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월드컵 이전부터 히딩크 이후가 더 문제가 될 것이라는 예상대로 축구협회의 일처리는 주먹구구식 행정을 또다시 재현하고 말았다. 많은 축구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호곤 감독을 올림픽 감독으로 선임한 것이다.
박항서 감독의 경질 사유가 불분명한 것처럼 김호곤 감독의 선임 사유 또한 불분명하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대표팀 감독을 `나눠먹기식`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한국 축구에 대한 비전과 계획, 확고부동한 마인드 없이 돌아가면서 한번씩 대표팀 감독을 맡는 것은 한국 지도자를 키우거나 예우해주는 것과는 무관하다.
진정으로 한국 지도자를 키우려 했다면 박항서 감독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아시안게임 패배를 거울 삼아 새롭게 약진할 수 있는 지원과 토대를 마련해 주어 올림픽 때까지 지휘봉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올림픽팀에 초점을 맞추면 안되는 이유
첫째. 협회의 `세대 교체`는 전적으로 잘못된 발상
무엇보다도 협회는 원칙이 없다. 올림픽팀과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A팀 감독을 분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연령별로 `유스`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각급 대표팀을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운영해야만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에 대한 아무런 계획 없이 올릭핌 감독을 먼저 선정하는 것은 과거로의 복귀이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
김호곤 올림픽대표팀 신임감독이 4일 오전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취임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대표팀의 초점을 올림픽팀에 맞추는 것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국가대표 A팀은 항시적인 전력을 구축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서 2~3일 정도의 훈련을 갖고 A매치를 펼칠 수 있도록 계획되어져야만 프로 리그에 끼치는 피해를 최소한 줄일 수 있고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할 수 있다. 그래야 리그를 중단하면서까지 장기적인 합숙 훈련하는 원시성에서 탈피할 수 있다. 합숙 훈련은 리그가 끝나는 동계방학기간에 소집되어 감독의 색깔에 맞는 전술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표팀 계획은 다음 월드컵 때까지 4년의 기간동안 충분히 준비되어야 하고 지금 당장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올림픽팀 위주로 대표팀을 꾸려간다면 2년간 올림픽에 집중하고 나머지 기간에 월드컵을 준비하여야 하기에 또다시 장기적인 합숙이 자행될 뿐이다.
더구나 협회가 생각하는 세대 교체는 전적으로 잘못된 방향이다. 세대 교체는 기존의 대표팀에 젊은 피를 수혈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지, 젊은 선수로 팀을 구성한 후 몇몇 노장 선수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팀 위주로 대표팀이 꾸려지면 23살 이상의 성인 선수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고, 케이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김대의를 비롯한 그 밖의 선수들은 대표팀과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사태가 초래된다.
16차례의 A매치를 갖겠다는 일본과 달리 서너 차례의 A매치를 치르기 때문에 성인 국가대표팀 감독은 당장 중요하지 않다는 기술위원장의 마인드는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기술위원장의 생각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국제적인 경기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21세 대표팀선수들은 세계청소년대회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량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아시안게임에서도 월드컵 대표로 뽑힌 선수 이외에는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A매치 경험, 그것도 유럽이나 남미의 강호들과의 경기를 경험하지 못하면 선수들의 기량은 한 단계 올라설 수 없고 세계축구의 흐름에 뒤쳐지고 만다.
유럽은 빅리그를 가지고 있고 남미는 유럽에 진출하여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빅리그는 챔피언스리그와 우에파컵을 통해 다른 빅리그 및 유럽의 모든 국가들의 리그를 경험한다. 뿐만 아니라 유럽선수권, 코파 아메리카컵, 대륙간컵을 통해 활발한 A매치와 평가전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대표팀이 올림픽팀에 중점을 두는 한 23세 이상의 선수들은 영원히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면할 수 없고 해외 진출 선수가 몇 몇 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표팀의 항시적인 전력유지는 꿈에 불과하다.
둘째. 주먹구구식 대표팀 운영은 `제2의 최성국` 강요
전권은 김호곤 감독, 외국인 감독 `크라머 전철` 밟을 가능성 높아
한 대회가 끝나면 다음 대회를 준비한다는 주먹구구식 운영방식은 선수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게 된다. 유스에서 성인대표팀을 철저히 세분화하고 항시적인 전력을 유지하지 않았기에, 젊은 유망주는 이 대회 저 대회에 끌려 다니며 혹사를 당하고 결국 최성국 선수는 산소마스크를 쓰며 실려 나가고 말았다.
