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여행
‘미국아! 내가 간다. 너 좀 보자.’ 인천공항 떠날 때 속으로 이렇게 뇌었다. 200년 역사가 미국이요, 4천 년 역사가 우리다. 나는 미국 문학하면 헤밍웨이와 월리엄 포크너 정도만 알고, 영화배우 하면 ‘하오의 결투’의 케리 쿠퍼, ‘누구에게 줄까요?’의 셔리 맥레인 정도만 안다. 코카콜라와 햄버거에 덮인 미국 문화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은자(隱者)에겐 별로 흥미가 없다.
그런데 나리다 공항에서 화와이 가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갈아타니, 남색 양장에 밝은 금발, 초록 구슬 눈동자가 인형처럼 이쁜 한 중년 스츠워데스가 맘에 쏙 든다. 7시간 태평양 건너가는 한국 선비에게 커피와 맥주 연속 서비스해주는 근로정신 하나 싹싹하다. '당신 아름답소' '매력 만점 이오' 란 말 꼭 해주고 싶어, 그 얼굴 자꾸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참 신통하다. 생긋 그렇게 세련된 미소 던지는 미국 아줌마 난생 첨 보았다.
하와이에 비행기가 착륙한 시간은 아침 7시. ‘알로하!’ 오하우 공항에 내리니 가무잡잡한 남국 미녀가 향기로운 미소 풍기며 닥아오더니 황홀하게 내 목에 레이 걸어준다. 노란 풀룸메니아꽃 화관(花冠) 아래 빛나는 다정한 여인의 눈빛 너무나 이국적이다. 귓가에 꽂은 꽃 아름답고 요염한 입술도 인상적이다. 세상에나 이리 아름다운 여인도 있구나 싶었다. 하와이 첫인상은 천경자 화백의 그림 같다. 꽃과 여인에서 시작된다. 하와이 대표 꽃 하이비스커스꽃은 무궁화 사촌인데 비슷하지만 더 크고 화려하다. 무궁화 학명이 '하이비스커스 시리아규스’다. 여기 풍습은 여자가 미혼일 때는 꽃을 오른쪽 귓가에, 기혼자가 되면 왼쪽에 꽂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제주도도 머리에 무궁화꽃 꽂은 여인이 공항에 나와서 관광객 반겨주면 좋겠다 싶다.
공항을 둘러보니, 그 넓은 부지가 잔디와 상록의 나무로 덮혀있다. 한번 자세히 보았다. 풀룸메니아 나무는 우리나라 감나무만 하다. 그 큰 나무가 온통 노랑, 분홍, 백색 꽃 피운 모습 장관이다. 하이비스커스 꽃은 나무 덩치에 비해 꽃이 크고 화려하다. 비 온 뒤 무지개 쉬어간다는, 빨강, 노랑, 보라, 분홍꽃 신비로운 rainbow shower tree는 잎은 아카시아 비슷한데, 꼭 한번 키워보고 싶은 탐나는 나무였다. golden tree는 잎도 없는 나무 전체가 황금빛 꽃을 달고 있다. 로비에는 서양난이 화려하다. 심비디움, 캬툴레아, 덴드로비움 같은 서양 난초, 그 밖에 부간베리아, 아프리카 튤립을 잘 가꿔, ‘여기가 꽃의 천국이요’ 한다.
대절버스 타고 와이키키 해변으로 가는 길 산속에 거대한 벤얀 나무 우거진 밀림 보이고, 하얀 나지막한 담장 둘러친 목조주택 보인다. 해변가에도 멋진 하얀 집 천지다. 남국 정취 풍기는 야자수 아래 기화요초 핀 정원이 인상적이다. 하와이는 바닷가 집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이런 집은 거실 바닥 통유리 아래로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인다고 한다. 욕실에 18금 수도꼭지 달린 집 가격이 한국돈 50억에서 1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하와이 경제는 일본인들이 다 장악한 모양이다. 카할라의 바닷가 고급주택은 대개 일본인 소유라 한다. 우리 교민의 경우 성공하면 10억에서 20억 정도 하는 산꼭대기 집에 산다고 했다. 가이드 설명을 들어보니, 화와이는 기후가 온화해서 한국서 고추를 가져다 심었더니, 나무처럼 자라 머리 위로 손을 뻗쳐 고추를 딸 정도라고 한다. 상추도 배추처럼 크게 자란다고 한다. 2200 여종 식물이 서식하지만, 그중 반에 해당하는 1천 종이 인도, 아프리카, 뉴질랜드, 미 본토에서 수입한 종이라 한다. 하와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땀과 노력으로 만든 땅이다.
