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킴 왕국 마지막 이야기/시킴떠나는 날 선술집을 찾아가리라
글·사진 임현담 <히말라야 있거나 혹은 없거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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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킴 히말라야에는 룽다가 많다. 사실 이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많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덮여있다고 이야기해야 옳다. |
남선우의 <역동의 히말라야>를 참고하면 협의의 히말라야는 통상 1. 아삼 히말라야, 2. 부탄-시킴 히말라야, 3. 네팔 히말라야, 4. 가르왈 히말라야, 5. 펀잡 히말라야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 가장 동쪽에 자리 잡은 히말라야는 아삼이고, 그 옆이 부탄-시킴 히말라야가 된다. 그러나 부탄과 시킴이 다른 나라임을 감안한다면 부탄 히말라야와 시킴 히말라야로 다시 작게 쪼갤 수도 있다.
동쪽에서 시작된 히말라야는 아삼에 이어 부탄에서 몸을 일으키지만 8000m급의 고봉을 하나도 품어내지 못한다.
시킴 히말라야에 이르러야 8586m의 캉첸중가가 크게 용솟음 치고 히말라야 대간을 좌측, 즉 히말라야의 맹주인 서쪽 네팔 히말라야에 넘겨주게 된다. 따라서 동쪽 히말라야에서 아침 햇살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곳은 시킴 히말라야가 된다.
히말라야 전체에서 시킴 히말라야의 크기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눈물 한 방울이다.
그러나 이 작디작은 시킴 히말라야를 사람들은 ‘히말라야 진주’ 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낮은 지역은 280m, 가장 높은 곳은 8586m의 캉첸중가가 겨우 충청북도 크기 땅덩어리 안에 모조리 자리 잡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밑으로는 과일과 곡물이 풍부하게 수확되는 아열대가 떠받치고, 그 위로는 꽃들과 나무들이 뽐내는 온대지역, 이어 야크들이 방목되는 야생화 천지의 고산지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설로 장식한 첨봉들까지 서로 다정하게 촘촘히 좁혀 앉아 있는 곳이 시킴 히말라야다.
따라서 이곳 식물군과 동물군의 생태계는 지구상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같은 히말라야라도 서쪽 끝의 K2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막에 다름 아닌 황량함을 대비한다면, 이곳은 온갖 동식물로 생명력 넘치고, 그들로 인해 활기차고 더불어 녹색과 백색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도출하는 축복의 땅이다.
‘히말라야의 진주’라는 별칭이 다른 지역을 견주어 보아도 조금도 아깝지 않아 개인적으로 더 좋은 단어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시킴 히말라야는 나 홀로 산객을 거절한다. 개인적으로 시킴의 대도시까지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반(道伴)을 요구한다.
마치 이 지역이 단일민족이 아니라 렙차족·부티아족·네팔인들이 승가(僧伽)를 이루어 함께 세월이라는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반영하는 듯하다.
원주민은 렙차족으로 시킴의 진정한 주인이다. 우리네들과 얼굴 생김새가 비슷해서 시골장터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순박한 그리고 수줍은 표정이 눈에 익숙하다.
렙차족은 동쪽 어디선가 이주했다고 한다. 출발지는 예측이 무성하며 정확한 위치는 아직 베일 속이다.
이들이 살윈강을 건너고 인도로 들어와서는 북쪽으로 방향을 꺾어 캉첸중가 아래에 자리 잡은 것은 확실하게 추정된다. 땅에 떨어뜨려 놓은 문화와 언어들이 이동 경로를 따라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킴과 렙차족을 향한 짝사랑
렙차족을 생각하면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형제처럼 따스함을 느낀다.
사실 고백하건대 나는 중학교 빡빡머리 시절 어느 날부터인가 산에 미치기 시작했다. 일요일 도서관 간다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고, 책가방 안에 코펠을 넣고 산으로 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자다가 산이 부르는 소리를 덜컥 듣는다.
어쩌다가 몇 푼 안 되는 비밀 쌈짓돈이라도 생기면 설산 지도를 꺼내놓고 이곳저곳 들여다보다가, ‘아휴 이 푼돈으로 가기는 어딜 가!’ 한숨 짓는 날이 많다. 일년에 한 번이라도 히말라야를 바라보지 못하면 신열로 고생하는 설산병(雪山病) 중환자다.
살아가기 넉넉한 평야, 농사짓기 좋은 비옥한 대지를 젖혀두고, 산 속으로 기를 쓰고 올라간 그들에게 동질감 뿐 아니라 형제애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렙차족의 지도자가 자신의 부족을 이끌고, 울창한 숲을 헤치고, 급한 경사를 올라서며 웅대한 백색 캉첸중가를 향해 끌리듯이 나아가는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이 다 뭉클하다.
‘전생에 한 때 렙차족으로 살지 않았을까’ 착각하기까지 이르렀으니, 렙차족들은 내가 시킴 히말라야에서 자신들을 얼마나 그윽하고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았는지 모를 것이다.
