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금곡산(金谷山 521m)과 금욕산(禁慾山 476.9m), 무릉산(武陵山 472.4m) 환종주를 계획하였다.
이동거리 멀지 않아 산길이 조금 긴들 어떠랴 싶었다.
거기다 높이도 고만고만하고 암릉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흔쾌히 계획을 수립하여 고지하고 말았다.
그렇게 D데이가 다가올 즈음 하나둘씩 염려가 따라오기 시작했다.
첫째, 들머리에 공장들이 새로 들어서면서 진입로가 막혀버린 것.
아무리 둘러보아도 예전에 있던 길은 없어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옆뿔때기로 둘러서 능선에 접속하면 될 것이라고 애써 자위하였다.
둘째, B코스로 잡았던 덕고개 탈출로에 가시잡목이 우거져 어려움이 예상된 것.
덕고개 탈출로는 단체산행에 있어 아주 중요한 포인터이기 때문.
셋째, 금곡사에서 두류버스종점까지 걸어내려오는 길(포장도로)이 너무 멀다는 것.
연일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기후를 감안하면 더더욱 남감하다.위안을 삼는 건 화산곡 시원한 계곡일 뿐.
넷째, 세 봉우리를 차례로 거치는 이 코스는 16km가 넘어 아무리 줄이고 싶어도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유일한 방법은 우리 버스가 최대한 올라올 수 있는 곳까지 올라오는 것.
이 네 가지 악조건이 있지만 그렇다고 계획을 취소하기도 쉽지 않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했다.
산행은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과 그 후의 성취감이 중요한 것.
그렇게 긍정적인 마인드로 산길을 들어섰으나 그 염려들은 하나둘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능선에서 B코스 회원들을 만나 덕고개까지 안내를 할 수밖에 없었으니 후반부 마음바쁜 발걸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거기다 30여년 전부터 살살 달래며 함께한 무릎이 금곡산 하산길에서 악화되어 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풀숲이 우거진 무릉산 정상엔 근무자 없는 산불감시초소가 썰렁하다.
조망이 좋다고 하였지만 키보다 크게 웃자란 풀숲으로 당장 발밑을 살피는 게 먼저였다.
금욕산에선 산의 가름침대로 욕심을 버려야 했으나 산욕심을 금하는 게 쉽지 않았다.
금곡산은 삼기산(三岐山), 비장산(臂長山)이라 하였고,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에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수도한 일이 있었다.
금곡산에서 골짜기로 내려서면 화산곡(화산골) ‘화산곡지’.
화산골이 있으면 ‘화산’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화산’이란 지명의 유래를 찾아 이리저리 자료를 뒤적여 보았으나 어디에고 뚜렷한 답을 얻지 못했다.
안강(安康)읍이 신라 초기에 ‘비화현(比火縣)’이었다는데, 그 ‘화(火)’자에 집중하였으나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봄철 야생화 마니아들이 ‘화산곡’으로 복수초,변산바람꽃,노루귀 등을 찾아 몰려드는 데에 주목하였다.
그렇다면 ‘화산(花山)’이 맞을 테고, 봉우리는 선답자들이 지목한 무릉산의 전위봉인 '429.8m봉‘인 것.
따라서 계곡은 ‘화산곡(花山谷)’, 저수지는 ‘화산곡지(花山谷池)’로 봄철 각종 꽃들이 만발해 이런 이름이 생겨난 것이리라.
금곡사(金谷寺)는 신라 진평왕때 원광법사(555~638 ?)가 30세인 585년경 삼기산(금곡산·비장산)에 창건·수도하였다.
금곡사엔 신라시대(진평왕) 원광법사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원광법사 부도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7호)’이 있다.
원광법사는 화랑도 세속오계를 제정한 인물.
문장이 뛰어나 고구려를 치기 위해 수나라 군사를 청하는 ‘걸사표(乞師表)’를 보낸 기록이 전해진다.
