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당을 설명한 글 중에서 몇 가지를 다시 추스리면 먼저 건축의 중심과 시점에 관한 것이었으며 나아가 공간의 위계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축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 중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어 온 하나가 위계성에 관한 것이다. 즉, 하나의 축을 중심하여 공간들이 위계에 따라 배열되어 어느 부분은 주공간이 되고 어느 부분은 부공간이 되어 가는 방식이다. 내가 건축 초년생 시절에 애지중지하던 책들 중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에 대한 것이 있었는데 이 공간의 위계성이란 말은 이 책의 내용을 개괄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어 우리 전통건축 공간의 대부분을 설명하기까지 하였다. 심지어는 주택에서도 이 위계의 공간의 법칙이 여지없이 적용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어느 공간은 중요하고 어느 공간은 덜 중요하다는 생각들. 공간이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나는 이런 유의 공간 분류에 동의할 수 없다.
따라서 수백당에서는 그러한 공간의 위계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 개념이 된다. 가로 30m, 세로 15m 의 틀속에 12개의 공간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배열되었으며, 각 공간은 다른 공간과는 독립적으로 다른 세계를 이루게 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우리 민화의 일종인 책걸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다시점의 공간을 예기하기도 했으며 선암사와 독락당에서 보이는 다중심의 집합적 공간을 내세우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지난 겨울에 이집트와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이 두 지역의 여러 도시들을 보고 그들 간의 혁혁한 도시적 차이를 목격하며 앞서 얘기한 건축공간에 대한 확인을 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무척 귀한 소득이 아닐 수 없다. 고대 이집트는 다신교를 근간으로 한 복잡한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사회이며 신의 대리자인 파라오와 신전의 수호자인 제사장 등을 정점으로 하고 귀족과 관리 그리고 학자들로 구성되는 지배계급과 시민의 피지배계급 그리고 다양한 지역에서 온 노예 등으로 그 사회조직이 구성되어 있어 그 계층 구조가 간단치 않다. 각기의 이익관계가 다른 이들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가장 단순한 지휘계통이 필수 불가결하였으며 강력한 위계를 구성하는 중심축이 긴요하였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어느 건축에서나 보이는 이 강력한 축은 그들에게는 그들 사회를 지탱하는 뼈대였으며 정체성을 확보하는 장치였다. 따라서 모든 공간은 이 중심축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중심 부분의 확보 여부가 주공간과 부공간이 되고 그 원근이 Served Space와 Servant Space로 나눠지며 그런 곳이 중요한 사람과 덜 중요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된다.
이 위계적 공간은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전해지고 그 이후 기독교 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서양의 건축과 도시를 이루는 중심사상으로 발전되었을 것임을 추측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일까. 오늘날까지 이들이 만든 도시계획의 이론들은 죄다, 도심 부도심 등의 세력권에 관한 구분이고 상업지역 주거지역 등의 가치가 다른 용도 등에 관한 언어였으며 모든 땅들은 반드시 이러한 용도로 메워져야 하는 함수로 간주되었고, 길들은 이들 자본재를 흐르게 하는 동선일 뿐이다.
이의 기술적 응용으로 만들어진 계획이 소위 마스터플랜이라는 것이다. 이 마스터플랜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에서 부분만으로는 그 존재가치가 없다. 전체 도시의 이미지가 더욱 중요한 문제이며 부분과 전체는 항상 강하게 묶여 있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에 비해 모로코의 도시, 예를 들어 Fez 같은 도시는 이러한 도시와 전혀 다르다. 기본적으로 Fez 라는 도시는 미로 같은 도로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방인이 아무 준비없이 이 도시 속에 발을 디뎠다가는 단 시간 내에 그가 그 도시의 밖으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몇 날 며칠을 그 도시 속에서 헤맬 지도 모르고 혹은 훨씬 그 이상이 걸릴 지도 모른다. 방향을 잘 알 수 있게 만드는 중심축이라든가 스스로의 위상을 찾게 만드는 위계적 공간이라든가 하는 것을 결코 발견할 수가 없다.
