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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덮치는 검은 그림자 - 그 순간 그가 번쩍 눈을 떠 김준수 도경수 소희 심창민
경수는 짧게 좆됐다. 하며 속으로 뇌까렸다. 좆같다는 말로 밖엔 이 상황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고등학교 친구인 종대와 오랜만에 만나 점심부터 같이 하던 게임을, 시간 가는 지도 모르고 새벽 1시까지 뭉개다가, 새벽 1시에 막차인 버스를 생각하고 종대의 집에서 나왔다. 잘 들어갈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종대네 집에서 나왔다. 버스는 끊겼고, 대로변이 아닌 주택가 근처는 택시가 전혀 다니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경수는 고민한 번 없이 종대와 경수의 집 중간을 가로지르는 산으로 향했다. 산 뒤편으론 사람이 살지 않는 평지로 이어져 있고,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걸으면 경수가 사는 동네가 나온다. 가파른 산들을 뒤로 하면 곧 오분쯤 걸으면 바로 집이 나온다. 새카만 어둠과 희뿌연 빛을 뿜는 보름달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두운 숲 속을 걸을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치긴 하지만, 큰 산인 것을 감안하여 산 중간 쯤을 돌아서 걸으면 힘들지도 않고 꽤 갈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간에서부터 점점 느낌이 이상하더니,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온 몸을 휘감았다. 새카맣게 말라 비틀어진 을씨년스러운 나무들과, 사위를 까맞게 물들이는 어둠, 놀리듯 흰 빛을 뿜는 보름달 까지. 공포는 턱 끝까지 차오른다. 걷는 것도 하지 않고 이곳 저곳을 뛰어다녀도, 어디가 어디인지. 어둠이 이 공간을 벗어나긴 할 수 있을지, 공포가 그의 머리를 마비 시킬 즈음, 어딘가에서 빛이보였다. 막 꺼질 거 같던 향촛불을 들고 있던 사내는 피처럼 시뻘건 머리를 한 남자였다. 창백한 얼굴과, 품이 큰 흰 와이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사내는 촛대를 움켜쥐면서 말했다. "길을 잃어버리신 건가요?" 공포에 질린 경수는 안도감에 정수리 끝이 쭈뻣 서 발끝이 땅 밑으로 쑥 꺼지는 기분이었다. 경수는 그저 말간 눈물로 그저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산은 사람을 홀려요, 낮도 낮이지만 밤에는 조심하세요. 사람들은 물이 무서운 건 알지만 숲이 무서운 건 모릅니다. 특히 볕도 잘 들지 않는 곳은 더욱이요." 경수는 멍하게 남자의 말을 듣고 멀거니 남자를 바라봤다. "늦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저희 집이 있어요. 해가 뜨면 돌아가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여기 근처에 있는 산에서는 삵이나 멧돼지도 나옵니다. 잘못 걸으셔서 멧돼지 덫으로 파놓은 커다란 구덩이에 빠지면 답도 없습니다. 사다리가 없는 이상 그곳은 빠져 나갈 수 없으니까요. 밤일 때 숲은 몇배로 위험합니다." 경수는 선택권이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남자의 말대로 위험하기도 했고 볕이 들기를 기대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남자를 쫓아 걷는다. 새카맣게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을 보면 팀버튼이 그린 나무들을 응집해 놓은 기분이었다. 근처에 집이 있다는 건, 동네에 가까워 졌다는 건가? 그렇다면 눈에 익는 곳이라면 집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즈음, 남자의 걸음이 멈췄다. 남자가 걸음을 멈춘 곳엔 크고 낡은 양옥집 하나가 있었다. 비현실적이게도, 남자의 집은 인적이 드문 숲 깊숙한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씻고 갈아입을 옷 준비해드릴 테니까 씻으세요." 홀같은 1층 거실을 지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나선형 계단을 올라, 남자는 2층 복도의 불을 켰는데, 깜박이며 켜진 등(燈)은 밝지 않아 2층 자체가 소름끼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온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그마저도 잠깐씩 깜빡이기에 가만히 만 있어도 등골이 서늘했다. 경수는 순간, 깊을 갈증을 느끼는 의문을 느꼈다. "왜 처음 본 사람을 집까지 들여보내 준 거에요?" 멍하던 의식을 다집은 순간, 이미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돌아 서 내려 가려던 남자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남자의 검불은 입술 아래 송곳니가 반짝였다. "산에 홀리면, 사람은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남자는 미련 없이 계단을 내려간다. 남자의 성인 남자 답지 않은 오묘하고 미묘한 느낌을 주는 허스키하고 높은 목소리는, 경수의 머릿속에 계속 메아리 쳤다.
