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84/꼬부랑 이야기]옛날 옛적 갓날 갓적에
일단 한번 이 옛날 이야기를 읽어보자. 시절이 하수상한 요즘, 딱 맞는 이야기 두 편을 찾았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 사뭇 재밌다. ‘어린이’라는 명칭을 처음 지어 널리 퍼트린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 1929년 3월, 그가 창간한 『어린이』 잡지 7권 3호에 실은 ‘꼬부랑 할머니’ 이야기이다. 또 한 편은 그 이야기의 또다른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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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진갑 다 지나서 허리가 꼬부라진 꼬부랑 할머니가 꼬불꼬불 꼬부라진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고개를 올라갔습니다. 고개를 넘어가다가 똥이 마려우니까 다 쓰러져서 꼬부라진 꼬부랑 뒷간으로 기어 들어가서 똥을 누는데 꼬부랑 똥을 눕니다. 무엇? 꼬부랑 똥이 어디 있느냐고? 할머니의 허리가 고부라졌으니까 똥도 꼬부라져서 꼬부랑 똥이 나오지…… 재미있지 않아요? 그래 꼬부랑 고개 위에 꼬부랑 뒷간에서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똥을 누는데 그 때 마침 허리가 꼬부라진 꼬부랑 강아지가 뒷간 밑으로 들어와서 꼬부랑 똥을 먹습니다. 그러니까 꼬부랑 할머니가 그것을 보고 더러워서 꼬부랑 지팡이를 집어들고 꼬부랑 강아지의 꼬부랑 허리를 ‘딱’ 때렸지요. 그러니까 꼬부랑 강아지가 꼬부랑 뒷간에서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 똥을 먹다가 꼬부랑 지팡이에 꼬부랑 허리를 얻어맞고 ‘꼬부랑깽깽’ ‘꼬부랑깽깽’ 하면서 달아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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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갓날 갓적,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꼬부랑 살고 있었대.하루는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고개를 꼬부랑꼬부랑 넘는데, 꼬부랑 강아지가 꼬리를 꼬부랑꼬부랑 흔들며 따라오길래 꼬부랑길로 돌아가니까, 꼬부랑 바위게 꼬부랑 토끼들이 모여 와서 꼬부랑꼬부랑 춤을 추는데, 꼬부랑 다람쥐가 꼬부랑꼬부랑 재주를 넘고, 꼬부랑 황새가 날아와 꼬부랑 나무에 앉아서 꼬부랑 목을 빼고서 꼬부랑꼬부랑 노래를 하니까. 꼬부랑 여우가 달려와서 꼬부랑꼬부랑 깽깽 꼬부랑 깽깽 짖는데, 꼬부랑 칡덩굴이 꼬부랑꼬부랑 뻗어나와 꼬부랑 집을 짓고 꼬부랑 떡을 만들어 꼬부랑 상에 차려놓으니, 꼬부랑 할머니와 꼬부랑 지팡이랑, 꼬부랑 강아지랑. 꼬부랑 토끼랑, 꼬부랑 다람쥐랑, 꼬부랑 황새랑, 꼬부랑 나무랑, 꼬부랑 여우랑, 꼬부랑 칡덩굴이랑 모두 모여 꼬부랑 노래를 꼬부랑꼬부랑 부르며, 꼬부랑 춤을 꼬부랑꼬부랑 추고, 꼬부랑 떡을 꼬부랑꼬부랑
아!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고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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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옛날 이야기를 소리내어 읽어보셨는지요?유리 옛날 이야기의 원형같지요. ‘랑’으로 이어지는 우리말이 새삼 정겹지 않은지요? 아리랑 쓰리랑, 너랑 나랑 할 때의 ‘랑’이 진짜 우리말이고, 우리에게 왜 착착 감기듯 예쁜 말인줄 아셨지요?
이 이야기 두 편을 녹음하여 여섯 살 손자에게 들려주라고 새아가에게 보냈지요. 그랬더니 “또 있냐?”며 재미있어 했다는 댓글이 왔습니다. 할머니가 아니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꼬부랑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준 것만도 어딘가요? 그런데 ‘꼬부랑 똥’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또 ‘꼬부랑 춤’은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이들은 유난히 ‘똥놀이’를 좋아한다는군요. 똥을 캐릭터로 파는 장난감도 많지 않나요? 똥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생명의 본질'(먹고 싸고 자는)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득 동화작가 권정생님의 『강아지똥』이라는 책과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니?』를 어른인 저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손자의 ‘재밌는 것 더 없냐?’는 말을 듣고, 찾아낸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이라는 시를 낭송 녹음해 보냈습니다. 꼬부라졌다는 말은 구부러졌다는 말도 된다는 설명을 붙였지만, 아무래도 이해가 안가겠지요? 흐흐.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구부러진 길을 가면/나비의 밥그릇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날이 저물며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드는 구부러진 길/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구불구불 간다/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구부러진 주금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어떠신가요? 이 시 감상할 만하지 않나요? 마치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저도 반듯한 길보다 구부러진 길이 좋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 또 하루를 잘 보내자구요.
첫댓글 알록달록 농부 다 되었네
정환이 형님이 꼬부랑 단어 하나로 기가 막힌 시를 지었구료.
우천은 이 시를 보고 얼메나 웃었을꼬를 생각하니, 나의 기분도 꼬불꼬불해지는군.
멋진 시 감상 잘 했다오. 감사.9
생각났다. 어릴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노래도 흥얼거려본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