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셋 엄마하나] 01
S#1. 타이틀 (CG)
감미롭고 달콤한 음악 시작되며 화면 열리면, 유영하듯이 떠있는 태아.
마치 천사같이 화사한 느낌으로... 평화롭게 춤추듯이... 미소도 짓고, 엄지손가락도 빨아먹는 모습.
아 기 : (Na) 내 이름은 하선이에요. 하늘이 주신 선물, 줄여서 하선이죠. 난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어요.
내가 만들어지려면 아직도 3년 2개월 7일하고도 세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죠. 나 같은 아기가 하나 생기려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과, 슬픔과, 기적과도 같은 감동이 필요한지 잘 아시죠?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볼게요.
S#2. 커다란 나무 (낮. 수목장과 동일 장소)
감미롭고 로맨틱한 음악 계속 이어지면서...
커다란 나무 아래, 나영이 누군가 남자(성민)와 달콤한 키스에 빠져있다.
아 기 : (Na) 우리 엄마에요.
행복하게 취해있던 키스가 끝나면서 남자의 얼굴이 보이면... 성민이다.
아 기 : (Na) 어? 그런데 우리 아빠가 아니네요. 어떻게 된 거죠? 엄마가 다른 남자랑 뽀뽀를 하네?
사랑해... 나두... 다시 한번 달콤한 입맞춤으로 돌입하는 분위기에서. (뭔 일 저지를 듯 나무 뒤로 발라당 넘어져도 좋고.)
S#3. 결혼식장 일각 (낮)
마치 모두 신랑인양 예복차림의 긴장된 수현과 광희, 경태. 바삐 달려와 모여서서 흰 장갑 나눠주고 끼면서.
경 태 : 아, 떨려. 실수하면 어떡하지?
광 희 : (넥타이 매만지며) 나 어때? 괜찮냐?
수 현 : 죄 3만원짜리 하객야. 본전 뽑을려면 10만원짜리가 많이 와줘야 되는데. 연락 좀 더 돌릴걸 그랬나?
아 기 : (Na) 우리 아빠들이에요. 아직은 철이 없지만... (수현 보이면) 잘 생겼죠? 숨겨 논 돈도 좀 있답니다.
(광희 보이면) 꽃미남이죠? 마음은 더 예뻐요. (경태 보이면) 듬직하죠? 힘도 세요. 제 보디가드랍니다.
이때 분주하게 나타난 성민, 세 남자의 가슴에 꽃을 꽂아준다.
성 민 : 긴장 풀어, 긴장 풀어. 니들이 결혼 하냐?
경 태 : 성민아, 부럽다. 기분이 어떠냐? 째지냐?
성 민 : 자식.
광 희 : 결혼이란 건 잠깐 좋고, 평생 후회하는 거다. (눈 내리깔고) 지금이 토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거.
성 민 : 됐다, 임마. (자기가슴에도 꽃 꽂는다.)
수 현 : (못마땅한) 돈 없는 여잔 애초에 쳐다도 보지 말래니까...
성 민 : (사람 좋게 웃어넘기며) 아이구, 자식...
성민은 이내 바쁘게 사라지고, 가슴의 꽃을 매만지는 세 남자에게 후레쉬 불빛 번쩍! 비춰진다.
S#4. 동 결혼식장 (낮)
웨딩마치가 울려 퍼지고, 예식을 끝내고 행진하며 나오는 성민과 나영.
기다리고 있던 세 남자가 폭죽 터뜨리고 눈가루 뿌리면서, 짓궂은 세레모니 한다.
경 태 : 누군 좋겠다! 장가가서!
광 희 : 넌 임마 코 낀 거야. 축하해요. 나영씨!
수 현 : 에라이, 잘 살아라! 행복해야 돼!
세 친구의 짓궂은 세레모니를 피하면서도 즐거운 나영과 성민.
네 남자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나영의 모습에서. 찰칵! 스틸사진으로.
S#5. 신혼집 거실 (낮)
신랑신부 결혼사진이 걸려있고, 키스에 취해있는 나영과 성민. 대낮이건만 창엔 커튼 내려져 있다.
커튼 사이로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고, 쏟아지는 한 줄기 햇살이 커튼자락 따라 살랑살랑 움직인다.
연립 반지하의 단출한 살림이지만, 신혼의 화사한 분위기 느껴진다.
한쪽 벽엔 성민의 설계제도용 책상과 연필들.
트레이싱지 위엔 그리다 만 단독주택 스케치가 보이고, 종이로 만든 주택모형도 보인다.
E. 이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배추나 무, 양파 있어요~!
나영 창밖을 쫙 째리더니, 리모컨으로 음악 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키스한다.
성 민 : (좋으면서) 갑자기 왜 이래...
나 영 : 오늘이 그날이란 말이야...
성 민 : (키스 중간 중간 말 섞는) 우리 결혼한 지 일년밖에 안됐어.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나 영 : (역시 키스 하면서) 아기 서넛 낳으려면 지금부터 빨리 낳기 시작해야 돼.
사랑에 취해 여기저기 쿵쿵 부딪치면서 침실로 들어가는 두 사람.
쿵쿵 부딪칠 때마다 액자 삐뚤어지고, 선반 위의 두루마리 화장지들 떨어지고, 연필들도 와르르, 팝콘도 쏟아진다.
사랑에 여념 없는 부부는 침대로 향할 뿐...
S#6. 경태와 광희의 자취집, 광희방 (낮)
침대에서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경태.
바닥에서 팬티차림으로 만세를 부르며 늘어지게 자고 있던 광희와 부딪치고, 서로 머리 부여잡고 일어난다.
광 희 : 아, 씨. 뭐야? 너 왜 내방에서 자? (엄청 억울한) 난 또 왜 바닥에서 자고 있어?
큰 충격은 없는 경태, 그러거나 말거나 게슴츠레 코 후비며 오줌 누러 나간다.
터덜터덜 나가는 경태의 발에 밟힐 뻔하다 깨갱거리는 강아지.
광 희 : (놀라서 강아지 안으며, 경태 뒤통수에) 얀마! 우리 밀크 놀랬쥐...!
광희의 만화 작업실 겸 방이다. 커다란 작업대 위엔 그리다만 만화원고들, 오디오와 CD들,
책장엔 만화들과 화집들, 수집한 피규어와 프라모델도 보이고, 벽면엔 멋진 할리데이비슨 사진이 걸려있다.
S#7. 동 상층 수현집, 거실 (낮)
커피머신에 물을 붓는 수현의 손. 물병의 물이 거의 바닥이다.
막 씻었는지 젖은 머리에 깔끔한 옷, 슬리퍼 차림의 수현이 빈 물병 들고,
AV시스템을 갖춘 깨끗하게 정리된 거실을 가로질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S#8. 동 하층, 광희 경태의 자취집 거실 (낮)
수현 내려오면, 위층과 비교되는 지저분한 거실에 자취역사를 말해주는 낡은 TV와 소파, 식탁 등.
탁자와 소파위엔 신문과 만화책, 수갑과 아령, 쌍절권, 옷과 이불 등이 널려있다.
수 현 : 하, 자식들. 좀 치우고 살지. (물 가지러 냉장고로 직행하는)
팬티차림의 광희는 안고 있던 강아지 내려놓고 물 마시러 오고,
화장실의 경태는 문 열어둔 채 소변본다. 그 소리 세차게 들려온다. (광희와 경태는 슬리퍼 안 신는다. 맨발)
광 희 : 아, 저 자식. 문 좀 닫으라면... 아침마다 상쾌한 알람소리 좀 없냐?
경 태 : (화장실에서 나오며) 건강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지.
수 현 : (냉장고에서 새 물병 꺼내며, 광희에게) 너두 공해야. 옷 좀 입고 잘 수 없냐?
광 희 : 난 열이 많아서 옷 입고 못자. (수현의 물 뺏어 병째 마신다.)
수 현 : 아 새끼, 드러. (새 물병 다시 꺼내면)
경 태 : (수현의 물병 뺏어가며) 우리 물이야. 니 물 마셔. (역시 입 대고 마신다.)
수 현 : 커피 한잔 탈라 그래! 치사하다, 치사해.
경 태 : (광희를 보며 씨익~ 쪼개며) 일요일이다.
광 희 : (좋아 죽는) 빨리 아점 먹으러 가자.
경태와 광희, 얼른 옷들 챙겨 팔다리에 꿰는데,
수 현 : 신혼집엔 왜 자꾸 가냐? 나영씨가 좋아하지도 않는데.
경 태 : 나영씨가 임마 너나 안 좋아하지, 우린 좋아해.
광 희 : (옷 입으면서 수현 등 밀고 나가며) 너두 결국엔 갈 거면서 뭘...
수 현 : (마지못해 나가며) 성민이 걔 장가 잘못 갔어. 돈이 있냐, 그렇다고 맞벌이를 하냐. 틱틱거리기만 하지, 애교가 있냐.
광 희 : (웃옷만 입은 채 현관으로) 하긴 요리솜씨 그렇게 안 느는 주부도 첨 봐.
경 태 : 나는 맛만 있던데?
수 현 : (광희 아랫도리 보며) 야, 너 그러고 갈 거야?
광 희 : 우 쒸이~ 어쩐지 시원하다 했더니. (얼른 바지 찾아 꿰면서 나가려는데)
경 태 : (이미 현관에서) 야, 야, 빨래가방, 빨래가방.
광희 다시 뛰어 들어와 커다란 빨래가방 메고 나가고, 세 남자 순식간에 사라진다.
S#9. 신혼집 침실 (낮)
화장대 주변엔 잡지에서 오려낸 예쁜 아기사진들 붙어있고,
거울 속으로 침대 위의 나영과 성민, 막 본격적으로 진도 들어가려하는데...
E. 삐리리릭~ 삐리리릭~! 초인종 새소리 울린다.
동시에 밖에서, 광희와 경태의, 성민아~! 나영씨, 우리 왔어요! 소리 들린다.
뭐야? 나영은 울쌍이 되는데, 죄라도 지은 듯 후다닥 일어나 급히 옷을 입는 성민.
성 민 : (밖에다 대고) 어, 그래! 어서 와! 나간다...! 나가...!
나 영 : 으! 저 웬수들!
S#10. 동 거실 (낮. 몽타주)
말라붙은 커피잔들, 구겨진 맥주캔, 뽀얀 담배연기. 포커판에 열이 오른 분위기다.
나영 열 받아, 포커판을 뒤엎고 엉망진창으로 헝클어 놓는다. (상상)
하지만 요리를 내오는 나영. 새우튀김 정도. (현실)
경 태 : (수줍고 송구하게 얼른 받는) 아이구, 뭘 이렇게 자꾸 내와요. 배부른데... (끄윽~ 트림 하면서 내려놓으면)
경태와 수현도 새우튀김 동시에 집어가고, 경태도 우왁스럽게 쩝쩝 먹는다.
