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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입술에서 나온 기도야말로 얼마나 훌륭한가[선택받은 형제자매]
‘다니엘’의 입술에서 나온 기도야말로, 얼마나 훌륭한가. 그것은 심령의 겸비함을 얼마나 훌륭히 나타냈는가. 하늘 불의 따뜻한 기운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그 기도 가운데서 나타났다. 하늘은 그 기도에 응하여 ‘다니엘’에게 하늘의 사자를 보내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드려진 기도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승리할 것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
옛날에 사람들이 기도 드렸을 때에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단의 제물을 사른 적이 있었던 것과 같이 우리의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의 불이 우리 심령에 임한다. 성령의 빛과 능력은 우리의 것이 된다....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셨던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통회하고, 그분께 나아올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우리의 필요가 긴급하고 우리의 곤란이 크게 될 때에, 우리는 동일한 강한 목적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믿음으로 우리의 짐을, 우리 대신 짐을 지어주시는 크신 주님께 가져갈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에도 ‘다니엘’이 기도했을 당시와 같이, 심령에 깊은 감동을 받을 필요가 있다.(TMK 271.4)
은밀한 기도의 귀중성 -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시62:8).(TMK 272.1) 우리의 궁핍에 대한 깊은 느낌, 또한 우리가 간구하는 사물에 대한 지대한 욕망이, 우리의 기도들을 특징지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기도들이, 들으신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즉시로 응답을 받지 못한다하여 우리가 피곤해지거나, 우리의 간구하는 것을 그쳐서는 안 된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으리라”(마11:12). 여기에 침노란 말은, ‘야곱’이 나타냈던 것과 같은 거룩한 열성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을 열정적인 기분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애쓸 필요가 없이, 침착하고 꾸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서 우리의 탄원을 올려야 한다. 우리의 사업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심령을 겸비케 하며,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믿음 가운데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그분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서, 그분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우리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TMK 272.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치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나타내심으로써 우리를 높이셨다. 우리는 값으로 사신 바 되었는데 곧,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로써 사신 바 되었다. 그분의 택하신 백성[부르심에 응한 선택]이 주의 말씀을 따를 때에 그분의 축복은, 그들의 기도의 응답 가운데서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어질고 거룩하신 사랑은혜]가 크시”도다(욜2:12,13)(TMK 272.3)
밀실[은밀한 곳]의 기도에서 영혼은 하나님의 감찰[보호하시며 관찰]하시는 눈앞에 있게 된다. 밀실의 기도는 영혼이 하나님과 교통함에 있어서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밀실의 기도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만이 들으셔야 한다. 어떤 호기심을 가진 귀도, 탄원[탄식하며 도와주시기를 간구함]의 무거운 짐을 받아서는 안 된다. 조용하고 열렬히 하나님께 구할 것이다.
은밀한 것을 아시는 주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영향력은 부드러우면서도 지속적[계속적]인 것이다. 단순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교통[교류]하는 사람은 사단과의 싸움에 있어서, 자신을 강하게 해주는 하늘 빛줄기를 자신에게로 모아들일 것이다.(TMK 272.4)
찬양은 맑게 흐르는 시냇물과 같음 - “지존자여 ... 여호와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고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시92:1,2).(TMK 273.1) 진리의 고마움을 느낄 때에 ...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자비와, 그의 사랑스러운 인자하심에 관하여 깨닫게 된다.
우리의 경험가운데 불평할 수 있는, 어두운 장(章:죄악상의 단편적인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우리의 구원가운데 나타난 그의 위대하신 자비와 실패하지 않는, 사랑과 권능의 나타남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불평[불만]보다도 더욱 많이 찬양[거룩함을 찬미]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미쁘심을 말할 때에, 그를 참되고 친절하며 동정심이 많은 목자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는 한 마리의 양이라도, 내어 쫓지 않으시리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의 언어는 이기적인 불만 불평이 되지 아니할 것인바, 대개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자들에게서는 맑게 흘러나는, 시냇물과 같은 찬양[끊이지 않은 감사의 찬송]이 흘러나올 것이다.(TMK 273.2)
주님께는 모든 자원[필요함]이 가득 차 있다. 그에게는 솜씨의 부족이 없으시다. 우리 주위에 어두움을 모아들이는[죄악의 상념에 빠지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부족과 우리가 세속적[세상적]으로 기울어짐과, 우리의 천박한 이야기[세상살이 염려]와 불신 때문이다.(TMK 273.3)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그 문턱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모든 교회를 위한 영광으로써 빛나고 있다. 우리는 연구하고 명상하며 기도할 필요가 있다.