이 도시를 만든 이들은 이슬람교도들이다. 이들의 종교는 일신교이며 알라신과 이들 사이에 이들을 다스리거나 분류하는 아무 계층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과 교도는 일대 일의 관계이며 그들 시민끼리는 서로 평등하다. 따라서 모든 이들이 각자의 중심을 갖고 있다. 이 도시는 이러한 개별의 중심들이 집합한 결과일 뿐이며 이들을 집합시키는 어떠한 각본 즉 계획이론이 있을 수 없다. 개체들의 크기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모두가 동등하다. 전체 도시가 어떻게 되던 그 부분들인 개체의 존재 가치를 훼손하거나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도시를 파악하기 위해 전체를 답사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그냥 한 부분만 보면 된다. 그게 전체 도시이다.
발터 벤야민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 나에게 유리씨느는 어느 페이지에서건 그 읽기를 시작하든지 좋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는 이처럼 어느 곳에서 시작점을 가지든 그곳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그 도시를 다 느끼게 하는 곳이다. " 인용한 김에 이런 도시와 관련하여 몇 사람 말을 더 옮기고자 한다. 미국의 미시간 대학에서 매년 괄목할 만한 건축적 업적을 나긴 이들을 초청하여 라올 왈렌버그 강좌를 개최하는데 지난 1998년 리챠드 세네트 교수가 초청되어 도시의 공동성을 중심으로 한 강의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 .... 다원적 민주주의는 중앙집중화된 권력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민정신을 단순히 '권리' 와 '의무' 같은 하나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하며 오히려 서로의 차별성이 발전의 주체라고 여긴다. 이 다원적 민주주의는 현대도시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도시의 공동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Synoikimos 라는 개념 -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서 실현된다. 현대 세계에서는 도시 공동체의 파편화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다원적 민주주의는 이러한 파편화로부터, 지방 사회의 요구와 학교 공동체간의 조화, 복지정책 혹은 건물유형 등의 대안을 수립할 것이다. 다원적 민주주의는 또한 특별한 물리적 형상을 가지고 있다. 이 민주주의적 비전은 거대하고 집중적인 건물들이 표현하는 상징보다는 , 공동체의 뒤범벅이 되어 보이고 여러가지 언어가 적층된 건축을 선호한다. 또 이는 베를린의 Alexander Platz 같은 도시중심부의 집단적 개발을 배격하며, 도시 전반에 걸쳐 더욱 느슨한 성장의 방식을 추구한다. 궁극적으로 다원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형상은 전체로서의 도시를 표현하는 이미지를 철저히 부스러뜨리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랜드스케이프로서의 건축을 이론과 실천으로 이끄는 에드워드 브루 라는 건축가가 " The Urban Void " 라는 글을 통해 쓴 구절을 더 첨가하면, " 도시는 부분에서도 그 도시의 본질적 크기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특징들이 제공되어야 한다...누구도 '도시 만들기'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가를 오늘날 알 수 없다. 도시는 변한다....다만 '도시의 한 부분' 만이 있을 뿐이다. 도시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는 infiltration/ landmark/ borders/ interior landscape 이다. "
그를 중심으로 하는 바르셀로나의 건축가들이 주장하는 현대건축의 새로운 키워드들은 다음과 같다.
void / Multi-Readability / Vacant Space, Gaps, Niches / 신체와 공간의 관계 / Landscape 이 단어들은 우리가 오래 전에 잊어버려야 했던 것들이다. 새마을 노래가 매일 아침 확성기를 타고 골목에 흐르던 때에 비움이나 공백 흐릿한 것 등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추방해야 할 구악의 유물이었다. 우리는 채우고 메우는 일에 세뇌되어 선동적으로 내몰렸었으며 오로지 분명하고 뚜렷한 목표만이 우리가 취해야 할 덕목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버렸던 구 시대적 습관들이 이제 저들에게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금과옥조로 취급받으며 알 듯 모를 듯한 선문답을 해대고 있는데, 우리는 그네들이 폐기한 마스터플랜의 비법을 우리의 도시를 만드는 전가의 보도처럼 아직도 굳건히 붙들고 있는 것이다.
웰콤씨티....