성민 옆에 앉는 나영, 칼날로 사과를 톡톡 쳐서 깎기 시작한다.
나 영 : 저기, 장가들 안가요?
광 희 : (포커판에만 눈길) 결혼을 왜 해요? 잠깐 좋고 평생 지옥인 거를?
나 영 : 광희씬 안 바빠? 만화마감 날 아니야?
광 희 : (포커 얘기뿐) 야, 이렇게 되면 또 나랑 수현이만 남나?
나 영 : (뻘쭘해서) 수현씬, 일요일인데 왜 데이트도 안해요? 내가 소개시켜줄까요? 내 친구?
수 현 : (카드에만 눈길 주며) 돈 많은 여자에요?
나 영 : 아니요.
수 현 : 그럼 됐어요.
나 영 : 치!
경 태 : 나나 소개해주지... 난 돈 없는 여자도 괜찮은데... (히죽 쪼개면)
나 영 : 형사는 싫대요.
경 태 : (갑자기 흥분) 아니, 형사가 왜 싫어요? 형사가 얼마나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인데?
나 영 : (쏴붙이는) 형사가 이렇게 도박하고 그래도 되는 거예요?
나영 칼로 힘주어 사과 뚝뚝 뽀갠다. (디졸브)
왁자지껄 한판이 끝나고, 광희가 기분 좋게 카드 새로 섞고 돌리면서. (밤)
광 희 : 야, 그럼 이번 주 식사당번은 수현이 너고...
수 현 : (지나간 승부 생각) 아, 진짜 아깝다...
광 희 : 설거지, 빨래당번은 경태 너고... 다음 판은 음식물쓰레기가 걸려있겠습니다! (만원 세 장 떼어주며) 자! 이건 나영씨 개평!
성 민 : (돈 흔들어 보이며) 나영아, 하우스비 벌었다!
나 영 : (부엌 쪽에서 달려오며) 그래?
돈 받고는 쌜쭉 좋아서 웃는 나영.
이때 세탁기 다됐다는 부자음 울리면,
광 희 : (지긋이) 경태야, 빨래 다 됐다.
경 태 : 왜 내가 가? 이번 주 빨래 당번은 너잖아?
광 희 : (눈 내리깔고) 나 패 돌리잖아.
성 민 : 으이그... 자식들.... (일어나려는데)
나 영 : (돈 넣으며 기분 풀어져) 내가 갈게요. (일어난다.)
광 희 : 아이, 그래도 어떻게... 고마워 나영씨! 거기 빨래가방에 담아줘. 집에 가서 널게.
S#11. 동 부엌 한켠 비좁은 다용도실 (밤)
기분 좋아진 듯 세탁기에서 남자들 옷 꺼내는 나영.
문득 남자 팬티가 잡히자 기겁하며 고개 돌리고, 엄지와 검지 끝으로 살짝 잡아서 빨래가방에 톡 떨어뜨린다.
늘어진 누런 사각팬티 나오자, 으윽~! 천천히 가방으로 이동 떨어뜨리고,
연이어 야한 삼각 끈 팬티 딸려 나오자, 깜짝 놀라 얼른 가방에 떨어뜨리는 나영.
나 영 : 뭐야? 광희씨 새 애인 취향인가? 으...! 내가 한 남자가 아니라 네 남자랑 결혼한 거 같다니까!
S#12. 동 거실 (아침)
성민은 허둥지둥 포커판 치우고,
초췌한 몰골의 세 남자, 급히 옷들 찾고 입고, 어딘가 숨겨 논 양말들 찾는데,
넘치는 재떨이, 과일접시, 뒹구는 와인잔, 과자봉지, 맥주캔 등 엉망이다.
수 현 : (급히 옷 입으며) 오늘 투자 상담 미팅 있는데?
성 민 : 난 오전에 설계발표 있단 마.
경 태 : 난 천안까지 가서 잠복해야 될지도 몰라. (마음만 급하고 재떨이 엎자) 아이, 씨... (손에 잡힌 광희양말로 슥슥 닦는데)
성 민 : (급히 걸레 가지러 가며) 그냥 둬. 내가 치울게.
이때 침실에서 앞치마 두르며 급히 나오는 나영.
나 영 : 어머, 아침 먹고 가요. 북어국 끓여놨어요. 금방 되요.
수 현 : 아니에요. (현관으로 향하고)
경 태 : (양말 신으려다 광희에게) 야, 빨래가방, 빨래가방!
이때 광희의 손에 잡힌 양말 냄새 지독하다. 경태 것과 바뀐 것.
그런 상황 익숙한 듯, 불쾌하게 경태 손에 들린 양말과 얼른 바꾸고,
순간 담뱃재 묻은 자기양말 보며 더 열 받지만, 얼른 세탁기로 달려간다.
나 영 : 아침인데 양말이라도 새 거 신고 가요... (비닐 포장된 새 양말들 얼른 나눠준다.)
광 희 : (빨래가방 메고 나오다) 역쉬~ 나영씬 참 좋은 여자야. (볼에 기습 뽀뽀 쪽 하고 현관으로)
성 민 : (걸레 들고) 저 자식 너 거기 안 서? (나영에게) 쟤 다음부터 잘 해주지 마.
우당탕탕 세 남자 나가고 닫히는 현관문.
나영과 성민, 웃으며 돌아서려는데, 금방 우르르 다시 뛰어 들어오는 세 남자.
수 현 : 참, 나영씨...! (뭘 찾는지, 현관 신발장을 연다.)
나영과 성민, 뭔가 싶어서 보면, 신발장에서 꺼내는 선물상자와 장미꽃 한 송이.
수현이 경태에게 건네면 경태 나영에게 주며.
경 태 : (씩 웃으며) 결혼 1주년 기념 축하해요!
나 영 : (감동해서) 어머, 오늘인지 어떻게 기억했어요...?
수 현 : 이건 결혼 1주년이니까 한 송이. 내년엔 두 송이 줄게요.
광 희 : 열 송이, 이십 송이, 아니 백송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행복해라.
성 민 : 고맙다.
수 현 : (이내 바쁘게) 간다! 가자.
세 남자 사라지고, 성민과 둘이 남은 나영. 선물을 보며 행복한 미소 짓다가 자연스레 서로를 끌어안는다.
성 민 : 고마워. 1년 간 나랑 같이 살아줘서.
나 영 : (감동에 취해) 나두... 자긴 같이 살수록 더 괜찮은 남자야...!
성민에게 안겨 행복하게 눈을 감는 나영.
두 사람의 모습 위로 현관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면서... (화이트 아웃)
S#13. 경찰서 강력계 형사과 (낮)
(F.I) 자막. 3년 후.
경태, 수갑 채운 피의자(멀끔하게 생긴 남자. 28세)를 앞에 놓고 조서 꾸미고 있다.
경 태 : 그래서 그 여자도 사진 찍고 협박했어? 돈 달라고?
남 자 : (기분 드러운, 귀찮다는 듯) 네에!
경 태 : 이 새끼가, 이거, 반성의 기미가 없어? (두꺼운 서류로 머리 때리면)
남 자 : (싹 피하며 일어나는) 왜 때려요?
경 태 : 왜 때려? 피해? (갑자기 핏대 올라 순식간에 멱살잡이 하며 달려들며) 내가 젤 싫어하는 게 뭔 줄 알아?
이때 경태의 성질을 잘 아는 박형사와 김형사, 잽싸게 경태를 붙잡는다. 나형사, 왜 이래? 왜 이래 진짜! 해주면서...
정복차림의 종희도 벌떡 일어나 보고.
경 태 : (붙잡혀서도 연신 발길질 날리며) 너 같이, 새끼야, 연약한 여자들 골라서, 사기치고 공갈 협박해서,
돈 뜯어 먹는 놈이야. 알아?
남 자 : (요리조리 피해 한 대도 안 맞으며, 항변) 나도 집에 있는 연약한 여자 먹여 살릴라고 그런 거예요!
경 태 : 뭐? 이 새끼가. 연약한 여자 먹여 살릴라문 일을 해야지, 일을! 저게 아직도 반성을 안했어.
동료 형사들, 그만해! 왜 이래! 성질내며 놔주면, 분을 삭이며 자리에 앉는 경태.
피의자도 슬금 슬금 눈치 보며 다시 와서 앉는다.
이때 핸드폰이 울리면, 피의자 째리면서 받는 경태.
경 태 : (다짜고짜) 왜?
S#14. 어느 근사한 초고층 빌딩 앞 (낮)
멋진 디자인의 초고층 빌딩을 올려다보며 통화하고 있는 수현.
수 현 : (긴장해서) 난 할 수 있다고 말해줘.
경 태 : (E. 귀찮다는 듯) 넌 할 수 있어. 왜?
수 현 : 내가 최고라고도 말해줘.
경 태 : (E) 너는 최~고야. (성질내며) 왜에?
수 현 : 너무 큰 부자를 만날 땐 떨린단 말이야.
경 태 : (E. 심드렁하게) 얼마나 부자길래?
수 현 : 이게 그 사람 소유의 빌딩인데... 강남 요지에 이 정도면, 시가로 500억은 넘을 걸? 아... 떨린다.
경 태 : (E. 퉁명스레) 잘됐네. 니 좋아하는 대한민국 1%부자 아니냐.
수 현 : 일이억짜리 투자 상담은 해봤어도, 이런 건 처음이거든. 아, 진짜 떨린다. 꼭 성사시켜야 되는데...
경 태 : (E) 떨지 말고 잘해봐. 미혼인 딸도 있나 알아보고. 이혼녀도 괜찮다매? 돈만 있으면?
수 현 : 새끼. 끊어, 임마! 그리고 이따 늦지 마! 알았어? (전화 끊고, 용기 내듯 혼잣말) 아브라카다브라.. 부자가 별거냐.
이내 힘차게 빌딩 회전문을 향해 들어가는 수현.
S#15. 동 빌딩 고급 집무실 (낮. 서연부 사무실)
긴장한 듯 소파에 엉덩이만 살짝 걸친 채 브리핑하고 있는 수현.
맞은편 고객(서연부)이 보기 좋도록 거꾸로 펼쳐놓은 서류. 그 서류 넘겨가며 짚어주는 수현의 손가락이 달달 떨린다.
수 현 : (목소리도 떨리는 긴장감 배어나오는) 저희 회사가... 운용하는 펀드들로 구성했을 때...
올해 목표 수익률은 20%로 잡아봤습니다.