그때에 우리는 하늘성전의 안뜰을, 식별[관찰]할 수 있는 영적통찰력[성령인도하심]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보좌 주위에서 하늘 찬양대들이 부르는, 노래와 감사의 주제를 포착[영광의 광경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온’이 일어나 빛을 발할 때에 그 빛은 가장 찬란하며, 귀한 감사의 노래가 성도들의 모임 중에서 들릴 것이다. 적은 실망과 곤란함 때문에 생기는, 불평하고 투덜거림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귀중한 안약[성령 깨우침]을 바를 때에, 우리는 지경 저편에 있는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믿음은 사단의 무거운 그림자를 가를 것이며,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그분 자신의 [십자가]공로의 향을 드리는, 우리의 대언자를 보게 될 것이다.(TMK 273.4)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하늘의 무리들과 연합하자. 그때에 우리는 모든 믿는자에게 능력이 되는, 진리 그것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위한 축제일이란? -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하루 종일]토록 주를 찬양 하리이다.”(시35:28).(TMK 274.1) 내가 ‘영국’에 있을 때에, 어떤 날 큰 시가행렬[시가행진]이 있었다. 바로 그날은 ‘영국여왕’의 ‘축제일’이었다. 모든 사람은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상점의 창문들에는 여왕의 사진으로써 가득 찼고, 모든 사람들은 ‘영국여왕’을 칭찬하고 있었다.
만일 우리가 그 상점의 창문들로부터 여왕의 사진들이나 또는, 그의 영광에 대한 표식[장식품]들을 제거해 버리고 그 대신에, 예수님의 영광과 존엄하심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신앙의 광신자들이라고 취급하지 않았겠는가? 그들은 우리가 신앙을 너무나 멀리까지, 보급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의 왕복과 영광의 면류관을 벗어 버리시지 않으셨는가? 그는 그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으시고 사람 대신에 돌아가시기 위하여, 우리의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는가? 어찌하여 우리가 이것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우리가 그의 무한한 사랑에 관하여, 숙고(熟考:마음속 깊이생각 음미)하지 않겠는가?(TMK 274.2)
오! 우리가 그리스도를 찬양하기 위하여, 우리의 혀가 마비[찬양과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된 것을, 벗어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식별하기 위하여 우리의 심령에 임한 영적마비를 제거해 버렸으면! 우리는 지상에서 주님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그대를 통하여 하늘의 빛을 흑암에 앉아있는 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주를 안다고 주장하는 그대들 주의 선하심을 맛보았다고 주장하는, 그대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타내라. 그대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자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라. 만일 사람들이 ‘여왕즉위 기념축제일‘에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이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열심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생명의 왕의 영광을 말할 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주께서는 머지않아 피곤하고 상한 자들이 있는 곳에 오시려고 하고 있으며, 사망 선고를 받고 옥에 갇힌 자들에게 문을 여시고 또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또한 잠자고 있는, 주님의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불멸의 영광을 주시려고 오시는 것이 아닌가? 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없는가? 우리는 거의 [하늘 에덴]본향에 이르렀다. 피곤해진 십자가의 정병[정예군병]들에게, 용기를 주도록 하자. 우리는 더 좋은 본향, 하늘본향에 거의 이르렀음으로 땅에서는, 순례자와 나그네들이라고 말하자.(TMK 274.3)
진리를 위하여 고생함 -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요15:20).(TMK 275.1)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협력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기 위하여 무엇을 행할 것인가? 그가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릴 것인가? ... 그는 진리를 위하여 핍박을 당할 것인가?