이런 시킴을 떠나오기 전날, 여간 섭섭한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몇 주 동안 이 지역의 산과 계곡 사이를 걸었고, 여러 사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
하여튼 무엇인가 모자란 듯한 묘한 기분이라 선술집을 찾아 나섰다. 술집에 자리를 잡고 앉자 어두워지면서 스멀스멀 차 오르던 밤안개가 마을을 완벽하게 덮었다. 히말라야를 10년 이상 오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이 현지어다. 물론 먼저 배운 말은 의식주와 관계된 문장들이지만 더 일찍 배운 것이 있으니 “술 있냐?’는 질문이다.
“디디, 따빠에꼬 파살 똥바 파인차(아주머니, 당신 가게에 똥바 있나요?)”
시킴왕국 인구의 70%는 네팔인이다. 기원전부터 정착한 렙차족과 14세기경에 이주해 온 티베트의 부티아족이 시킴왕국의 원래 주인공이다.
그런데 영국이 티베트 침략을 위해 시킴왕국을 접수한 후 차밭을 일구고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네팔인들을 무지막지하게 이주시켰다.
이제는 원주민인 렙차족 15%, 부티아족은 10%의 소수민족이 되어버렸다. 당시 이 땅의 주인인 렙차족과 부티아족은 네팔인들 이주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1970년을 전후해서 시킴왕국의 최고 다수가 된 네팔인들이 민주화 운동을 앞세우며 왕이 통치하던 시킴왕국을 흔든다.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과 대치 중인 인도 정부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킴왕국의 정국불안을 내세워 시킴-인도 통합을 시도했다. 시킴왕국의 숨통을 끊은 많은 이유 중에 네팔인들의 역할이 컸다.
히말라야 일대에서 네팔은 이렇게 은근한 실력과 세력을 가지고 있어 네팔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현지어를 한다는 것은 무장해제다. 더구나 술을 현지어로 주문하면 이곳 사람들은 있다, 없다를 말하기 전에 먼저 웃음부터 짓는다.
싱긋이 웃는 사람부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아주머니, 얼굴의 주름이 깊게 패도록 좋아하는 할머니 등등, 모두들 그렇게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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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킴에서는 똥바를 만들 때 쪄낸다. 현재 네팔에서 사용하는 끓여내는 방법이 아니기에 훨씬 맛이 좋다. 카트만두의 똥바와는 맛 차이가 현저하다. |
대나무통에 담아 먹는 원조 똥바
히말라야, 특히 해가 일찍 뜨는 동쪽 히말라야를 여행한 사람에게 똥바는 그립고 훈훈한 그 무엇으로 자리 잡는다.
똥바는 우리나라의 기장과 비슷한 ‘꼬도’라는 곡식을 발효시켜 나무통에 눌러 담고, 거기에 더운물을 가득 부어 빨대로 빨아먹는다. 이런 술을 한국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똥바의 원산지는 바로 시킴이다. 사람들이 네팔을 자주 여행하면서 똥바를 맛보고 네팔 술이라고 주장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똥바 고향은 캉첸중가 일대로 과거 시킴왕국의 영토 안이 출생지다.
시킴의 똥바가 가장 맛있는 이유는 우선 꼬도의 품종이 좋기 때문이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누룩을 섞기 전에 꼬도를 물에 끓여내는 네팔 타플레중 방식이 아니라 중탕으로 쪄내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끓이지 않기에 참맛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용기 또한 다른 지역처럼 나무를 깎아 장식을 두르거나, 알루미늄·플라스틱 그릇이 아닌 캉첸중가에서 자생하는 대나무통만을 순수하게 고집한다.
품종이 좋은 꼬도로 잘 숙성시켜서는 대나무 통에 꽉꽉 눌러 담고 위에는 부정이 타지 않게 보릿가루 혹은 보리알을 서너 개 올려놓은 후 펄펄 끓인 물을 부은 후에 3분을 기다린다.
그리고 역시 대나무 빨대로 빨아먹는데 두통이 올 수 있기에 휘젓는 것을 금지한다. 시킴을 방문했을 경우 똥바를 맛보지 않는다면 시킴의 가장 중요한 것을 빼놓는 것과 같다.
투자(投子)는 취미무학(翠微無學)의 법을 받은 대동(大同)선사다. 주유천하 한 후 자신의 고향 투자산(投子山)에 주석한다. 투자산에 주석한 지 30여 년이 지난 해, 무(無)자 화두로 유명한 조주(趙州) 선사가 투자를 찾아 왔다. 마침 투자는 장에 가는 길이었다.
조주는 투자를 기다리는데, 늦은 시간 투자가 기름 한 병을 들고 돌아오니 조주 선사가 말했다.
“투자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건만, 와서 보니 기름 장수 늙은이뿐이로군.”
투자가 답한다.
“그대는 기름 장수 늙은이만 보았지, 투자는 알아보지 못하는군.”
“어떤 것이 투자입니까?”
“기름이오. 기름.”
<전등록>에 있는 이야기다. 날고 기는 조주 선사가 말 한 마디 잘못 뱉는 바람에 투자에게 한 방 나가떨어지는 통쾌한 장면이다. 세속의 먼지구덩이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이 고공 바람소리 같은 높은 이야기를 어찌 쉽게 풀어내겠는가.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여행에서 반려로 삼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여행지에서 늘 이 화두가 행동거지의 우두머리가 된다.
