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의 무게와 그 의미
요즘 길거리나 지하철을 걷다 보면 검은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젊은 여성들을 종종 보게 된다.
티셔츠 등판에는 큼직하게 ‘KOREA ARMY’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군인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보다는 일종의 패션 아이템으로, 단순한 멋으로 입은 듯하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문득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군복과 군화는
단순한 의류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질기고 튼튼함의 상징이었고, 어른 세계로의 막연한 동경이 담겨
있었다. 친구들 중 일부는 구제품 시장에서 군복을 사와 검정색으로 염색해 입고 다녔다. 그 시절 군복을
그대로 입었다간 헌병에게 붙잡혀갈 수도 있었기에,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멋내기’였다.
군화는 그 시절 소년들의 자존심이자 일종의 무기였다. 운동화로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단단한 밑창과
거친 질감은, 길가에 놓인 돌멩이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했다. 찼을 때 날아가는 느낌, 그 울림은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강함’의 감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안도현 시인의 시구,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가 말리는 그 연탄재조차, 그 시절의 우리에겐 군화로 박살 내고 싶어지는 대상이었다. 차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넘치는 에너지가 주체 안 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지금도 ‘NAVY’라고 적힌 모자를 즐겨 쓴다. 대학 시절, 해군 함정에서 열린 행사에 학생 대표와 함께
초청받아 갔다가 기념품으로 받은 것이다. 이후 해군 장교로 군복무를 하며 쌓은 시간 덕분에, 이 모자는
나에게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며 자부심이다. 모자를 쓰면 나 자신이 시니어 해군으로 존재하는
듯한 감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단지 멋으로 소비되는 ‘KOREA ARMY’라는 티셔츠를 볼 때마다 씁쓸함이 먼저
든다. 군인의 정체성과 훈련, 그 책임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전우를 등에 업고 걷던 행군의 기억, 폭우 속에도
무너지지 않아야 했던 작전의 긴장감, 그 모든 것들이 단지 ‘멋’으로 소비되기엔 무겁고도 진지하다.
나는 군이 좀 더 분명한 선을 그어주었으면 한다. ‘ARMY’라는 명칭이나 상징을, 일반 상업활동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군의 상징성과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군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다.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서 있는
집단이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마지막 방패여야 한다.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 그리고 군인의 상징은, 그 무게만큼이나 신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군복에 품었던
동경과 존중이 가벼운 유행으로 흩어지지 않기를, 나아가 다음 세대에게도 군이 신뢰와 존경의 이름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