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가 차린 생일상
예순이 넘은 동갑내기 사촌은 일찍 혼자가 된 아흔의 숙모와 함께 살았다. 숙모는 폐암 말기 환자로, 연로한 탓에 항암 치료를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집에서 자연 치유법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아들인 사촌이 집안 살림과 함께 숙모 간병을 도맡았다. 작년 여름, 사촌의 생일날 전화를 했다. "우렁 각시라도 와서 생일상 차려 줬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사촌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날짜를 잊어버린 지 오래인 숙모가 아들 생일을 기억할 리는 만무하고, 사촌 스스로도 생일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 숙모의 치유식을 만드는 일만해도 만만치 않으니 자신을 위한 음식 장만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숙모는 아침마다 숨쉬기조차 힘들어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촌은 생일이고 뭐고 할 수만 있다면 숨이라도 대신 쉬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숙모가 사촌에게 말했다. "숨쉬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잘 삼킬 수 있는 음식이 먹고 싶네. 미역국 좀 만들어 줄래?" 늘 입맛이 없어 잘 먹지 못하는 숙모가 당기는 음식을 이야기하다니. 사촌은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미역국을 끓일 준비를 했다. 그때 숙모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잡채도 생각나네......" 숙모는 잡채를 만드는 사촌 곁에서 부추도 넣어 보라고 했다. 여름이라 부추가 시들기 쉬우니 잡채에 쓰고 남은 것으로 전을 부치라는 말도 덧 붙였다. 사촌은 숙모가 시키는 대로 부추전까지 만들었다. 저녁상을 차리고 보니 평소 반찬에 미역국과 잡채, 부추전이 더해진 진 수성찬이었다. 그제야 사촌은 깨달았다.
아들이 엄마를 위해 차린 밥상은, 사실 엄마의 아바타(가상현실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캐릭터)가 되어 만든 자신의 생일상이었다는 것을.
차려진 밥상을 물끄러미 보던 숙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생일 이 이때쯤이지? 생일상도 못 차려 주고 너한테 짐만 되니 미안하다." 사촌은 목이 울컥거리는 것을 느꼈다. 온 세상이 멈춘 듯했다. 사촌은 밥상을 옆으로 밀고 숙모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엄마, 미안하긴. 나를 낳느라, 혼자 몸으로 나를 키우느라 너무 고생 많았어......" 사촌은 삭정이처럼 야윈 숙모가 한없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자신은 엄마의 아바타였을 뿐, 생일상은 엄마가 차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촌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생일을 마주한 노모와 지긋한 아들의 모습이 담긴 한 폭의 수채화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숙모는 세상을 떠났고, 사촌은 혼자가 됐다. 사촌은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에 들어와 혼자 밥상을 차릴 때마다 숙모와 함께 먹은 생일상이 떠올라 눈물로 밥을 삼킨다고 했다. 사촌은 언젠가 그리움에 사무쳐 말했다. "생일상 얼마든지 차려 드릴 수 있는데....."
강신옥 | 인천시 남동구 <제18회 생활문예대회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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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그 부모를 먼저 보내고 아쉬워하는 자식의 마음.
아름다운 마음이 잘 나타난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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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사랑합니다.
부모나 자식이나
후회없이 살다가 헤어져야 하겠지요.
더 많이 사랑하고 칭찬해주고
가족간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