웰콤의 Welcomm 은 Well-communications 를 줄인 말로 전문 광고인들이 모여 만든 광고회사의 이름이다. 나는 이제 웰콤에서 만든 광고를 광고내용만 보고 알아 맞출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있다. 그만큼 그들은 독특한 광고를 곧잘 만든다. 지난 98년 여름 IMF라는 사회적 위기를 맞은 때에 나는 사무실을 다소 축소하고 일년 체재의 예정으로 런던으로 떠난다. 그 때 96년 설계를 의뢰받아 착수한 이 웰콤 광고회사의 사옥은 이미 지하층의 골조공사를 마친 상태였으나 국가적 경제 불안 속에서 시공회사가 도산하고 건축주인 (주) 웰콤 역시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모두들 어두운 미래를 가진 채 현장의 공사는 기약 없이 중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난 후 이 건축주는 위기 속에서 회사 운영의 다각화에 성공하여 부지에 인접해 있던 주택 3채를 오히려 매입하는 역량을 나타낸다. 이 필지들은 모두 전면 도로에 면해 있어서 설계 초기에 이들을 매입하려 했었으나 터무니 없이 높은 지가를 요구하여 이를 포기하고 기역자 형태의 부지로 계획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터였다. 늦었지만 이들 필지들의 흡수로 전면도로에 면한 길이가 당초의 24m 에서 60m 까지 대폭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전반적인 설계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완성된 지하 골조는 이미 하난의 Archaeology 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때 이미 북 런던대학교 건축학부에 객원교수로 런던생활을 익혀가던 중이었으며 이 설계변경 작업을 대학 내의 Architecture Research Unit 이라는 연구소의 한 작업대를 빌어할 수 밖에 없었다. 해서 나는 이 작업을 ARU 의 디렉터로 있는 플로리안 베이겔 교수와 공동으로 작업할 것을 제의하고 그는 쾌히 승낙하여 우리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건축에 관한 생각을 치열하게 주고 받으며 기본 계획을 완성하게 된다.
도시 속의 건축, 건축 속의 도시 부지를 확장하여 설계를 변경하기 전, 애초의 설계를 이룬 기본 개념은 이 건축을 하나의 도시로 간주하고 도시의 어법을 사용하여 내부공간의 체계를 만든 것이었다. 즉 내부에 광장이라고 일컫는 2개 층의 층고를 가진 대 공간이 있고 광장을 이웃하여 간선도로 격인 복도가 있으며 작은 통로로 이를 이어 분산도로라 불렀으며 이들 사이에 업무공간을 두어 habitation 이라고 했다. 또한 곳곳에 외부와 접하는 테라스나 중정을 두어 이를 이 작은 도시의 공원으로 삼았다. 2개 층이 하나의 지역으로 간주되어 이 지역 간 연결을 인프라라 이름한 닥트나 샤프트로 연결할 만큼, 비록 1000 평의 건축이지만 작은 도시의 모든 내용이 다 담겨 있기를 원했다.
도시적 컨텍스트도 간과할 수 없는 과제였다. 35미터의 전면도로와 건너편 동국대학교의 높은 옹벽에 도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매스가 필요하여 7층 높이와 전면에 샤프트를 갖는 볼륨을 취하게 되었으나 후면에는 4m 도 채 안되는 골목길에 면해 작은 규모의 연립주택들이 병치되어 있는 까닭으로 후면 부분은 매스를 작게 분할해서 소위 urban fabric 의 골격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였다. 재료는 노출콘크리트이며 견고한 틀을 가지고 커다란 개구부를 통해 남산의 녹지를 그리워하는 태도를 취하도록 만들었으나 전체적 형태는 여기서도 되도록 적은 언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2,3 년의 시간적 갭일 뿐이면서도 설계변경 작업을 시작했을 때 이 계획들은 낡은 생각이 되고 만다. 이미 도시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때이며 더구나 런던에서 접하는 건축들은 거의 모두가 나에게 새로운 사고의 원천을 제공해 주었다. 런던 작업 플로리안 베이겔 교수와 나는 이미 완성된 지하 골조와 새로 구입한 대지를 포함하여 하나의 기단부를 만드는 것에 쉽게 일치를 보았다. 도시의 포디엄이라고 불렀던 하층부의 이 매스는 경사진 대지에 수평면을 제공하면서 굽게 경사진 전면도로의 불안정한 움직임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믿었다. 또한 건너편 동국대학의 높은 옹벽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의 공동작업 중 가장 힘든 부분이 상부의 박스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하나의 중정을 만들고 세 개의 박스가 이를 에워싸며 이 중정을 후면의 길과 연결시키자는 안을 주장했고 나는 지금처럼 네 개의 박스가 병치되어 있는 안을 지지하였다. 좀처럼 합의가 되지 않아서 나는 이 두 개의 안을 가지고 서울로 일시 방문하여 건축주인 박우덕 사장에게 설명을 해야 했다. 말하자면 건축주더러 선택하게 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는데 실망스럽게도 건축주가 선택한 안은 세 개의 박스였다. 나는 잠시 망설였으나 그 안을 채택한다는 것이 이제 도시 건축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던 나에게는 도무지 무리여서 다시 네 개의 박스에 대한 개념을 설득한 후, 그의 동의를 반강제(?)로 받게 된다.