두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경수는 남자가 준 옷으로 갈아 입고 나와, 게스트룸인 2츠 끝방에서 살짝 문을 열어 놓고, 밖을 살폈다. 애초에 너무 순순하게 들어온 걸까 공포에 머리가 돌아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2층 홀로 남자가 걸어 들어온다. 남자의 손엔 와인 글라스가 들려 있었는데, 검붉은 색으로 찰랑거렸다. 경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복도 가운데 방을 여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걸을 때 마다, 풍기는 피비린내에 머리가 돌아버릴 거 같았다. 비현실이 눈 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사람들은 비현실을 그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순간이 그랬다. 파자마일지도 모르는, 프릴 실크 셔츠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와인 글라스는 결과적으론 한 가지 단어를 상징하는, 무엇보다 확실한 이미지였다. 온 몸에 털이 쭈뻣 일어난다. 말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공포가 온 머리를 잠식하고 공포가 온 몸을 휘감았을 땐, 무기력이 온 몸을 휘감은 뒤였다. 경수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죽을지도, 죽을 지도 몰라. 산에 홀린 게 아니야, 괴물...괴물한테 홀린 거지. 눈물이 나왔다. 털썩 주저 앉아서 비죽비죽 흐르는 눈물을 그저 소매 끝으로 훔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문 밖으로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피비린내도 더욱 강해진다. 공포에 정신이 아뜩해질 지경이었다. 끼이익- 낡은 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남자는 싱긋 웃으면서 몸을 반쯤 방 안에 들였다. "아직 안 주무시네요." 대답할 생각도 못하고 남자를 올려다 보고 있을 때, 남자는 글라스의 피를 홀짝이며 마시더니 미련 없이 뒤돌아서 문을 닫고 걸어간다. 안도와 의문이 뒤섞인다. 공포를 다그쳐서 극도의 정신 충격에 가까워 졌을 때, 죽이는 거라면 정말 끔찍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 "...요" "....기요...!" "...저기요!" 흐리멍덩한 눈에 힘이 들어왔을 때, 내가 문가에 주저 앉아 졸도하듯 잠들었었다는 것을 알았다. 빨간 머리의 남자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가르키며 말했다. "9시에요. 산 중턱까진 바래다 드릴게요." 혼몽한 정신을 다잡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을 땐, 약하지만 방 안이 어제와 다르게 약간 더 환해 보였다. "이 산이 뒷산 그림자 때문에 볕이 안들어요. 그래서 해가 떠 있을 시간도 어둡습니다. 씻고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1층 거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남자는 자기 할 말만 하곤 밑으로 내려가 버렸다. 경수는 미심쩍은 마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머리를 털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밖은 밝을 테니, 도망치면...칠 수 있을 거라고.
1층에 있던 남자는 나른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고, 정장에 긴 코트를 입고 가죽 장갑을 낀 채 검은 장우산을 들고 있었다. 경수가 내려오자, 남자는 일어나 현관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남자를 좇아 걸으면서, 갑자기 덮치면 어쩌나 걱정하는 자신과 무색하게 그가 농담하듯 가벼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까맣게 비틀어진 죽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 보였다, "대부분 저희 집에 들르면 무섭다고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고들 하거든요." 살아 돌아간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맘으로 저런 말을 내뱉었을지 수백 번이고 동감했다. "근데 그쪽은 별로 안 무서워하나 봐요?" 남자가 웃음끼가 묻어 나오는 표정으로 말했다. "...티를 못 냈을 뿐이지, 무섭긴 했어요." "거의 100년된... 아니 넘었나? 쨌든 엄청 오래된 건물이라 그래요. 이해해요. 저야 너무 오래 살아서 이제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나 보네요." 남자는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남자의 말대로 볕이 들지 않는 산이었다. 뒷 산 그림자에 볕도 들지 않아, 까맣게 말라 비틀어진 나무로 이루어진 숲은,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했다.