투자는 잠시 젖혀두고 시킴 왕국을 다시 보자. 도대체 무엇이 시킴일까? 충청북도 크기만 한 조그마한 땅덩어리, 이곳 서북쪽에 세계 3위봉의 캉첸중가가 웅대하게 자리하고, 정상에서 시작하는 백색 능선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빙하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대지를 적시는 왕국. 계곡에는 네팔인이 75% 렙차족 15% 부티아족 10%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땅. 이 정도면 충분할까?
이것은 기름병을 든 투자의 외모만을 보게 되는 조주 선사의 시선이다.
시킴을 접근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킴의 구성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 된다.
이 안에는 시킴의 역사·민족·문화·토양·동식물·기후·음식 등등이 각기 덩어리(蘊)로 자연 안에서 유기적이고, 상호관계를 유지하고 통일되고 있다.
시킴 히말라야를 시킴 히말라야로 만드는 수많은 다양한 구성 요소를 찾아내는 것은 여행자의 몫이다.
이토록 많은 시킴의 많은 요소 가운데 특징적인 것을 한 가지 더 뽑아내면 룽다(風馬旗)가 있다.
즉 룽-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다-말이라는 의미가 더해진 것으로 기원을 담은 깃발이다.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오기에, 행운이 바람을 타고 사방에서 불어오며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다. 또한 친타마니(石)로 장식된 말은 사람을 태우고 원하는 어느 곳이 어디든지 데리고 가니 부귀를 찾아간다는 의미가 된다.
이렇게 룽다는 바람(風)과 말(馬)이 가져다주는 수동(受動)과 찾아나서는 능동(能動)의 음양 조화가 형상화되었다.
시킴의 곳곳에는 너무나 많은 룽다가 나부낀다. 나부껴도 보통 많은 것이 아니다.
흔히들 많은 것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엄청’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많아 거의 덮여 있다시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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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바는 시킴 히말라야가 원산지다. 대나무 통에 담아서 먹어야 진짜 맛이 난다. 시킴에서는 똥바를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 |
정글처럼 숲을 이루는 룽다
절벽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위태로운 길에서는 절벽 끝에서 마치 바리케이드처럼 막아서서 무수히 흩날리고 있는가 하면, 성스러운 사원의 입구에서 길게 늘어져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는 일주문 역할을 맡기도 한다.
색색의 룽다가 정글처럼 숲을 이루어 무더기로 장식된 성스러운 호수가 있어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룽다에 쓰인 만트라와 축복이 멀리멀리 퍼져나간다면, 이런 곳들은 염원의 강력한 발원지가 된다.
시킴에서는 이런 룽다-깃발들은 1.다루쪽 2.초펜 3.걀첸체모 4.랑뽀스톱랴스, 이렇게 네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각기 크기·모양·문양 그리고 사용되는 곳이 다르다.
룽다는 발복을 위해 보통 음력으로 3일째 되는 날에 설치하고 가장 대대적으로 많이 내거는 날은 정월 초하루다.
한편으로 불운한 일이 겹쳐진다든지, 어떤 부정적인 힘에 의해 방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설치한다. 룽다를 거는 동안 특별히 스님을 초빙하지 않아도 되고, 룽다에 기원하는 경우도 스님을 통하지 않고 쉽게 할 수 있기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히말라야를 이것저곳 다니면서 시킴 히말라야처럼 잘 정돈되고 여러 가지 요소가 화엄으로 어우러지는 곳은 만나기 어려웠다.
빛나는 만년설, 아름다운 동식물, 따뜻한 사람들, 색색으로 휘날리는 룽다, 유서 깊은 초르텐과 불교 사원, 그리고 빼어난 맛을 자랑하는 똥바.
그러나 이 시선 역시 조주 선사가 투자 스님을 바라보듯 몇 가지만 취합한 그릇된 시선인지 모른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찾아 시킴이라고 부르는, 투자라고 일컫는 존재의 진면목을 만나보기를 희망한다.
어떤 여행자든 시킴을 떠나는 날,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선술집 문을 열고 들어설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똥바의 맛은 물론 시킴의 모든 것을 잊지 말고 사시라. 그것은 마음에 히말라야 진주 하나를 품는 일과 같을 터이니.
정보
수도 강톡 면적 7096㎢ 총인구 54만493명(2001년 인구 센서스)
남녀 성비 1:0.875 인구밀도 76명/㎢
사용 언어 네팔어>부티아>렙차어>림부어>영어>힌두어 주산업 농업·관광 교육 초등학교 531개, 공대·의과대학·사범대학·법과대학 각각 1개씩, 사찰에서 운영하는 학교, 50개
특산물 생강·차 난초 448종, 약초 424종, 나비 400종, 물고기 48종, 대나무 21종
국토 구성비율 숲 42%, 불모지(고산지) 22%, 농경지 16%, 목초지 17%, 기타 3%, 호수 227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