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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m.dcinside.com/board/napolitan/51407
성호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건 화요일 오후 세 시쯤이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평소 같았으면 받지 않았을 텐데, 그날따라 사무실이 너무 조용해서 그냥 받아버렸다.
"혹시 윤성호 씨 아십니까?"
나는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12년 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상대는 자기를 어느 장례식장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고인의 휴대폰에 즐겨찾기로 저장된 번호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게 내 번호였다고 했다.
"연고자가 안 계셔서요. 혹시 와 주실 수 있으실까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나는 안 간다고 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입에서는 "제가 그분이랑 연락 끊은 지가 오래돼서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모니터의 같은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즐겨찾기에 내 번호 하나.
12년 동안 나는 그 새끼 번호를 차단해 뒀었는데.
성호와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붙어 다녔다.
같은 동네, 같은 고등학교, 같은 군대는 아니었지만 휴가 때마다 만났고, 제대하고 나서는 거의 매일 봤다.
스물여덟에 우리는 작은 인테리어 시공 회사를 차렸다.
상호는 '한길'이었다.
한 길로 가자고, 성호가 지은 이름이었다.
사무실이랄 것도 없이 봉고차 한 대랑 공구 그리고 둘이서 시작했다.
처음 2년은 정말 좋았다.
원룸 도배부터 시작해서, 상가 인테리어를 따내고, 나중엔 제법 큰 카페 시공도 맡았다.
돈이 돌기 시작하니까 일을 키우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키우고 싶어 한 건 나였다.
성호는 자꾸 천천히 가자고 했고, 나는 그게 답답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끌어다 썼다.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건 다 빌렸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결국 사채까지 손을 댔다.
둘이 연대보증을 섰다.
3억 가까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미친 짓인 줄도 몰랐다.
그리고 거래처가 부도가 났다.
우리가 받을 돈이 통째로 묶였다.
한 달, 두 달 자재값이 밀리고, 인건비가 밀리고, 이자가 밀리고..
사채업자들이 사무실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점잖게 나중엔 점잖지 않게.
나는 그때 거의 매일 밤 토했다.
이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성호는 이상하게 차분했다.
그게 더 무서웠는데, 나는 그게 무서운 줄도 몰랐다.
어느 날 밤, 성호가 소주를 사 들고 우리 집에 왔다.
둘이 말없이 두 병쯤 비웠을 때, 성호가 그랬다.
"야, 너는 빠져."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정리할 테니까 나는 손 떼라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듣지도 않고 화부터 냈다.
같이 시작한 일인데 혼자 정리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폼 잡지 말라고.
성호는 그냥 웃었다.
"내가 폼 잡는 거 봤냐."
그게 내가 기억하는 그날 밤의 마지막 대화다.
나는 취해서 먼저 잠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니 성호는 가고 없었다.
소주병만 가지런히 치워져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성호가 사라졌다.
회사 통장에 남아 있던 돈 그리고 마지막으로 받은 공사 잔금까지 전부 빼서.
사채 계약서를 다시 확인했을 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언제 그렇게 해놨는지 차용증의 주채무자가 성호 단독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보증인에서도 빠져 있었다.
서류상으로 나는 그냥 성호한테 회사를 빼앗기고 돈을 떼인 동업자였다.
피해자였다.
사채업자들이 나를 찾아왔을 때, 그들조차 황당해했다.
"윤성호가 다 가지고 튀었네. 너는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렇게 성호는 3억을 짊어지고 사라졌고, 나만 멀쩡하게 남았다.
나는 그 일을 이렇게 이해했다.
성호가 처음부터 다 계획했다고.
회사 키우자고 부추긴 것도 사채 끌어다 쓰자고 한 것도 결국 마지막에 돈만 빼서 도망친 것도.
나를 호구로 잡고 처음부터 등쳐먹을 생각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모든 게 들어맞았다.
분노는 편리했다.
분노는 내가 아무것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게 해줬다.
나는 성호 번호를 차단했다.
그리고 12년 동안 누가 성호 얘기를 꺼내면 그놈은 사기꾼이라고, 친구를 팔아먹은 새끼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위안이 됐다.
장례식장은 시 외곽에 있는 작은 곳이었다.
빈소에 영정 하나, 조화 두 개.
조화 하나는 장례식장에서 의례적으로 놓은 거였고, 하나는 보낸 사람 이름이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영정 속 성호는 늙어 있었다.
당연한 건데, 나는 그게 이상하게 충격이었다.