`AG 무보수 기자회견`을 마친후, 박항서 전 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는 훈련 장소로 향하고 있다 ⓒ 스플 자료
사전에 대표팀을 세분화하고 영역을 완전히 구별하여 준비를 철저히 하고 항시 전력을 구축하였다면 아시안게임때와 같은 급조된 대표팀과 땜방용 감독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최성국과 같이 무리한 일정 조정이 낳은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대표팀은 세분화되어 항시 전력이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지, 올림픽이나 월드컵위주로 수시로 바뀌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비중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협회는 이러한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계획과 마인드도 없다. 성인 대표팀 감독을 분리하고 외국인 감독으로 선임하겠다는 협회의 발표는 계획과 마인드가 없는 한 책임을 면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올림픽 위주의 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외국인 감독은 그림의 떡일 뿐이며 그에게 전권이 주어질지 의문이다.
김호곤 감독을 올림픽이라는 명칭으로 제한을 두었으나 결국 실질적인 대표팀의 전권은 김 감독에게 주어질 뿐이며 외국인 감독은 크라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예측은 결코 기우가 아닐 것이다.
국가대표 감독은 분명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과 선진적인 훈련 체계 및 전술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각급 대표팀에게도 받아들여져서 일관성 있는 체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이 제시하는 청사진과 전술이 올림픽이나 그 이하의 대표팀에게 받아들여질 것인지는 의문이다. 히딩크의 훈련방식과 체력 단련법조차 쉽게 수용하지 않는 한국 지도자들에게 또 다른 낯선 외국인감독의 철학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또한 히딩크의 지도를 받았던 멘디에타는 히딩크를 가리켜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우리에게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가르쳤다고 말한다. 그리고 발렌시아 선수들은 히딩크는 우리에게 유머를 가르친 유일한 감독이었다고 말한다. 대표팀 선수들은 분명 즐거움으로 훈련해야 한다.
반칙왕 이나모토를 월드컵 영웅으로 조련한 투사 트루시에
잠시 일본을 돌이켜 보자. 몇 일전 정조국을 향해 거친 반칙을 일삼던 일본 청소년 선수들은 4년전 이나모토를 연상케 한다. 당시 이나모토는 한국팬들에게는 얄미울 정도의 거친 반칙을 일삼았다. 이동국이 볼을 잡으면 어김없이 달려와 반칙을 가했다. 페널티 박스를 벗어난 곳이라면 어느 곳이고 이동국과 한국 공격수에게 반칙을 가했으며 거침없는 태클로 공격의 맥을 끊어 놓았다.
반칙왕으로 기억되는 이나모토는 일본팀 최고의 투사였으며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기억시키며 일본 최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나모토가 단순한 반칙왕에서 세련된 미드필더로 변모하기까지는 트루시에 감독의 철저한 조련에 기인한 것이 분명하다. 트루시에는 이나모토를 애지중지 했으며 일본 선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로 꼽았다. 분명 이나모토는 트루시에의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시켜 놓은 선수이다.
트루시에는 투사였다. 그는 일본의 모든 문화와 관습과 투쟁했으며 축구협회에 맞서서 줄기차게 싸웠으며 일본 언론과 항상 마찰을 일으켰다. 선수들과도 싸웠으며 스타 의식에 물들은 선수들은 언론을 통해 노골적인 비난을 가했고 피치에서도 분쟁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축구협회 부회장은 노골적으로 트루시에를 비난했지만 트루시에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온갖 기행을 저지르며 협회와 투쟁했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협회와 싸웠고 엔트리 발표 때도 언론과 협회를 조롱하며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트루시에는 왜 나카타 독점 체제를 깨뜨려야 했는가
트루시에의 투사적 기질은 나카타에게 더욱 발휘되었다. 분명 나카타는 트루시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선수였으나 자신의 축구철학을 위해서는 나카타의 희생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엔트리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위협을 가하였다.