호놀룰루 시내에 들어가자, 시내 한복판에 운하가 있고, 운하 양쪽은 골프장이다. 거기 야자수 아래 가슴 털 내놓은 반바지 백인들이 선글라스 낀 여자들과 골프채 휘두르고 있다. 운하에 카누 타는 청춘남녀 모습 보인다. 기가 막힌다. 하느님께서 너무 하셨다 싶다. 부의 분배에 좀 신경 쓰셨어야 했다.
와이키키의 명동에 해당하는 칼라카우아 거리는 상가와 호텔 즐비하다. 그런데 그게 그냥 상가와 호텔이더냐. 구찌, 샤넬, 루치니, 카시오 등 세계적 브랜드만 진열되어 있다. 하와이 한번 가기가 미국 자기네 백성들도 평생 소원이고, 대개 밖에서 아이쇼핑만 하고간다고 한다.
와이키키 해변길이 일품이라 아내는 머리에 꽃을 달고 야자수 아래 기대 섰다. 푸른 파도 전망하는 벤치 위에 노란 꽃 떨구고 있는 품룸메니아 가로수가 낭만적이다. 공중에서 뿌리를 땅에 내리며 도로를 덮어 Walking tree라는 이름이 붙은 벤얀나무도 신비롭다. 미국민 60%가 미국 제일 휴양지로 꼽는 이곳 하와이의 특징은 꽃과 청결함이다. 떨어진 담배꽁초 하나 없는 길은 밤 2시에 자동차가 물과 에어샤워로 청소하기 때문이란다. 자동차 범퍼에 모두 오색 무지개 그려놓은 건, 하루 한번 열대성 소나기 지나가고 무지개 뜨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관광객은 매일 무지개가 뜨는 이 환상에 섬에 와서 그것은 보지않고, 다이아몬드 헤드 밑 공원 잔디밭에 모여 앉아 고스톱만 치고 간다고 한다.
우리가 묵은 호텔 쇼핑센터에서 꽃 묘목을 팔고 있다. 풀륨메니아, 하이비스커스, 레인보 샤워 트리 같은 묘목을 비닐 포장으로 팔고 있다. 제주도 지사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여기 와서 묘목 좀 사다가 제주도에 심어야지. 꽃은 관광자원이자 돈인 걸 하와이서 절실히 느꼈다.
호텔 매장에서 24불짜리 알로하 샤스 사입고 황혼에 아내와 와이키키 해변을 거닐어 보았다. 해변길은 서핑보드 든 비키니 차림 백인 여인들 가득하다. 서핑 배운다고 보드 들고 아장아장 걷는 네댓 살 금발 꼬맹이들 참 귀엽다. 젊은이들이 보드에 엎드려 파도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서 서핑하는 모습, 간혹 일어서기에 실패해서 물속에 처박히는 모습 보인다. 하와이는 1년에 한 번 서핑대회 열리고, 거기서 1등 하면 PGA에서 우승한 골퍼 같은 유명인사가 되어 평생을 보장받는다고 한다.
문득 속초가 떠올랐다. 속초는 와이키키보다 물도 맑고, 파도도 높고, 백사장도 곱다. 와이키키 해변 모래는 캘리포니아서 싣고온 것이지만, 속초는 자연산이다, 속초는 영랑 청초 두 개 호수 있고. 겨울 눈 쌓인 진부령 스키장도 있다. 그런데 속초 다녀가는 관광객은 년간 2백만 이고, 하와이는 7백만이다. 속초는 한화, 대명, 알프스, 영랑호, 강릉 공군비행장까지 합해 골프장이 다섯 개인데, 하와이는 골프장이 72개나 있다. 속초를 세계적인 관광휴양지로 만들려면, 어째 하와이를 한번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튿날 호놀룰루 외곽 구경 나갔다. 꾸미지 않은 하와이 땅은 상상 외로 삭막하다. 전부 황량한 화산암이다. 그에 비하면, 곁에 태백산맥 준봉들 끼고 금강산 화진포에서부터 해운대 청사포까지 천리길 내리닫이 청송 백사(靑松白沙) 어울린 우리나라 동해안은 애초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블루 하와이’ 촬영 후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았다는 별장은 변산반도 줄포만에 있는 탤런트 이 모(某) 씨 별장보다 운치 없다. 조망 좋다고 데려간 마카푸우 전망대도 제주도 일출봉에 못 미친다. 배 밑바닥 유리를 통해 수심 30미터 산호와 열대어와 바다거북 보여주는 마카푸 해저관광도, 뱅애 돔 구경시켜주는 서귀포 잠수함 투어 보다 못하다. 스탠드바 장착된 기다란 리무진 타고 찾아간 ‘하나우마 만(灣)’은 그나마 팔뚝만한 물고기가 사람을 무서워 않고 수심이 무릎 정도 오는 얕은 산호초까지 와서 헤엄치며 오가는 게 좀 신기하긴 했다. 그러나 산호 부서진 하얀 백사장 위로 청옥의 파도 밀려오는 우도 해수욕장은 돌고래가 떼 지어 헤엄을 치며 배를 따라오질 않는가.