"우리의 만남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바래야 겠네요. 잘가요. 여기 앞으로 가면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울창한 야산이 있어요. 볕도 잘 들어서 사람들도 많고 등산객도 많으니 길을 물어보며 가면 무리 없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에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뒤돌아 사라졌다. 남자의 말대로 사람들이 많은, 푸른 잎으로 울창한 숲이 나오고, 하나 둘 등산객들이 보이고 곧 길을 써 놓은 팻말까지 보였다. 팻말을 따라 산을 내려오자, 익숙한 동네 어귀가 눈에 보였다. 얼떨떨하게 길 가이드까지 받고, 동네로 돌아왔다. 꿈같은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
경수는 멍하게 집안 거실에서 하는 뉴스를 바라 보고만 있었다. '드라큘라 사건'의 4번째 피해자였다. 사인은 과다 출혈, 그런데 그 과다 출혈은 목 부분의 두 개의 송곳니로 찌르는 듯한 구멍이 보였다. 정확히 동맥 부분이었다. 사망 피해자들은 우리 동네를 거쳐 전부 여기 근처였다. 눈 앞이 아찔했다. 아아 - 신고를 할까? 그럼 경찰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말 건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쳤을 때. 그냥 신경을 끄고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고 살았었을 때처럼. 가만히 있으면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어. 그저 돌아가는 거야. 약하기 때문에 비겁해진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경수는 끊임없이 합리화했다. *** 새카만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에 들어온 경수는 영정사진 앞에서 두 번 절을 하고 상주로 앉아 있는 창민 옆에 섰다. 마지막날인 장례는 특히나 늦은 밤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적었다. 조금 있던 사람들도 점점 빠져 나가고 사람 몇 없는 없는 그 텅 빈 공간에서 창민은그저 퉁퉁부은 눈으로,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 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새카만 정장을 입고, 새빨간 머리를 한 남자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남자는 신발을 벗고 들어와 두 번 절을 하고, 창민 앞에 앉는다. 그는 말 없이 창민의 등을, 손으로 도닥일 뿐이었다. 그것이 위로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는 표정으로. 놀라서 남자에게로 시선이 갔다. 남자는 눈을 피하지 않는다. 숨이 턱 막힌다. 돌아가야 하나,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건지, 갈피도 잡히지 않았다. 슬슬 돌아가겠다며 걸음을 돌리는 나에게 창민이 형이 육개장이라도 먹고 가라며 말했지만, 시간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말하고 뒤돌아 걸었다. 햇빛이 강하면 피부가 벌겋게 일어나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기도 했었고, 남자가 무섭기도 했다. 건물을 나와 빠르게 걸었다. 그때 누군가가 팔목을 쥐고 돌아섰다. "또 보네요."
경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하이톤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고막을 할퀴고 가듯 옹골지게 고막에 잔상을 남겼다. "이름이 뭐에요? 세상 참 좁아요." "....경수요. 도경수." "전 김준수에요." 저 이름이 본명일까, 생각해 봤는데 분명 수많은 가명 중 하나 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성명을 하는 상황 자체가 웃기고 무서웠다. "저, 언제 한번 다시 집으로 놀러 가도 돼요?" 무슨 생각으로 입을 비집고 나온 말인지 모르겠다. 남자는 씨익 웃는다. 온 머리가 혼몽하고 아뜩했다. "언제 든지요. 곧 해뜰 거 같은데. 잘 가요."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남자와의 재회가 있을 것이라고. 또, 그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 카페로 들어서는 창민을 경수는 눈으로 쫓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창민이 웃으며 인사하며 맞은 편으로 와 앉았다. "자료가 좀 많은데...디스켓도 있고 씨디도 있는데 대충 엑기스 카피본 파일이야."