서연부 : (노련함이 느껴지는 느긋함) 그게 가능할까...? 요즘 같아서는 15%도 하기 힘들 텐데...?
수 현 : (다급해지며 서류 넘기는, 말도 빨라지고) 준비한 제안서를 보시면… 요즘 유망한 프런티어마켓과 브라질펀드에
각각 10억씩 하시고, 친디아펀드에 5억, 국내주식형펀드에 15억, 그리고 10억 정도는 분산투자 차원에서
글로벌채권펀드에 투자하면서… (또 서류를 급히 넘기며) 나머지 한 3억 정도는 특정 섹터, 즉 천연자원펀드 같은데
투자하시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말 없이 수현을 물끄러미 보는 서연부.
말이 끝나고 눈이 마주치자 더욱 긴장하여 다리를 덜덜 떠는 수현. 떨리는 다리를 티나지 않게 손으로 꽉 움켜잡으며 웃는다.
S#16. 동 집무실 밖 복도 (낮)
나오는 수현. 잠시 정신을 수습하고는 후~ 한숨쉬는데,
이때 수현 옆을 스쳐지나가는 서연. 수현이 나온 집무실로 들어간다.
서 연 : (E) 아빠. 저 왔어요.
수 현 : (문득 돌아보며) 아빠?
S#17. 광희의 방 겸 작업실 (낮)
중국 무협영화 음악 흘러나오고, 전신거울 앞에서 추리닝에 웃통 벗은 몸으로 무협 폼새를 해보는 광희.
부채라도 하나 들고, 아비요! 기합도 넣어가면서... (중국무협영화 배우처럼)
얼른 펜으로 무협 동작을 만화로 그려 넣고는 다시 폼새 해본다. 그러면서 이어폰으로 전화통화하고 있다.
광 희 : 뭐? 그래서 그 여잘 꼬셔보겠다고? 아비요~!
수 현 : (E) 음. 나 같이 가진 거라곤 달랑 대학졸업장 하나밖에 없는 놈은 장인을 잘 만나야 돼.
광 희 : 그 여자 이쁘냐?
수 현 : (E) 얼굴은 못 봤어. 상관없어.
광 희 : 하긴 얼굴이야 뜯어고치면 되지. 야, 근데 니 주제에 대강 능력 있는 여자 만나서 맞벌이만 해줘도 고마운 거 아냐?
수 현 : (E) 두고 봐. 꿩 먹고 알 먹을 거야.
광 희 : 잘해봐라. 돈 있는 여자랑 결혼한다고 결혼이 지옥 아닌 줄 아냐?
수 현 : (E) 있다 늦지 마!
광 희 : 너나 늦지 마.
전화 끊고는 다시 거울 보며 무협 폼새 해본다. 만화를 슥슥 그려나가더니, 만족스러운 듯 드라이어로 말린다.
말린 만화를 집게로 매달면, 줄줄이 걸려있는 무협 만화컷들.
S#17-1. 동네 놀이터 앞 (낮)
장을 봐오는 나영과 성민. 장보따리를 든 성민과 팔짱을 끼고 걸어오는 나영.
그때 둘을 지나쳐 가는 부부. 유모차를 밀고 지나간다.
성 민 : (나영에게 싱글벙글) 오늘도 수현이랑 다들 오겠지?
우리가 이렇게 미리 음식 준비해놓으면 걔네들도 감동받을 거야, 그치? (하며 나영 보는데)
나영, 어느새 저만치 유모차 앞에 가서 아기를 만지며 부부와 얘기하고 있다.
아기에게 손 흔들며 부부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얼른 성민에게 오는 나영.
성 민 : 아는 애야?
나 영 : 아니. 너무 귀여워서. (하며 너무 좋아하는 모습)
성 민 : (나영 볼 꼬집으며) 니가 더 귀엽다.
나 영 : 피, (해맑게) 성민씨. 지나가는 남의 애도 저렇게 예쁜데, 자기 닮은 애는 얼마나 더 예쁠까?
(상상하는 표정) 난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해.
성 민 : 애가 그렇게 좋아?
나 영 : 응. 난 다른 건 하나도 안 바래. 부자도 안 부럽고, 출세한 남편도 안 부러워. 그저, 예쁜 애들 낳고...
자기나 나나, 부모님께 못 받았던 사랑... 우리 애들한테 마음껏 주면서, 평생 꼭 붙어살고 싶어. 우리 너무 외롭게 컸잖아.
성 민 : 그래, 꼭 그렇게 살자.
갑자기 은밀하게 씩 웃으며 성민의 팔짱을 끼는 나영.
나 영 :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 인간들 오기 전에, 집에 가서 빨리 어때?
성 민 : 뭐어?
나 영 : 빨리 가자, 빨랑!
나영이 성민의 팔을 끼고 집으로 향하면, 미소 머금은 채 끌려가는 성민.
S#18. 대형 마트 계산대 (밤)
허둥지둥 달려오는 경태.
수현은 포장된 선물과 꽃 세 송이를 들고 있고, 광희는 계산대에 물건들 올려놓는다.
휴지, 세제, 맥주, 케잌 등.
수 현 : 하, 자식 꼭 늦어. 너 만원 더 내.
경 태 : (되레 신경질) 뭘 새삼스레 만나서 가? 그냥 가면 되지.
수 현 : 서프라이즈! 할려면 같이 들어가야지! 3만원씩 내. (경태 보고) 넌 4만원.
광 희 : (지갑 꺼내며) 근데 우리가 걔네 결혼기념일에 왜 가냐? 매년? 난 가면서도 이해가 안돼.
수 현 : 우리 입으로 꽃 사들고 간다 그랬잖아! 매년! 그러니까 계속 주욱 가야지!
경 태 : (돈 주며) 성민이 걘 우리가 안가면 삐져. 누가 축하해줄 사람이나 있냐? 부모님도 안계시고, 우리가 해줘야지.
(비닐에 담는다.)
광 희 : (귀찮다는 듯) 하긴, 나영씨도 우리가 결혼기념일 잊어버린 줄 알고 난리칠 걸? 완전히 버릇 잘못 들였어.
경 태 : (수현을 뜩 보며) 근데, 내 카드로 하지? 연말정산 때 쓰게?
수 현 : (귀찮다는 듯 무시하고 자기카드로 계산) 됐어. 너보다 내가 정산하는 게 훨 플러스야.
카드전표 찍히는 소리 들리고,
수 현 : 근데 걔네가 결혼한 지 벌써 3년이나 됐더라. 이 짓을 세 번이나 하고 있으니...
(옆으로 예쁜여자들 지나가면 처다보며) 나도 결혼해서 빨리 다 회수해야지.
경 태 : (같이 보며) 나도 장가가고 싶어 죽~겠다!
광 희 : 난 싫어. 지금이 좋아. (생각났다는 듯) 근데 니들 장가갈 때, 미리미리 요리솜씨 좀 점검하고 결혼들 해라.
성민인 얼마나 지옥이겠냐? 평생 그 요리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음식을 먹을려면.
경 태 : 여태 잘 먹어놓고...
수현 사인하고 돌아서면, 경태가 양손에 장보따리 다 들고 밖으로 향하는데,
광희가 바닥에 놔두었던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면,
경 태 : 근데 그건 뭐냐?
광 희 : 간 김에 빨래나 돌릴라구...
경 태 : 윽~ 냄새.
광 희 : 다 니 양말에서 나는 썩은 냄새얀 마!
S#19. 신혼집 앞 (밤)
광 희 : (봉지에서 뾰족 모자 꺼내서 하나씩 주며) 야 이것도 써.
경 태 : 이게 뭐야?
광 희 : 케잌 샀더니 꽁짜로 주더라. 이왕이면 세 개 달라 그랬지.
경태는 쓰는데, 수현은 됐어... 도로 준다.
광 희 : (쓰며) 빨리 써 임마!
S#20. 신혼집 안 (밤)
현관문이 열리며, 밖에서 들어서는 세 남자. 뾰족 모자를 쓰고 선물과 꽃, 케이크 상자 내밀며 장난스레 짠 들어선다.
남자들 : 서프라이즈! 결혼 3주년을 축하해요...!
그 순간 세 남자에게 날아오는 화장지통.
세 남자 놀라서 보면,
나 영 : (소리 지르는) 그게 날 사랑하지 않는 거지, 그럼 뭐야!
속상한 듯 앞치마 벗어던지고 침실로 들어가 버리는 나영.
성민 착잡한 듯 서 있고, 당황하는 세 남자.
성 민 : (심각한) 괜찮아. 들어와. (이내 침실로 따라 들어간다.)
세 남자, 멈칫하지만 두런두런 들어선다.
수 현 :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경 태 : 별일 아닐 거야.
광 희 : 난 빨래나 돌리고... (종종 걸음으로 빨래가방 들고 부엌 안쪽으로)
경 태 : (차려진 식탁으로 오며) 음, 맛있는 냄새. 역쉬~ 나영씨는 우리가 올 줄 알고 다 준비했잖아?
(막 새우튀김으로 손이 가는데)
이때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나 영 : (E) 난 그렇겐 도저히 못해!
놀라서 돌아보는 경태와 수현.
S#21. 동 침실 (밤)
성 민 : (서서, 달래는 톤) 나영아, 왜 그래... 우리 애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나 영 : (침대에 걸터앉아 외면한 채) 난 아냐. 성민씨 가족이 누가 있어? 나도 할머니 돌아가시고 친정아버지 밖에 더 있어?
난 애를 낳고 싶단 말이야...
성 민 : 나중에 얘기하자. 응? 나와. (먼저 나가려는데)
나 영 : 맨날 이런 식이지.
성 민 : 뭐가 또...
나 영 : 맨날 친구들한테는 절절 매면서, (성민 보며) 나한테는 뭐야? 병원에 좀 가는 게 그렇게 싫어? 나를 위해서 그것도 못해?
성 민 : 내가 안한 게 아니잖아. 너 그렇게 고생시켰는데도 안 된 거 아니야! 의사가 그만 포기하라는데, 왜 자꾸 그러니?
나 영 : 우리가 언제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봤어? 내가 배란 유도주사 맞아가며, 힘들게 날짜 잡아놓으면...
맨날 몰려와서 밤새 술이나 마시고, 포커나 치고... 언제 제대로 하기나 해봤냐고!
S#22. 동 침실 밖 거실 (밤)
침실 문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귀를 대고 듣는 세 남자. 들려오는 나영의 말에 뜨끔!뜨끔!하다.
나 영 : (E) 자기가 끔찍이 좋아하는 저 인간들, 언제 뭐 하나 도움 된 적 있었어?
