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내게는 그런 경망함은 없을까? -
권다품(영철)
책에는 좋은 글귀나 도움이 되는 말들이 참 많다.
그걸 알면서도, 사는 게 바쁘고 마음이 바빠서 잘 안 읽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TV가 나와서 세상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그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리고, 꿈을 주기도 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적게 읽는 이유도 된 것도 같다.
안 그래도 TV 연속극 때문에 책을 적게 읽고 있었는데, 이젠 TV보다 더 편리한 것이 나왔다.
휴대폰이다.
TV 앞에서만 볼 수 있던 드라마를 움직이면서도 볼 수 있고, 역사, 다큐멘터리, 궁금했던 법률 지식이나 여행 정보 등 거의 없는 정보들이 없달 만큼 편리한 휴대폰 시대가 되었다.
다른 건 편리해서 좋다.
그런데, 나는 드라마보다는 책을 읽어라고 권하고 싶다.
드라마는 어떤 내용을 연출자의 획일적인 관점이지만, 책은 읽는 사람이 연출자가 된다.
자신의 머리로 책 속의 내용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읽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요즘은 자신의 마음을 친구나 연인에게 전달할 때도 옛날처럼 편지를 써서 우체국으로 가서 보내지 않아도 된다.
휴대폰으로 하면 너무 간단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너무 편하게 전할 수 있는가 하면, 청첩이나 부고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모임이나 행사 알림도 휴대폰이 다 해결해 준다.
나도 그 편리함을 많이 누리고 있는 편이다.
고맙게도 내 주위 형님들이나 친구, 후배들이 좋은 글이나 정보들을 많이 보내준다.
나 혼자 보고 말기에는 아깝다 싶은 정보들이나 마음에 와닿은 글들은 아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전달하기도 한다.
내 이 오지랖 넓은 성격 때문에 정말 황당한 말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니는 씨바, 니도 담배 못 끊으면서 건강에 관한 것들은 말라꼬 보내노? 앞으로 내한테 연락하지마라." 이런 말을 하는 인간이 있었다.
내 마음은 '이제 중년이 되었으니 우리도 건강 관리에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보냈는데, 그런 말을 내 얼굴을 직접 보며 했다.
그래서 나는, 그 경망스러운 인간애게 욕도 한 마디 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전화번호를 지우고, 마음에서도 지워 주었다.
나는 보잘 것 없고 수준이 낮을 지는 모르지만, 내가 쓴 글들을 보내기도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글을 자랑하고 싶어서 보내는 줄로 아는 사람들이 제법 되는 것 같다.
자랑하고 싶어서 보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썼으면서도 내 글을 읽어보면 참 재미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대부분의 내 글들은 '이렇게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을 텐데, 나는 그렇게 못 살고 있구나', 하는 내 반성의 글이고, 또, 잘못 사는 사람들의 내용을 쓰면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내 다짐의 글이다.
가끔은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아서 마땅한 인간들의 내용을 쓰면서, '혹시 나는 어떨까'하면서 나 자신도 한 번 돌아보고, 반성해보는 그런 의미의 글들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 중에는 '저 사람은 자기는 이 글 내용처럼 다 지키는 사람이라서 이런 글을 쓸까'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수필은 자기 반성의 글이다
나는 글을 쓸 때, 나는 자랑하고 싶지도 않고, 또,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잘 살지도 못했다.
또, 나는 성격이 다른 사람 앞에서 지식을 과시하려는 그런 얄팍함은 참 싫어한다.
여태까지 잘못 생각하거나 부끄럽게 살았던 삶들을 일기처럼 반성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내 반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억지로라도 나를 좀 더 바른 삶으로 옭아매 보고 싶다는 그런 의도로 글을 쓰는 편이다.
또, 어떤 사람 중에는 "나는 이런 딱딱한 글은 안 좋아하니까 안 보냈으면 좋겠다."라는 글을 주는 사람도 있다.
참 무안하다.
그런데,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글일 수도 있고, 자기 취향의 글이 아닐 수도 있겠다.
보내는 사람이 자기를 생각해서 보냈다고 생각해 줄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있는 게 맞지 않을까?
만일, 자기가 안 좋아하는 글이고, 읽기 싫은 글이라면 그냥 지우면 될 일이다.
그런데, 보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속에 넣어놓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말로 하는 것이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나는 비밀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개인적인 생각일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솔직함은 '무식한 솔직함'이라 말하고 싶다.
그런 톡을 받으면 내게는 혹시 그런 경망함은 없을까도 생각해 본다.
나는 혹시 마음에 안 드는 말을 듣더라도,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이렇게 경망함과 '무식한 솔직함'을 같이 지녔다고 자랑한 적은 없을까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남을 통해서 나를 확인하고, 갈고 닦을 수 있는 '타산지석'의 교훈이 이런 것일까?
그런데,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조심을 하다보니, 말이 자꾸 줄어들기는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젊잖은 사람인 줄 알고, "이 형님은 평소에 말씀도 함부로 안 하고, 젊잖은 분이다."란 말을 들을 때도 있다.
어이, 그런 말을 들으마 와 그래 부끄럽겠노, 어요?
2023년 2월 12일 낮 11시 50분,
권다품(영철)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