나카타는 일본의 기존 선수들과는 구별되는 자유 분방한 선수였고 개성이 넘쳐 흘렀다. 나카타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는 우상적인 존재였다. 조직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재즈와 록을 받아들인 일본 젊은이들은 개성과 자유를 추구하였고, 이러한 자유 정신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이 제이리그였다.
나카타 히데토시 선수 ⓒ 연합뉴스
요미우리와 나가시마로 대변되는 야구가 기성 세대를 위한 것이라면 제이리그는 자유 분방한 젊은 세대들이 마음껏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해방구였다. 제이리그 선수들은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길렀고 귀걸이와 염색으로 젊은 세대를 대변하였다. 그중에서도 나카타는 시니컬한 성격과 독특한 개성, 그리고 필드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플레이로 젊은 세대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나카타는 분명 일본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트루시에는 나카타의 존재가 일본 축구의 한계이고 일본 사회의 한계임을 인식하였다. 일본의 사회는 조직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개인의 만족보다는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중요시하고, 조직 앞에서 개인은 하나의 부품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그리고 일본 사회는 강한 것에 대한 끝없는 동경을 갖고 있었고 강자의 카리스마에 쉽게 굴복하는 모습을 갖고 있었다.
트루시에가 부임했을 때 일본은 이러한 가치관에 부합되는 축구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미드필더들은 재능 있고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직을 강조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미드필더들은 나카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고, 모든 선수들이 볼을 잡으면 나카타에게 볼을 몰아주고 패스를 하였다.
제이리그가 분명 아시아에서는 가장 선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철저히 통제되는, 현대축구가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모순과 한계를 갖고 있었다. 신세대 대표인 나카타가 구세대적인 일본 조직 사회를 반영하는 축구 시스템에 현혹 당해 있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트루시에는 나카타 독점체제를 깨뜨려야만 했다. 트루시에는 독점을 부수기 위해 4-4-2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유스에서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표팀이 4-4-2로 통일할 것을 요구하였다. 4-4-2는 제이리그에 오래전부터 도입되었고 유소년 팀에게조차 익숙한 것이었기에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트루시에는 4-4-2를 통해 미드필더들이 모두 평등함을 가르쳤고, 서로가 균형 잡힌 플레이를 해야한다는 것을 깨우쳐줬다. 4-4-2는 서로간의 밸런스가 무너질 경우 쉽게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기에 모든 미드필더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했고 한사람에게 독점되는 플레이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외국인 감독 투쟁`의 정당성을 플레이로 증명한 이나모토
결국 트루시에는 일본 축구의 기득권 세력과 맞선 것
이나모토는 트루시에의 이러한 의도에 가장 적합한 선수였다. 폭넓은 활동 반경, 뛰어난 수비력, 넓은 시야를 두루 갖춘 이나모토는 특유의 롱패스와 중거리 슛 능력을 발휘하며 트루시에의 지도하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였다.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후반 초반 선제골을 넣은 이나모토를 트루시에 감독이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나모토는 투사로 길러졌고 트루시에의 또 다른 애제자인 오노는 어느 곳에서도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는 기질로 모든 선수들을 융합해내는 재주를 발휘했다. 트루시에는 이나모토를 앞세워 일본축구협회와 시스템과 정면 대결을 벌였다.
일본축구협회는 트루시에를 연일 비난했지만 그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자신들도 모르게 축구시스템을 개혁했고 발전적인 토대를 구축했다. 트루시에는 청소년대회 준우승, 아시안컵 우승, 대륙간컵 준우승등의 뛰어난 성적으로 자신의 길이 틀리지 않음을 입증했고 언론의 비난을 잠재웠다. 이나모토는 축구협회와 싸우지는 않았지만 필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보이면서 트루시에의 투쟁을 플레이로 웅변했다. 오노와 이나모토를 갖게된 일본은 더 이상 나카타 1인의 팀이 아니었고 독점은 해체될 수 밖에 없었다.
트루시에는 독점이 해체되고 미드필더들이 자유를 얻게되자 시스템을 개혁했다. 포백을 플랫3로 바꾸면서 미드필더들의 기동력, 압박을 강조하였고 무엇보다 선수들이 패스를 보다 빠르게 연결할 것을 주문했다. 선수들은 빠르게 적응해 갔지만 몇몇 선수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카타의 스타 의식에 전염되었으며 트루시에의 전술을 비난했다.
