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방사 들렀다가 왕방산 가는 길
갑자기 몸에서 땀이 났다. 고개 위로 부는 바람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나는 바람을 피해 고개
동쪽에 앉았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는 루트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엄청난 일이기는 하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능에서 가능을 찾고 꿈에서 현실에 구하는 일.
그것을 나는 안다. 산에 오르기 전에 그 루트를 그려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모른다.
―― 라인홀트 메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Die weiße Einsamkeit)』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7월 15일(토), 안개, 비, 장대비
▶ 산행인원 : 오기산악회 8명
▶ 산행거리 : 도상 8.1km
▶ 산행시간 : 4시간 42분
▶ 교 통 편 : 승용차 2대에 분승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8 : 30 - 강동구 고덕동 이마트 앞 출발
09 : 40 - 포천시 신읍동 호병골 입구, 산행시작
10 : 06 - 주북망향동산
10 : 20 - 왕산사
11 : 40 - 왕방산 주릉, 이정표 정상 0.4km, 무럭고개 4.4.km
11 : 57 ~ 12 : 40 - 왕방정, 점심
12 : 47 - 왕방산(旺方山, 王方山, △736.1m)
13 : 36 - 552.1m봉, ┣자 갈림길, 오른쪽은 호병골, 한국아파트 하산 길
13 : 40 - △550.1m봉, ┣자 갈림길, 직진은 깊이울 1.1km
14 : 22 -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加采里) 무럭고개(물어고개), 산행종료
1. 산행지도
2. 왕방산 정상에서
3. 안개 속 등산로
포천과 포천 이북(운천, 철원 등)이 퍽 가까워졌다. 특히 해 뜨는 강동에서는 아주 가깝다.
구리∼포천고속도로가 지난 6월 30일 개통하여서다. 종전에는 의정부를 관통하여 축석령 넘
고 송우리 경유하느라 열나절 걸리던 왕방산이 1시간 남짓 걸린다.
새벽에 총무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장대비가 내리는데 산을 꼭 올라가야 되겠느냐고.
허브아일랜드나 아트밸리, 신북온천 등지를 돌아다니다 근처의 만두집을 개업한 회원에게
들르자고. 나도 모르게 오지산행 버릇이 나왔다. 한여름 우중산행의 정취를 즐기기에 이만한
날씨가 어디 있겠느냐며 단단히 우장준비나 하고 나오시라고.
승용차는 왕방산 아래 왕방사까지 갈 수 있으나 올랐던 길로 내려오는 것은 따분하다. 왕방
산 주릉인 북동능선 중간인 552.1m봉에서 그 남동능선을 타고 호병골로 내려오자고 호병골
입구에 주차한다. 가랑비가 내린다. 우산 받치고 간다. 아스팔트 포장한 대로는 왕방사까지
간다. 먹자동네(주로 보신탕이다) 지나고 오르막이다.
집집 울밑에서 여름을 본다. 봉선화, 루드베키아, 도라지꽃, 접시꽃. 주북망향동산이 나온다.
‘주북’이란 말이 낯설다. 다가가 비석을 들여다보았다. 함경남도 함주군 주북면에서 월남한
면민들이 애절한 향수와 염원을 담아놓은 곳이라고 한다.
함주(咸州)는 백석 시인의 ‘함주시초’에서 보았다. 바로 이 함주다.
함주시초의 ‘산곡(山谷)’의 첫 연이다.
돌각담에 머루송이 깜하니 익고
자갈밭에 아즈까리알이 쏟아지는
잠풍하니 볕바른 골짝이다
나는 이 골짝에서 한겨울을 날려고 집을 한 채 구하였다
함주군 주북면민의 ‘망향곡 비(碑)’가 비 내리는 날 우리들의 가슴도 적신다.
고향산천 못 잊어서 뜬눈으로 꾸는 꿈
형제봉의 달 흐리고 성천강의 물도 우니
망향동산의 돌사람도 우누나
4. 집 나설 때 베란다에서 바라본 검단산
5. 루드베키아(Rudbeckia hirta L.), 왕방사 가는 길에서
6. 백도라지(Platycodon grandiflorum), 왕방사 가는 길에서
7. 접시꽃(Althaea rosea), 왕방사 가는 길에서
산굽이 돌고 돌아 왕방사다. 고즈넉한 절집이다. 사방은 안개가 감쌌다.
연못에는 수련이 활짝 피었고 뜨락에는 나리꽃이 다소곳하다.
왕방사 대웅전의 주련이다.
佛身普放大光明 부처님이 광명을 두루 비추니
如雲充滿一切土 저 구름 온 세상을 가득히 채우듯이
色相無邊極淸淨 온갖 모양이 청정하네
廣相所照咸歡喜 광명이 비치는 곳에 넘치는 기쁨이여
處處稱揚佛功德 어느 곳에나 부처님 공덕이라
衆生有苦悉除滅 중생의 모든 고뇌 씻은 듯 사라지네
왕방사에서 왕방산까지 이정표 거리 2.1km다.
8명 중 3명만 계속 산행이다. 비는 오락가락한다. 이어지는 대로의 임도 따라 산허리 한 피치
돌아 오르면 널따란 공터가 나오고 ┫자 갈림길이 있다. 왼쪽은 어룡동 가는 길이고 직진은
왕방산 가는 통나무 계단길이다. 가파르다. 이제야 산행다운 산행이 시작된다.