내 기억 속 성호는 스물여덟에서 멈춰 있었으니까.
사진 속 그 새끼는 마흔이 넘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증명사진을 쓸 데가 없어서 어디 등록증 같은 데 박혀 있던 사진을 급하게 뽑은 것 같았다.
직원이 종이백 하나를 건넸다.
고인의 유품인데, 연고자가 없으니 가져가시는 게 좋겠다고.
받기 싫었지만 거기서 안 받겠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집에 와서 종이백을 한참 동안 식탁 위에 그냥 뒀다.
술을 한 병 비우고 나서야 열었다.
낡은 휴대폰 하나, 충전기 그리고 손바닥만 한 수첩.
휴대폰은 옛날 모델이었다.
화면에 금이 가 있었다.
충전을 하고 켰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우리 회사 차렸던 날짜를 넣어 봤다.
열렸다.
0921.
9월 21일.
한길 차린 날.
그 비밀번호를 12년 동안 안 바꿨다는 걸 안 순간, 나는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연락처는 거의 비어 있었다.
정말로 즐겨찾기에 내 번호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음성 메모 폴더에 녹음 파일이 가득 차 있었다.
아흔 개가 넘었다.
가장 오래된 건 12년 전 날짜였다.
나는 첫 번째 파일을 재생했다.
잡음 사이로 성호 목소리가 나왔다.
젊은 목소리였다.
"어... 야. 나야. 너 이거 안 듣겠지만."
"미안하다. 설명을 못 하고 와서."
"내가 다 가지고 튄 걸로 돼 있을 거야. 그렇게 보이게 해놨어."
"그래야 그 사람들이 너 안 건드려."
"연대보증 그거 너 진짜 큰일 나는 거였어. 그 사람들 장난 아니야. 우리 둘 다 못 버텨."
"근데 둘이 같이 도망치면 둘 다 잡혀. 한 명이 다 안고 튀어야, 한 명이 살아."
"내가 너보다 발이 빠르잖아. 옛날부터."
거기서 성호가 웃었다.
나는 그 웃음소리에서 재생을 멈췄다.
한참 동안 멈춰 있었다.
두 번째 파일을 누르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파일들은 날짜순이었다.
성호는 도망 다니면서, 한 달에 한두 번씩 나한테 녹음을 남겼다.
보내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 폰에다 남겼다.
전화를 걸면 내가 안 받을 거란 걸 차단했을 거란 걸 알았으니까.
"오늘 대구 쪽으로 넘어왔어. 여기 일자리 하나 구했다. 비 새는 모텔인데 사장이 사람은 좋아."
"이자가 줄긴 줄더라. 원금이 안 줄어서 그렇지. 뭐, 천천히 가야지. 너는 내가 천천히 가자고 하면 맨날 답답해했잖아."
"그 사람들 아직 너 쪽은 안 가지? 안 갈 거야. 서류 깨끗하게 해놨으니까."
"너 결혼했다는 얘기 들었다. 건너 건너. 잘했어. 청첩장 못 받아서 좀 섭섭하긴 한데, 내가 갈 처지도 아니고."
나는 거기서 또 멈췄다.
나는 그 새끼한테 청첩장을 안 보낸 게 아니었다.
보낼 생각조차 안 했다.
결혼식 날, 나는 친구들한테 성호 욕을 했다.
그런 새끼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알 게 뭐냐고 쓰레기 새끼. 하고.
그날 성호는 대구 어느 모텔에서, 받지도 못할 녹음을 남기고 있었다.
파일을 넘기다가, 익숙한 게 나왔다.
3년 전 날짜.
"야, 너 회사 어렵다며.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들지."
"내가 좀 보냈어. 많이는 못 보내고. 이름 없이 보내서 너 모를 거야. 환급금이나 뭐 그런 걸로 보일 거야."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3년 전, 나는 정말로 회사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때 통장에 정체 모를 입금이 몇 번 들어왔었다.
입금인 이름이 무작위의 숫자로 이루어진 이상한 입금.
나는 그걸 거래처 환급이나 세금 환급쯤으로 생각하고, 운이 좋았다고 여겼다.
그 돈으로 직원 월급을 막았다.
그 돈이 성호 돈이었다.
3억을 떠안고 12년을 쫓겨 다니던 놈이 어디서 긁어모았는지 모를 돈을 나한테.
나는 그 돈을 받고도 그 녀석 욕을 했다.
뒤로 갈수록 녹음 속 성호의 목소리가 변했다.