그 놈의 포커 치는 날, 그 잘난 남자들의 우정, 난 아주 지긋지긋해! 다들 꼴도 보기 싫어! 데리고 나가!
경 태 : 야, 불똥이 왜 우리한테 튀냐?
수 현 : 그러게? 그냥 가는 게 좋겠다.
광 희 : 저러다 금방 풀어지잖아.
이때 뭔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 들리고, 나영의 비명소리도 들린다.
세 남자 동시에 깜짝 놀라고,
광 희 : 아닌데...?
경 태 : (뒤로 물러나며) 우린 빨리 사라지는 게 좋을 듯 싶다.
광 희 : (난감한) 빨래는 어떡하고?
수 현 : 빨리 갖고 나와, 임마!
S#23. 동 부엌 다용도실 (밤)
세탁기에서 젖은 빨래를 꺼내 급히 쭉쭉 짜서 가방에 넣는 광희.
광 희 : 아이, 드러. 드러워 죽겠네. (누렇게 변한 흰 발가락양말 짜며) 경태 이 새끼 완전 썩었네, 썩었어... 내가 미쳐...
(이 와중에 고쟁이석류팬티도 들어가는게 보인다)
S#24. 동 거실 (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가방 들고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가는 광희.
광 희 : (달려가면서, 방문 향해 나직이) 성민아, 우리 간다... 나영씨, 잘 있어요...!
수현과 경태는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고, 이때 성민도 속상한 듯 침실에서 나온다.
모두 놀라서 쳐다보면,
성 민 : (현관으로 직행. 신 신으며) 나가자. 술이나 한잔 하자.
성민이 먼저 횡하니 나가면, 현관에 우르르 서있던 세 친구들 뚱하니 본다.
S#25. 아지트 술집 (밤)
쭉 맥주를 들이키는 성민.
경 태 : (뻥튀기 먹으며) 아까 그 새우튀김 맛있게 생겼던데...
수 현 : (혼자 궁시렁) 저녁도 못 얻어먹고 나올 걸, 괜히 돈 썼네...
순간 날아오는 광희의 눈총. 경태와 수현은 바로 찌그러지고,
광 희 : (성민에게, 위로랍시고) 야, 애 없이 살면 되지. 자식이 뭔 필요가 있냐? 말썽이나 피우고 고생이나 시키지. 나 봐라. 나.
성 민 : 그러게... 나도 그냥 살면 좋겠는데... (술 마신다.)
광 희 : 근데 누구 문젠데? 나영씨가 문제야?
성민이 대답 없이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술을 마시자,
수 현 : 나영씨 손목 봐라. 그러길래 튼튼한 여자랑 결혼을 했어야지.
광희와 경태 뜨악해서 수현을 보면, 수현 바로 꼬리내는데,
성 민 : (한숨과 함께) 문제는 나야... 무정자증이래.
모두 성민을 보는데...
성 민 : (허허롭게 웃을 뿐) ...
경 태 : 야, 그럼 분양을 받어!
수 현 : 강아지냐? 분양을 받게?
경 태 : 아, 입양. 입양을 해!
광 희 : 애 없이 즐기면서 사는 게 좋지, 뭐 하러 입양까지 하냐?
수 현 : 그래. 돈 들여서 키우기도 힘든데... 그냥 살아라.
성 민 : (한숨쉬고는) 나영이가 낳고 싶대. 그만하자. 너희는 모르는 척 해라. (술 마시는데)
경 태 : 야, 그럼, 정자기증을 받어!
성 민 : ....?
경 태 : 나 같으면 정자기증 받겠다. 문제는 너라며? 너만 니 애다 생각하고 키우면 되지. 안 그러냐?
광 희 : 누구 씬 줄 알고 함부로 기증을 받냐?
경 태 : 요즘 정자은행 가면, 고학력에 아이큐 200짜리, 키 180에 체격 좋고, 외모도 장동건 급으로 고를 수 있다더라.
혈액형도 다 맞춰준대. 그거 살짝 받으면 아무도 몰라. 다들 쉬쉬하고 말만 안해서 그렇지,
요샌 그렇게 애 낳는 사람들도 수두룩해요.
광,수현 : (동시에) 그게 말이 되냐?
경 태 : (찔끔하는데)
수 현 : 어차피 능력도 안 되는데 낳지 마라.
경,광희 : (동시에) 그건 말이 되냐?
셋이서 떠들다 문득 보니, 성민의 표정 어두워지고, 분위기 싸늘해진다.
경 태 : (한숨) 내가 대신 정자를 줄 수도 없고... 참 괴롭다. (술 마시고)
광,수현 : 그러게... (각자 괴롭게 술 마신다.)
S#26. 신혼집 안 (밤)
손도 대지 않은 식탁을 착잡하게 치우려던 나영. 세 남자가 놓고 간 세 송이 꽃과 선물상자를 본다.
꽃 집어들고 보며, 괜히 미안한 기분이 된다.
나 영 : 그래도 잊지 않고 사왔네...? 하여튼 남자들 소심하긴... 나가랜다고 진짜 나가냐...? 나가면 또 술값이나 쓰지...
결혼기념일 날 이게 뭐야...? 성민씨 또 괴로워서 술 너무 마시는 거 아냐...?
걱정이 되고 속이 상하는 나영.
S#27. 아지트 술집 (밤)
한쪽에선 주인이 의자를 올려놓고, 바닥을 걸레질하고 있다.
사람은 없고, 텅 빈 술집 안. 성민과 친구들 엄청 술이 취해있다.
성 민 : (갑자기 몸을 일으켜 앉더니) 그래, 니들이 좋겠다...!
광 희 : (턱 고인 팔꿈치 휘청) 뭐가...?
성 민 : 정자기증 말이야. 니들이 나 좀 도와줄래?
수 현 : (취해서 게슴츠레한 눈) 너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광 희 : (취해서 얼굴 흔들흔들) 에라, 이 정신 나간 놈아.
성 민 : (역시 취한)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형제들한테 받는다는데, 나한테는 니들이 형제나 다름없잖아!
경 태 : (성민의 어깨에 팔 걸치며) 우린 형제나 다름없는 게 아니라, 형제야!
수 현 : 야, 이 미친놈아! 그래서 우리한테 정자를 받겠다구?
성 민 : 니들이 정자기증 받으라며? 난 니들이 좋아. 나보다 대학도 좋은 데 나왔지, 인물도 좋지,
모 두 : (끄덕이며) 그건 그렇지.
성 민 : (계속) 키도 크고, 몸도 좋지,
모 두 : (끄덕이며) 그것도 그렇지.
성 민 : (계속) 인간성도 내가 다 잘 알지, 니들이 좀 해줘야겠다!
광 희 : 아니, 우리가 정자가 아까워서 안 줄라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래도 그건 아니쥐이...!
성 민 : 왜 아니야?
광 희 : 친구끼리 어떻게 그런 걸 하냐...?
성민, 갑자기 괴로운 듯 한숨 쉬더니, 잠시 후 입을 뗀다.
성 민 : (토로하는) 나 정말 죽고 싶어...! 차라리 나영이가 나 몰래 바람이라도 피워 와서 애를 낳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한다.
친구들 놀라 말을 잃고 성민만 보고 있는데,
성 민 : (불쌍해보이게) 우리 이러다 이혼하면 어떡하냐...?
수 현 : 야, 임마. 무슨 그런...
성 민 : 친구가 뭐냐?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게 친구 아냐? 너희들 나 안 도와줄 거야?
경 태 : 도와줘야지... 수현이 니가 대표로 해라...!
수 현 : (화들짝 놀라)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니가 해, 인마!
광 희 : (히죽 웃으며) 사실 유전자의 질로 따지면 쟤들보다야 내가 낫지...
성 민 : (진지하게) 아니. 너희 셋 다, 같이 해줘!
그 소리에 갑자기 멍한 시선으로 일제히 성민을 보는 세 남자.
S#28. 광희방 (아침)
침대에서 또 뚝 떨어지는 경태. 바닥에서 팬티바람으로 만세 부르며 자고 있던 광희와 부딪치고 깬다.
광 희 : 아! 머리야... 안 그래도 머리가 뽀개질려고 하는데... 저 새끼...
경태, 또 별 충격 없이 일어나 나간다. 우웩~ 속이 좋지 않다.
S#29. 동 거실 (아침)
속이 안 좋은 경태는 화장실에서 변기 부여잡고 오바이트하는 중이고,
광희, 머리를 부여잡고 물 먹으러 나온다.
광 희 : 하, 저 자식. 진짜 상쾌한 알람소리 종류별로 하네...
이때 소파에서 입은 옷 그대로 널브러져 자고 있던 수현이 깬다.
수 현 : (순간 어리둥절) 어? 우리가 어제 몇 시까지 마셨냐? (일어나 물 마시러 오고)
광 희 : 말도 마. 어제 우리 너무 많이 먹었어.
경 태 : (배 문지르며 와서) 난 아직도 술이 안 깬다. (물 마시는)
수 현 : 우리가 왜 그렇게 마셨지? 성민이 그 새끼 때문에...
경 태 : 가만... 성민이가 우리한테 뭐 부탁했는데?
광 희 : 그래. 성민이가 뭐 해달라고 그랬는데? 가만있어봐... 뭐였더라?
다같이 : (기겁하며) 정자기증!!!
S#30. 성민의 건축설계 사무실 (아침)
성민, 생각하는 표정으로 마시던 커피 잔을 놓더니, 파스텔 펜으로 조그만 어린아이 모형에 색칠을 하기 시작한다.
칠한 어린아이를 아파트 분양 조감도 모형 속 부부 사이에 내려놓는다.
다소 후련한 표정이 되는 성민. 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받는다.
성 민 : 웬일이야? 아침부터?
경 태 : (E 다짜고짜) 안돼. 성민아!
수,광희 : (E. 옆에서) 안돼!
성 민 : 뭐가 안돼?
S#31. 자취집 거실 (아침)
경태가 통화하고 있고, 수현과 광희가 수화기에 얼굴을 모으고 듣고 있다.
경 태 : 정자기증은 안된다구!
성 민 : (E) 왜? 어제는 한다 그랬잖아?
세남자 : 우리가 언제?
성 민 : (E) 어제 니들 나하고 각서까지 썼잖아. 절대 딴소리 안한다고.
세남자 : 뭐? 각서?
S#32. 아지트 술집 (회상. 밤)
술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각자 종이를 한 장씩 놓고 앉아있는 세 남자.
성민이 부르면, 세 남자도 중얼거리며 괴발개발 쓴다.
성 민 : 나는 사랑하는 친구 정성민에게...
경 태 : (취해서 굴러가는 발음으로) 사랑하는 친구...