트루시에는 여전히 투쟁적이었고 자신이 발굴한 선수 외에는 믿지 않았다. 노장들을 과감히 제외시키고 청소년때부터 함께 생활한 선수들로 팀을 재편했다. 트루시에와 일본의 영건들은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러시아와 의지가 박약한 튀니지를 물리치고 월드컵 16강에 올랐다.
전폭적인 지원으로 모든 것을 지배한 히딩크
또 하나의 강력한 지원군 `수준 높은 축구팬`
트루시에는 일본축구협회와 맹렬히 싸웠지만 한국의 히딩크는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정몽준 축구협회장에 의해 철저히 신뢰받았다. 축구 철학이 지배적인 축구이듯이 히딩크는 모든 것을 지배했다. 코치들과 선수들 그리고 의료진을 완전히 지배했으며 역할을 분담시켜주고 책임을 나누어줬다. 모든 정보까지 독점하며 히딩크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선수단을 장악했지만 모든 코치와 선수들은 그를 지지했고 그의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언론은 히딩크를 연일 비난했지만 히딩크에게는 또 하나의 지원군이 있었다. 그들은 선진 축구에 목말라 있던 수준 높은 팬들이었다. 네티즌이 중심이 된, 선진축구를 받아들이려는 팬들은 언론과 주변의 비판 세력과 맹렬히 싸웠다. 그들은 열정적이었고 사소한 문제도 넘어가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연일 격론을 펼쳤으며 히딩크와 그의 선수들을 철저히 옹호하였다.
김남일, 이을용, 박지성, 설기현 그리고 차두리에 대해 조금의 비난이 가해져도 철저히 그들을 옹호했고 선수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히딩크가 걷는 길이 올바름을 입증하려 하였다. 이들의 활약은 분명 한국 축구에 `선수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제공하였고 축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꿔놓았다.
한국 축구 최대 위기의 주범 `축구협회`
`메시아 히딩크`보다는 `투사 트루시에`가 필요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한국 축구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표팀 감독 선정을 둘러싼 잡음은 4개월이 넘게 진행되었고 케이리그는 또다시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가고 있다. 언론은 축구에 완전히 등을 돌리고 다시 야구에 집중하는 옛 모습을 되찾았다.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단과 협회 행정은 욕먹기를 자처한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월드컵 일본과 터키의 경기에서 일본이 1-0으로 뒤지자 트루시에 감독이 초조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수준 높은 팬들은 활동을 포기하고 있고 거의 모든 축구팬들은 유럽으로 시선을 옮겨가고 있다. 팬들의 마음은 한국 축구를 떠나 유럽으로 축구 여행을 떠났고 거기서 충분히 열광하고 있으며, 차가운 시선과 냉소적인 미소로 축구협회를 관망하고 있다.
지금은 분명 한국 축구 최대의 위기이다. 이 위기의 주범은 분명 축구협회이다. 회장은 선거에만 매달려 있고, 제 앞가림에만 급급한 눈먼 축구인들이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협회는 축구 발전을 위한 어떠한 생각도 품지 않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고 케이리그 발전에는 관심조차 없다.
월드컵 이후 빠르게 새로운 팀 창단의 붐을 일으키고 여건을 조성하여야 했지만 완전히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아니 방관의 자세가 아니라 창단을 방해하고 있다. 서울시민구단의 발족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오히려 창단을 억압하고 있고 각종 규제조건만 만들어 내고 권위만을 내보이고 있다. 팀 창단의 모습이 보이면 적극 지원해 주고 홍보해주어야 할 협회가 제대로 서있지 못하니 새로운 팀의 창단은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국내 감독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이유로 수준 높은 외국인 지도자 영입에 아무런 진척 상황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무능력일뿐만 아니라 의지 부족이다.
