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시(淸州市)는 4구 3읍 10면 30개 행정동이 있으며, 면적 940.33㎢ 에 2026년 3월 기준 인구는 88만 6,440(외국인 포함)명이 된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淸原郡)과 통합후 충청북도 인구 165만명(외국인 포함)의 절반이 넘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4구(區)는 청원구(淸原區), 흥덕구(興德區), 상당구(上黨區), 서원구(西原區)이고 3읍(邑)은 흥덕구 오송읍(五松邑), 청원구 내수읍(內秀邑), 오창읍(梧倉邑)이다. 10면(面)은 청원구 북이면(北二면), 상당구 미원면(米院面), 가덕면(加德面), 남일면(南一面), 문의면(文義面), 서원구 남이면(南二面), 현도면(賢都面), 흥덕구 강내면(江內面), 옥산면(玉山面)이다.
청주시 면적을 원으로 환산하면 지름 34.6km이고, 광역시 빼고 수원, 용인, 고양, 화성, 창원, 성남시에 이어 7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2026년 3월 현재 세종특별시는 39만 8천여명이고 대전광역시는 144만 2천여명으로 세 도시를 합치면 270만명이 넘는다.
충주시 면적 983.26㎢ 보다 약간 작으나 여러 기관과 대학, 기업들이 몰려있는 도청 소재지로서 비교불가라 하겠다. 2026년 3월 현재 충주시 인구는 20만 6,096명이다.
도청(道廳)이 청주로 옮긴 것은 일제시대 1908년이라 하고 1905년 경부선(京釜線)이 청주인근 조치원(鳥致院)을 경유했던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이는 경부선과 호남선(1914년 개통)이 대전을 경유하면서 1932년 공주에서 대전으로 충남도청을 이전한 것과 비교된다. 이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공주는 지방소도시(2026년 3월말 99,843명)로 전락하고 대전은 충청권의 가장 큰 광역시(廣域市)로 성장한다.
일제시대 청주군 읍내지도를 소개하는 것은 단순히 충북의 도청 소재지라는 이유가 아니라 동시대에 이웃 청주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비교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청주는 조선시대에도 청주목(淸州牧)이 있어 나름 역사와 전통을 가진 큰도시였다. 발전의 기반(基盤)이 있었던 곳이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통합후 행정지도>
<통합전 동지역, 상당구>
오근장동, 율량.사천동, 내덕1동, 내덕2동, 우암동은 통합후(2014년) 청원구(淸原區)가 되었다.
<통합전 동지역, 흥덕구>
사직1동, 사직2동, 사창동, 모충동, 성화. 개신. 죽림동, 수곡1동, 수곡2동, 산남동, 분평동은 통합후(2014년) 서원구(西原區)가 되었다.
<1917년 측도(測圖), 1917년 제판(製版). 1: 10,000 지형도 청주 도엽(圖葉)>
청주읍내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중심가는 청주읍성과 일치한다. 청주읍성(淸州邑城)은 한일합방 직후인 1911년 시구개정(市區改正) 사업이란 명목으로 파괴된다.
무심천(無心川)이 청주읍내를 휘돌아 흐르고 있다. 무심천은 예나 지금이나 청주 시민에게는 친근한 장소다. 중앙공원 압각수(鴨脚樹) 전설에서 보듯 오래전부터 큰비가 오면 청주는 물난리를 겪곤 했다.
최근에도 물난리를 겪었는데 이는 큰강이 없는 분지(盆地)에 도시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압각수 전설은 고려말인 1390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 후에도 숱한 홍수를 겪었을 터인데 풍수지리로 행주형국(行舟形局) 운운하는 것은 이를 반영한 심리(心理)라 하겠다. 배(舟)는 물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게 하고 물(水)로 인한 재해(災害)에서 인간을 보호한다.