코스: 두류1교-시멘트길-능선-잇단무덤-화산(429.8)-전신주-무릉산-덕고개(B)-금욕산-잇단 송전탑-갈림길-금곡산-계곡-금곡사-화산곡지-두류1리버스종점.
산행궤적.
16km가 넘는 길을 7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는 초반부에 B팀들과 걸음을 함께했기 때문.
고도표. 업다운이 잦아 체력소모도 심한 편.
예비 트랙으로 gpx가 아님.
국제신문의 지도를 일부 편집하였음.
<참고>
참고 <국제신문> 어림산.
미리 준비한 표지기. 화산(花山)을 추가하였다.
네비에 입력할 '두류1교'와 주소를 적어 줬는데, 버스가 엉뚱한 곳에다 댔고,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은 무심코 내렸다.
이상하다싶어 gps를 열어보니 두류1리 입구.
우째 이런 일이~ "전원 다시 탑승해주세요."
네이버 지도와 우리 버스의 네비가 종종 다르게 나온다. 앞으로 일일이 확인해야 겠다.
다시 탑승하여 '두류1교'를 건너 차를 댔다. 건너엔 '에스피씨아이'건물이 있고...
금곡사지 원광법사부도탑 방향으로 낮게 능선이 내려와 있는 저곳을 올라서야만 하는데...
공장이 있는 좌측으로 산길입구로 통하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공장들이 생겨 길이 없어졌다. 공장 옆으로 길을 찾는 우리들에게 트럭 기사분들이 "거기 길 없어요"한다.
그렇다면 이제 옆뽈때기로 붙을 수밖에.
금곡사 방향 바로 위의 좌측 공장이 보이는 시멘트포장도로로 진입하여...
좌측 산자락을 곁눈질하며 접근하노라니...
'이기 뭐꼬?' 시멘트포장길은 여기서 끝이난다.
그래서 좌측 산자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10~20m거리의 산아래로 통하는 곳은 온통 풀숲.
그러나 어쩌랴,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다.
풀숲을 헤치고 산자락에 접근하자 직등은 너무 가파르다.그래서 좌측 사면으로 비스듬히 능선으로 접속한다.
산짐승들의 길인 듯 제법 오롯하다..
그렇게 산자락에 붙은 지 5~6분 만에 반듯한 능선에 올라선다.
아무리 사유지라고 하여도 산길로 통하는 접속길은 우회로를 열어 표시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
본격 능선 진입하자....
잇달아 무덤들이 나온다.
'무과급제월성최공지묘'다.
다시 날등으로 나란히 도열한 묘지.
잘 꾸며진 무덤인데, 잡목이 옭아매고 있는 걸 보아 묵어가고 있는 듯.
'증봉정대부수군자감정안동권공지묘'다.
236.6m봉을 지나자...
우리가 환종주할 시야가 살짝 열린다. 멀리 금곡산 방향.
내려앉는 무덤의 주인은...
풍천임씨 할머니.
잇단 무덤을 지나자...
화산 정상이다. 준비해간 표지기를 건 뒤 주위를 둘러 보았더니 '화산곡봉'이라는 코팅지가 붙어있다.
이제 임도. 우측 임도를 따르면 수월했겠으나 우리는 본능적으로 중장비가 닦아놓은 오름길로 직등하였다.
그 꼭대기엔 안테나인 듯 아주 높은 철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그제서야 중장비가 길을 닦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아주 높다란 전신주였다.
전신주 봉을 내려서자 다시 임도에 접속...
얼마안가 곧 시설물들이 있는 무릉산에 올라선다.
일행들을 기다렸다가 기념사진을 찍은 뒤...
시설물 울타리에 준비해간 표지기를 걸었다.
"이거 운지버섯?" 맥캔을 곁들여 식사를 하며 몇 잔의 담금주도 나눠 마셨다.
다시 줄쳐진 너른 묘지를 지나자...