추운 겨울과도 같은 한국 축구는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월드컵 이전 히딩크와 같이 마술을 부려서 한국 축구를 구원할 `메시아`적인 지도자가 필요했다면 현재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지도자는 트루시에 같은 투사가 필요한 때이다. 축구협회의 행정을 냉혹하게 비판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시스템에 철퇴를 가할 수 있는 투쟁적 마인드와 축구의 미래를 설계하고 꾸준히 한국 축구를 변모시킬 수 있는 왕성한 정열을 가진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코`를 태우고 멀리 달아나는 일본 축구
`박항서` 해임으로 히딩크 유산을 날려 버린 한국 축구
그리고 협회를 감싸주고 밀어주기 보다는 신랄한 비판 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축구는 충분히 시행착오를 겪었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음모이다. `해피사커`를 표방한 밀로티노비치, `도미네이트사커`를 표방한 히딩크가 떠난 중국과 한국 축구는 월드컵 이후 격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오토메틱축구`로 아시아를 평정한 일본 축구는 저 멀리 달아나고 있다. 독점을 해체하고 미드필더의 평등을 실현한 일본 축구는 지코를 통해 더욱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창의성과 자율을 추구하고 있다. 지코는 나카무라를 미드필더에 합류시켜 필드에서 창의성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고 있다.
월드컵 이후 한일의 상황은 반대로 바뀌었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지코는 그의 명성으로 인해 일본 협회도 함부로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일본과 브라질의 특수한 관계와 한국에 비해 저조한 성적이라는 상황은 일본축구협회의 최대한의 지원을 받을 것이며, 협회의 간섭을 받은 트루시에와는 달리 자율을 최대한 보장받고 그의 자율적인 축구를 실현해나갈 것이다. 분명 지코는 자신의 축구 철학을 실현할 최적의 시점을 놓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축구는 박항서 감독의 해임으로 히딩크가 쌓아 놓은 선진 축구의 모든 토대가 허물어졌고, 히딩크 유산의 발전적 계승은 사라졌다. 모든 것이 무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새롭게 외국인 지도자가 임명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출발하여야 하는 어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젊은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이 남아있지만 그들은 선수일 뿐이며 감독의 색깔에 따라 다시 자신을 변모시켜야 하는 숙제를 해야할 뿐이다. 뿔뿔이 흩어진 히딩크 휘하 코치들이 외국 땅에서 연수를 받고 있지만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 기회가 주어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
더구나 새로운 외국인 감독은 그를 지켜줄 학식과 배짱을 지닌 인사를 협회에 한 명도 포함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흔들기`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냉소적으로 변모하여 등을 돌린 수준 높은 팬들이 다시 돌아와 예전과 같은 열정을 보여줄지도 의문이다.
협회가 진정으로 축구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명망 높고 유능한 외국인 지도자를 빠른 시일 내에 선임하여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A매치및 대표팀 일정을 확정 발표하여 계획적인 대표팀 운영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 축구와 크라머
1990년 12월 축구협회는 크라머를 바르셀로나 올림픽 총 감독으로 영입한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일본을 3위로 이끌었던 크라머는 90여개국을 돌며 선진 축구를 전파해 `축구의 철학자`로 불리던 독일의 명장. 크라머는 김삼락 감독, 김호곤 코치와 함께 올림픽 대표팀을 28년만에 본선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대표팀 체력에 문제가 많다`는 이유를 내세워, 크라머를 일방적으로 해임해 많은 논란을 빚었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당시 한국인 코칭 스태프, 특히 김삼락 감독과 많은 갈등을 빚었던 것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이유`로 보고 있다.
신문선 해설위원은 "최종 예선전이 열렸던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은 경기 때마다 선수 3-4명씩이 꼭 다리에 쥐가 났다. 이는 크라머 감독과 김삼락 코치의 훈련 방법 차이에서 오는 연습 부족, 정신력 해이 현상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둘은 많은 갈등을 빚었다"고 적고 있다. (한겨레 1999년 11월 15일자)
경향신문 이영만 부국장은 "(크라머가) 세계적인 명장이었지만 소시적에 한가닥했다고 여기는 한국 축구인들은 그를 대단찮게 생각했다. 특히 그의 밑에 있던 모씨에겐 엉터리로 보였다"며 "크라머가 이루려고 했던 축구는 보다 고급적인 것이라 이해할 수 없는 것인데도 모씨는 자기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경기 중에도 감독의 지시를 통역하지 못하도록 으름장을 놓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0년 11월 21일자 스포츠서울은 "자상한 선생님 같은 크라머 감독이 본선에도 나서지 못한 채 보따리를 싼 것은 한국 축구의 환경이 얼마나 배타적이고 이기주의적인지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