후덥지근한 날씨다. 비에 젖는다기보다는 땀으로 젖는다. 바지자락은 물에 빠진 듯 휘감기어
걷기가 거북하다. 차라리 장대비라도 쏟아져 맞았으면 좋겠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되뇌며 안개 속 공제선을 넘고 넘는다. 주릉. ┳자 갈림길이 나온다. 정상 0.4km.
평탄한 대로다. 자욱한 안개 속에 소나무는 의연하다. 덩달아 활보한다.
전망이 트이고 왕방정이 바로 앞이다. 왕방정 누각에 오른다. 점심때가 되었다. 때마침 장대
비가 쏟아진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무수한 빗발이 가히 볼만하다. 이 풍경을 더하여 소찬이
성찬이다. 탁주가 한층 맛 난다. 담소는 쏴아 하는 빗소리에 묻혀버리고 만다. 이 또한 우중
산행의 쾌미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빗소리를 듣는다.
8. 수련(垂蓮), 왕방사 절집에서
9. 나리, 왕방사 절집에서
10. 왕방산 가는 길
11. 등로 주변
빗속 싸리 숲 헤치고 왕방산 정상을 향한다. 정상의 노송 한 그루는 늘 그대로다. 정상 표지
석 싸안고 기념사진 찍는다. 왕방산은 조선의 왕들이 사냥을 즐겼던 산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0년 기유(1489) 10월 4일(무자)의 기록이다. 그때는 왕방산이 험했던 모양이다.
대가(大駕)가 영평(永平) 함정현 사장(檻穽峴射場)에 이르렀다. 임금이 좌우에게 묻기를,
“이번 길에 마땅히 왕방산(王方山)에서 사냥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매, 홍응(洪應)이 대답하기를,
“세조조(世祖朝)에 구치관(具致寬)이 대장(大將)이 되어 겨우 정상에 올라가자 소낙비가 무
섭게 몰아오므로, 구치관이 치계(馳啓)하지도 못하고 진(陳)을 파했었습니다.”
하고, 노사신(盧思愼)은 아뢰기를,
“그 산은 비탈 석벽(石壁)이 험준(險峻)한데다 등(藤) 넝쿨이 뒤엉키고 한쪽 면은 강가이어
서 행군(行軍)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타위(打圍, 사냥)할만한 곳이 못됩니다.”
(大駕至永平 檻穽峴射場。 上問左右曰: "此行當獵王方山乎?" 洪應對曰: "世祖朝具致寬爲大
將, 纔上山頂, 驟雨暴至, 致寬不馳啓而罷陣。" 盧思愼曰: "其山崖石嶔峻, 藤蔓縈紆, 一面邊
江, 行軍甚難, 非打圍之地。)
하산. 북동능선을 내린다. 무럭고개 4.8km. 비는 멎었다. 하루살이 떼가 막 몰려든다. 그걸
떨치려고도 줄달음한다. 길 좋다. 더덕이 있을까. 가는 걸음에 사면을 풀숲을 살핀다. 버섯이
흔하다. 우후이순(雨後栮筍)이다. 능선은 몇 번 멈칫하고 길게 올라 552.1m봉이다. ┣자 갈
림길의 오른쪽 소로는 한국아파트, 호병골로 간다. 그런데 호병골이 직진하는 무럭고개보다
1.2km가 더 멀다.
왕산사에 두고 온 일행이 지루하리라. 무럭고개로 간다. 이 다음 △550.1m봉(삼각점은 안내
판에 ‘포천 432’이다)의 ┣자 갈림길 직진은 깊이울(1.1km)로 간다. 우리는 오른쪽 무럭고
개로 간다. 가파른 내리막이다. 왕산사에 남은 일행들에게 연락하여 차를 몰고 무럭고개로
오라고 한다. 무럭고개를 못 찾겠다고 한다. 차내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무럭고개가 아니라 ‘물어고개’이더라고 한다. 지도에는 무럭고개인데 현지 지명은 물어고개
다. 교통 표지판도 물어고개다. 물어고개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이 지역으로 고려 충신
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오지인 이곳까지 물어물어 찾아왔다고 하는 데
서 유래한다.
고려 충신들은 이헌 성여완(怡軒 成汝完, 1309~1397)과 그의 일족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한다. 성여완은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한 이후 충숙왕, 공민왕 연간에 걸쳐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러 창녕부원군에 봉해졌다. 정몽주가 살해된 이후에는
고려의 국운이 이미 기울었음을 알고 포천의 왕방산에 들어가 은거했으며, 조선이 개국한 뒤
에는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해졌으나, 굳이 사퇴하여
절의를 지켰다고 한다. 그의 무덤은 무럭고개 너머에 있다.
한편 이헌 성여완의 세 아들인 성석린(成石璘), 성석용(成石瑢), 성석인(成石珚)과 손자인
성달생(成達生)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걸쳐 문장학사(文章學士)와 고관대작으로 명성
을 크게 떨쳤다. 불사이군이던 시대 성여완의 집안은 개방적이고 진보였다.
무럭고개(물어고개). 일행이 다 모였다. 신북온천으로 간다.
12. 왕방정, 왕방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다
13. 왕방산 정상에서
14. 달걀버섯 모자
15. 우리 집 베란다에서 바라본 천마산(왼쪽)과 백봉(오른쪽)
첫댓글 깊이울계곡엔 오리괴기가 유명하다고 왕방산 건너 가봐도 이동네 볼게 루 엄떠라구요 강동에서 1시간이믄 마이 가까워졌네요
다행히 그곳에도 비가왔군요...시원하게 맞으며 산행을...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