남자와의 재회 후 세 달이 지났고, 희생자는 기사만 난 것만 해도 열명에 육박했다. 그러다 돌아가신 창민의 아버지가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흥미롭게 '뱀파이어'에 대한 존재를 쫓던 사실을 알아냈다. "뭐 나도 대충 읽어봤는데. 익숙하게 아는 건 다 맞아. 햇빛에 화상을 입어서 어둠 속에서 살고 피를 마시고 시체 마냥 창백한 피부라던가 송곳니가 길고 뭐 그런 거, 근데 좀 특이한 게 있긴 하더라." 경수는 눈으로 내용을 훑으며 말했다. "뭔데요?" "실제로 뱀파이어를 만났다는 학자가 몇 되는데, '순혈'이랑 '감염'으로 나뉜대. 순혈은 본투비 뱀파이어지만, 감염자는 약간 달라." "감염자요?" 경수가 용지에서 눈을 떼고 창민을 바라보고 물었다. "응. 만약엔 18살 전에 물리면 발현이 안되는데, 18살을 기점으로 엄청난 고열과 함께 변해. 물론 개인차는 있지만 보통 18살이 보편적이라고 해. 일종의 잠복기인 거야. 성인에게는 잠복기가 없다고 한대. 물론 그거야 물리고 나서 살았다면 가능한 얘기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디테일한 정보였다. 경수는 한번 더 용지를 눈으로 훑었다. 활자들이 눈 안에서 춤추는 느낌이었다. "적긴 한데, 형제나 남매. 자매가 있는 경우도 있더라고." "남매요?" "응." 창민은 고갤 끄덕이며 카피본을 들추며 말했다. "...생물학적으로 뱀파이어를 조사한다는 게..." 경수는 종이를 뒤적이며 말했다. 생물학적으로 파헤쳐 진 정보들은, 모두 일리 있는 말들이었다.
"아버지는 매력적인 생명체라고 생각하고, 허무맹랑하다 욕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평생을 바치셨어. 물론 목격자가 몇 없고 그것도 좀 오래 됐지만, 수정의 수정을 거듭한 흔적이 있어." 무엇보다 자신의 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일이었다. "저 형, 만약에...요즘 일어나는 '드라큘라 사건'이 진짜 드라큘라의 소행일 가능성. 있어 보여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보이는데. 송곳니로 무는 악력은 물론이고 사이에 넓이라던가 뭐 그런 걸 보면 어느 생물인지는 대강 추려 나오는 법인데, 국과수가 사람일 가능성도 잇어서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야." "형, 만약에 이건 진짜 만약에 인데. 형 주위 사람이 알고 보니 뱀파이어면 어떨 거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냥 그냥 그 정도?" 창민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마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리라, 장례식장에서 창민의 등을 도닥이던 그가 생각이 났다. *** 재회했었을 때 말한 대로, 남자의 집에 찾아왔다. 그것도 밤에 길을 잃어 그가 또 손을 내민 거 지만. 반은 남자를 다시 만나고 싶었고 반은 이대로 해가 뜨길 바랬다. 알레르기 때문에 살갗이 따가울 지라도, 어딘가 무서웠다. 호기롭게 집에 가도 되냐 물었던 건 순전 그곳에서 '죽음'의 단서를 찾아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는데 다시 둘러본 그곳은 더럽게 을씨년 스럽고, 동시에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 같지 않던 그 곳 2층 홀 쇼파엔, 이미 웬 쌍꺼풀이 없는 큰 눈을 가진 여자아이가 다리를 꼬고 앉아 낡은 티비보며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손톱을 물어 뜯고 있었다. 누구지? 왜 여기 있는 거지? 여러 생각이 뒤섞일 때, 그가 지나가며 말했다. "내 여동생이야." 남자는 나보다 어릴 테니까, 말 편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순간 아찔하게 창민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적긴 한데, 형제나 남매. 자매가 있는 경우도 있더라고." "둘이 살아요?" 물으며 돌아보니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날 보던 여자아이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에게 머무른다. 소녀는 어둡고 날카로우며, 차가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입을 열었다. "오빠 누구야?"
"손님." "...저번에 걔야?" "어. 그리고 소희야 걔가 아니라..." "도경숩니다." 통성명을 할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냥 그래야 할 거 같았다. 여자아이는 날 뜯어보듯, 날 훑어봤다. "...이상한 애네. 원래 우리 집은 한번 오면 다신 안 오려고 하는데. 무서운 거 즐기는 변태야?" 남자가 호탕하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저번에 밖에서 한번 만났었는데 다시 오고 싶다고 했거든. 근데 또 헤매고 있더라고. 약속된 손님일 뿐이야." "....새 나." 여자애가 웅얼거리듯 말하고 자신의 방인지 2층 첫 번째 방으로 쏙 들어갔다. 남자는 외투만 대충 2층 홀 쇼파에 내려놓고 밥 해올 테니까 기다리라 말했고, 여자애도 적잖이 무서울 거 같기에 같이 내려가자고 했지만, 그는 손님이니 그냥 앉아있으라 할 뿐이었다.
