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소한 조각으로 현대인의 고독 표현한 자코메티…스마트폰 중독은 소외감 달래려는 몸짓일 수도 | 생글생글 (hankyung.com)
왜소한 조각으로 현대인의 고독 표현한 자코메티…스마트폰 중독은 소외감 달래려는 몸짓일 수도
배철현 박사의 인문학 산책 (2) 현대인의 고독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매우 작은 입상’(1937~39년경, 벽토, 4.5x3x3.8㎝) 파리 자코메티 재단 제공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자신의 예술, 특히 조각 작품들로 19세기 근대사회가 20세기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유럽 한 복판에서 세계 1,2차 대전을 경험하면서 유럽 지식인들이 주도한 다양한 철학적인 시도들을 조각 작품이라는 가시적인 물질에 담아 대담하면서도 선명하게 제시하였다. 그의 관심은 시간이 인간의 시선을 왜곡하는 환영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는 1940년대 후반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실제 장소에서 재현하는 방법을 두 가지 사상을 통해 발견하였다. ‘현상학’과 ‘실존주의 철학’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자의식’, ‘타인’, ‘허무’와 같은 철학적인 담론을 현대인들의 우울, 소외, 고독으로 표현하였다.
‘외로움’
현대인들은 외롭다. 손안의 핸드폰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우리의 관심을 유발할 만한 뉴스로 우리의 눈과 귀를 엄습한다. 우리는 왼손으로 핸드폰을 잘 볼 수 있도록 눈 가까이 올리고, 오른 손가락으로 그 매력적인 뉴스에 탐닉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스크롤을 내린다. 그러면 우리는 한 순간에 그 화면 속으로 들어가 한 참 동안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러나 나는 외롭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나의 모습을 찾지 못할 때, 그리고 그것을 향해 지금 이 순간을 직시하고 장악하지 못할 때, 나는 외롭다. ‘외롭다’는 감정은 누군가의 존재를 갈망하지만, 그것이 나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생긴다. 핸드폰은 현대인의 빈 공간에 들어와 외로움을 달래주는 노예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안주인 노릇을 한다. 현대인들은 핸드폰의 노예다. 핸드폰이 전달해주는 정보는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현대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괴물인 핸드폰과의 싸움에서 완패를 당했다. 우리는 핸드폰에 중독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핸드폰이 전달해주는 정보를 통해 세상을 본다.
핸드폰은 21세기의 ‘손도끼’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약 300만년 전에 길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돌을 주어다 자신의 손에 딱 들어오는 무기를 만들면서 ‘만물의 영장’이 되기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현대인들은 핸드폰에서 무슨 정보든지 캐낼 수 있다. 이 편리함이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실(失)이 되었다. 핸드폰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해 주는 문명의 이기기면서 동시에 그들을 자신의 정보로 시야를 가리는 색안경(色眼鏡)이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혹은 그 대상 안으로 들어가 대상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킨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신이 관찰하는 대상을 오랫동안 관조하여, 그 대상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생각하려는 ‘거울신경계’를 뇌 속에 장착하였다. 창의성의 작동원리인 거울신경계가 마비되어, 누군가가 편집한 정보만 편식하는 인간이 되었다.
