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동인>의 추천시____
/ 강세환, 「주문진 천주교회」
/ 윤종영, 「밤낚시」
/ 나혜경, 「미스김라일락」
/ 권정수, 「고열」
/ 이강하, 「사막과 꽃잎」
/ 권종욱, 「그 사람 나의 형」
/ 김경식, 「만행」
▶두타문학회
<두타문학회>는 강원도 삼척에서 1969년 6월에 창립해 올해로 48년째 이어오는 장수문학회이다. 시·시조·소설·동시·평론 등 51명의 회원이 매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 회원의 창작시로 시낭송회를 해오고 있다. 또한 매년 여름 피서철인 7월에는 바다가 보이는 해변에서 ‘바다시낭송회’를 개최하고 있다. 회원 중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이들은 <삼우회>라는 이름으로 매월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연말에는 한 해 동안 발표된 회원의 작품을 모아 『두타문학』 연간지를 발행해오고 있다.
주문진 천주교회
강세환
낡은 그물을 둘러멘 늙은 뱃놈 둘이 흐린 날 오후 미사에 참석했다. 외투에 묻어있는 고기비늘은 마룻바닥에 엎드린 그들의 등허리에서 오히려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턱수염에 묻어 있는 소주냄새는 마태복음 제 이십오장 사십오절의 계곡을 지나 어판장 쪽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불러보는 성가에서는 비린내가 몹시 났다. 멀리 부둣가가 보이던 언덕 위에 있는 천주교회.
멀리 스페인에서 건너온 이국의 신부는 토요일 오후, 곱게 기른 머리를 빗어 넘기며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 한가롭게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평화롭고 성스러웠다. 비린내 한 점 없는 그의 기도문은 그러나 언제나 엄숙하고 경이로웠다. 생각하라, 저 거친 바다에서 오늘 하루치 식량과 큰아들 등록금 걱정을 하며 그물을 던지는 비린내 나는 뱃사람들을. 저들의 고단한 바다를, 힘겨운 기도를,
/ 1956년 강릉 주문진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 『상계동 11월 은행나무』 외 다수, 최인희 문학상 수상.
바닷가 사람들
서성옥
올해 2월은 따뜻했다. 설 지난 입춘 무렵에 월동추가 푸르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가을에 씨를 뿌려 겨울을 나는 채소. 동해, 삼척 등 영동지방에서는 가장 이른 봄에 먹는 이 채소를 월동추라고 부른다. 제주의 유채꽃, 한강변에 봄 경관의 운치를 더하는 유채가 바로 이 채소다.
아직은 겨울, 눈을 뚫고 올라온 이 채소를 휴대폰에 찍어 보다가 문득 시인의 시 「월동추」가 떠올랐다.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창비시선 87호 ‘월동추’를 겨우 찾아내 다시 읽어 보았다. 춘천 학문사 전화번호 52-1701 매표 딱지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필자가 1990년 춘천에 갔다가 대학시절 자주 갔던 이 서점에 들여 창비시선 87호 『월동추』 1쇄집을 산 것으로 보인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무명의 고향 선배(필자는 시인의 프로필에서 옛 삼척군 북평읍 소재 북평중·고교를 졸업한 것을 보고 그렇게 각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릉 주문진이 시인의 고향인 것을 다시 시집을 보면서 기억을 정정하게 되었다.)가 창비시선에 첫 시집을 낸 것만으로 충분히 고무적인 것이어서 주저 없이 시집을 산 것인데, 소설에서는 리얼리즘 미학을 추구하는 편이지만 시만큼은 문학과 지성 시선집을 더 읽고 있었기에 시인의 시집은 책장 구석에서 20년 넘게 나의 손을 타지 못하고 있었다.
<두타문학> 동인 정석교 시인에게 강세환 시인을 혹시 알고 있는지 물어 보았다. 몇 해 전 신작 시집을 직접 받았다고 했다. 포털로 검색해보니, 시인이 교직에 계시면서도 시집 5권을 낸 작가회의 중견 시인이었다. 그리고 동해문협 회원으로도 활동 중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중앙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시인의 고향이나 다름없을 것으로 여겨지는 동해시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제6회 최인희 문학상을 받은 것도 이제야 알았다. 삼라만상이 들어있는 포털 검색의 순기능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덕분에 그 시대 창비시선집 다수의 시 분위기 상, 그리고 발문을 쓴 박세현 시인이 말했듯 “음울했던 청년”이지만 “집총한 삼엄한 계엄군 앞에서 비상계업철폐 소리를 외치며 엄혹한 시대에 저항”한 청년답게 미학적으로 덜 정제된 거친 표현이 많았던 시인의 시들이 지금은 많이 둥글어 졌음을 알 수 있었다. 2014년 『현대시학』 6월호에 실렸다는 이별과 그리움을 노래한 「무수골 꽃생강나무」는 “저녁 일곱 시 설익은 달빛이” 나에게 아련한 슬픔을 던져 주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의 바로 그 꽃생강나무, 알싸하고 애잔한…. 그러나 시인은 일관되게 “슬프고 고되고 괴로운 공복의 장삼이사를 향해 문학이 미학의 영역 안에서만 탐닉될 수 없음을 몸으로 이해”하는 항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
겨울비 오는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살았다/ 한 번도 울리지 않는 내 휴대폰처럼/ (…중략…) / 교항리 간선도로변 생맥주 카스타운도 / 꾸둑꾸둑 말린 장치찜 큰 축항 월성집도 / 찬 소주 곁들인 도루묵찌개 주문진 터미널 포장마차도 / 다만 겨울비가 좀 내렸을 뿐인데
시인이 고향 주문진에서 겨울비를 맞으면서 쓴 시로 추정되는데, 늙고 어두운 항구 끝 방파제 ‘축항’을 ‘추캉’으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큰 사발 찬 소주에 얼큰한 도루묵찌게 맛을 아는 사람들이, 또는 꾸둑꾸둑 말린 장치찜의 진미를 아는 사람들이 이 시를 읽으면 얼마나 격한 공감을 할까, 생각을 해 보았다. 그들은 동해안 바닷가 사람들이다. 흐린 날 고깃비닐 등짐을 지고 바다를 향하여 기도를 하는 바닷가 사람들이다.
*실천문학사, 2015년 발간 시집 『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 평에서 일부 인용.
/ 소설가. 2013년 『시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