남자가 내려가고, 2층 홀에 혼자 앉아 있는데 여자애가 방에서 나와 아래 계단으로 내려갔다. 소녀의 손엔 혈액 팩에 대강 구멍을 뚫어 빨대를 꽂고 그것을 음료수 마시듯 쭙쭙거리고 있었다. 진동하는 피비린내에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 양식으로 된 저녁을 먹고, 남자는 시간이 늦었으니 슬슬 자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올라갔다. 난 부리 나케 남자를 쫓아 올라가, 이미 사람이 없어진 빈 2층을 훑어보고 원래 있었던 2층 끝에 있는 게스트룸으로 향했다. 씻을까, 싶어 고민하며 나른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애는 날 뜯어보더니 누워 있는 내 위로 올라와 앉아 내 목가에 코를 대고 킁킁댔다. 소름이 돋는다. 여자앤 내 팔목을 두손으로 쥐고 움직이 말라는 뉘앙스로 날 쳐다보더니, 목께를 킁킁거리다 입가 근처에 키스할 것 처럼 가까이 닿은 상태에서,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뜨고 분명하게 말했다. "너한테서 피 냄새나."
소희는 입술을 짓이겨 물더니 그저 그렇게 일어나, 홱 사라졌다. 멍하게 문가를 바라봐도. 인기척은 꽤 오래 없었다. 긴장이 풀리자 경수는 잠드는 줄도 모르고 잠에 빠졌다. *** 옷도 갈아입지 않고 일어나 까치집이 된 머리를 정리하면서, 드라큘라가 둘이나 되는 이 공간을 빠져 나가야 하는데 익숙해진 얼굴이지만 잔뜩 쫄아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남자가 문을 열고 일어나 멍하게 있는 나에게 말했다. "벌써 일어났네?" "몇 시에요?" "10시." "오늘 어디 나가요 형?" 형이라는 말이 입 밖을 비집고 나왔다. 잠이 막 깬 흐리멍덩한 머리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모양이었다. "응, 슬슬 나가자. 나와 밑에서 기다릴 게." 남자는 흡족하게 웃으며 내려갔다. 살찌워 먹으려는 거겠지만, 친절하게 밥도 주고 재워주는 괴물이 이상했지만 위협이 없으면 사람은 맘을 놓고 경계를 늦춘다. 남자도 똑같았다. 경계를 늦춰선 안될 상대인데도, 반은 두려움에 떨며 질려 있었고 반은 경계를 늦추고 있었다. 씻고 내려오자, 말쑥한 정장에 검은 장 우산에, 역시 까만 가죽 장갑을 낀 남자가 보였다. 점점 더워지기에 더워 보인다 말했더니, 햇빛에 약해 어쩔 수 없다며 웃었다. 남자는 산 중턱에 가까워 지자, 장 우산을 폈다. 빛들이 까만 우산 위에서 부서져 내린다. 볕이 점차 강해진다. 경수는 죽어도 알레르기 때문에 우산 좀 나눠 쓰자는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냥 걸었다. 그림자 안에서 걷던 남자는 경수를 슥 보더니 우산을 가운데에 대고 말했다. "햇빛에 피부가 일어나는 게 꼭 뱀파이어같다. 따갑다고 말을 하지." "견딜만 했어요." 벌겋게 일어난 목께를 주물럭거리며 신빙성없는 이야기를 내뱉었다. 남자는 산 중턱을 넘어서 까지도 경수와 동행하기에 경수가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가나 봐요?" "응. 오랜만에 누구 좀 만날 까 해서." 경수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그저 남자를 좇아 걸었다. 남자는 헤어질 지점이 되자, 또 보자며 웃으며 뒤돌아 섰다. 또 보자....또 보자니....또.....