건축주인 박사장과의 관계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나보다 한 살 연상인 그는 그의 요구조건을 분명히 전달하지만 최종적 선택은 나에게 맡기고 내 결정을 항상 존중해 주곤 했다. 건축가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건축주인 셈이다. 네 개의 박스로 떨어져 있어 내부기능의 연결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가 그 스스로 이 생소한 안에 적응하기 위해 한 말이 이러하였다.
" 아. 이 박스 하나하나를 하나의 층으로 봐서 층이 수직으로 된 게 아니라 수평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패러다임의 전환이런가. 런던의 생활이 이 건축의 새로운 모습을 만드는데 기여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플로리안 베이겔 교수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는 나로 하여금 새로운 눈으로 건축을 보게 하였고 그가 가지고 있는 건축에 대한 사유를 나에게 가감 없이 전달했다. 특히 그의 건축의 핵심 언어인 Architectural Landscape 와 관련하여 적지않은 공부를 하게 된 것은 큰 소득이다. 북 런던대학에서 이뤄지는 여러 강연과 논쟁들 그리고 런던에서 진행되는 각종 건축 이벤트들, 뿐만 아니라 런던의 생활 자체가 세계 건축의 변방 서울에서 온 한 건축가에게 영향을 주고 이로 인해 이 건축이 태동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웰콤시티
- void
콘크리트로 육중한 매스를 이루는 포디움 위에 서 있는 코르텐이라고 불리는 내후성 강판의 박스는 네 개로 나누어져 있지만 사실은 포디움의 윤곽이 그대로 연장된 하나의 박스이다. 이 하나의 박스 내부의 부분을 지우개로 지우듯 세 개의 Void Space 를 만든 것이다. 이 Void 는 이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뒤편의 작은 연립주택들은 이 Void 로 인해 햇볕도 더욱 받고 바람도 안으며 시각도 열리게 된다. 열린 틈을 통해 들어오는 도시의 풍경은 이전에 보던 것들 보다 더욱 정제되어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앞의 전면도로에서 바라보게 되면 이 Void 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가지 풍경이 담긴다. 뒤편의 주택들을 안기도 하고하늘을 담기도 하며 때로는 구름과 안개가 속을 채우기도 한다. 굳이 그런 풍경을 담지 않아도 웰콤의 사람들이 나무 바닥에 걸터 앉아 다른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이 건축의 파사드는 건물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는 풍경이며 건물은 이 풍경을 담는 틀일뿐이다.
기본적으로 비어있게 되는 이 틀은 어찌보면 쓸모업슨 공간이기도 하다. 소위 불특정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 쓸모없이 보이는 Void 가 이 건물을 생동하게 만드는 기능을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세하게 서로 다른 각도를 가진 이 세 개의 Void는 서로 독립되어 있으며 크기와 모양에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동등한 가치를 가지기를 원했다.
- 기능!