청주 사람들은 우암산(牛岩山)을 지극히 위한다 하고 우암산 곳곳에서 지금도 무속(巫俗)이 행해진다고 하는데, 소가 누워있는 형상은 휴식과 평안을 상징하고 이에 의지하는 것은 아기가 어머니 품에 기대는 것과 같다 하겠다. 우암산은 어머니 땅신(地神)이고 삶이 불안한 인간은 아기로 돌아가 치성(致誠)을 드린다.
위쪽 중앙 재동(才洞) 아래에 화장장(火葬場)이 보이고, 왼쪽 위 동공원(東公園)에 발전소(發電所)와 일본신사(日本神社)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옆 그릇 모양은 묘(廟)를 가리키는 기호인데 신사(神社) 건물같다. 제기(祭器) 기호는 묘(廟) 즉 사당(祠堂)을 뜻한다.
우선 살펴볼 것이 화장장(火葬場)이다. 다른 도시에도 화장장이 보이는데 일제시대부터 도입되었다고 봐야 한다. 일본은 지금도 불교를 많이 믿고 화장이 일반적이고 납골당(納骨堂)에 유골(遺骨)을 모신다.
조선시대에도 스님들은 다비식(茶毘式)이 있었고 지금은 화장(火葬)이 일반에 두루 퍼졌지만 불과 얼마전까지 유교(儒敎)의 영향으로 한국인은 매장(埋葬)을 선호하였다.
일제시대 도입된 화장장은 일본인들이 많이 이용했고 위생(衛生)을 내세워 전염병에 걸리거나 악질(惡疾)에 걸려 사망한 자와 행려병자로 떠돌다 무연고 사망자가 된 조선인들에게 권유하고 시행했을 것이다. 이는 다른 도시에 피병원(避病院)을 세우고 화장장과 인근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동공원(東公園)은 1913년에 조성하고 같은해 7월 17일 발전소 점등식(點燈式)을 했다 한다. 신사는 1910년대 초에 소규모로 설치하여 1923년에는 웅장하게 신축하였으나, 1936년 우암산 자락 지금 삼일공원으로 옮겼다 한다.
동공원(東公園)은 지금도 동공원(東公園)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당산공원(堂山公園)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여기 산을 당산(堂山)이라 하는데 조선시대에 당이산(唐羡山)이라 했고 성황당(城隍堂)이 있었다 한다.
한국고전번역원 [신증동국여지승람 번역본]에 <당선산>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물론 <선>으로 읽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접미사 <이>로 봐야 한다. <성황당 당집이 있는 산>이라서 <당이산>이고 줄여 <당산>이다. <唐>도 <堂> 대신 쓴 글자로 보인다. 글자 그대로 <당나라가 부러워 한 산>이란 말은 어색하다.
[山川: 唐羡山。在州東一里。鎭山。有土城基
祠廟: 城隍祠。在唐羡山。신증동국여지승람 청주목]
교동리(校東里)에 향교(鄕校)인 공자묘(孔子廟)가 있고 바로 옆 文 기호는 학교이고, 교서리(校西里) 아래 십자가는 교회당(敎會堂)을 가리킨다.
서공원(西公園)에 대신궁(大神宮), 주변으로 농업학교(農業學校), 잠종취체소(蠶種取締所), 잠업강습소(蠶業講習所)가 보인다. 서공원(西公園)은 지금 사직공원이고 농업학교(農業學校)는 지금 청주여중 자리라 한다.
위 지도 확대부분.
지도 위쪽에 화약고(火藥庫)가, 아래에 사창리(司倉里)가 보인다.
지도 위쪽부터 도묘포(道苗圃), 청주교(淸州橋), 면사무소(面事務所), 소학교(小學校), 헌병분대(憲兵分隊), 경무부(警務部), 보통학교(普通學校), 군청(郡廳), 우편국(郵便局), 경찰서(警察署), 장관관사(長官官舍), 자혜의원(慈惠醫院), 도청(道廳), 법원지청(法院支廳), 헌병관사(憲兵官舍), 동본원사포교소(東本願寺布敎所)가 보인다. 장관관사는 당시는 도지사(道知事)를 도장관(道長官)이라 했는데 머물고 생활하던 관사(官舍)를 말한다고 한다.