***** 그의 집에 갔다 오고 나서, 피해자는 13명 째라는 기사가 나왔다. 자신이 그의 집에 있는 동안, 잠든 동안 그는 나가서 사람을 해치고, 흡혈을 한 것이다. 오한과 어째서 자신은 건들지 않았는지 의문이 뒤섞인다. ** 경수는 종대와 산을 오르다, 음습진 어두운 곳에 있는 멧돼지를 잡으려는 구덩이를 발견했다. 생각보다 훨씬 깊고 넓었다. 이래서 사다리가 필요하다고 했구나 싶었다. 위험한 생각이지만, 어딘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에 경수는 종대를 앞세워 숲을 빠져나갔다. ***** "....수?" 먼 데서 소리가 들렸다. '그' 인 듯 했다. 먼 데서 그를 불러 여기까지 데려 온 뒤에 구덩이 빠트린 뒤, 문제 없이 올라온 다면 잡히든 잡히지 않던 세상에 그를 알리고 그를 신고할 생각이었다. 영락없는 뱀파이어일 테니까. 그런데 어둠 속에 발을 헛디뎌 준수를 밀어 넣으려 던 깊은 구덩이에 자신이 빠졌다. 정강이께가 삔 건지 화끈한 고통이 온 의식을 지배했다. 소리 한번 못 지르고 아뜩해 하는 데 먼데서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경수!"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이질적으로 귀 속으로 흩어진다. 고개를 들어, 새카만 어둠을 비집고 들어와 희뿌연 빛을 뿜는, 마치 그를 처음 봤었던 보름달처럼, 둥그렇게 놀리듯 떠 있는 보름달에게 시선이 갔다. 발목과 정강이께가 아닌, 온 몸에 후끈하게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으슬으슬 몸이 떨리고 팔팔 끓는 몸이 이대로 까무룩 죽을 수도 있겠다고 느낀 순간 남자가 구덩이로 들어와 날 흔들어 깨웠다. "경수야! 도경수! 야 정신 놓지 마 정신 차려!" 남자는 경수를 흔들어 깨웠으나, 경수는 정신을 잃어가는 건지, 까무룩 고개를 병든 닭 마냥 푹푹 앞으로 꺼졌다. "혀....형은....."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경수를 안고 흔드는 것도 멈추고 초조하게 앉아 있는 그에게 경수는 입을 열었다. "형은...드라큘라에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경수는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눈을 떴을 땐, 경수는 상상할 수도 없게 몸이 가뿐하다고 느꼈다. 음습한 구덩이엔, 눈을 감고 있는 그와 막 일어난 자신 뿐이었고 아침이 다가오는 모양인지. 하늘은 남색 빛이었다. 남자를 깨우려 가까이 다가가자, 남자의 목께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보였다. 독사에게 물린 것 처럼. 두개의 구멍이, 그의 목께를 자리 잡고 있었다. 경수는 털썩 주저 앉았다. 드라큘라가, 드라큘라가 드라큘라에게 물린 것 인가 그게 가능한 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경수는 급하게 그를 업고 빠져 나갈 수 없는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완만한 곳으로 가보려 발을 딛고 일어나는데, 성인 남자를 업은 상황에서도 의외로 가뿐하게 빠져 나왔다. 이렇게 만만한 공간에서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아니니 병원을 가도 뾰족한 수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밝아지는 하늘은 살갗을 지질 듯 뜨겁고 강렬하게 내리 쬐었다. 햇빛에 피부가 고통스러운 건 그도 똑같은지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그는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의 흰 볼에 기포가 일어나며 화상이 일어났다. 걸음을 빨리 해 뛰었다. 말라 비틀어진 까만 숲을 등지고 뛰었다. 그의 집이 시선에 가까워지고, 경수는 문을 멋대로 박살 내듯 열고 들어왔을 땐, 의외의 인물이 그의 집에 있었다. "경수야....?" "창민이 형?" "잠깐만 어떻게 된 거야?!" "형 일단 피...피 좀 가져다 줘." 창민이 형은 사색이 돼선 부엌에 있는 냉장고 두개중, 까만 냉장고를 열어 혈액팩 세팩을 들고 와, 능숙하게 팩을 뜯고 준수의 입에 흘려 넣어 주었다. 그는 고개를 찡그리다, 곧 그것을 받아 마셨고 그런 그를 창민이 형이 업어 침대에 눕히고 오겠다며 위로 올라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 있는데 그를 눕히고 온 건지 창민이 형이 내려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제 멧돼지 구덩이에 빠졌는데, 발목을 삐었는지 못 나가겠더라구요. 끙끙대고 있는데 준수형이 그 구덩이로 내려 온 건 기억이 나는데....그 이후는 정신을 잃고 기억이 안나요." "준수형? 너 준수랑 아는 사이야?" 경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준수가 말한 '그 아이'가...." **** 창민의 입을 비집고 나온 말들은 충격적이었다. "준수랑 소희는 유전적 결함 때문에 앓고 있는 희귀병 때문에 숲 속에 단 둘이 사는 거야," "희귀병이요?"