반기능 포디엄 내부는 웰콤의 공용조직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 즉 리셉션과 일반 사무공간,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공간그리고 외부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전시장과 카페 등이다. 상부 코르텐 박스의 안은 업무 공간이다. 특히, 서로 떨어져 있어 연결되지 못하는 5층은 각기 4층과 수직으로 연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내부가 서로 오픈되어 있는 4층과 5층의 하나의 박스 단위가 웰콤의 한 부서가 팀워크를 다지며 쓰는 공간이다. 웰콤의 업무 특성을 파악한 후에 이 공간 조직을 건축화시킨다고는 했지만 사실 웰콤의 조직에 정확히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건축주는 이 건축에 적응하기 위해 회사의 조직 일부를 바꾸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여기에 대해 불만스러운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방문자라면 이 내부의 공간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는 비교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내부는 미로처럼 얽혀 있다. 다만 나무를 바닥재로 쓴 부분이 통로이므로 이 재료를 따라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출입구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코르텐 박스에 있는 출입구들은 출구를 위한 통로가 아니라 내외부 공간을 가르는 것들이라 자칫하면출구를 찾지 못하는 당혹스러운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웰콤의 한 직원이 전하기를 내부인가하면 때로는 외부이며 외부인가하면 때로는 내부가 되는 끊이없이 이어지는 공간을 소요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고 한다. 이는 중심공간에 의해 모든 공간이 엮어지지 않아 위계성을 발견하지 못함으로 인한 결과로 여긴다.
종래의 언어로 보아 기능적이라는 말을 이 건축에서 할 수가 없다. 오히려 반 기능적인 요소가 너무도 많다. 그러나 이 반 기능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무한히 궁리하며 그들의 지혜를 짜낼 것이다. 그리하여 불편한 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를 그들은 이내 알아내고 말 것이다.
- 재료
건축 재료의 진지성에 관한 한 노출 콘크리트를 따를게 없다. 이 노출 콘크리트는 이제 보편화될 정도로 통용되고 있으나 상부 박스에 쓴 코르텐이라는 재료는 다소 생소하게 보일 것이다. 이 재료는 원래 도장이 어려운 교량을 위해 만들어진 철인데 약 5년에 걸쳐 일정량으로 부식되는 외피가 스스로 코팅 막을 형성하여 영구적으로 재료의 강성을 지속시킨다고 했다. 사실은 IMF 시대에 막 접어들었을 때 건축주로부터 이미 설계된 규모를 축소하고 가장 공기를 단축하는 안을 제시할 것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 물론 부지를 확장하기 전의 일이다. 그 때 외장 재료로서 주문 조립 제작이 가능한 이 코르텐 철을 생각한 바 있었으나 이 재료의 물성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 재료를 쓴 설계안을 만들어 건축주의 동의를 구하고 자칫했으면 이것으로 실현될 수도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런던에 가서 몇 건축에서 사용된 코르텐을 보고서야 이 재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건축 뿐 아니라 특히 리챠드 세라의 조각이 보여주는 이 재료의 무게에서 비롯되는 긴장은 전율적인 것이었다. 이 재료의 가장 큰 매력은 시간이 가면서 재료의 모습이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부식되어 나타나는 아름다운 색채가 시간을 먹으며 익어가는 맛이여간 아니다. 타일이나 유리 알미늄 같은 영원히 번들거리는 재료와는 그 깊이가 다르다. 내부의 재료도 노출 콘크리트의 포디엄 부분에는 역시 노출 콘크리트를 쓰거나 콘크리트 블록으로 치장하여 내 외부의 재료를 일체화 시켰고 상부 코르텐박스 내부에는 합판을 사용하여는데 이는 포디엄 위에 가벼운 박스가 놓인듯이 보이게 하려는 뜻에서 이었다. 포디엄은 땅에 속한 부분인 것이다.
- 창과 디테일들
창들의 외곽선은 건물의 외곽선과 일치한다. 따라서 창에 의해 건물의 윤곽이 변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창문의 유리에 반사되는 풍경이다. 이 반사되는 풍경은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공간을 제공한다. 따라서 창들이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마치 이 풍경들이 콘크리트 면에 혹은 코르텐 철판 면에 프린트 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모든 창들을 숨게 하였다. 이 때문에 특수한 디테일들을 수 없이 만들어야 했고 이에 익숙하지 않은 시공읓로 인해 예정했던 공기를 훨씬 넘겨야 했다. 이 건축이 거의 완성되어 가던 때 건축주 박사장은 나에게 건물의 이름을 짓자고 했다. 그는 나의 의견을 기다리지도 않고 '웰콤 시티' 가 어떠냐고 했다. 이 건축을 표현하는데 참 적합한 이름이다. 그것도 내가 지은 것이 아니라 건축주가 생각한 것이니 그만큼 그는 이 건축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코르텐의 재료가 익어가듯 이 건축속에 익어가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이제 나에게 남은 과제이다. 이는 나의 건축에 참으로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