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기행
이월 셋째 일요일 아침 한 친구와 어시장 버스정류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로는 산과 들로 자주 동행했는데 근래 교류가 뜸했다. 친구는 학교 관리자 위치라 방학도 쉴 틈 없이 계속 근무였고 출장이 잦아서였다. 나는 봄방학에 들었다만 친구 학교는 아직 종업식이 남았고 봄방학도 없다시피 바쁜 나날을 보낸다고 했다. 우리는 어시장에서 만나 밤밭고개를 넘는 64번 버스를 탔다.
64번은 진동을 거쳐 명주 갯가까지 가는 농어촌버스였다. 우리는 밤밭고개에서 내렸다. 밤밭고개는 무학산 종주 기점이면서 청량산 등산 들머리기도 했다. 우리가 목표로 정한 청량산은 길을 건너야 했다. 교통량이 많은 고개라 육교가 설치되어 계단을 올라 청량산 들머리를 찾았다. 나는 청량산 허리로 난 산책길은 걸었어도 청량산은 처음 가는 길이다. 친구도 나랑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남해안은 해안선 굴곡이 아주 심하다. 이런 해안을 스페인 서북부 한 지명에서 따온 이름으로 리아스식 해안이라고 한다. 경남에선 통영 인근이 대표적인 리아스식 해안이다. 창원에선 남마산을 지나 구산면 일대도 해안선 굴곡이 심하고 바다에는 유인도와 무인도가 점점이 떠 있다. 청량산은 해발고도가 높지 않지만 바다와 섬을 부감하면서 산행하기 알맞은 산이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등선을 따라 나아갔다. 되돌아보면 무학산 아래로 마산시가지가 훤히 드러나고 앞으로는 합포만 바다였다. 가포에서 삼귀해안으로는 마창대교가 S라인으로 휘감아 돌아갔다. 해군사령부와 진해 시가지도 눈에 들어왔다. 진해만에도 바다가 점점이 떠 있고 아스라한 거가대교와 거제도 방파제처럼 바깥 바다를 막아주었다. 한 시간 남짓 나아가니 청량산 정상이었다.
정산에는 최근 완공된 정자와 전망대가 있었다. 몇몇 시민들이 바다와 섬들을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바다를 조망하고 쉼터에서 친구가 가져온 곡차를 한 병 비웠다. 안주는 내가 엊그제 북면 들녘에서 캐온 냉이로 끓인 냉잇국을 꺼냈다. 친구가 맛을 보더니 아주 잘 끓였다고 추켜세웠다. 데친 냉이에다 새송이버섯과 두부를 넣고 된장을 풀었다. 양념으론 마늘과 땡초가 들어갔다.
곡차를 비우고 나서 우리는 산등선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발아래는 덕동 하수처리장이었다. 마을 앞 바다는 호수 같았다. 산등선 따라 나아가니 성곽 같기도 하고 참호 같기도 한 석축 구조몰이 나왔다. 아마 일제 강점기 때 축조된 군사시설물인 듯했다만 안내 표지판이 없고 어디 물어볼 데도 없었다. 가운데가 분화구처럼 움푹 파인 석축을 지나니 경사가 아주 급한 내리막이었다.
석축에서 내리막을 내려서니 유산삼거리였다. 삼거리에서 석곡마을 이정표를 만나 다시 산비탈을 따라 올랐다. 다리엔 힘을 실어 보태고 숨은 가팠다. 등에는 땀이 살짝 흐를 정도였다. 그리 높지 않았다만 펑퍼짐한 산마루에서 쉬면서 도시락을 비웠다. 아까 남겨 놓은 곡차와 냉잇국은 역시 인기였다. 청량산 정상 이후는 산행객들이라곤 한 명도 만나질 않은 한적한 등산로였다.
점심밥을 먹고 나서부터 한동안 해안선과는 동떨어진 내륙 산지를 걷는 기분이었다. 석곡마을은 군령삼거리에서 고개를 넘어 수정 가는 길에 있었다. 우리는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숲으로 들었다. 마을 뒤는 규모가 제법 큰 노인요양원이 있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산불감시원의 말벗이 되어주었다. 박봉에다 여름엔 한시적 실업자 되는 애환을 털어놓았다.
초소에서 조금 더 나아가니 금호산 정상 표석이 나왔다. 근처 바위에서 욱곡과 명주 앞 바다를 굽어보았다. 연륙교가 놓인 저도와 낚시터로 알려진 원전 앞바다도 드러났다. 점이 이어진 곳은 해안선이고 바다에서 끊어진 점은 섬이었다. 선과 점에 힘이 뭉쳐진 곳은 산이었다. 친구와 떠난 해안선 기행은 백령고개에서 끝냈다. 둘은 어시장으로 가서 생선회를 앞에 놓고 잔을 비웠다. 13.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