수 현 : (역시 취해서) 정성민에게...
성 민 : 내가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 질 좋고 신선한 정자를...
광 희 : 질 좋고...
경 태 : 신선한 정자를...
성 민 : 기증하기로 서약한다.
세남자 : 서약한다.
성 민 : 이 서약을 어길시...
세남자 : 어길시...
성 민 : 나는 사람이 아닌... 개다.
세남자 : (좀 꺼림칙하지만) ... 개다.
성 민 : 자 사인들 해.
광 희 : 어차피 차고 넘치는 게 정자 아니냐.
경 태 : 난 뭐 다른 데 쓸 일도 없고, 많이 줄게.
수 현 : (비웃듯 피식) 자식들... 질이 중요하지! 어차피 돈 들어가는 일도 아닌데, 뭐. 나만 믿어. 성민아!
호기롭게 휘갈기며 사인하는 세 사람.
성 민 : (진지하게) 니들 정말 약속한 거다?
세남자 : (호기롭게) 그럼! 우린 친구잖아!!!
일제히 괴발개발 쓴 각서를 성민 앞에 내미는 세 남자.
(경태의 각서는 나름 한문으로 써보려다 찍찍 긋고 한글로 다시 써서 이채롭다.)
S#33. 자취집 거실 (아침)
경 태 : 야, 그건 어제 우리가 술이 취해서 오바를 한 거지!
성 민 : (E) 난 진심으로 들었는데?
수 현 : (수화기에 입대고) 야, 차라리 나한테 돈을 꿔달라 그래라.
광 희 : 아니면 보증을 서달라 그러던가!
경 태 : 그러지 말고 차라리 신장을 하나 띠어달라 그래. 그럼 내가 당장 띠어줄게. 골수 이식도 좋아!
수 현 : 아무튼 무조건 안 되니까 그렇게 알어!
광 희 : 나두!
경 태 : 나두!
황급히 전화를 끊는 경태.
광 희 : 성민이 이놈 미친 거 아냐? 어떻게 제정신이라면 친구들한테 이럴 수가 있지?
경 태 : 그러는 너는 미친 놈 아니냐? 니가 젤 먼저 설쳤어, 임마.
광 희 : 내가 언제? 니가 설쳤지! 양복점이냐? 맞춰주게? 맞춰준다는 둥 그런 게 누군데?
경 태 : 얘가 생사람 잡네? 요즘은 그런 거 다 한다는 둥, 키가 180이라는 둥, 아이큐 200은 누가 얘기한 거냐?!
수 현 : 그거 다 니가 얘기한 거야.
경 태 : 얘까지 생사람 잡네?
수 현 : 아무튼 우리는 절대 들어주지 않는 거야. 알았지?
경 태 : (확고하게) 그럼 우리가 미쳤냐? 그걸 들어주게?
S#34. 달리는 지하철 안 (경태의 꿈. 낮)
날카로운 눈빛의 경태가 사람들 틈에 서서 한 소년을 주시한다.
껌을 짝짝 씹고 있는 13살 쯤 되어 보이는 불량한 소년.
비좁은 사람들 틈새에서, 앞에 서있는 아가씨의 핸드백을 열더니 천천히 지갑을 훔친다.
재빨리 수갑을 꺼내들며 소년을 덮치는 경태.
경 태 : 꼼짝 마!
소년 후다닥 열리는 문으로 잽싸게 도망친다.
소년을 따라 문밖으로 쫓아나가는 경태.
S#35. 지하철 역 안 (꿈. 낮)
숨차게 달려온 경태가 소년을 나꿔채 순식간에 제압한다.
경 태 : 너 이 새끼, 거기 안 서!
소 년 : (붙잡혀 옴짝달싹 못하며) 이거 놔요!
경 태 : 어린놈이 벌써부터 소매치기야? 소매치기가! 너 누가 이런 거 시켰어? 니 부모는 너 이런 거 알아?
소 년 : (꽥 소리) 나 부모 없어요.
경 태 : 그럼 너 고아야?
소 년 : 아니요. 나 아빠 있어요!
경 태 : 아빠 어딨어? 빨리 아빠 있는데 대!
소 년 : 아빠 여깄잖아요.
경 태 : (주변 둘러보며) 여기 어디?
소 년 : (갑자기 경태에게 와락 안겨 울며) 아빠! 그동안 내가 아빠 찾아 얼마나 헤매다녔는 줄 알아?
우리 앞으론 절대 헤어지지 말자!!
경 태 : (놀라며) 아빠라니...?
소 년 : 아빠, 나야! 아빠가 정자기증해서 태어난 아들...! 아빠!! 아빠!!!
소년의 목소리 크게 울리며...
S#36. 경찰서 안 (현실. 낮)
책상에 엎어져 잠들어 있는 경태를 흔들어 깨우는 종희. (정복차림)
종 희 : (흔들며) 아저씨...! 아저씨!
경 태 : (비명) 아냐...! 난 니 아빠가 아냐!!
벌떡 일어나는 경태. 그 바람에 의자 뒤로 넘어가며, 벌러덩 넘어진다.
목을 칭칭 감고 있던 목도리를 풀며 당황한 얼굴로 일어서는 경태.
종희가 불쌍하다는 투로 쳐다본다.
종 희 : 아빠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으세요?
경 태 : 그건 또 뭔 소리야?
종 희 : (흉내 내며) 아빠, 아빠...! 잠꼬대도 아주 다채롭게 하시던데요?
경 태 : (입가에 묻은 침 닦아내며) 그럴 일이 있다...
종 희 : (살픗 웃으며) 저한테 장가오시면 제가 금방 아빠 만들어 드릴 수도 있는데...
경 태 : 헛소리 하지마라. 내가 아무리 궁해도, 애한텐 관심 없다.
일어나 나가는 경태.
종희는 경태 뒤를 쫓아가며,
종 희 : 내가 왜 애야? 이래뵈도 방년 23세. 어엿한 처녀라구요. 나 형사님.
경 태 : 나황형사라니까.
종 희 : 나 황형사가 뭐예요? 나, 황형사가? 황자 빼면 안돼요?
경 태 : 안돼.
종 희 : 왜?
경 태 : 울 엄마가 황씨니까. 됐냐?
휙 돌아서 나가는 경태.
S#37. 증권회사 사장실 안 (수현의 상상. 낮)
호화로운 책상에 앉아 있는 수현. 명패에 화려하게 ‘사장 한수현’ 이라고 쓰여 있다.
차임벨 울리며 비서 목소리 들린다.
여비서 : (E) 사장님 손님 오셨는데요.
수 현 : 들어오시라고 해.
문 열리며 건장한 청년이 들어온다. (영리하게 생긴 얼굴에 뿔테 안경.)
그 뒤를 이어 초라하게 늙어버린 대머리의 성민모습.
성민 비굴하게 다가온다.
성 민 : 수현아... 안 바뻐?
수 현 : (내심 귀찮지만) 아니 괜찮아. 근데 성민이 니가 무슨 일이야?
성 민 : 다름이 아니라... (뒤에 서있던 청년 앞으로 끌어당기며) 인사해라, 아빠 친구야...
청 년 : 안녕하세요, 아저씨...
성 민 : 수현아, 글쎄 얘가 이번에 서울대에 합격했어...!
수 현 : 그래? 잘됐구나. 역시 머리가 아주 비상한 아이로구나. 하하하... (뿌듯한데)
성 민 : 근데 등록금이 없어서...
수 현 : 뭐...?
성 민 : 교과서도 사야하고...
수 현 : (성민에게 소곤대며, 냉정히) 그건 나랑 관계없는 일이잖아.
성 민 : (오히려 당당) 관계없다니? 애를 낳게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수 현 : (당황하며) 책임이라니...?
성 민 : (버럭) 니 애잖아! 내가 여태 키우느라고 그동안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아?
S#38. 수현의 증권회사 사무실 (현실. 낮)
눈앞에 떠오른 상상을 지우려는 듯 고개를 젓는 수현.
수 현 : 두고두고 신경이 쓰일 거야. 그때마다 모르는 척 할 수도 없고. 친구끼리 그런 거에 엮이면 안돼.
암, 난 앞으로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려야 하는데...
이내 모니터 속 주식 트레이딩 화면을 응시한다.
수 현 : (아플싸) 어? 화성전자 이거 7만 3천원일 때 팔았어야 됐는데...! 아, 씨...!
S#39. 광희의 작업실 (낮)
만화를 그리고 있는 광희. 빙긋 웃고는 달콤한 상상에 빠진다.
S#40. 수영장 안 (광희의 상상. 낮)
늘씬한 수영복의 아가씨들에게 둘러 싸여있는 광희.
아가씨들 서로 사랑해 달라고 애걸하는데, 싫지 않은 표정으로 아가씨들을 쳐다보는 광희.
이때 광희의 앞으로 5살 쯤 먹은 남자아이가 다가온다.
아 이 : (광희에게) 아빠!
순간 광희를 향하던 아가씨들의 시선 싸늘해지더니,
여자들 : 아빠라니? 그럼 벌써 결혼했었어? 이런 사기꾼!
일제히 광희를 두들겨 패기 시작하는 아가씨들.
매 맞는 광희의 괴로운 표정.
광 희 : (항변하는) 아니야... 아니야...!
S#41. 광희의 작업실 (현실. 낮)
생각에 빠져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광희. 만화를 그리다 멈춘 곳에서 연필심이 뚝 부러진다.
갑자기 당황스러운 광희.
광희 : 안돼...! 이럴 순 없어! 내 젊음과 자유를 이런 식으로 뺏길 순 없어!
S#42. 신혼집, 다용도실 (밤)
세탁한 빨래를 꺼내며, 빨래 속에서 나영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
나 영 : 이상하네... 분명히 세탁기에 넣었는데, 왜 없지?
갑자기 빨래 헤집다 말고 곰곰이 생각하는 나영.
S#43. 연립단지 계단 일각 (낮. 회상)
옆집 아줌마가 엉덩이에 빨간 석류 수가 놓아진 수제팬티(일명 고쟁이)를 내민다.
아줌마 : (은밀하게) 이게 갓난애들 배냇저고리만 모아서 만든 팬티야.
나 영 : (떨떠름한 표정으로 보는데)
아줌마 : 석류 수도 놨어. 석류가 다산을 상징한다잖아.
나 영 : 고맙긴 한데요... 됐어요.
아줌마 : 이거 남편한테 입혀. 그럼 애 들어선다니까?
나 영 : (절레절레) 에이...
아줌마 : 왜?
나 영 : 우리 성민씨 그런 거 입을 사람도 아니구요... 내가 대학까지 나온 여잔데... 어떻게 그런 미신을...