"응. 준수랑 소희는 둘 다 '포르피린증'을 겪고 있어. '드라큘라병'이나 '뱀파이어 증후군'이라고 불리기도 해. 잇몸 변화 때문에 더욱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약한 피부는 햇빛에도 화상을 입고 피가 없으면 살 지를 못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뱀파이어'자체야. 소희는 그거 때문에 학교에서 당한 왕따 때문에 대인 기피증에 걸려 숨어 살 듯 사는 거야. 난 준수랑 초등학교때 부터 친구고..." 맥이 탁 풀렸다.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저 그럼, '드라큘라 사건'은..." "놀라지 말고 들어. 준수랑 소희는 의료적 목적으로 언제나 피가 필요하기 때문에, 혈액팩을 사는 거지 남들 몸을 해쳐가며 피를 빼 마시는 괴물이 아니야... 범인은...." 창민은 한숨을 길게 쉬고 말했다. "범인은 너야. 도경수."
"응. 만약엔 18살 전에 물리면 발현이 안되는데, 18살을 기점으로 엄청난 고열과 함께 변해. 물론 개인차는 있지만 보통 18살이 보편적이라고 해. 일종의 잠복기인 거야. 성인에게는 잠복기가 없다고 한대. 물론 그거야 물리고 나서 살았다면 가능한 얘기라고 하지만." 잠복기가 끝날 시기를 알리는 건, 몽유병처럼 정신이 잠든 와중에 흡혈을 해 모자란 피를 충당하는 거야. 어렸을 때 부터 알고 지냈던 준수는 우리 아버지가 뱀파이어에 대해 연구하고 다니는 걸 알고 있었고, 네가 잠복기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넌 잠복기가 굉장히 느린 타입이었고. 23살이니까 5년이나 늦었네. 나는 알았냐고 묻는 다면 정말 완벽하게 몰랐어. 아주 가끔 걔가 그러더라 잠복기인 애를 만났는데 자신이 지금 어떤지, 전혀 모른다고. 그리고 자기를 무서워하는 게 티가 나는데, 그런 걔가 받을 충격이 안쓰럽다고. 잘해주고 싶다고. 그래서 마음이 쓰인다고. 그렇게 말을 하더라고 근데 그게 너 인 줄은 상상도 못했지. 준수는 죽을 뻔 했는데 그걸 업고 들어온 게 너였다니... 소희가 오빠가 안 들어온 다고 울면서 전화하길래 놀라서 김준수 기다리는데 네가 걜 업고 들어오는데 목에 이빨 자국이 있대. 그것도 구덩이에 둘 뿐인데...그리고 경수야 거울 좀봐. 지금 니 송곳니가 어떤지...
시완은 사위가 분간 되지 않는 까맣게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을 걸었다. 분명 길을 잃은 것 이리라, 그때 먼 데서 불빛이 보였다. 품이 큰 와이셔츠와, 까만 바지를 입은 남자는 촛대를 들고 있었다. 까만 머리와, 키가 작은 남자였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얼굴과 유난히 뾰족한 송곳니를 가진 남자가, 입을 열었다. "길을 잃어버리신 건가요?" ------------------ 포르피린증은 정말로 존재하는 병입니다. 신의 퀴즈 시즌1에서도 나왔던 병이죠. 드라큘라는 준수가 아니라 경수였다능... |
첫댓글 ㅠㅠㅠㅠㅠㅠㅠㅠ아 너무 좋아ㅠㅠㅠㅠ준수야ㅠㅠㅠ참미나ㅠㅠㅠ하 게녀 사랑해ㅜㅜㅜ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ㅜㅜ준수야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허유ㅠㅠㅠㅠㅠㅠ
헐 ㅜ ㅠ ㅠ ㅠ ㅠ ㅠ 너무 잘썼다
이런...시벌....준수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쩐다ㅠㅠㅠㅠ게녀 사랑해!!!!!♥♥♥
잘쓴당 ㅠㅠ
헐..ㅠㅠㅠㅠㅠㅠㅠㅠ
워....진짜 잘썻다ㅠㅠㅠㅜ
헐좋아....
헐.....대박이다...진짜
진심으로작가인줄필력쩐다팬픽이후로이렇게몰입한적처음이야ㅠㅠㅠㅠ걍대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