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상형문자 / 차주일
외할머니 묘소에 큰절 올리는 엄마를 곁눈질한다
이보다 정성스런 말 또 있을까
누가 봐도 대성통곡 중인, 저 고요
온몸 관절 꺾고 굽혀야 요지부동이 되는, "ㄹ"
땅의 모음 "ㅡ"를 붙여 "르"로 읽는다 하지만
나는 자지러지는 울음 쏟는 입 "ㅇ"으로 전부일 때
길상좌 "ㅁ"으로 상체를 곧추고 ( ㅁ) 젖 불려 만든 (ㅓㅁ)
그 몸의 모음 젖꼭지를 물고
초성 자음 자리에 내 입을 놓았을 때
인류 최초의 상형문자인 "엄"자가 탄생했으리
태어나 혼신으로 젖을 빨고 삼킨 첫 모금
그 따뜻함과 모음의 냄새가 내 정신의 시초였으리
첫 모금 삼키는 소리는 내가 들은 나의 첫 소리였으리
그렇게 젖을 빨고 삼키고 듣는 몇 개월 동안
목구멍과 성대는 내가 처음으로 말했다는
"엄"이란 말만 발음할 수밖에 없는 근육을 키웠으리
"엄:으로 다문 입술 열면 으례 따라오는 소리 "마"가 붙어
인류 최초의 단어 "엄마"가 탄생했으리
나의 모음인 엄마는 지금
온 근육과 온 관절과 온 뼈와 온 정신으로 이룬
자음 "ㄹ"을 땅의 모음과 맞춰보고 있다
주) 7 행의 글자는 컴퓨터 좌판으로는 형성되지 않는 글씨입니다.
밑에 ㅁ , ㅓ 밑에 ㅁ, 즉 "엄"자를 구성하기 위한 것인데,
컴퓨터 좌판 글씨로는 써지지 않아 대신 써 놓은 글입니다.
궁서체 / 차주일
목련꽃봉오리가 화선지에 먹물 스미듯 부풀고 있다.
붓이 한 획을 내려 긋기 전
점 하나 힘주어 누르는 저 잠깐을 겨울이라 부르겠다.
우듬지마다 찍어놓은 꽃봉오리를
한 무리의 말발굽소리가 내처 달려오는 중이라 말하겠다.
오직 북쪽만 향하던 외골수가 잎보다 먼저 피운 꽃
그 낙화를 겨울이 내려놓는 잔상이라고 말하겠다.
꽃 진 자리에서 햇잎이 길어난다,
넓어지는 잎 따라 바람의 획이 굵어진다,
바람의 그림자가 먹물 스미듯 땅 위에 퍼진다,
이 가필을 봄이라 부르겠다.
말<馬>의 땀내 짙은 향기를 봄의 속도라 말하겠다.
당신 몸에서도 봄 떠난 지 오래되었다는 어머니
봄철 내내 궁서체 ‘ㅣ’ 내리긋기 습자 중이다.
한 획 채 내리긋지 못하고
봄 한 철 차마 놓아주지 못하고
목련꽃봉오리 같은 먹점을 화선지에 가득 채워놓았다.
보다 못한 내가 참견하는 것을 이른 봄이라 말하겠다.
어머니, 당신의 굽은 손가락 끝마디 하나 만들고
손가락 두어 마디 쭉 내리그으세요.
내 뒷머리 쓰다듬다가 냅다 내 손을 쥔 속도로 말이에요.
먹점 위에 다시 먹점을 찍어보던 어머니
굽은 채 굳은 열 손가락 끝마디를 하나하나 만져본다.
그래 이제 갈 때가 되었구먼, 어머니 혼잣말이
내 성대에 조율한 침묵을 나의 겨울이라 부르겠다.
뒷목덜미께 고이는 이 온기를 봄맞이라 말해야만 하는가.
어미 몸에서 내게로 내처 달려오는 무채색의 온기
내 몸에서 펴나므로 내가 모음이 되리라.
그때 나는 비로소 아들의 손을 쥐고
궁서체 ‘ㅣ’처럼 고개 숙여 한 손의 서사를 들려주리라.
- 차주일 시집 『 냄새의 소유권 』
*********************************************
이 땅의 모든 것의 몸은 그 자체로 태어나면서 형성되는
글씨가 있을 것이다.
풀잎은 풀잎의 글씨를 , 바람은 바람의 글씨를, 아이는
아이의 글씨를 갖고 태어날 것이다.
상형문자는 모양으로 나타내는 글씨체이다.
세월이 흐르는 모습 만큼 깊고 그윽한 상형 문자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 나타내는 모습, 나무가
세월이 흘러 자라는 모습, 강물이 산굽이 굽이 흘러 가는
모습, 모두 자연의 글씨다.
차주일은 태어나며 아기와 엄마 사이의 그 특유한 거리,
그 애정에 대한 시간을 이끌어 내며 아이의 입에서
첫 발음으로 나온 "엄"이라는 발음의 몸의 글씨가
아이에게는 가장 최초의 글자라는 인식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 만큼 다양한 글자는 없다.
살고 죽는 생존이 모습이 담긴 글씨이니 얼마나 간절한
표정을 짓고 간절한 마음의 감정이 실렸겠는가.
오늘도 무수한 사람의 얼굴에 삶의 글자가 떠돌것이다.
그 표정을 새롭게 읽고 느끼는 날이었으면 한다.
/ 임영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