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1948년 8월 15일에 개국했다. 2011년인 올해로 건국 63주년이 된다. 14세기 말인 1392년에 건국된 조선이 약 100년 가까이 흐른 16세기 경 계급이 형성되었던 것을 보면, 대한민국에도 계급이 생길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이 건국된 초창기인 15세기에는 양인과 천민이라는 두 계급만 존재했다. 양인 중에서 과거를 보아 벼슬한 이들은 문반(文班)이나 무반(武班), 즉 양반(兩班)이 되었고, 농사를 짓는 이는 농민(農民), 장사를 하는 이는 상인(商人), 물건을 제조하는 이는 장인(匠人)이 되었다. 15세기에는 직업에 따라 양반, 농민, 장인 등으로 구별했을 뿐 이것이 넘을 수 없는 장벽은 아니었다.
그러나 10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관리를 부르는 명칭일 뿐이었던 양반이 계급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양반과 상민 사이에는 넘지 못할 벽이 생겨났다. 사회가 안정되면서 신분제도도 정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후대의 역사책에서 대한민국 시대의 계급은 사회지도층-중산층-서민-소외계층 이렇게 구분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지도층은 현대 대한민국의 지배층인 재벌, 정치인, 법조계와 언론계의 유력인사, 지방 유력자들을 다 포괄할 수 있는 표현이다. 중산층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80%가 스스로를 이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가 15세기 조선처럼 신분 형성 전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서민층은 대한민국의 가장 보편적인 사람들이 속하는 계층이다. 그리고 마지막 소외계층은 소외된 이웃들이다.
돌이켜보면 외환위기 이전까지 드라마 속의 남자 주인공이 재벌 일색이지는 않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각고의 노력 끝에 출세한 개천 출신의 용도 자주 등장했다. 그때는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한 가난한 사람들의 성공 신화가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던 시절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가 성립된 초창기로 아직 계급이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라서 신분 이동이 자유로웠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역사 발전단계에 비추어 보자면, 사회가 안정되고 계급이 점점 공고해질 일만 남은 시기가 된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이 불가능해 졌다. 그러니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춘 재벌 3세 왕자님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신분 상승의 방법이다. 이것을 대한민국의 서민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에 드라마 속에는 재벌 3세가 넘쳐나는 것이 아닐까? 옛날에는 명품이라고 부르는 고가의 사치품에 요즘처럼 목을 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노력해서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수 없는 시대이기에,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으로, 그들이 휘감고 다닌다는 명품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지배 계급은 일단 형성되고 나면 자신들의 특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도 조절하고, 아래 계급 사람이 특권 계급으로 올라오는 것도 막는다.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고, 역사적으로도 나타난 현상이다.
대학입시제도 변천과정을 보면 섬뜩해 진다. 상민이 양반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하나하나 차단해 가고 있는 것 같아서다. 대학 입시 방법이 복잡 해 질수록 부모가 여유가 있어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상위 계급의 아이들에게 유리해 진다. 입학사정관제도 역시 돈이 많아서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유리하다. 낮은 신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실력으로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을 첫 단계부터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비싼 등록금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알바를 해야 하고,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을 대학 4년을 돈 때문에 허덕이며 간신히 다닐 것이고,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좋은 성적을 얻기도 힘들 것이다. 어쩌면 버티다 돈이 없어서 학교를 중도에 포기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자주 벌어져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배 계급의 아이들은 대학입학도 취직도 특권을 동원해 쉽게 얻어낸다. 기존의 제도를 바꾼다고 할 때마다 두렵다. 교묘하게 아래 계급 아이들의 신분 상승을 막고, 특권 계급 아이들의 진출을 쉽게 하는 장치가 아닐까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계급이 형성되는 단계에 있다. 역사적 법칙으로 본다면 앞으로 계급이 더욱 공고해 지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신분제의 모순 때문에 피지배층이 저항해서 특권층을 몰아내는 시기는 머나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특권층은 법을 어겨도 쉽게 풀려나고, 돈이 없는 서민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꼴을 앞으로도 쭉 봐야만 되는 것인가?
과거의 조상들은 지금만큼 교육받지 못했고, 지금만큼 역사를 배우지 못했다. 무지몽매해서 계급 차별을 받아들이고 계급 사회를 숙명으로 받아들였지만,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이런 내용들을 학교에서 모두 배웠다. 현재의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으니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많은 역사가들의 주장처럼 역사가 발전해 간다면, 국가 형성 후 지배 계급이 생기고, 지배 체제가 공고해져 가더라는 역사 법칙에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지배 계급의 형성을 용납하지 않아서, 노력을 하면 누구나 출세할 수 있었던 이상적인 국가의 모델을 역사에 제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과연 대한민국은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