성서정(城西町), 북정(北町), 성동정(城東町), 동정(東町), 본정통(本町通), 서정(西町), 상생정(相生町), 욱정통(旭町通), 시장정(市場町), 대흑정(大黑町), 남정(南町), 청수정(淸水町), 도하정(稻荷町), 제정(堤町)이 보인다.
성서정(城西町)은 죠사이쵸 혹은 죠사이마치, 북정(北町)은 기타마치, 성동정(城東町)은 죠토마치, 동정(東町)는 히가시초 혹은 히가시마치, 본정통(本町通)은 혼마치도리, 서정(西町)은 니시마치, 대교정(大橋町)은 오오하시초, 상생정(相生町)은 아이오이초, 욱정통(旭町通)은 아사히마치도리, 시장정(市場町)은 이치바마치 혹은 이치바쵸우, 대흑정(大黑町)은 오우구로초, 남정(南町)은 미나미마치, 청수정(淸水町)은 시미즈초, 도하정(稻荷町)은 이나리초, 제정(堤町)은 츠츠미초라 발음한다. 자혜의원(慈惠醫院) 옆에 앵좌(櫻座)는 사쿠라자로 발음한다. 앵좌(櫻座)는 일본식 극장이라 한다.
자혜의원은 관립의원(官立醫院)으로 1909년 12월 1일 설립된 충북지역 최초의 서양식 관립의료 기관으로 1925년 도립 청주의료원으로 개칭(改稱)하였고 현 청주의료원의 전신(前身)이라고 한다.
금천리(金川里) 일대 지도
금천리(金川里) 옆에 병원이 있다. 위에 야소교회당(耶蘇敎會堂), 왼쪽으로 개울가에 있는 반원형 기호는 일본어로 수차방(水車房)인 물방앗간이며, 바로 위 토굴(土窟)처럼 생긴 기호는 기와나 도자기를 굽는 공장이라 한다. 일제시대 자료를 찾아보니 기와공장이다.
탑동(塔洞)이라 쓴 아래 오른쪽 기호는 묘(廟) 즉 사당을, 왼쪽은 석탑(石塔)을 가리킨다. [청주 탑동 오층석탑淸州 塔洞 五層石塔]이다.
오른쪽 사당(祠堂)은 [청주 현풍곽씨 효자비 및 묘소(淸州 玄風郭氏 孝子碑 및 墓所)] 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려각(旌閭閣)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말 순조, 철종, 고종때 정려(旌閭)받은 인물들이다.
왼쪽으로 감옥분감(監獄分監)이 보인다.
청주군 사천면(四川面)이라 쓴 아래 길게 나와 있는 도로에 가로수가 양옆으로 보인다. 지금 청남교(淸南橋) 지나 청주교대로 가는 청남로(淸南路)가 된다.
청주읍성(淸州邑城) 사대문(四大門)은 동문 벽인문(闢仁門), 서문 청추문(淸秋門), 남문 청남문(淸南門), 북문 현무문(玄武門)이다.
화흥리(華興里) 옆에 도수장(屠獸場), 아래 고당(古堂)과 수곡리(秀谷里)가 보인다.
지도 중앙 욱정통(旭町通) 옆에 금융조합(金融租合), 청수정(淸水町) 옆에 농공은행지점(農工銀行支店)이 보인다. 무심천변에 정수장(淨水場), 월교리(越橋里)가 보인다.
정수장(淨水場)은 물을 채취하는 곳이다. 1922년 6월 18일 동공원(東公園)에 정수와 배수능력을 갖춘 상수도 시설을 완공하였다 하는데, 이전에는 어느 곳에 있었는지 궁금하다.
제정(堤町) 아래 십자가는 교회, 文자 기호는 학교를 나타낸다. 기독교계 학교로 청남학교라 한다. 1928년 여학교 청신학교와 합쳐 남녀공학이 되었다고 하며 지금 청남초등학교 전신(前身)이라 한다. 지금 석교초등학교 부근에 있었다.
시장정(市場町)은 현 육거리 시장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