‘고독’(孤獨)
나는 나의 두 발로 땅을 디디고 굳건히 서서 고개를 치켜들고 내가 가고 싶은 장소를 정해 뚜벅뚜벅 가고 싶다. 나는 두 눈으로 내가 확인한 대상을 이해할 것이다. 내가 지하철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들, 내가 탐독하는 성현들을 지혜가 담겨있는 책들, 내가 손을 통해 찾아가 두 눈으로 읽는 신문 사설들, 내 마당에 자리 잡고 시시각각으로 변신하는 능수 벚나무...이 모든 것이 나를 변화시키는 나의 스승이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혼미하게 만드는 정보는 내 기억에 남지 않고 흘러가 버린다. 내가 간절히 원해 정색을 하고 관조하는 대상에 몰입하는 훈련을 ‘고독’(孤獨)이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의 1세기 경전인 <피크레 아보트>(‘선조들의 어록’)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히브리어로 표현하면 이렇다. “아쩨이후 하캄? 하 로메드 미콜 아담.” 이 구절을 번역하면 이렇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매일 매일을 자신을 위한 배움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한 마음가짐이 바로 ‘고독’이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침착하게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이다. 고독은 우리가 필요한 최고의 선물이자 사치다. 자코메티는 아주 왜소한 작품에서 이 고독을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왜소’
자코메티는 어려서부터 왜소한 물체를 조각으로 만들었다 다시 해체하는 작업에 중독되어있었다. 그는 그러한 편집증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제작한 10cm 이하 조그만 조각상은 수백 개 혹은 수천 개이지만 지금은 20여개만 남았다. 그는 자신이 재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규정하는 공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일한 대상이지만, 거리에 의해 크기가 달라지고 조명에 따라 보이는 양도 달라진다. 자코메티는 자신이 재현하려는 대상을 오래보면 볼수록, 그 대상이 점점 작아지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대상을 보면 볼수록 그 대상이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 대상의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대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했다. 무엇이 자코메티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
https://naver.me/G87m4idB
걷는 사람
"걷는 사람(Walking Man)"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60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자코메티의 실존주의적 관점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인간의 존재와 운명에 대한 그의 생각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인간의 고독과 실존을 마주하다_ '걸어가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 L'homme qui marche>(1960)
어두운 공간 속에 뼈대만 앙상한 가늘고 길쭉한 한 사람이 앞을 향한 채 걸어가는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팔과 다리가 기형적으로 길게 늘어진 인체의 형상으로 상징되는 20세기 최고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기념비적 대작 <걸어가는 사람 L'homme qui marche>(1960)이 한국에 왔다.
20세기 미술의 상징이 된 자코메티의 이 <걸어가는 사람>은 거칠게 패인 투박한 표면에 팔다리를 길게 늘어뜨린 부자연스러운 모습에도 형형한 눈빛으로 정면을 직시한 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앞을 향해 걸어가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한 형상은 인간 존재의 허약함과 존재의 덧없음을 강조하며 실존의 깊은 심연을 드러낸다. 시지프의 신화처럼,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거칠고 황량한 채 세상을 향해 묵묵히 계속 걸어가야 하는 인간 본연의 존재... 자코메티의 인물 조상의 특징은 깍을대로 깍고 덜어내고 최대한 비워냄으로서 최후의 앙상한 가지처럼 길다란 뼈마디 형상만 남은 실존적 인간의 모습과 그토록 메마르고 황량한 형상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형형한 눈빛, 살아있음의 증명인 듯 차별화된 인간 제각각의 시선에 있다 할 것이다.
Alberto Giacometti in the Courtyard of the Studio with the plaster of Tall Woman IV, 1960 Photo Annette Giacometti
7인의 형상과 한 개의 두상의 컴포지션, 자코메티, 브론즈에 채색, 1950년, 높이 58cm, 런던 토마스 깁슨 미술관
'가늘고 긴' 자코메티 스타일
자코메티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스위스의 스탐파 마을에서 신 인상주의 화가 지오반니 자코메티의 장남으로 태어나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고향 스탐파는 가족들과의 추억으로 남동생 디에고와 브루노, 여동생 오틸리아, 어머니 아네타와 함께 그 곳의 산과 집들은 최초의 모델이 됐고,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끼치며, 늘 다시 찾아오게끔 했다.
자코메티는 1935년부터 모델을 실물과 같이 재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자신에게만 보이는 형상, 모델의 겉모습을 넘어 그 존재 자체를 통찰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그에게 인간 존재에 대한 통찰을 갖게 하는 극적 계기가 있었으니,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노신사와 같이 여행하던 중 그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죽음을 목도하고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날 나는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불행을 절감했으며, 모든 인생이 고독하고 무상함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작업실에서 야나이하라 흉상을 작업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이후 그의 삶의 가치가 완전히 바뀌면서 자코메티는 값비싼 집도, 멋진 삶도 부질없음을 깨닫고 호텔에서 살고 카페 같은 잠깐 머무르는 장소를 좋아했다. 살아생전 부와 명예를 가졌음에도 그는 몽파르나스 7평 작은 작업실에서 평생 몰두했다. 그날 이후 자코메티는 인간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고,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해내야하는 것으로 기존의 인체미학이 아닌, 겉치레의 모든 장식과 동작을 생략하고 근육의 살점마저 들어내고 가늘고 긴 골격만을 지닌 채 불안하게 서 있는 고독한 인물상을 창조했다.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뜨린 거칠고 앙상한 인체, 자코메티가 바라본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2차 대전 이후 망연자실한 허무와 고독을 응시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의 인체상은 이렇게 폐허가 된 문명의 비인간화로 인한 황폐한 실존적 존재로 20세기 실존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걸어가는 사람’은 사르트르와의 교분으로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자코메티는 파리로 이주해 앙투완 부르델에게 조각을 배우고(1922), 입체주의와 구조주의에 영향을 받은 초기 실험작과 앙드레 브르통과의 만남(1930), 이후 초현실주의자들과도 만나 운동에 참가하면서〈보이지 않는 사물>,〈4시의 궁전〉, <걷는 사람> 등의 작품을 제작한다. 1939년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를 만나 교류하고, 1946년 길고 날씬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했다.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협력한 자코메티
자코메티는 세계대전 이후 부조리극 작가 사무엘 베케트와 인간 존재와 실존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며, 자신들만의 철학을 문학과 미술로 발표했는데, 이때 자코메티는 사무엘 베케트의 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 미술을 작업했다. 길쭉한 나무를 제작했는데, 이후로도 이 극에서는 이 배경이 여전히 응용되고 있다. 그 나무는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다.