비난과 핍박이 많은 영혼들을 하늘로부터 분리[떨어지게]시켰으나, 한 영혼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분리시키지는 못하였다. 아직까지 어떠한 핍박도 참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영혼을, 그에게서 내어 쫓지 못하였다. 심령 속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은 흥미진진한 사랑인바 대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위대한 사랑, 곧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는 가운데 나타난바 된 그 위대한 사랑은 비할 데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TMK 275.2)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핍박을 견딜 수 있다면, 그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에서 지배적인 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분리시킬 수 없다는 보증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폭풍으로 인하여 시련을 당하는 영혼이 진리를 위하여 비난을 당한다면, 그때처럼 구주께로부터 더욱 귀여운 사랑을 받는 때는 없다. 진리를 위하여 그 신자가 불의의 법정 앞에 섰을 때에, 그리스도는 그의 곁에 서 계신다. 신자들에게 이른 모든 비난은, 성도의 모양을 가지신 그리스도께 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믿는 제자들 앞에서, 거듭 거듭 비난을 받으셨다. 진리를 위하여 신자가 옥에 갇힐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그에게 나타내시고, 그분의 사랑으로 그의 마음을 채우신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을 정도로 고통을 당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몸은 죽여도 영혼은 상함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TMK 275.3) 사도는 우리에게“...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4).“그들의 편에서는 그분께서 비방을 당하시나, 너희의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TMK 275.4)
시련을 통하여 힘을 얻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시66:10).(TMK 276.1) 시련을 받지 않은 품성은, 신뢰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지혜를 구하고 또한 환난의 때에, 요새(要塞:구세주 진지)로 피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시련을 당해야만 한다. 하나님에게서 도움과 은혜를 구하는 자만이, 유혹을 대적[방어]하는데 있어서 성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에 우리는 우리의 첫 조상이 정신과 마음을 끄는, 많은 유혹들을 직면[대면]했던 것과 같은 입장[장면의 상태]에 서 있다. 온 하늘은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신을 그의 뜻에, 복종시키는지 그렇지 않으면 타고난 마음의 경향을 따라가며, 또한 악한 자의 유혹에 따라가는지를 보기 위하여,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주시(注視:집중하여 살펴봄)하고 있다(TMK 276.2)
시험으로 인하여 당황(唐惶:놀라 어찌할 바 몰라)하는 자들은,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라.... 기도하는데 인내심을 가지고, 의심하지 말고 깨어 있으라. 그리하면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사[구주의 십자가로 인도하여서] 마음과 정신을 올바른 원칙[진리말씀]에 복종[믿음의 순종으로 굴복]케 할 것이다.(TMK 276.3)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존함을 받는 자들은, 선하고도 귀중한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지각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유혹을 대적함으로써 그대는 사단과 더불어 동맹하는 것을 거절하게 되며, 그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두게 된다. 그리하여 그대는 하늘의 주민들 앞에 승리자로서 자신을 보여주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타나게 된다.(TMK 276 .4)
그대는 참된 선한 품성과 다음의 말씀이 갖는 의미를, 이해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대표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4-16). 그대가 은혜를 받고 은혜를 더 크게 하여 그대의 말에, 정신에, 행동에 은혜를 나타낼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많은 은혜를 그대에게 주신다.
그대가 성령의 작용에 자신을, 굴복[인도하심에 순종]시키는 그 비례[순종의 범위 충성]대로, 그대는 하늘의 은혜로써 채움을 받는다. 그대는 영광을 위한 그릇으로 빚어지고 형성되며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그분의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는 통로[전도자]로 삼으신다.(TMK 276.5)
시련의 영광스러운 열매 -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벧전1:7).(TMK 277.1) 우리가 비록 불로써 연단함을 받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으며 온전히 의지하자....
