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일하는 날 쉬는 것 아니 노는 것이 재미 있을까.
남들 다 일하는 평일 날 등반하는 것이 진정으로 즐거울까.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당근이라는 것이되, 전제조건이 있을 것이다.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들)의 존재가 바로 그 것일 것이다.
혼자 하는 헬쓰클럽에서의 운동이 얼마나 재미없고 지겨운지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몇 개월 이상 꾸준히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그 증거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는 실내암장에서 혼자 운동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고 비효율적인지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평일 등반의 재미&행복 여부는 함께 하는 사람/그룹의 존재유무에 달려있다.
헬쓰도 수영도 등반도 스키도 마라톤도 함께 해야 재미있고 효율이 올라간다.
11월 초 단풍이 곱던 선운산에서, 멀리서 온 벗들과 이틀간의 등반을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고 그들은 다 서울로 의정부로 올라가고 혼자서 혼자 사는 대전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사는 집이라 쓸쓸할 것 같지만 난 그 혼자만의 공간, 문을 열었을 때 거실 창에 들어오는, 햇살에 먼지들이 부유하는 그 사람온기 없는 빈 공간을 애정한다.
얼마 전 서울에 올라갔을 때 종로에서 친구와 맥주를 마실 때 그 친구가 내게 질문을 했었다.
“혼자 사니까 좋으니”라는 것이었다.
“당연한 거 아냐? 자유롭고 귀찮게 하는 사람 없고, 마음껏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 투성이니 어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 가 내 대답이었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내 상황을 많이 부러워했다.
그 친구의 질문은 답이 정해진, 답을 예상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그 친구가 부러워한 것은 그의 등반욕심 때문이었고, 그의 넘치는 등반열정을 뒷받침해줄 환경과 파트너의 부재/속박 등이 그런 마음을 가지게 했을 것이다.
난 그의 상황을 잘 알기에 측은지심이 절로 들었다.
대전집으로 오면서 그 친구의 생각을 했다.
남들 다 출근하는 월요일이지만 새벽까지 선운산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
남들 다 일하는 월요일 일 년 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쉬는 회사의 생일, ‘창립기념일’ 이기 때문이다.
아침으로 컵라면 작은 것 두 개를 먹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팔팔끓여 넣어 먹으니 더 맛이 있다.
편의점에서 90도의 뜨거운 물 부어서 먹는 맛과 다른 맛이다.
점심에는 뭘 먹을까, 저녁에는 또 뭐를 먹지 생각하다가 신제품 샘플링으로 나온 유부초밥 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소스를 섞어 버무리고 고명을 뿌린 후 채반에 펼쳐 두었던 유부에 하나 하나 속을 채워줬다.
암장에 들러 상훈형과 함께 운동하며 나눠먹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선운산의 단풍이 생각나서 대전에 사는 로컬에게 물어보니 선운산같은 컵셉의 좋은 장소가 있다 길래 그리로 가기로 했다.
공주에 있는 ‘마곡사’라는 절이다.
도시락과 커피를 싸고 카메라를 둘러 메고 집을 나선다.
난 조용한 산사를 좋아한다.
조용한 산사 주위를 산책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마곡사는 내가 좋아하는 산사의 조건들을 두루 갖추었다.
조용하고 고즈넉하고 주변 풍광이 뛰어나고 걷는 거리가 꽤 되고, 거기에 운치도 있었다.
선운사와는 또 다른 것들이 있었는데 선운사가 가진 보물이 절 뒤편의 동백나무숲과 상사화, 도솔천 그리고 도솔천을 끼고 있는 고목들과 단풍나무들이라면 마곡사는 절을 감싸고 도는 계곡물과 선운사보다 더 분위기있는 절의 위치, 그리고 내부 건축물들의 배치이다.
물론 계곡물 주위의 나무들과 단풍들도 빼어나다.
산사에 올 때면 생각나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가수 이치현씨인데, 그가 와이프와 결혼하기 전 10여 년 동안 연애를 했었고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 노래를 만든 사연이 그것이다.
그가 우연히 산사를 찾았다가 입구에서 ‘인두화’를 만드는 걸 보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시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두화 그림 한 켠에 글씨를 넣을 수 있는 여백을 부탁했고, 산사를 돌며 시를 떠올렸고 종이에 적어서 내려왔다고...
그리고 그 시를 인두화 안에 새겨 넣어 그림을 완성했고 집에 와서 밤을 새워 그 시에 곡을 붙이는 작업을 했단다.
'눈부신 햇살이 비춰주어도
제게 무슨 소용 있겠어요
이토록 아름다운 당신만이
나에게 빛이 되는걸
은은한 달빛이 감싸주어도
제게 무슨 소용 있겠어요
향긋한 그대의 머릿결만이
포근히 감싸주는걸
그대여 안녕이란
말은 말아요
사랑의 눈빛만을 주세요
아 이대로 영원히
내사랑 간직하고파'
그렇게 탄생한 곡이 ‘당신만이’라는 곡이고 둘의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아니 대부분 연애기간이 길면 서로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처음 그 느낌이 퇴색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연애기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 역시 대학후배와의 4년 연애기간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결혼에 골인하지 못했으니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선운산 등반하는 클라이머 중에 ‘업버전’루트를 등반하는 여성클라이머를 보았는데, 빌레이를 보는 남자분과 파트너이자 10년간 연애하는 연인사이라는 말을 들었다.
