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해외 기업을 인수하면 기술을 배울 수 있고, 한국 기업에 투자하면 배당을 받을 수 있지만, 아파트는 한국 사람들끼리 돈 놓고 돈 먹는 노름판 투기 대상에 불과하다.
또 건설 공약 들고 나온 정치인들을 심판할 기회
한국은 이렇듯 콘크리트에 쏟아부을 돈은 넘쳐나지만, 시골 마을길에는 여전히 인도가 없고, 미국의 혁신 기업이나 투자금융회사에 투자할 돈은 없다. 증권사들이 해외투자한다고 해외 건물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청구서가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 경제가 무너져 가고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까막눈들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정치의 계절이 오자 다시 정치인들은 개발 공약을 들고 나왔다. 다 떠나고 몇 명 남아있지도 않은 섬 마을에 또 다리를 놓겠다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한국 경제를 무너뜨리는 주범들이다. 그러나 유권자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R&D 예산을 줄이고 건설을 하겠다는 정치인을 심판할 수 있다. 건설 공약을 하지 않는 많지 않은 정치인을 찾아 투표해서 나라를 구할 수 있다.
경제학은 냉혹하다. 유권자가 내린 결정에 따라 한국 경제는 무너지고 있다. 그 피해는 온전히 유권자의 자녀들에게 돌아간다. 회색빛 콘크리트 공화국을 물려받을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선택해야 한다. 유권자가 탐욕에 빠져 건설 카르텔에 속아 넘어가 선택을 하면 후회할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