외국 나가면 모두 애국자 된다 한다. 이 참에 딱 두 가지만 지적하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 있다. 하와이 생선회는 맛이 어떻던가? 생선회 좋아하는 일본인도 먹지 않는 물건이다. 반면 제주도 용머리 바닷가 해녀가 파는 금방 딴 싱싱한 해삼 전복 맛은 어떻던가. 제주도와 하와이는 맛의 비교에서 이미 승부 끝났다. 조물주는 제주도에 더 신경을 쓰셨다. 하와이에서 또 하나 깨달은 것은 한국 여성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미국도 젊은 여성 아름답다. 그러나 중년 여성은 스테인리스 강철이 아닌 플라스틱 변기에 앉으면 그 무게 때문에 변기가 짜개져 버리는 100 킬로 거구 아니던가. 게다가 피부가 꺼칠꺼칠한 거북이 등가죽인데, 우리 한국 여성은 나이 먹어도 몸매가 어찌 그리 늘씬하고 피부가 그리 청초하던가?
관광코스라고 데려간 칼라카우아 왕이 세운 이울라니 궁전에서 슬픈 이야길 들었다. 야자수와 벤얀 나무 아름다운 정원은 주인을 볼 수 없고, 하와이 열도 통일한 카메하메하 대왕 동상 아래는 관광객 기념사진 찍는 곳에 불과했다. 비운의 여왕 ‘카메하메아’가 작곡한 ‘알로하오에’ 노래는 나그네 가슴에 애달픈 심회를 분출시킨다. 원주민 말로 ‘와이’는 물이요, ‘키키’는 분출이라는 뜻이다. '검은 구름은 하늘을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날 기대하며 서로 작별하여 떠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꽃 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그 노래가 그리 슬픈 사연인 줄 거기서 새삼 느꼈다.
그다음 찾아간 폴리네시안 민속촌에서도 같은 감정 느꼈다. 거기 피지, 통가, 사모아, 타이티, 뉴질랜드 등 폴리네시안 원주민 문화 재현해놓은 민속촌은 누가 만들었나? 땅 확보하여 수목 심고, 호수 만들어 카누 띄우고, 야자잎 지붕 가옥을 원주민이 무슨 돈으로 세웠겠는가? 거기 원주민은 돈 받고 관광객과 기념사진 찍는 일종의 풍물이다. 나뭇잎으로 몸 가리고 카누 위에서 춤추는 여인, 꽃처럼 향기로운 미소 떨구던 매혹적 불루넽 여인들은 눈요깃감에 불과하다. 그 높은 야자수에 맨발로 오르내리는 건장한 폴리네시안 남성도 그렇다.
수입은 고용인에겐 몇 푼이나 돌아가겠는가? 그들의 춤과 노래는 슬프다. 슬프기는 거기 사는 하와이 한인도 마찬가지다. 재미사업가라고 우리는 그들을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무얼 하면서 사는가? 한국 관광객 상대하는 기념품점이나 비디오점, 식당 아니면 가이드하고 산다. 한인은 평생 빌빌(Bill bill) 거리고 살다 죽는다고 한다. 집도 자동차도 bill이고, 출산도 bill이고, 부부가 죽어 묻힐 무덤도 미리 선불 800불 정도 bill이라는 이야기다. 은퇴한 여배우 조미령 씨가 거기 사는데 그도 마찬가지, 교민 상대 기념품점 하고 있다.
그나마 하와이 마지막 밤에 잠시 흐뭇한 기분을 느꼈다. 호놀룰루 앞 바다에 뜨있는 사랑의 유람선에서다. 그 배엔 수많은 백인 신사숙녀가 음악과 식사를 즐기며 샴페인 잔을 들고 춤추고 있었다. 그 화려한 호화 선박을 렌트하여 운영하는 여장부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호놀루루 밤바다를 수놓은 그 배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그가 구한 말 건너간 사탕수수밭 이민 3세였을까. 아니면 서울서 새로 건너간 사업가 여성일까가 궁금했다. 어쨌든 너무나 기특하여,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잠시 그분의 사업 번창을 마음속으로 빌어보았다.
(2002년)
첫댓글 933카페는 매일 빈 공간이다. 보관용으로 옛 글 하나 올린다.
933 카페를 외롭게 지키는 金거사,
복 많이 받을 겁니다
그래도 눈팅 하고간 친구가 2-30명 정도 됩니다. 아마도 대부분 컴을 폐기처분 했고, 아직 요 정도 숫자는 집에서 컴 열어보는가 싶군요.
하와이 오래전에 들어본 이름 같이만 느껴지는군요.글 잘 보았고 늘 건강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