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초 구복이 평화로운 장평들 부모님 묘소에서 아버님 어머님 영전에 고합니다. 오늘은 양력으로 2026년 9월 5일이고 음력으로는 7월 24일입니다. 아버님의 기일을 맞이하여 산소의 벌초를 하기 위해 오늘 자손이 모두 모였습니다. 자손들이 많이 모여 아버지 어머님께 술을 한 잔씩 올리는 제사가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벌초 날 묘소에서 제사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동생 구철과 4형제의 아들, 형순, 운순, 창백, 기영, 건영과 손자 국진이 참석했습니다.
아버님은 76년 전 1950년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200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손자들은 생전에 할아버지를 만나 뵙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식인 저에게는 부모님의 그리움과 슬픔이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만 갑니다.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자책감과 부모님을 뵙고 싶은 심정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싶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이 세상 어떤 인연보다 더 크고 소중합니다. 부모님들의 자식에 대해 쏟으신 사랑과 열정은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하셨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생생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꿈에라도 뵙고 싶지만 꿈에서도 만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사진을 매일 아침 뵈어도 부모님은 말씀이 없습니다. 나이 80이 넘은 저희는 부모님 앞에서는 마냥 아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는 너무너무 커서 갚을 길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저희를 낳아 온갖 정성을 다해 길러주셨기에 저희들이 현재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님! 저의 7남매 중 가장 위인 큰 누나가 금년 3월에 세상을 떴습니다. 저의 7남매는 이제 4남매만 남아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저희 들 각 가정에 큰일이 없었던 것은 부모님이 보살펴주시는 음덕으로 생각하고 이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여기 모인 자손들이 각자 술잔을 올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것입니다.
세상은 많이 변해서 지금 우리나라는 아주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 저희들은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는 자유가 보장된 참으로 좋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청양군 적곡면(장평면)이란 산골에도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도로가 깔려 있습니다. 이제 장평면은 외딴 산골이 아닙니다. 마음만 있으면 두세 시간 안에 올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자유와 민주, 번영이 보장된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빼앗으려고 북한 당국은 원자폭탄과 미사일을 만들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어 불안이 상주합니다.
그러나 6.25 전쟁의 참화를 겪은 우리는 공산주의 사회의 속임수와 만행의 민낯을 경험했기 때문에 자유 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입니다. 현재 북한 군은 수천 명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투에 파견되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통일 조국을 이루어야 할 것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썩은 물이 고여있는 북한의 큰 제방을 허물어 그 안의 동포를 구해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눈을 옆으로 돌리면 10여 일 전 네팔이라는 나라의 히말리아 산에서 빙하가 녹아 엄청난 홍수가 나서 5000여 명이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온 세계의 인류가 저지른 업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기후 변화에 책임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과 그 가족에게도 행운의 광명이 비취기를 우리는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묘에서 제사를 지내기에 장조카 형순이가 제물을 정성껏 준비했으니 소략하지만 자손들이 올리는 청주와 함께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아버지 어머니 묘 앞에 꽃을 세워놓으려 꽃을 준비했습니다. 시들지 않는 꽃으로 비록 향기는 없지만 아름다운 꽃이라고 여기시어 반겨주시고 평안히 계십시오.
2026년 9월 5일 불초 구복 올림
첫댓글 아침 4시 30분에 아들 차로 고향 가는 길에 올랐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이것 저것 준비하느냐고 5시 10분 경에 출발해 고향 장평면에는 7시 20분 경에 도착했다. 오늘 벌초 날자를 내가 장손에게 부탁하여 1주일 앞당겼다. 이제 가을 날씨였다. 1950년 달력을 살펴보았더니 공교롭게도 금년처럼 음력과 양력이 같았다. 젊은 조카들이 벌초를 하고 묘에서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집에 3시 경 돌아왔다. 고향 가는 길은 마냥 어린아이처럼 기쁘다, 장평 넓은 들에는 벼가 머리를 숙이고 있다. 묘제에서 읽은 축문이다. 그리고 나는 곡을 했다. 나의 할아버님이 증조부 제사 때에 그렇게 슬피 곡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어제 아침 7시에 둘레 길에 오르면서도 아이고 아이고 곡을 했다.
낙암 교수님 묘제 축문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벌초와 묘제에 참례한 자손의 이름도 밝히셨습니다. 부모님 생애도 소상하게 언급하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는 효심도 절절하게 담으셨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국내외 정세에 관해서도 잠들어 계신 부모님께 자상하게 보고 드렸습니다. 이같은 한글 축문은 묘제에 참석한 자손들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훌륭한 교육자료가 될만한 인상 깊은 축문입니다.
윤 선생! 댓글 감사합니다. 글을 올리면서 윤선생이 부모의 사진을 앉고 비행기를 탔다는 효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글입니다. 모교 앞을 지나면서 들러보고. 싶지만 그냥 지나쳐습니다. 고향 곳곳이 정겹기만 합니다. 시골은 평온했습니다.
고향의 정겨움과
가족의 애틋함이 전해집니다.
여든을 넘긴 연세에도 부모님 앞에서는 여전히 그리움 가득한 아이가 된다는 고백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먼저 떠난 혈육에 대한 애틋함부터
온 가족의 안녕, 나아가 나라와 세상을 걱정하는 혜안까지 담긴 이 진솔한 글은 하늘에 계신 아버님과 어머님께도 분명 온전히 닿았을 것입니다.
올리신 술잔과 변치 않는 꽃처럼, 자손들의 정성을 흐뭇하게 흠향하시며 영원한 평안으로 보살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만나뵐때까지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복 선생 평해주신 글 감사합니다. 이제 아들이 아니면 시골에 갈 수도 없습니다. 언제 한번 만납시다.
네.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재차 기원드립니다. 저의 아버지도 1934년생인데, 아직까지 장수마을 청양 장평면 락지리에서 생존해 계십니다.
잘 주무시는 것이 건강의 비법이 아닌가 자문자답 해 봅니다~~
복진한 씨 아버님은 같은 마을에서 살앟고 9년지장이신데 중학교 선배님이십니다. 꼭. 찾아 뵈워야할 분이십닏다. 처음으로 만나뵙는 기쁘을 올 가을 시제에 가면 찾아뵙고 싶습니다.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참으로 반가운 인연될 것입니다.