(외면하지만 살짝 관심은 생긴다.)
아줌마 : 우리 시동생두 이거 입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았다니까?
나 영 : (약간 갈등은 되지만) 그래두...
아줌마 : 싫음 말구! 이게 얼마나 어렵게 구한 건데. (가져 가려하면)
나 영 : (얼른 뺏으며) 아니, 주세요. 헤헤헤...
S#44. 부엌 (밤)
거실에서 곰곰이 생각하면 부엌쪽으로.
나 영 : (가물가물 생각을 짚어보는) 그래서...? 내가 분명히 들고 들어와서 여기다...!
하면서 세탁기를 돌아보면,
S#45. 동 다용도실 (낮. 과거)
세탁기에서 젖은 빨래를 꺼내 급히 쭉쭉 짜서 가방에 넣는 광희.
광 희 : 아이, 드러. 드러워 죽겠네. 경태 이 새끼 완전 썩었네, 썩었어... 내가 미쳐...
광희, 급히 옷 마구 꺼내 짜서 가방에 퍼 담는데, 옷들 속에 섞여 빨래가방으로 들어가는 빨간 석류가 그려진 고쟁이 하나.
S#46. 동 부엌 (밤. 현재)
손뼉을 딱 치는 나영.
나 영 : 맞아! 그 웬수들 빨래 속에 딸려간 게 틀림없어! (이내 괴로운) 아잉~ 어떡하지?
S#47. 자취집 현관 앞 거실 (밤)
광희가 문을 열어주면, 나영이 주춤거리며 들어선다.
광 희 : 성민이는요? 혼자 왔어요?
나 영 : (창피하고 괴롭다.) 아, 네, 저기... 뭐 좀 물어볼려구요.
광 희 : (거실로) 들어오세요.
나 영 : (현관에 선 채) 아니에요. 저기... 저희 집에서 빨래...해갔잖아요.
광 희 : (의아한) 네...
나 영 : (시선 피하고) 혹시 우리 성민씨 팬티 하나 같이 가져가지 않았나 해서요.
수 현 : (뭔가 싶어 다가온) 성민이 팬티요...?
나 영 : 아니, 저기... (다시 시선 피하며 설명. 죽을 맛이다.) 팬티라기보다는 고쟁이...인데요...
광,수현 : 고쟁이...?
나 영 : (시선 피한 채 엉덩이 모양 손으로 하면서) 엉덩이에 그 빨간...
광,수현 : 빨간...?
나 영 : 석류... 수가 놓아진 건데... (못 봤어요? 하는 표정으로 두 남자를 보면)
광 희 : 석류? 그런 거 못 봤는데?
수 현 : 나두... (고개 젓는다.)
나 영 : (실망해서) 그래요...? (고개 인사하고 가려다가) 혹시 그렇게 생긴 거 나오면 꼭 좀 갖다줄래요. 중요한 거거든요.
광,수현 : (의아한) 네...
돌아선 나영, 으~ 울쌍인 표정이 되어 나가고, 수현과 광희, 의아해서 거실로 돌아서는데,
이때 욕실에서 막 씻고 나오는 경태.
경 태 : 아, 시원하다... (머리 털면서 자기 방으로 향한다.)
수현과 광희, 놀라서 보면, 헐렁한 고쟁이 차림의 경태의 엉덩이에 빨간 석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수,광희 : (동시에 손가락질 하며) 야! 너! 그거! (하면서 경태에게 달려든다.)
S#48. 신혼집, 베란다 (밤)
깨끗이 빤 빨간 석류 그려진 고쟁이를 빨래대에 너는 나영.
나 영 : 휴, 다행이다. 근데, 아후, 챙피해, 증말... 내가 못살아, 못살아! (울쌍인데)
이때 나영 뒤에 씁쓸하게 웃으며 나타나는 성민.
성 민 : 애가 그렇게 갖고 싶어?
나 영 : 응? (미안해져 시선 떨어뜨리며) 엉...
성 민 : (다가와 나영을 뒤에서 안더니, 잠시 후) 그래, 그럼 저거 입을게.
나 영 : 어머, 아니야, 안 입어도 돼. 난 그냥...
성 민 : 아니야. 입을게. 병원에 한번 더 가보자.
나 영 : (놀라서 보며) 정말?
성 민 : 음.
나영, 괜히 미안해서 숙연해져 성민 품에 기대고,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나영을 꼭 안는 성민.
S#49. 아지트 술집 (밤. 몽타주)
성민이 세 친구를 따로따로 만나 설득하는 장면이 한씬처럼 몽타주로 이어진다.
친구들은 성민의 맞은편 같은 자리에 앉아있다.
성 민 : 니네 셋 중엔 어딜 보나 니가 젤 낫잖아. 니가 좀 해다오.
수 현 : 아니, 뭐... 그거야 그렇지만...
성 민 : (마치 수현에게 다음 대사하고 있는 것 같이) 정말이야, 내가 보기엔 니들 중엔 네가 제일 괜찮거든! 니가 좀 해줘...!
장면 바뀌면, 수현 자리에 광희가 앉아있고,
광 희 : 솔직히 걔네들보다야 내가 낫지... (하지만 딴짓하고)
성 민 : 경태야, 난 니께 제일 좋다. 니껄 다오.
장면 바뀌면, 광희 자리에 경태가 앉아있는 것. 그런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경 태 : (흐뭇) 너 사람 볼 줄 아는구나. (하지만 시선 피하고)
성 민 : 괜히 다른데다 낭비하지 말고... 좋은 데 써라.
광 희 : (여전히 딴 짓) 아니, 뭐... 나도 주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성 민 : 넌 어디 쓸데도 없잖아. 이럴 때 써.
경 태 :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참 난감하다.)
성 민 : 나 정말 죽고 싶다...!
수 현 : (놀라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
성 민 : 남자로서 너무 비참하고...!
광 희 : (같이 비참한 표정 짓고)
성 민 : (눈물 글썽이며) 나영이... 나만 믿고 사는 여자야. 나 그 여자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제발 부탁한다.
내 평생 다른 부탁 안할게. 눈 딱 감고 한번만 해다오! (울듯이) 그게 나와 나영이를 살려주는 거야...!
경 태 : (같이 울 듯한 표정이다가)
성 민 : 어떻게 한번 안되겠니? (보면)
세 남자, 각기 분할된 화면 안에서 동시에,
광 희 : (수세적인) 그건 곤란한데...
수 현 : (역시 수세적인) 어떻게 그래...
경 태 : (역시 수세적인) 정말 미안하다.
성 민 : (갑자기 태도 바뀌며) 너 나한테 빌려간 500만원 그거 없던 걸로 해줄게.
수 현 : 엉?
성 민 : 너 군대갔을 때, 니네 엄마 위암수술 하셨을 때, 내가 간호 다하고 몇 달 모시고 살았지.
그때 분명히 너 나한테 뭐든지 다 해준다 그랬어. 그 빚 지금 갚아.
경 태 : 지금?
성 민 : 너 칠성파 중간보스 여동생, 그 여자랑 헤어질 때 내가 거짓말 해줬지. 너 시한부라고.
나 칠성파, 걔네 오빠 만나서, 그거 아니라고 말한다. (일어나려 하면)
광 희 : (붙잡아 앉히며) 야, 야, 너 왜 그러냐... 알았어, 알았어. 하면 되지...
수 현 : 하면 되지!
경 태 : 하면 되지!!
S#50. 수현집 거실 (밤)
어느 덧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세 남자가 나타난다. 윗씬에서 바로 연결.
성민 앞에 세 친구가 같이 있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
수 현 : (선심 쓴다는 듯) 그래. 까짓 거 우리가 해줄게.
(얼굴 가까이 들이대며 소곤대는) 대신 너 500만원 그거는 확실히 정리하는 거다?
성 민 : 그럼.
경 태 : 울 엄마 생각해서 이번 한번만 해주는 거야. (괜히 주의 둘러보며) 대신 이건 비밀이다?
성 민 : 그건 내가 할 소리야.
광 희 : 그럼 우리한테도 누가 아빤지 알려주면 안돼?
성 민 : 당연하지. 그 아이는 내 아이야.
수 현 : 그 애한테 난 어떤 책임도 안진다. 양육비 같은 거 달라 그러면 안돼?
성 민 : 걱정 마. 내가 잘 키울게. 너희들이 기증한 건 세상 누구도 몰라.
경 태 : (괜히 찔려서) 혹시 애가 커서 공부를 못한다거나... 비행 청소년이 된다거나 그래도 우릴 탓해선 안돼.
성 민 : 그건 걱정 말라니까?
경 태 : 그럼 좋아.
성 민 : 고맙다. 고마워...!
세남자 : (멍한 기분인데) ....
성 민 : 참, 나영이한테는 영원히 비밀이다!
세남자 : (지레 화들짝) 당연하지!!!
세 남자 다시 각자 멍한 기분인데,
경 태 : (갑자기 진지하게) 그럼 술 담배 끊고 몸에 좋은 거 많이 먹어야겠네?
광 희 : 왜?
경 태 : 이왕이면 좋은 놈을 기증해야지!
광 희 : 그래? 그럼 나도 술 끊어야겠네?
수 현 : 넌 임마 여자나 끊어. 아끼고 모아서 좋은 놈을 기증해야지!
S#51. 광희의 작업실 & 고급 미용실 (낮)
전화를 걸고 있는 광희. 화면이 반으로 나뉘며 광희 엄마가 핸드폰을 받는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는 광희 엄마. 왕세련이다.
광 희 : 엄마...!
광희모 : (주변 의식하며) 어, 최화백!
그 말에 광희모 주변의 아줌마들 돌아보면, 괜히 뻐기는 광희모.
광희모 : 최화백이 웬일이야? 엄마한테 먼저 전활 다하고?
광 희 : 엄마. 남자한테 좋은 음식이 뭐있어?
광희모 : 그거야 뭐... 물어보나마나 보신타앙~... (주변 의식하더니 작게) 근데 왜?
우리 최화백 몸 많이 상했구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광 희 : 그게 아니라... 남자 정력에 좋은 음식이 뭐냐구?
광희모 : 정력? 글쎄? (주변 아줌마들에게) 이봐. 정력에 좋은 음식이 뭐 있어?
아줌마들, 보신탕! 장어! 굴, 전복! 마늘이 최고야, 마늘. 부추... 등등 앞 다투어 떠들면...
광 희 : (괜히 전화했다 싶다.) 알았어, 알았어. 끊어 엄마. (끊으려 하면)
광희모 : (은근히) 최화백! 뭐 좋은 소식 있구나?
광 희 : 좋은 소식이라니?