'검단1리(달성골)' 표지판이 걸려있다.
길은 오솔길 수준.
오랜만에 함께 걷는 영표 씨. 그새 얼굴이 많이 상해 보이지만 걷는 모습으로 보아 컨디션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무심코 내려선 지점에서 지형도를 확인하니 '아뿔싸~' 길을 잘못 들었다.
그 지점에서 화살표 방향 표식지를 바닥에 깔아놓은 뒤 200여m 사면길로 두른 뒤...
정상진로에 올라섰다.
사면길을 이용하여 진로 수정하는 모습.
잘록한 안부인 '덕고개' 닿았다. 덕고개(고도 약 250m)는 B팀들이 내려설 곳.
우측으로 내려서면 금곡사. 나는 이곳에다 금곡사 방향으로 표식지를 깔아 놓은 뒤 그제사 산길을 바삐 타고 올랐다.
헬기장을 지나고...
378.7m봉도 지난다.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아 여유만 있다면 호젓한 길.
삼각점이 있는 금욕산에 닿았다.
욕심을 내려 놓는다는 것은 보통 수양으론 힘든 것. 나는 오늘 산욕심을 내려놓아야만 했었다.
잇단 철탑을 지나...
네 번째 철탑을 지나자...
'Y'로 갈림길.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15분 여만에 금곡산에 올랐다. 오늘의 최고봉이다.
내려가는 길은 무덤들이 있는 직진.
가파른 내림길에 무릎 바깥쪽이 아파온다.아주 불편하여 절룩절룩 조심할 수밖에 없었으니 시간은 의외로 더 걸리며 마음은 더 바빠진다.
이제 얼추 내려온 듯 지계곡에 떨어져...
지계곡을 살짝 벗어나자...
본류. 계곡치기로 내려서며 눈치껏 산길을 살피며...
계곡 우측으로 오롯이 난 시누대숲을 통과한다.
돌담과 커다란 배수구가 있는 걸로 보아 위쪽에 금곡사 시설이 있는 듯.
아직 계곡은 끝나지 않았고, 미끄러운 계곡을 마저 벗어나자...
작은 다리가 있는 곳에서 완전히 계곡을 벗어난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금곡사는 다녀와야지. 내 생애 지금이 금곡사와 마지막 인연일지니.
맞배지붕 두 당우 사이로 삼층석탑 한 기. 한눈에 보아도 비율이 일정한 신라시대 삼층석탑이다.
약사전 앞 원광법사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원광법사 부도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7호)’.
부도탑은 1층 몸돌과 3층 지붕돌만 남아 있었던 것을 3층 석탑으로 복원하였다.
널다란 바닥돌 위에 1층 기단이 올려져있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이 있는 구조이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고 윗면은 경사가 완만하다.
탑신의 1층 몸돌 4면에는 문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그 안을 파내어 불상을 새겨 넣었다.
금곡사지 원광법사 부도탑 안내판. 딱 여기까지의 거리가 12km라고 한다.
아직 4km를 더 걸어야 한다. 우선 총무한테 전화를 걸어 현위치를 알려주었더니 뒷풀이를 하겠단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니 그게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
민가에서...
덕고개 방향을 올려다 본 뒤...
화산곡지를 바라보며 바쁜 걸음을 걷는다.
양봉농가를 지나고...
화산곡지 위로 내가 둘러 내려온 산자락을 눈대중한다. 화산곡지 제방을 내려서자 다시 걸려온 총무의 전화.
저 밑에 우리 버스가 보인다. .두류1리버스종점' 바로 위다.
그 위엔 '(주)에코그린'이 있다.
30세부터 해마의 일부가 죽어가기 시작한다.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말했다.
'30세가 넘은 뒤 죽는 날까지는 대여섯 번쯤 예외가 있을 뿐 거의 매일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슬프다.'
내가 그렇다.
첫댓글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수고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