1947년에 가장 비싼 작품이 된 ‘가리키는 남자’, 1960년에 기념비적 대작 ‘걸어가는 사람’이 탄생한다. 1966년 스위스 쿠어에서 심장발작으로 사망하기까지 38년간 그는 초라한 아틀리에에서 자신만의 작품 제작에 전념했다. 그러나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한 그 작고 열악한 공간이 작다고 느끼지 않았고, 오래 있을수록 점점 커져서 원하는 모든 것을 넣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작업실은 그의 모델들과 유명 인사들로 가득 찼고,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앞 다투어 방문해 기록했다.
“나는 늘 생명체의 허약함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나 느낌을 가지고 있다. 마치 계속해서 서 있으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서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 그리고 바로 그 허약함이 내 조각들과 유사하다.”
얼굴의 형태가 뭉그러지고 일그러진 인물들의 초상을 통해 자코메티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실물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모델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어떤 것이라 여겼다. 모델들을 고통스럽게 오랫동안 바라보며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바로 시선! -로타르의 슬픈 시선, 캐롤린의 눈빛. 자코메티의 마지막 작품의 주인공인 엘리 로타르는 유명 사진작가로 상당한 명성을 누렸는데, 불안정한 정서를 가졌던 로타르는 전쟁 이후 빚으로 감옥에 투옥되는 등 파탄의 길로 타락했지만, 실패한 사진작가 엘리 로타르의 말년의 불온하고 슬픈 시선에서 작가는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을 발견한다. 로타르의 강렬한 슬픈 시선은 자코메티의 최후의 걸작- ‘앉아있는 흉상(로타르Ⅲ)’, ‘남자의 두상(로타르 Ⅱ)’ 등-에 표현됨으로써 유작 모델로 로타르는 명작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욕망이 너의 눈을 가려 삶을 이끌었다면, 인생은 생각보다 허망하고 덧없는 꿈이었음을 탄식하리라”
"지금 이대로의 나, 그리고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자코메티의 작품은 ‘눈’에서 시작된다. 그에게는 모델들의 시선이 가장 중요하다. 드로잉과 스케치에서도 눈을 여러겹 칠한 것으로 시작해 골격을 만들어 완성해가고 있다. 자코메티의 완성하는 얼굴은 해골 같지만 죽음과 구별되는 살았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눈과 시선이 있기에 다른 것이다. 자코메티는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것은 죽은 자의 해골에 불과하다. 결국 죽음과 개인을 구별해주는 것은 시선이다.” 라고 말했다.
‘걸어가는 사람’의 생생한 눈과 쏘아보는 듯한 시선은 불안하고 두렵지만 당당히 나아가야 하는 실존적 인간의 입상이다. 로타르의 눈빛이 절망적인 인간의 슬픔이라면, 걸어가는 사람의 눈빛은 시지프의 신화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적 인간의 당당함이라고 할까.
그밖에도 자코메티의 모델들이 각 방에서 보여주는 특별함에는 젊은 연인 캐롤린이 4년 동안 세상을 바라본 시선, 일본인 철학자 야나 이하라 이사쿠의 이지적인 눈매 등, 자코메티에게 이 모든 ‘시선’은 죽음과 살아있는 개인을 구별해주는 유일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