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의 네기둥 인 진리, 신성한 생명, 교회, 복음 중 두번째 기둥인 신성한 생명입니다.
신성한 생명은 체험과 누림에 관한 것으로 주의 회복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으로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이 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생명나무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신학 대학으로 이끈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려 그것도 풍성히 주려 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자라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주님이 우리 안에서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길가와 돌밭에 뿌려진 씨는 새가 와서 주워 먹고 흙이 얇아 싹이 나나
해가 돋은 후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버립니다.
이 터 밑에는 커다랗고 단단한 바위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단단한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감추어진 죄, 탐심, 교만 이러한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감추어진 돌덩어리들 입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백배, 육십배, 삼십배가 됩니다.
이는 흙속에 씨를 자라게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씨가 깨어 나게하는 요소입니다.
흙의 자양분이 씨의 풍성 속으로 들어가 식물이 되게 합니다.
식물은 씨에서만 생성된 것이 아닙니다. 토양과 어울어진 산출물입니다.
농부는 흙이 살아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어떤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의사소통 하시길 원하십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연합이 생명 안에서의 참된 성장입니다.
씨가 토양과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이는 먹은 음식이 소화되고, 동화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 한 말씀을 붙잡아 먹고 하루 온 종일 먹어
말씀이 우리와 하나되게 하는 것이 소화되고 동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먹는 것입니다. 먹음으로 자라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자라십니다. 이것이 주의 회복의 내용입니다.
세번째 기둥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유기체로서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 자신을 자라시는 방식으로 누린다면 우리를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충만입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고 말합니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입니다.
충만이라는 것은 흘러서 넘치는 것입니다.
속에서 겉으로 흘러 흘러 넘쳐남입니다. 이런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영 안에서 자라는 예수이시며 우리의 영 안에서 꽃피우시는 예수이십니다.
몸이 충만 되는 것! 안에서 겉으로 흘러 넘치는 것! 이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자라시게 해야합니다.
이것이 초점입니다. 초점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흘러 넘치도록 자라는 것!
에베소서 4장 3절에서 6절의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말씀과 같이 삼일 하나님이 인성과 연합되는 실재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교회생활의 실재입니다.
상호간에 옛 전통을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되는 것의 문제입니다.
찬송 할 때도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교회생활입니다.
교회 생활은 떡 한덩어리로 많은 밀알을 통해 가루가 되어서
기름과 함께 연합되어 굽는 과정을 통해 한덩어리의 떡이 됩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섞어주고 연합시켜 주어야합니다.
마지막 기둥인 복음입니다.
복음은 흘러나가는 것으로 일종의 선언이며 주의 회복의 위임입니다.
교회의 유일한 위임과 책임은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인 좋은 소식을 가져가야 합니다.
복음은 반드시 그분의 미덕을 선전하는 것이여야 합니다. 교회에 주신 미덕입니다.
이런 종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 피조물들에게 놀라운 예수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1절"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에서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이 원문 기록에는 복받으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라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받으십니다.
항상 우리가 복받기를 기도하며 축복하소서 라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우리로부터 축복받고자 하십니다.
복받으신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이 표현되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표현을 전할 수 있는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미덕들을 전하는 것으로 생명과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탄에게 말하십니다.
"사람들을 보라! 나를 구주로 영접하고 나를 표현하여
나를 축복받게 하고 있지 않으냐"라고....
이것은 높은 복음의 전파이며 왕국복음 인 것 입니다.
주의 회복은 왕국복음을 우리의 선언과 위임으로 삼아야 합니다.
제임스 리 형제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잔 리틀 형제님께서 우리에게 적용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체험에 있어서 과연 네기둥이 견고한가 검토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우리중에 매일 성경을 기도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라고 물으셨습니다.
자신있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기도로 먹고 어떤 날은 눈으로 읽고 어떤날은 지나가기도 하고...
매일매일에 신실하지 못함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으로 부터 위임을 받았으므로 "내가 당신께 나아가듯
말씀으로 나아가겠습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적용의 방면입니다.
또한 죽음은 십자가와 동일하고 부활은 그영과 동일합니다.
십자가에 내 자신을 더 적용하여 그 영안에 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체험하기 위해서 입니다.
생명의 체험이 있을 때 교회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이 말씀을 주시면서 교회가 왜 낡아 지는지 아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는 서로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낡아진 교회는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하나 결실이 없으며
왕국복음을 전 할 수 도 없습니다.
이것을 볼때 우리가 혼 안에서 변화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십자가의 적용을 통하여 그 영을 삶으로 우리의 혼이 변화되어
왕국복음인 주의 회복의 위임인 그분의 미덕을 선전하는 것!!
우리가 담당할 몫입니다.
교회가 낡아지는 이유는 서로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낡아진 교회는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 하나 결실이 없으며, 왕국복음을 전할수도 없다..는 말씀에 깊이 아멘입니다. 씻지않고 더러운 손은 복음을 만질수 없습니다.날마다 주님앞에 나아가서 ㄱ분이 우리 존재를 다루시고, 점검하시고, 폭로하시고, 정결케하시도록...
피곤한 몸은 나를 쉬게 하려 하지만 몸안의 지체는 자매님의 누림에 동참하는걸 기쁘합니다.육신은 죽음에 넘겨워야하며 참된 십자가의 체험이야 말로 부활 그영안에 우리를 안내합니다.왕국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지.이놀라운 복음의 깊이안에 계신 형제님의 누림의 실제를 맛보는것 같읍니다.자매님의글 감사 감사.
첫댓글 두편의 자매님의 글이 그날밤의 흥분을 되새기게 합니다.기둥이 세개만 되여도 견고한데 기둥이 네개이니 우리의 회복은 견고한 요새(?)입니다.진리.생명.교회.복음....아멘.아멘.아멘.
교회가 낡아지는 이유는 서로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낡아진 교회는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 하나 결실이 없으며, 왕국복음을 전할수도 없다..는 말씀에 깊이 아멘입니다. 씻지않고 더러운 손은 복음을 만질수 없습니다.날마다 주님앞에 나아가서 ㄱ분이 우리 존재를 다루시고, 점검하시고, 폭로하시고, 정결케하시도록...
피곤한 몸은 나를 쉬게 하려 하지만 몸안의 지체는 자매님의 누림에 동참하는걸 기쁘합니다.육신은 죽음에 넘겨워야하며 참된 십자가의 체험이야 말로 부활 그영안에 우리를 안내합니다.왕국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지.이놀라운 복음의 깊이안에 계신 형제님의 누림의 실제를 맛보는것 같읍니다.자매님의글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