광희모 : 어떤 아가씨니? 이제 장가 갈라구 그러는 거지?
광 희 : 그런 거 아니라니까! 끊어!
냅다 전화를 끊는 광희.
광희모 화면 사라지면, 광희, 벌떡 일어나 팔굽혀 펴기를 시작한다.
가열차게 몇 번 하더니, 이내 후들거리는 광희. 제풀에 픽 쓰러진다.
광 희 : 어이구! 어깨야! 어깨 빠졌나봐! 어이구, 어깨야!!
어깨를 잡고 떼굴떼굴 구르는 광희.
S#52. 경찰서 (낮)
형사들 쭉 모여 있고, 수첩을 든 종희가 형사들에게 묻고 있다.
종 희 : 박형사님은요?
박형사 : 난 라면.
김형사 : 난 라면에 김밥.
이형사 : 나도 라면에 김밥...
종희, 경태를 돌아보면,
경 태 : (무게 잡고) 난 알탕.
신문을 보거나하며 심드렁하게 앉아 있던 형사들 일제히 경태를 쳐다본다.
박형사 : 알탕...?
경 태 :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네. 왜요?
김형사 : 그거 8천원이야.
경 태 : 8천원 내면 되죠, 뭐.
종 희 : (나황을 강조하며) 나황!형사님 원래 알탕 같은 거 안 드시잖아요.
경 태 : 먹을 일이 있어. 기왕이면 알! 꽉~찬 걸로 듬뿍 좀 넣어달라 그래.
의아한 듯 경태를 보는 종희와 형사들.
S#53. 자취집 위층 거실 (밤)
유럽축구를 보는 수현과 경태. 같은 편을 응원하는지, 어? 에이~! 어? 에이~! 동시에 같이 애석한 반응들 해준다. (코믹하게)
수현, TV에 시선 둔 채 무심코 냉장고로 가서 캔맥주를 꺼내온다.
소파로 온 수현, 캔을 따서 맥주 마시려는데,
축구에 열광하던 경태 뜩 보더니, 맥주를 슥 뺏어간다.
경 태 : 술 담배 금물. 몸 만들어야지!
수 현 : 아, 참. 그렇지.
다시 축구 보는데, 1층에서 전화통화하며 올라오는 광희. 어깨에 파스 붙어있다.
광 희 : 어... 오빠, 좀 바빴어. (사이) 보고 싶어도 좀 참아. (사이) 삐졌구나? (경태 옆에 앉으며) 그럼 내일 어디서 볼까?
경 태 : (뜩 보더니 전화기 뺏어서) 아가씨 댁에 오빠 당분간 여자 못 만나니까 그렇게 알아요.
핸드폰 끊고는 광희에게 내민다.
S#54. 도심 빌딩 화원 앞 길 (낮)
서류가방을 든 채 바쁘게 뛰어가던 수현, 문득 멈추더니 뒤돌아온다.
화원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는 미니 선인장들. ‘전자파 차단에는 선인장’ 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S#55. 수현의 증권회사 사무실 (낮)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트레이딩 중인 수현. 컴퓨터 모니터 옆에 엄청나게 많은 미니 선인장들이 올망졸망 놓여있다.
알록달록 예쁜 꽃을 달고 있는 미니선인장들. (거의 화원 분위기)
수현, 흐뭇하게 웃는데, 지나가던 김팀장이 수현을 보고 묻는다.
김팀장 : 한대리, 이게 다 뭐야?
수 현 : 전자파 차단할려구요. (회전의자 빙글 김팀장을 향하면)
수현의 배.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펼쳐 복대처럼 두르고 있다.
김팀장 : (왜 저래? 하는 표정) 그건 또 뭐야?
수 현 : (배를 두드리듯 전화번호부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전자파가 안 좋다 잖아요. 특히 남자한테.
수현 배시시 웃으면, 어이없는 표정으로 가는 김팀장.
S#56. 자취집 아래층 거실 (밤)
팬티 차림으로 TV를 보던 광희, 소파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가는데,
수 현 : (위층에서 내려오며) 야, 그 바지 좀 입을 수 없냐?
광 희 : 야, 열이 얼마나 안 좋은 줄 알아? 남자한테? (냉장고 열며) 이렇게 바람이 솔솔 통하게 해줘야 좋은 거야.
수 현 : 그래...? (순간 망설이더니) 에이, 그럼 나도 벗어야겠네?
허겁지겁 바지를 벗으려는 수현.
이때 현관문이 열리며 퇴근한 경태가 들어온다.
수 현 : (대뜸) 야, 경태야! 너두 벗어!
경 태 : (어리둥절) 엉?
수 현 : 벗으라니까, 임마!
S#57. 신혼집 부엌 (아침)
출근차림으로 거실 쪽을 경계하며, 나영 몰래 냉장고에서 보약을 잔뜩 챙겨 가방에 퍼담는 성민.
그런데 성민 뒤쪽 다용도실에서 나타나는 나영.
나 영 : 뭐해?
성 민 : (깜짝 놀라) 어?
나 영 : 뭐하냐니까... (와서 보약 보면)
성 민 : 어... 오늘부터 회사에다 갖다놓고 열심히 먹을라고.
나 영 : 정말? 자기야. 나 완전 감동했다.
나영, 고무장갑 낀 두 손으로 성민의 얼굴을 잡고 쪽 뽀뽀한다.
얼굴 붙잡힌 채 배시시 웃는 성민.
S#58. 아래층 거실 (아침)
출근길에 들러 친구들에게 바삐 보약을 나눠주는 성민.
수 현 : 이게 뭐야...?
성 민 : 몸에 좋은 거니까, 아침 점심 저녁으로 꼭 먹어.
경 태 : 그래? 몸에 좋은 거야?
광 희 : 지금 하나 먹어볼까?
막상 몸에 좋은 거라니까 즐겁게 한 봉지씩 쭈욱 들이키는 세 남자.
광 희 : (감탄) 야, 맛 좋다! 이게 뭘로 만든 건데?
성 민 : 어, 홍삼하고... 뱀, 지네, 물개, 곰쓸개...
우웩~! 입을 부여잡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수현과 광희.
경 태 : 난 좋은데? 하나 더 주라.
성 민 : 그래, 많이 먹어. (빨대 꽂아 준다.)
S#59. 경찰서 (낮)
돌아가면서 화면에 대고 쭉 메뉴를 말하는 형사들.
김형사 : 난 짜장면.
박형사 : 나도 짜장.
이형사 : 난 짬뽕...
이내 경태 화면에 보이면,
경 태 : 알탕.
질린 표정으로 일제히 경태를 보는 형사들과 종희.
박형사 : (경이로운 눈빛으로) 어떻게 인간이... 일주일 내내 쭉~ 알탕만 먹을 수 있지?
그러거나 말거나 흐뭇한 표정으로 컴퓨터 자판을 치는 경태. 한약 팩을 쪽 빨아먹는다.
S#60. 병원, 불임클리닉 앞 복도 (낮)
괜히 여기저기 눈치 보며 나란히 앉아있는 수현과 광희.
광 희 : (소근소근) 어쩌지...?
수 현 : (자기도 찝찝하긴 마찬가지) 뭘 어째? 한번 해주기로 한 걸...!
광 희 :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이때 역시 괜히 여기저기 힐끔힐끔 보며 쭈삣쭈삣 나타나는 경태.
수 현 : 저 새끼 꼭 늦어.
광 희 : 넌 자식아, 또 늦게 오냐? (하면서 자리 내주면)
경 태 : (그러거나 말거나 가운데 앉고) 너희들 정말 할 거야?
수 현 : 그럼. 한번 한 약속인데...! 지켜야지...
경 태 : (그 소리에 찍소리 못하고) ...
세 남자 앞만 보고 눈만 껌뻑이는데, 간호사 오자 서로 모르는척 딴짓한다.
간호사가고.
경 태 : (갑자기 일어나며) 난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할까봐.
광희와 수현, 양쪽에서 동시에 경태를 잡으며,
광 희 : 야, 그런 게 어딨어? 너만 쏙 빠지면 우린 뭐가 되냐?
수 현 : 할 거면 다 같이 해야지!
경태 다시 앉혀지고, 세 남자 또 앞만 보며 눈 껌뻑이는데...
광 희 :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난 도저히 못하겠다. (도망가는데)
이때 광희 앞에 나타난 성민, 광희를 잡아온다.
성 민 : 야, 야, 어디 가? 이리 와, 이리 와...
광 희 : (붙잡혀 오며)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수,경태 : (엉거주춤 일어나며) 나도...
성 민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희 중 누구 걸 쓰게 될 지는 나도 몰라. 그러니까 절대 부담 가질 것 없어.
경 태 : 정말이지? 누구 걸 쓰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성 민 : 그럼.
수 현 :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쩌겠냐...
성 민 : (간호사의 동태를 살피며) 잠깐만...
세 남자도 덩달아 같이 동태 살피면, 간호사가 어딘가로 뛰어가며 사라진다.
성 민 : 됐다. 빨리, 빨리...!
모두 성민을 따라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 틈에도 생쥐같이 도망가려는 광희를 성민과 다른 친구들이 동시에 움켜잡고,
네 남자 문으로 조용히 들어가고 나면, 문 위에 달린 팻말. 정자채취실.
S#61. 나영의 태몽 (꿈)
탐스러운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나영이 과일을 따서 치마폭에 가득 담는다.
저만치 성민이 웃으며 나타나면,
나 영 : 성민씨! 이거 받아!
나영, 성민을 향해 과일을 하나 던져주는데, 과일을 받으려고 손을 쭈욱~ 뻗는 성민.
그때 갑자기 성민 앞에 나타나는 세 남자. 성민을 제치고 전투적으로 서로 과일을 잡으려고 몰려드는데서.
S#62. 신혼집 거실 (낮)
소파에서 잠을 자다가 살픗 놀라서 깨는 나영. 이상한 기분으로 잠시 그대로 멍하니 있다.
나 영 : 별 이상한 꿈을 다 꿨네...? 과일인데...? 아주 탐스러웠는데...? (놀라서 몸을 일으키며) 태몽인가...!
(고개 갸웃, 인상 쓰며) 근데 왜 그 인간들이 나오지?
S#63. 산부인과 앞 (낮)
터덜터덜 병원에서 나오는 세 남자. 한동안 말없이 각자 찝찝한 표정인데,
경 태 : (영 찜찜한 기분으로) 아, 배고파. 힘 썼더니 갑자기 허기가 지네?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수,광희 : (동시에) 으이그...!
경 태 : 왜? 헌혈을 해도 빵을 하나 먹는데, 배들 안 고프냐?
수 현 : 지금이 배고플 상황이냐?