난 그런 분들을 보면 굉장히 존경스럽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떻게 그 시간 동안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속할 수 있는지 …
아마도 같은 취미와 같은 생각을 하고 노력하고 격려해주는 환경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 역시 같은 취미를 가졌었다면 그렇게 헤어지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주차장에서 절까지 걸어가는 길도 참 좋았다.
절 마당에는 소풍 나온 유치원 꼬마녀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줄을 서서 선생님을 따라다녔다.
엄마를 따라다니는 새끼오리들, 새끼병아리들을 보는 것 같아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절 한 켠에는 김구선생이 머물던 백범당이 있는데, 그가 일본인 장교를 살해하고 인천의 형무소에서 사형수로 투옥 중 탈옥하고 이 곳 마곡사로 피신을 하고 머물 때 불교로 출가를 했다고 한다.
백범은 과거를 준비하던 어린 시절에는 유교를, 그 뒤 동학운동 당시에는 동학 접주로서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전쟁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인천에서 탈옥 후 마곡사에 들어와 승려로 출가하면서 불교를 믿게 된다.
이후 상해로 넘어가 임시정부를 이끌 당시에는 기독교 신자가 된다.
평생 네 가지의 다양한 종교를 두루 경험하면서 특정 종교에 구애받지 않았기에 임시정부를 이끌 때에도 수많은 독립운동 계파를 하나로 통합시키며 이끌 수 있지 않았을까.
옆 작은 소로를 따라 내려가니 절을 따라 도는 계곡물이 그리로 이어졌다.
물가 벤치에 앉아 초밥을 몇 개 먹고, 보온병에 타온 커피를 마셨다.
자주 듣는 음악어플이 있는데 노래를 가수별로 묶어 놓기도 했고, 장르별로 묶어 놓기도 했다.
야영할 때나 캠핑할 때 자주 듣는 노래들을 다운받아 놓은 것들이다.
취향상 발라드 곡들 , 7080 팝과 가요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그냥 잡히는 대로 버튼을 눌렀다.
유익종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을길에 어울리는 음색과 곡들이다
그 때 흘러나오는 곡, ‘추억의 안단테’였다.
나무둥치에 기대앉아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군 제대 후 복학을 하고 학교근처 싸구려 월셋방을 얻어 자취를 할 때 나를 좋아했던 친구의 여동생과 몇 번 데이트를 했었다.
그 녀의 친구들과 음악다방에서 만나기도 했고, 도서관으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찾아오기도 했었다.
늦가을 어느 날 그 녀의 요청에 소양강댐으로 당일 여행을 갔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날의 풍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소양강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 ‘청평사’라는 작은 절도 기억이 난다.
서울로 돌아온 저녁에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 녀는 나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떠났고 그 날은 지금처럼 늦은 만추의 어느 날이었다.
비틀거리던 젊은 날의 날들은 싸구려 자취방과 캠퍼스, 도서관의 낡은 칸막이들 사이에서 그렇게 소리 없이 지나갔고 유일하게 위안을 주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라디오였고 그 때 흘러나오던 곡은 DJ 오미희가 부른 ‘추억의 안단테’였다.
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곡을 부른 가수가 유익종이었는데, 87년 KBS 라디오 방송의 MC/DJ들이 부른 곡을 수록한 옴니버스 앨범에 있는 오미희의 곡이었다.
당시에 오미희씨도 아마 이 곡을 꽤 좋아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었고, 그 노래를 들은 나는 단숨에 반해버린 것이었다.
유익종의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좋지만, 내게는 오미희의 곱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더 아련하고 마음에 와닿는다.
그래서 더 그립다.
마치 오미희가 부른 곡이 원곡처럼 느껴지고, 마치 처음 보고 반한 연인의 모습과 같다고나 할까.
4년 동안 연애하다가 헤어진 후배와의 아픈 이별의 시간과 몇 번 만나고 헤어진, 나를 좋아하다 떠나간 친구 여동생의 모습과 싸구려 자취방의 흔적들이 어우러져 노래에 묻혀 흘러나왔다.
"그대는 헤어진 날의
타는 노을을 기억하나요
푸른 산 머리에
조금씩 지던 노을을
사랑은 사랑 때문에
슬픈거라고 말하던 그대
그댄 노을처럼
어둠을 두고 떠났지
지나간 날을 사랑했기에
영원히 아름다워라
이별의 눈물 짓던 그날이
이제는 그리울 뿐
사랑은 사랑 때문에
슬픈거라고 말하던 그대
그대 그날들은
서서히 잊혀지는 것"
의자에 기대어 앉아 가만히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는 무덤 몇 개가 놓여져 있었다.
나와 오해와 갈등이 있던 사람의 무덤
내 말에 상처받은 사람의 무덤.
그리고 그 녀의 무덤이 놓여 있었다.
난 그 녀의 무덤에 기대어 그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소 주 두 병을 마시고 취한 나는 그 녀의 무덤에 등을 기대고 잠이 들었다.
...
2018년 늦가을. 마곡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