우리는 그의 사랑을 명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할 수 있고 또한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 그대가 홀로 걸어갈 때나 일할 때에, 구주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습관[기도와 묵상]을 배양(培養:가르침과 말씀연구로 기르게)하라. 예수님이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까닭에, 감사와 찬송이 하나님께 상달[진실함으로 가납]되게 하라.(TMK 277.2)
주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로서 자신을 주셨다. 그는 우리를 아시며,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신다. 시련[시험연단]은 잠깐 동안만 지속[게속]된다. 믿음으로써, 그대의 마음을 격려하라. 우리는 시련을 형벌[죄의 벌]로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죄를 짊어지시는 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구속자이시며,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는 우리 속에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가운데, 우리로 신성의 참여자가 되도록 뜻하셨다. 우리가 시련을 견디도록 부름을 받은 그 사실만 하더라도 예수께서는, 우리 속에서 그가 계발시키기를 원하시는 어떤 무엇을 보셨다는 증거이다. 만일 그가 자기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무엇을 우리 속에서 보시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를 세련[연단]시키는데 시간을 소비[허비]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가시덤불을 전정(剪定:가치 없는 나무를 가지치기)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치 없는 보석을, 용광로에 던지시지 않으신다. 그가 시험하는 것은 다 귀중한 보석이다. 그는 정련시키는 과정이 예수님 자신의 형상을, 반사시키게 할 것을 아신다. 주님과 그의 크신 능력을 신뢰하고 소망을 가지며 강하게 되라. 그는 그대를 사랑하신다. 그의 말씀을 들으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꾸짖고 고치게]하여 징계(懲戒:죄의 허물에 주의와 나무람) 하노니”(계3:19). 그대가 무가치[구원가치가 없다고]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시지 않으신[무관심]다.(TMK 277.3)
이런 정련[연단]의 과정의 결과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고 말씀하셨다. 구주의 입술에서 나오는 칭찬의 말씀은 영혼에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으나, 지금보다도 더욱 만족하고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고, 또한 시련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을 깨닫게 될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TMK 277.4)
어찌하여 이러한 고난들이 있는가? -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TMK 278.1)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좀 더 가까이 이끄시기 위하여, 시련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시편기자는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고 말하였다. 그는 우리들이, 구름 아래[죄악 세상에] 있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는 고민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시련연단] 가운데서, 가시들과 엉겅퀴들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의 말씀의 정원으로 들어가서, 백합화와 장미와 향기 나는 석죽을 꺾어야 한다. 그들의 경험가운데 난관들만을 바라보는 자들은, 의심과 낙담을 이야기 할 것인바 이는 그들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는 까닭이다.(T MK 278.2)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에 집중시켜야 한다....
우리가 의심과 실망을 경험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중지하셨다는 표적은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조력자시며, 그 안에서 우리가 사랑과 위로함을 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우리에게 이른다. 우리는 은혜를 받음으로써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의 생명의 수한[영원하심]과 같은 생명을 유업[상속]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경험을 가짐으로써 고난이 우리에게 임할 때에, 우리는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TMK 278.3)
믿음의 손으로써 하나님의 허락들을 붙들고, 유리한 입장에 서도록 하라. 그때에 그대는 사단이 그대에게 가까이 와서, “그대가 죄를 범하였으므로, 허락들을 주장할 수 없는 까닭에 하나님이 그대를 도울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원수는 우리가 하늘의 축복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우리 생애 속에서 생각하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본성이 계발되고, 최고의 능력이 행사될 환경에 우리를 있게 하신다. 만일 우리가 선을 계발한다면 있어서는 안 될 성질이 주도권을, 얻지 못하게 되고 드디어 우리는 하늘가족과 연합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계정될 것이다. 우리가 하늘에서 성도가 되기를 원한다면, 지상[이 땅]에서 성도[하늘가는 순례자]가 되어야 한다.(TMK 278.4)
그대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가져가라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TMK 279.1) 이 말씀은 우리가 시험에 빠질 때에 기뻐하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시험에 빠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이르는 까닭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의뢰한다면 그는 언제나 우리를 지키실 것이요, 또한 우리의 힘과 방패가 되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련으로부터, 귀중한 교훈들을 배워야만 한다. ‘바울’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5)고 말하였다.(TMK 279.2)
많은 사람들은 시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들은 정복할 힘이 없다고 생각하고, 믿음과 용기 대신에 낙담과 의심을 말함으로 입술로써, 하나님께 죄를 범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점에 우리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시다.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니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14:30)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악의 임금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시험하기 위한, 유리한 장소를 발견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우리에게도 그와 마찬가지이다.(TMK 279.3)
우리가 실망과 우울한 말을 할 때 사단은, 그 이상 더없는 기쁨을 갖고 듣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우리를 그의 영토에, 옮겨 놓았음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이 우리의 생각을 꿰뚫어보지는 못하나, 우리의 행동을 보고 우리의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인류에 대한 그의 오랜 지식으로부터 그는 우리의, 성격상의 약점을 이용하여 유혹을 고안해 낼 수가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단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승리하게 하는 비결을 탐지할 기회를 주는가!(TMK 279.4)
우리는 어떤 비상사태에 처하든지 그 모든 상태가운데,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나아가듯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대의 시련과 시험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지 말라. 하나님만이, 그대를 도우실 수 있다. 그대가 하나님의 허락에 대한 조건을 이루면, 그 허락들은 그대에게 이루어 질 것이다.... 그대는 견고하고 튼튼한, 영혼의 닻을 갖게 될 것이다.(TMK 279.5) (TMK 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