광 희 : (귀찮다는 듯) 아, 알았어. 어디 가서 밥이나 먹자. 그냥 헤어지기도 찝찝하잖아.
문득 어디론가 향하는 세 남자. 우왕좌왕 발길이 엉키다가 한 곳으로 간다.
S#63-1. 추어탕 집 (낮)
어항 속에 미꾸라지들이 뒤엉켜 헤엄을 치고 있고,
물끄러미 식탁에 둘러앉아있는 세 남자.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경태.
경 태 : 아무래도 안 되겠다. 지금이라도 하지 말라고 할까봐.
수 현 : (역시 찝찌름한) 한번 해준 걸 어떻게 물리냐?
광 희 : 에이, 이제 잊어버려. 생각하면 골치만 아프지. 빨리 밥이나 시켜.
경 태 : (앉으며, 허공을 보며) 나 추어탕.
수 현 : (역시 허공보고 멍한) 나도 추어탕.
광 희 : (허공 보고) 나도 추어탕...
수 현 여기 추어탕 세 개요!
하지만 일제히 한숨을 내쉬며 생각이 복잡한 세 남자.
S#64. 동 정자채취실 안 (낮)
넓은 방 한가운데 물끄러미 앉아있는 성민. 세 개의 실린더를 앞에 놓고 긴장되는 듯 한동안 신중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
이윽고 마음의 준비가 된 듯 뭔가 실행하려고 하는데... 이때 핸드폰이 울린다.
성민 천천히 핸드폰을 꺼내보면, 경태다.
전화를 받는 성민.
성 민 : 어, 왜?
경 태 : (E. 다급하게) 성민아...! 안된다.
성 민 : 안되다니?
경 태 : (E) 우리가 다시 생각해봤는데, 이건 아니야. 너 절대 그러면 안돼.
성 민 : 너희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경 태 : (E) 아니야, 이건 미친 짓이야. 니가 하도 그래서 해준 건데, 우리가 잠깐 어떻게 됐었나봐.
너도 다시 생각해봐. 이건 절대 안돼!
수,광희 : (E. 옆에서 소리치는) 안돼...! 하지마!
성 민 : (실망해서) 그래...?
경 태 : (E) 우리 말 들어. 안 할 거지?
성 민 : ... 그래, 알았어. 그럼 안할게.
경 태 : (E) 진짜지?
성 민 : 응.
경 태 : (E) 진짜 약속한 거다?
성 민 : 그래... 약속할게.
경 태 : (E) 그럼 너만 믿고 끊는다.
성 민 : 그래...
실망해서 전화를 끊는 성민.
S#65. 추어탕 집 (낮)
경 태 : (전화 끊고, 다행인 기분) 안한댄다.
세 남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광 희 : 그래? 휴, 다행이다.
수 현 : (좀 미안한 기분이지만) 성민이 걔도 이성은 있는 놈이야.
경 태 : (얼이 빠져) 우리도 미친놈이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봐.
광 희 : 좀 미안하긴 한데... 어쩌겠냐... (홀가분하게) 아무튼 야, 잘됐다, 야! 먹자!
모두 홀가분하게 웃으며 추어탕을 먹으려고 하는데,
수 현 : (먹다가 갑자기 생각난 골칫거리) 하, 그럼 난 500만원 빨리 갚아야겠네?
광 희 : (핸드폰 내밀며) 500만원 주기 아까우면 니껀 그냥 하라고 하던가.
수 현 : (고개 빨리 저으며) 으, 아냐, 아냐. 얼른 먹고 가자.
이내 홀가분하게 웃으며 추어탕을 먹기 시작하는 세 남자.
S#66. 정자채취 실 안 (낮)
부감으로.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성민. 실망해서 참담한 표정이다.
잠시 후 고개를 들더니, 멸균장갑을 꺼내 천천히 끼는 성민. 이윽고 결심한 듯 세 개의 실린더를 쳐다본다.
S#66-1. 세 남자의 집 거실 (밤)
TV에 흐르는 코메디 프로그램 화면.
소파에 주르륵 앉아 캔맥주 마시면서 키득거리며 코미디 프로 보고 있는 세 남자.
광 희 : 맥주 맛 좋다.
수 현 : 그 동안 이렇게 맛있는 맥주도 못 마시고... 괜히 고생했잖아.
경 태 : (벌컥벌컥 마시더니) 캬~! 오랜만이라 그런지 진짜 시원하다. 야, 하나 더 주라.
광희, 맥주를 하나 더 따서 경태에게 주고,
TV에 넋 놓고 있는 세 남자, 웃긴지 바보 같은 웃음들 흐흐흐 흘리면서 보는데, 아하하하하~~~
오바해서 웃던 경태, 손에 들고 있던 맥주 수현의 옷에 살짝 흘린다.
수 현 : (오바하며 발끈) 아 차거! 자식! 조심 좀 하지!!!
경 태 : 아우, 고거 좀 흘렸다구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잡히는 대로 옆에 벗어놨던 양말로 쓱쓱 닦아주고)
수 현 : 아우 냄새! 저리 안 치워!!! (거칠게 뿌리치고)
광 희 : (버럭) 아 쫌! 조용히 좀 해 봐! 안 들리잖아!!!
경 태 : (수현에게) 아 자식 진짜... 너 니 방 가서 봐!!
수 현 : 굳이 같이 보자구 부를 땐 언제구! (벌떡 일어나서 이층으로 올라가고)
경태 좀 편하게 보려고 자세 편하게 잡으면,
광 희 : 에이... 끝났잖아.... (밀크 안고 일어나 자기 방으로 향한다.)
경태, 갑자기 혼자 남자 맥주 벌컥벌컥 마시고는 TV 끄고 방으로 들어간다.
거실의 불이 꺼진다.
S#66-2. 동 광희의 방 (밤)
광희, 편안한 자세로 반쯤 누워서 여자랑 통화하고 있다.
광 희 : 미안해... 오빠가 그동안 바빴어. 우리 영~ 오빠 많이 보고 싶었구나?
밀크가 다가오면, 밀크를 안아주며 통화한다.
S#66-3. 동 수현의 방 (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수현.
수 현 : (혼잣말) 에이씨.. 500을 당장 어떻게 맞추냐. 장도 안 좋은데, 주식을 팔 순 없고...
성민이한테 할부로 끊어 달라고 할까? 아무튼 빨리 갚아버리자.
이 통장, 저 통장 들춰보며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린다.
S#66-4. 경태의 방 (밤)
구겨진 맥주 캔이 굴러다니고, 옷도 벗지 않은 채, 이미 대자로 뻗어 코까지 골며 잠든 경태.
S#66-5. 나영의 신혼집 (밤)
잔잔하고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고, 여기저기 작은 촛불들이 켜져 있다.
거실 한 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나영과 성민.
거실 바닥엔, ‘아기는 반드시 생깁니다’ ‘임신을 부르는 자기 최면법’ 등 불임 관련 서적이 보인다.
나 영 : (E. 눈 감은 채 속으로) 이번엔 잘 될 거야. 정말 잘 될 거야... 불안해하지 말자... 게다가 좋은 꿈도 꿨잖아...?
내일 분명히 성공할 거야.... 더 이상 성민씨 마음고생 하는 일 없을 거야!
성 민 : (E. 슬쩍 눈 뜨고 나영을 힐끔힐끔 살피며, 속으로) 어떡하지? 나영이한테 얘길 해야 되나...? 그 놈들 정자라고...?
(고개 저으며) 아니야, 아니야...! 그럼 분명히 안 하겠다고 할 텐데... 안돼! 나영이한텐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 돼.
더는 나영이 고생시킬 수 없어...! 나만 비밀 지키면 다 잘 되는 거야.
평화로운 표정으로 명상을 하던 나영, 이내 눈을 뜨고.
화들짝 놀라 눈을 감는 성민.
나 영 : 자, 이제 2단계~!
성 민 : (같이 눈뜨며 따라서) 2단계~!
나 영 : 임신을 부르는 주문을 외운다!
성 민 : 임신을 부르는 주문을 외운다!
나 영 : 나는 엄마가 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있다.
성 민 : 나는 아빠가 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있다.
나 영 : 나는 건강하며, 건강한 아기를 낳는다.
성 민 : 나는 건강하며, 건강한 아기를 낳는다.
나 영 : 나는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우리에겐 예쁜 아기가 생긴다.
성 민 : 나는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우리에겐 예쁜 아기가 생긴다.
나 영 : 우리 부부의 가장 좋은 유전인자만을 가진 아기가 생긴다.
성 민 : (뜨끔해서 잠시 주춤) 우리...
나 영 : (옆구리 찌르며) 뭐해?
나영, 간절한 눈빛으로 성민을 바라보고. 이내 결심한 듯 크게 심호흡을 하는 성민.
성 민 : (경건하게) 우리 부부의 가장 좋은 유전인자만을 가진 아기가 생긴다!
나영이 간절하고 절실한 표정으로 눈을 감으면, 성민도 얼른 따라서 눈을 감는다.
나 영 : 3단계...
성 민 : 3단계... (그러다 눈 뜨고 나영을 보며) 그만하자. 자기 내일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술받아야지.
나 영 : 어, 그럴까?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는 나영과 성민.
나 영 : 우리 오늘은 손 꼭 붙잡고 자자.
성 민 : 그러자...
두 사람, 손을 꼭 붙잡고 침실로 들어간다.
침실 문이 닫히고 문에 붙은 하트 속 두 사람의 사진이 남는다.
S#67. 정자와 난자의 만남 (CG)
경쾌한 음악과 함께, 정자들의 행진이 시작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로를 밀치며 치열하게 달려가는 정자들...
정 자1 : (광희 목소리에 필터) 너 누구냐?
정 자2 : (경태 목소리에 필터) 너는 누구냐?
정 자3 : (수현 목소리에 필터) 쟤들 못 보던 애들인데?
정 자1 : 우리가 먼저 가자!
정자들 : (아우성) 내가 먼저야! 웃기지 마, 임마. 우리가 먼저 갈 거야. 와~! 드디어 간다...! 오~! 안돼! 어디로 가는 거지?
정자들, 가려던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와르르 빨려 들어간다.
난자에 주사바늘로 넣어지는 정자 하나.
아 기 : (Na) 드디어 내가 생기려고 하네요! 정말 복잡한 사연이 많았죠?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저 같은 아기가 하나 만들어지려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과, 슬픔과, 기적과도 같은 감동이 필요한지 잘 아시죠?
그럼 다음 얘기는 내일 또 들려드릴게요.
수정란에 한포기 두포기 꽃이 피고, 세포가 분열한다. (화이트 아웃)
- 1부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