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2월4일)에 아내와 계룡산을 다녀왔다. 계룡산국립공원은 대전시, 공주시, 논산시에 걸쳐 있고 계룡산이라는 이름은 능선의 모양이 닭의 벼슬을 머리에 쓴 용의 모습과 흡사해 생겼다. 옛날부터 풍수전문가들이 길지로 꼽아 조선 건국 때부터 3공화국, 지금의 행정수도 이전 예정지까지 도읍지로 거론된 곳이다. 정감록에 큰 변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로 알려져 신흥종교들이 성했으나 1984년 모두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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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룡산의 겨울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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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
| 계룡산을 멀리서 보면 주봉인 천황봉, 쌀개봉, 삼불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흡사 닭 벼슬을 한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 '춘 동학 추 갑사'로 불리는 계룡산은 대전 쪽의 동학사, 공주 쪽의 갑사와 신원사에서 오를 수 있다. 동학사와 갑사는 계룡산의 주능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이곳을 넘나드는 계곡과 능선을 넘는 산행을 하면 두 곳을 두루 구경할 수 있다.
승용차를 동학사 주차장에 주차시켜 금잔디고개를 넘어 갑사로 가는 산행은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계룡산을 두루 돌아볼 수 있는 동학사주차장을 출발해-1.8㎞-동학사-1.6㎞-은선폭포-1㎞-관음봉-1.6㎞-삼불봉-0.5㎞-남매탑-1.7㎞-동학사-1.8㎞-다시 동학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해 산행을 시작했다.
주로 등반객이었지만 겨울인데도 입구부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할머니 한분이 일주문을 향해 합장을 하고 간절히 소원을 비는 모습이 보였다. 겨울 계곡을 바라보며 조금 걷다보니 연달아 관음암, 길상암, 미타암이 나타난다. 가까운 곳에 있는 세심정을 지나면 고려 말의 삼은(정몽주·이색·길재)을 모신 삼은각,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제사를 지내는 동계사, 단종과 사육신 등의 초혼제를 지내는 숙모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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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문,관음암,길성암,미타암,세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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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
| 막 옆으로 돌아서면 범종루, 동학사, 대웅전이 나타난다. 알려진 명성에 비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사찰이다. 계룡산의 동쪽에 있는 동학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으로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 동학사라 했다거나 고려 말의 성리학자인 정몽주의 제사를 지내 동학사라 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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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사,대웅전,범종루,삼은각과 동계사,숙모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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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
| 동학사에서 계속 계곡 쪽으로 오르면 은선폭포 가는 길이다. 일주문 주변부터 은선폭포를 지나 관음봉고개까지 이어지는 10리길의 계곡을 동학사계곡이라 하는데 이곳의 신록이 계룡산 8경중 제 5경이다. 오늘따라 아이젠 챙기는 것을 깜박했는데 등반로가 반들반들 얼어붙어 무척 미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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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끄러운 등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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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
| 마침 산위에서 내려오던 공원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아이젠 없이는 등반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임을 얘기했다. 그렇다고 도중에 등반을 포기할 수도 없어 강행을 결심했다. 은선폭포에 가기 전에 쌀개봉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등반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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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개봉과 은선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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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
| 동학사에서 1.6km 지점의 계곡에 있는 은선폭포는 높이 35m의 암벽폭포이다. 옛날 신선이 숨어 살던 곳이라 하여 은선폭포라 불리는데 이곳의 운무가 계룡산 팔경중 제 7경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지만 수량이 적어 얼어붙은 겨울의 은선폭포는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 수줍은 듯 조용했다.
은선폭포에서 관음봉삼거리까지는 가파르고 낙석 위험지역이다. 하지만 우거진 숲과 흩어져 있는 돌들이 조화를 이뤄 등반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 이 삼거리에서 200m 거리에 관음봉이 있다. 해발 816m인 관음봉은 천왕봉, 쌀개봉과 함께 계룡산의 주봉이고 관음봉 한운은 계룡산 8경중 제4경이다. 관음봉 정자에 올라 커피를 한잔 마시며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정자 뒤 바위 끝에 있는 관음봉 표석을 배경으로 사진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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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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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
| 관음봉에서 삼불봉까지는 1.6㎞ 거리지만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수시로 만나는 철계단과 돌계단이 아기자기해 등반을 더 재미있게 한다. 또 이 구간에 있는 몇 곳의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계룡산의 모습이 단연 최고다. '까악~까악~' 까치의 울음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온다. 반가운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까치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있다. 계룡산은 돌이 많은 산이라 등반로 옆으로 사람들의 기원이 담긴 돌탑들도 자주 만난다. 그런 모습들이 너무나 한가로워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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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와 돌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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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
| 삼불봉(해발 775m)은 천왕봉이나 동학사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세 부처님의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고 이 삼불봉 설화가 계룡산 8경중 제 2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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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불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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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
| 평소 같으면 문제될 게 없는 길이었지만 빙판이라 내리막길이 조심스러웠다. 원래 겨울등반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위험하다. 한 발짝, 한 발짝 신경을 곤두세우며 내려가노라니 어쩌면 지천명의 중반을 향하고 있는 내 인생살이를 보는 것 같았다. 등반로에서 이정표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인생살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는 세월과 오는 백발을 누가 막을 것인가? 내리막길에 들어선 인생살이가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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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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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
| 갑사와 연결되는 삼불봉삼거리를 지나 동학사 쪽으로 0.3㎞ 내려오면 상원암과 나란히 서있는 2기의 남매탑(청량사지쌍탑)이 있다. 남매탑은 한 처녀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승려와 서로 범하지 않고 평생 동안 불도를 닦으며 함께 지냈다는 전설이 있는 탑으로 7층 석탑을 오라비탑이라 하고, 5층 석탑을 누이탑이라 한다.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두 탑을 밝히는 남매탑 명월이 계룡산 8경중 제 8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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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원암과 남매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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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
| 남매탑에서 세심정까지는 걷기에 편한 내리막길이다. 하산을 하며 아내와 평소에 살갑게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나눴다.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나보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주던 대화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다시 미타암, 길상암, 관음암을 지나는데 사찰에서 예불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저녁시간이다.
동학사를 가기 위해 상가를 지날 때 내려가면서 들려가라는 말에 웃어준 것을 꼭 온다는 것으로 알고 있겠다는 유머로 답했던 낙원식당 여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인정에 약한 게 한국인의 특성이라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빈대떡을 시켜 동동주를 한잔 마시며 산행의 피로를 풀었다. 충청도 인심을 닮은 주인아줌마는 어묵을 서비스로 그냥 줄만큼 모든 것이 너그러워 편했다. 식당을 나오니 지는 해가 계룡산 너머로 빛을 발하며 넘어간다. 우리도 동학사를 뒤로 하고 15분 거리에 있는 유성IC를 향해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