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주화운동이란 1980년 5월18일부터 5월27일까지 광주와 전남 일원에서 일어난 민중시위에 대해 전두환과 신군부 등에 의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직접 사망자 193명, 후유증 사망자 376명, 행방불명자 76명, 부상자 3139명, 구속 및 고문 피해자 1589명을 발생시켜 광주 시민들은 지난 42년간 많은 트라우마(Trauma, 상처)를 안고 힘들게 살았다. 그런데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아직까지 사과 한 마디 없이 사건을 은폐하거나 조작해 역사를 왜곡하고 있어 공분을 사고 있다.
그렇지만 5·18광주민주화운동은 6·29선언과 촛불혁명의 기폭제가 됐고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5·18기념식 지정곡인 백기완·황석영 작사·김종률 작곡 <임을 위한 행진곡>은 홍콩과 대만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도 애창되고 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게다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나눔과 소통, 희생적인 향토방위 정신은 지금 코로나 19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1997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광주시는 5월18일을 공휴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2011년 5월25일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이 한국 현대사 관련 자료 중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됐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은 유례없는 대규모 자료라 총 9개의 주제로 분류돼 기록됐다.
지금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남대 5·18연구소, 광주지역 시민단체가 발포 명령자,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사격 등 국가폭력의 진상을 철저하게 밝히기 위해 많은 조사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앞으로 외신 기자와 나종태 사진작가가 목숨을 걸고 5.18광주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전일빌딩 헬기사격 245개 흔적·고 조비로 카토릭 신부의 청문회 증언·생존해 있는 시민군들의 생생한 증언·북한군 개입설과 시민군의 광주교도소 공격 사건 조작 규명 등을 참고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그 진상이 만천하에 낱낱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의 대국민보고회에서 광주·전남 지역의 계엄군 진압 작전을 재구성하고 총상 사상자를 지도상에 표기해 분석한 결과와 병원 진료 기록과 보상심의서류를 분석한 결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최소 20곳 이상에서 50여 차례에 걸쳐 발포해 총상 사망자가 135명이고, 총상 부상자는 최소 300명이 넘었는데, 피해자 다수가 머리와 가슴 등 치명적 부위에 총격을 당한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계엄군의 첫 발포는 1980년 5월 19일 오후 4시 50분경 광주고등학교 앞에서 시작됐다. 이어 20일 오후 11시경 광주역 인근, 21일엔 11공수여단과 7공수여단이 배치된 전남도청 일대, 3공수여단이 배치된 전남대 일대에서도 총격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조사위는 발포 지휘계통과 연관된 중요 인물 7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발포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며 첨단 조사기법을 동원해 책임 소재를 명료하게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3년 12월 26일까지 조사를 종료하고 내년 6월 종합보고서를 채택해 대정부 권고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제는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저지른 반인륜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 행위를 국민과 역사 앞에 하나도 남김없이 밝히고 용서를 구해야 하며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5·18 행방불명자 소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시민군과 시민군의 편에 섰다가 피해를 입은 경찰공무원과 군인과 해직 기자를 찾아내 명예회복과 피해를 보상해 주어야만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유족들의 한이 풀리고, 왜곡된 사회정의와 역사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문학과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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