처음엔 단순히 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요즘 잠을 잘 못 자. 누가 자꾸 따라오는 것 같아."
"아니, 그 사람들은 아니야. 그 사람들은 몇 년 전에 빚 다 정리됐어. 원금도 거의 다 갚았고. 이젠 안 쫓아와."
"근데 뭔가가 계속 따라와. 발소리 같은 게. 밤마다."
"내가 미쳤나 봐. 너무 오래 혼자 다녀서."
나는 그 부분을 두 번 들었다.
빚은 다 갚았다고 했다.
그럼 성호는, 빚이 끝난 뒤에도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
왜 나한테 연락 한 통, "나 이제 다 갚았다, 사실 이랬다"는 말 한마디를 안 했을까.
다음 파일에 답이 있었다.
"너한테 돌아갈까 생각했어. 다 갚았으니까."
"근데 못 가겠더라."
"내가 가면, 네가 알게 되잖아. 12년 동안 네가 나를 욕하면서 살았던 게 다 틀렸다는 걸."
"그게 너를 더 힘들게 할 것 같아서."
"그냥 네가 나를 나쁜 놈으로 알고 사는 게, 너한테는 더 편할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해야 되는데. 왜 자꾸 네가 미안해질까 봐 걱정이 되지."
나는 휴대폰을 식탁에 내려놨다.
손이 떨려서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몇 개의 파일은 날짜 간격이 짧았다.
며칠에 하나씩.
그리고 목소리가 분명히 이상했다.
"발소리가 이제 낮에도 들려."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해. 근데 가끔, 내 목소리로 말해."
"오늘은 그게 나한테 그러더라. '너도 똑같잖아.'"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그 다음 파일.
"이제 알 것 같아."
"이건 빚쟁이가 아니야. 이건.."
"나는 너를 믿었어. 네가 언젠가는 내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그 믿음이 안 갚아진 채로 너무 오래 쌓이면 이런 게 생기나 봐."
"이게 나를 따라온 게 아니라 내가 이걸 키운 거였어."
"내 잘못이야. 너한테 한 번이라도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는데."
나는 다음 파일을 누르는 게 무서웠다.
그래도 눌렀다.
거의 속삭임이었다.
"이제 더는 못 막겠다."
"이게 곧 너한테 갈 거야."
"그러니까 너는 절대 이 녹음을 끝까지 듣지 마."
"끝까지 들으면 네가 다 알게 되잖아."
"제발. 여기서 꺼."
"제발 여기서 꺼라, 응?"
거기서 파일이 끝났다.
식탁 위 휴대폰에는 아직 재생하지 않은 파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가장 마지막 파일이었다.
날짜를 봤다.
성호가 죽은 날짜보다 이틀 뒤였다.
죽은 사람이 죽고 이틀 뒤에 남긴 녹음.
나는 그걸 한참 동안 쳐다봤다.
끄라고 했다.
듣지 말라고 했다.
근데 나는 12년 동안 그 자식 말을 한 번도 안 들었다.
그 자식이 사실대로 말하려고 할 때 화부터 냈고, 녹음을 남길 때 번호를 차단했고, 돈을 보냈을 때 욕을 했다.
딱 한 번이라도 그 자식 말을 제대로 들었으면 12년이 이렇게 흐르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나는 또 그 자식 말을 안 듣기로 했다.
이번 한 번만 마지막으로 또 안 듣기로 했다.
재생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때 현관에서 발소리가 났다.
터벅, 터벅.
나는 혼자 산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렸다.
내 목소리였다.
"야. 나야."
"너 이거 안 듣겠지만ㅡ."
첫댓글 둘이 사랑하나봐...
잊을 수 없나봐...
자꾸 생각 나...
아니 미친놈이 일 키운건 본인이고 수습은 성호가 해줬는데. 회삿돈 다 들고 튀어도 못갚는 빚인거 알면서도 왜 욕하냐ㅡㅡ 눈치가 이렇게 없고 머리가 안돌아가는데 사업이 되겠냐
성호는 어쩌다 얘를 사랑해서
성호 찐사네 ㅍ
진짜 개 짜증나는 글쓴이네;; 성호 개불쌍
처음과 똑같네 화자도 그 굴레에 들어간 걸까
이건 러브스토리인데...... 성호 망사....
성호 ᐲᗨ˖*· 불쌍해서 눈물고임
아니다 한남 불쌍해하지말아야지
그래서 마지막 저 귀신 뭔데!!
이 싸가지 없는 놈
망사
사랑이네
성호 개불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